박건하

 




'''박건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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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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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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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신인상'''
'''1995년'''

'''1996년'''

'''1997년'''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박건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신진원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SUWON SAMSUNG BLUEWINGS'''
''' 이름 '''
'''박건하
朴建夏 / Park Kun-Ha'''

'''국적'''
대한민국 [image]
'''출생'''
1971년 7월 25일 (52세)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학력'''
대전동중학교
대전상업정보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직업'''
축구선수(중앙 공격수, 센터백[1] / 은퇴)
축구감독
'''신체'''
182cm 체중 74kg
'''소속'''
'''선수'''
[image] 이랜드 푸마(1994~1995)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6)'''
[image] 가시와 레이솔(2000 / 임대)
'''감독'''
[image] 매탄고등학교 (2009~2010)
[image] 서울 이랜드 FC (2016)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0~)[2]
'''코치'''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2009)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2010)
[image]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1~2012)
[image]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6)
[image] 다롄 이팡 (2019 / 수석 코치)
[image] 상하이 선화 (2019~2020)
'''A매치'''
21경기, 5골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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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18'''
''' 별명 '''
찰리박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3.3. 다롄 이팡 코치
3.4. 상하이 선화 코치
3.5.1. 2020년
3.5.2. 2021년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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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찰리박.
2020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실업축구리그의 대표 선수였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이자 간지폭풍의 세리머니[3]와 팀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했다. 감독 시절에는 2016년 서울 이랜드 FC 감독을 맡았고 이후 최강희 감독을 따라 다롄 이팡의 수석 코치를 거쳐 상하이 선화의 코치를 맡았다.

2. 선수 경력


[image]
대전 우송중학교[4]를 졸업했는데 중학교 2, 3학년 때 전국 대회에 나가 학교 선배인 이태호, 김삼수가 활약하던 시절 이후 오랜만에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다.
그 후 우송고등학교[5]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으나 당시 K리그에 있던 드래프트 제도에 반발,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당시 실업리그 최강 팀이었던 이랜드 푸마에 입단하여 활동했다.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하게 되면서 프로 진출을 선언, 수원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
수원에서 뛰게 된 첫 시즌에는 '중고 신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꾸준히 활약, 34경기 출장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 시즌까지 꾸준히 수원의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은근히 잔부상이 있었으며 수원의 공격수가 그동안 워낙 후덜덜해서[6] 박건하는 주로 No.3 공격수 정도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타 K리그 팀들의 영입 제의가 있어도 꾸준히 수원에 대해 충성심을 바쳐오기도 했다. 2000년에는 수원에서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를 간 샤샤를 대신해서 3개월간 가시와로 임대를 갔다오기도 하였으나 수원으로 복귀하여 다시 활약하게 된다.
2002시즌을 앞두고 당시 수원 수비진의 부실화 및 박건하의 전체적인 공격수로의 폼 저하, 그리고 그의 수비수로서의 재능을 눈여겨 본 김호 감독에 의하여 중앙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였는데 이것이 예상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7] 비록 발이 느려졌긴 하지만 공격수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 공격수들의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박건하의 지능적인 플레이는 당시 수원이 운용하던 포백에서 조성환이나 조병국과 같은 젊은 수비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2005년에는 박주영과 몸싸움을 하다가 코뼈 부상을 당해서 안면 보호용 마스크, 일명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장하기도 하였다.[8]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200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고, 첼시 FC에서 연수를 받은 후 수원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감독을 거쳐 윤성효 감독 선임 때 같이 수원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1월 4일 서정원 코치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옮기게 되어 비어버린 올림픽 대표팀 코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관련기사 참고로, 그와 같은 시기에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코치로 고종수 코치가 영입.
2013년 홍명보호가 출범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고, 동아시안컵, 브라질 월드컵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워낙에 결과가 안좋아 선수단이 단체로 욕먹던 와중에도 이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감독 교체 후 사퇴가 유력했다. 이후 슈틸리케호에서도 2015년 AFC 아시안컵까지 코치로서 남아있게 되었다. 외국인 감독으로서 국내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코치가 필요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이루는 성과를 올리자 그런대로 까방권은 얻게 되었고 이후 김봉수 골키퍼 코치와 함께 계약 연장을 해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잔류한다.

3.2. 서울 이랜드 FC 감독


2016년 6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마틴 레니의 후임으로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년까지 2년 6개월이었으며, 서울 이랜드 FC의 모기업인 이랜드그룹이 한때 운영했던 실업 축구단인 이랜드 푸마에 속해 있었던 것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7월 3일 부천 FC 1995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었으며, 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치른 4경기에서 2승 2무를 기록하면서 감독 교체의 긍정 효과가 나타났음을 보여주었으며, 확실히 박건하 감독 부임 이후 이랜드는 팀이 끈끈해지고 수비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당시 수비적인 축구로 서울 이랜드는 홈 팬을 상당수 잃은 상태였는데, 키워드로 열정과 열광을 강조했하면서 선수들은 실수도 있지만 도전적인 침투 패스로 상대의 후방을 노리는 축구를 펼쳤다.
전임 마틴 레니 감독은 수비 안정에 실패하면서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하다 결과를 놓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모든 감독들이 그렇듯 수비를 안정시켜 공격으로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박건하 감독의 방향성이었으며, 박건하 감독의 4-2-3-1은 기동력이 뛰어난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이용해 1차 저지선을 강화하고, 김동진-칼라일 미첼-김동철 3명의 센터백을 상황에 따라 조합을 바꿔가며 뒤를 지지하는 대신 양 풀백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토록 했다.[9]
팀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해 비정상적이었던 선수들의 포지션을 정상화한 것도 효과를 봤다. 레니 감독이 선수들의 포지션을 바꿔가며 혼란을 준 것과 달리 선수들이 가장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로 조정했으며, 베테랑 김동진은 체력 부담이 큰 풀백 대신 센터백으로 옮겨 수비라인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신일수도 빠르고 강한 패스로 공격을 지원할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완전히 신뢰를 받았고, 팀 사정에 따라 풀백, 측면 윙어를 보던 김재성도 공격 2선이라는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공격 전환 시에 나온 패스미스, 주민규의 포스트 플레이와 타라바이의 침투에 의존하는 단순한 공격 루트를 더 다양하게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렇듯 박건하는 마지막까지 PO 도전을 했지만 끝내 실패하면서 2016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성적은 23경기 11승 8무 4패. 마지막 6연승의 불꽃을 붙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부산 아이파크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7년에 김병수 감독의 챌린지 적응과 이랜드그룹의 부진한 지원으로 인해 시작부터 서울 이랜드 FC가 하위권에 머무르면서, 박건하 감독을 그리워하는 서울 이랜드 FC 팬들이 아직도 있다.
박건하 재임 시절 소나무라는 예명을 쓰는 기 치료사를 영입한다. 그런데 이 기 치료사는 박건하와 막역한 관계이며 팀의 전술, 선수 관리 등 모든 감독의 권한을 일임받아 팀을 운영했다는 소문이 있다. 경기 전날 박건하는 소나무에게 포메이션과 선발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소나무의 결정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발은 소나무가 좋아하는 선수 위주로 짰다는 것이다. 선수단의 분열은 심각했고 그로 인해 사기도 많이 저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행태가 구단에 알려졌고 구단 고위직이 박건하에게 사퇴를 제안하게 된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사태를 막기 위해 인창수 코치의 대행체제로 남은 경기를 운영하되 공식적인 감독은 박건하가 맡는다는 합의를 하게 되고 마지막 6연승은 인창수의 전략과 전술로 이루어지게 된다. 루머일 뿐이지만 소나무의 존재는 사실로 확인 되었으며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2016년 기사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3.3. 다롄 이팡 코치


이후 MBC 스포츠플러스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MBC의 해설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도자랑은 거리를 두었으나, 2019년 다롄 이팡 수석 코치로 부임하면서 최강희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3.4. 상하이 선화 코치


[image]
시즌 중반 최강희가 다롄을 떠나 상하이 선화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최강희을 따라 상하이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2020년 9월 8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이 된다는 단독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에 따르면 상하이 선화와는 진작 결별한 상태라고 한다.

3.5.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3.5.1. 2020년


단독 기사가 뜬 2020년 9월 8일 오후, 수원 삼성 감독 선임이 공식 발표됐다. 계약 기간은 2022년 12월 31일까지로 2년 4개월이다. 발표 다음날인 9월 9일 선수단과 상견례 이후 이날 오후 훈련부터 지휘한다. 데뷔전은 9월 13일 K리그1 20라운드 서울전 원정이다. 숱한 논란을 낳은 전임 감독프로 경력부터 미심쩍었던 감독대행을 겪은 후, 위상에 전혀 맞지 않게 강등 위기에 처한 팀을 과연 구단 레전드가 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10] 감독 부임 인터뷰에서는 "수원정신을 되돌려 놓겠다."란 말을 남겼다.
9월 14일, 데뷔전인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에서 2:1로 패했다. 다만 부임 직후라 본인의 전술이 아닌 주승진 대행 시절의 전술을 그대로 사용했고, 팀의 상황이 워낙 안 좋았던 만큼 팬들은 이해하는 분위기이며, 슈퍼매치 패배임에도 딱히 박건하 감독을 비난하는 여론은 없다.
9월 16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는 슈팅 수 15:6으로 압도하고도 강현무의 선방쇼에 가로막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허나 경기력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0일, 강원 FC와의 정규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부임 후 첫승을 거뒀다. 특히 후반에 고승범을 교체 투입하여 경기의 흐름을 바꾸면서 뛰어난 용병술을 보여주어 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11]
9월 26일, 서울과의 파이널B 첫 경기에서 3 대 1승을 거두며 5년 5개월 만의 슈퍼매치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감독 부임 이후 터지지 않았던 필드골이 탄생했고, 경기력 자체도 우수했다는 점에서 팬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파이널B 첫 경기로 1989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리그에서 이기지 못한 숙적을 상대하는 것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대승으로 장식하며 리그 잔류를 위한 첫 단추를 훌륭히 끼웠다.
10월 4일, 인천과의 파이널B 경기에서 또 승리함에 따라 1년 반 만에 3연승을 가져갔다.
그리고 10월 18일, 부산과의 원정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둬서 1부리그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후 성남전에서 1:2로 패했지만 리그 최종전인 강원전에서 2:1로 이기면서 총 8경기 4승 2무 2패를 기록, 전임자들인 이임생(2승 4무 5패)이나 주승진(2승 1무 6패)보다 더 적은 경기를 지휘하고도 더 많은 승점을 따내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리그 종료 후 카타르에서 재개되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앞선 경기에서의 2패의 성적, 주요 선수들이 빠진 스쿼드 때문에[12] 예선 광탈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패를 안겨주었던 조호르 다룰 탁짐코로나 19 때문에 대회 불참을 하면서 1패가 사라졌고 광저우 헝다에게 2무, 빗셀 고베에게 1승을 거두며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13] 상대적으로 약한 스쿼드로도 투지있고 짜임새있는 경기력을 보여 수원팬들 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16강전 상대는 K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박살낸 J리그 챔피언 요코하마 F. 마리노스였다. 경기 전 민상기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경기에 뛸 수 없게 되는 악재가 발생했는데,[14] 그 때문에 수원은 로테이션을 거의 돌리지 못했고 외국인 선수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해서 여러모로 힘든 경기가 예상되었다. 예상대로 전반전은 요코하마에게 먼저 골을 내주면서 끌려갔고 실점 위기 장면도 여럿 나왔으며, 심판의 아쉬운 판정도 있었다. 그러나 수원 선수들은 끝까지 투지를 불태웠고, 결국 후반전에 터진 김태환의 동점골과 김민우의 역전골 그리고 한석종의 쐐기골까지 나오면서 3-1이라는 기적의 스코어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막판 한 골을 내줬지만 끝까지 리드를 지켜내면서 3:2로 승리, 극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박건하의 지도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8강부터는 로스터에 선수를 추가 등록할 수 있는 호재까지 겹치기 때문에 8강에서는 어떤 경기력을 보일지 주목이 되고 있다.
8강에서 빗셀 고베를 다시 만나면서 조별리그 리턴매치가 성사되었다. 전반 7분에 박상혁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38분에 김태환이 퇴장당하는 악재가 터지고 40분에 동점골을 먹혀서 전반은 1-1로 끝냈다. 하지만 수원은 이임생 시절처럼 굴하지 않고 고베상대로 슈팅 17:15, 유효슈팅 8:7로 '''10명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공격력'''을 보여주며 승부차기까지 끌고가는 놀라운 투지를 보여줬다. 아쉽게 승부차기에서 한골차로 석패했지만, 수원의 아챔에서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투지있는 모습은 많은 K리그의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15]
이임생, 주승진 시절까지만 해도 희망이 없어보였던 수원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하고, 카타르에서 열린 2020년 AFC 챔피언스리그 잔여 경기에서 예상 외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서[16] 수원 팬들한테 많은 기대를 갖게 한 시즌이었다.

3.5.2. 2021년


2월 28일, 광주 FC와의 개막전에서 1:0으로 승리, 3년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뒀다.

4. 여담


  • 선수시절 트레이드 과정에서 꽤 개그스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 2000년 당시 팀 개편을 하던 수원이 당시 K리그 특급 용병 사샤를 가시와로 먼저 보냈다[17]. 사샤와 매우 친하게 지냈던 박건하는 매우 아쉬워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 후 박건하도 가시와로 임대 갔다.(...) 그러다 J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사샤가 수원에서 데니스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황선홍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건하도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둘 다 상당히 멋쩍은 반응이었다고. 박건하는 사샤보고 '이제 너 얼굴 보는 것도 질림ㅋ'라는 반응을 보였다.
[image]
  • 골을 넣으면 옷깃을 세우는 에릭 칸토나 세레머니로 유명했다. 훗날 같은 팀 후배가 되는 서동현, 김태환도 이 세레머니를 따라하면서 박건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18]
  • 중학교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시험을 보던 도중 감독관 선생님께서 박건하의 시험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너는 참 이름이 재미있네. 이거하고 저거하고 바꿔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어찌 보면 아재 개그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선수말년에 포지션을 변경해서 뛰었다.[2] 시즌 도중 부임.[3] 골을 넣은 후 에릭 칸토나가 자주 보여준 깃 올리기 세레머니를 하였다.[4] 당시 대전동중학교.[5] 당시 대전상업고등학교[6] 그와 함께 뛴 공격수들로는 샤샤, 데니스, 황선홍, 비탈리, 미하이 등 그야말로 K리그를 정ㅋ벅ㅋ한 선수들이 넘쳐난다.[7] 김호 감독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 시절 정성훈에게도 수비수 전향을 권했다가 거부당했고 정성훈은 대전을 떠나 부산에서 공격수로서의 재능을 만개했다.[8]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은 이후에 8강전부터 썼던 그 마스크이다.[9] 기본적인 틀은 박건하 감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두 감독 홍명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밸런스 지향 축구와 동일하다.[10] 하필 첫 경기가 슈퍼매치이다..[11] 이 과정에서 이른바 '''쎄오 타임'''이라고 불리면서 직전까지 발목을 잡았던 고질적인 후반전의 수비 뒷심 문제를 단 한 마디로 해결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훈련을 직접 보면서 선수단에게 지적한 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상황에서 너무 많이 뛰는 거였던 것.''' 저러다 보니 다른 팀에 비해 체력 방전도 빨리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수비 조직력이 쉽게 허물어진다고 본 것이다. 쎄오 타임의 근본적인 문제를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은 것이였으며, 이것을 보완한 결과는 4승 2무 2패로 잔류 성공이었다.[12] 염기훈은 지도자 교육과정 이수로 불참. 크르피치는 계약 종료로 귀국. 그 외의 용병은 전원 부상. 즉, '''용병 한명 없이''' 대회를 치뤄야 한다![13] 당시 빗셀 고베를 무조건 2골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16강에 갈 수 있었는데, 딱 2: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극적으로 진출했다.[14] 조호로전은 무효처리 되었으나 해당 경기서 받은 경고는 계승된다는 AFC의 석연찮은 유권해석에 의해 직전 고베전에서 받은 경고까지 해서 경고 트러블이 걸렸다.[15] 이 당시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아치 에너미급인 FC 서울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들조차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응원했을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16] 특히 16강에서 2019 시즌 J1리그 챔피언이었던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모두의 예상을 깨고 3:2로 잡으면서 박수를 받았다.[17] 이는 1999년 시즌 부산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사샤가 핸들링 결승골을 넣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 그래도 괴물같은 전력으로 K리그 각팀 팬들로 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거의 공공의 적 급으로 팬심이 격앙되었기 때문.[18] 특히 김태환은 옷깃 세레머니를 하고 박건하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등 박 감독에게 큰 존경을 표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박건하 본인은 세레머니를 보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