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43 하야부사
[image]
[image]
복원된 기체.
'''陸軍 一式戦闘機 キ43 隼'''
'''Japanese Army Type 1 Fighter Nakajima Ki-43 Hayabusa 'Oscar''''
1. 개요
일본군 육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운용했던 전투기로 공식명칭은 '''육군 1식 전투기'''였으며 연합국 코드명은 오스카(Oscar)이다. A6M 제로센이 당대 일본군 해군 전투기의 상징이었다면 하야부사는 육군이 제로센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전투기였다. 육군에서 부여한 애칭인 '하야부사'는 매의 일본어 발음.
2. 개발
중일전쟁무렵 일본 육군의 주력기는 1937년 최종 경합에서 승리하여 배치된 나카지마 비행기(이하 나카지마 사)에서 제작한 육군 97식 전투기 Ki-27이었다. Ki-27은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채택한 저익단엽 전투기로 중일전쟁에서 꽤 활약했지만 고정식 랜딩 기어를 채택했을 정도로 기술적으로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일선에서의 평가는 꽤 좋은 편이었으나 언제까지 Ki-27 수준에 만족할 수는 없었으므로 채택이 끝난 직후 바로 차기 전투기 사업을 진행했다.
보통 차기 전투기 사업은 공고를 내고 여러 업체들이 제작한 시제기들이 경합을 벌여서 가장 우수한 항공기를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Ki-43은 이러한 절차없이 그냥 Ki-27을 제작한 나카지마사에 시속 510km, 항속거리 800km 조건을 주고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형태로 진행됐다. 의뢰를 받은 나카지마사는 1939년 초에 마침내 시제기를 완성하여 시험비행에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 때 제작된 시제기는 기존 주력기인 Ki-27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로 인해 시험비행에 참여한 조종사들은 온갖 악평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육군에서도 이를 근거로 신형 전투기 채택을 거부했다.
이 문제로 나카지마사는 한동안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주익을 재설계하고 일명 "버터플라이 플랩"이라 불리는 공중전 플랩을 장착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버터플라이 플랩은 공중전시 주익 아랫면의 작은 플랩을 펼쳐서 주익의 양력을 증가, 저고도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조종사들의 입맛에 딱 맞는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차기 전투기로 채택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여담으로 이 기록을 가지고 일본에서 전 세계에서 최초로 전투기에 공중전 플랩을 실용화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정보다. 하야부사보다 먼저 만들어진 독일의 Bf109가 하야부사보다 더 진보된 공중전 플랩을 사용하고 있었다.
3. 배치 및 활약
이렇게 하야부사의 양산과 배치가 결정된 것은 1941년 4월로 이 때가 황기 2601년이었으므로 '육군 1식 전투기'란 공식적인 명칭이 붙게 됐다. 여기에는 해군의 제로센이 1940년에 양산되어 0식 함상 전투기가 됐으니 육군에서는 해군보다 더 최신 전투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식 전투기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기동성 향상 문제로 양산이 좀 늦어졌던 까닭에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아직 제대로 배치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개전 초기 일본군 육군의 실질적인 주력기는 Ki-27이었다.
이 무렵 일본의 남방작전에 대항하고 있던 연합군의 주력전투기는 F2A 버팔로였다. 당시 연합군은 본토가 오락가락하던 영국의 사정과 전쟁준비가 미처되지 않은 미국의 사정이 겹친 것도 있고, 일본의 항공기술력을 얕잡아보고 있었기에 이 정도 기체면 쌈싸먹고도 남을거라 판단했다. 물론 개전 초기 주력이던 Ki-27을 상대로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신예기 Ki-43에게는 역부족이었고, 동남아 지방에 배치된 연합군 조종사들의 실력도 중일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일본군 조종사들에 비하면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탈탈 털리고 말았다.
다만 당시 육군에서는 신형 전투기의 존재 자체를 극비에 붙였기 때문에 연합군은 물론이고 일본 내부에서도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반면 해군에서 운용하던 제로센은 이미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하야부사는 제로센에 비해 약간 가냘프게 생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쉽게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생겨먹은 특징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연합군은 Ki-27이 아닌 저익단엽기를 보면 죄다 제로센으로 보고해버렸고,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연합군을 상대로 완벽한 연막을 치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불구대천지원수'''라고 해도 좋을 해군의 제로센에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심지어는 "레이센이 중국에서 맹활약했대! 우리 해군 짱이다!"라는 말이 나오자 약이 바짝 오른 육군은 결국 1942년 공식적으로 하야부사의 존재를 공표하고 제로센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친 기체라면서 대대적인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전선이나 동남아 전선 초창기, 일본 해군이 작전하지 않은 곳에서 그 유명한 플라잉 타이거즈같은 부대에서 교전하고 격추시킨 일본 단엽 전투기는 보고와는 달리 제로센이 아니라 하야부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통칭 '카토 하야부사 전투대' 로 유명한 64전대는 지상레이더와 숙련된 조종사를 앞세워 항복하는 날까지 영국 및 미국의 신예기와 전투하면서 대등한 킬레이쇼를 달성했다.
또한 미군 등의 전투기에 비하면 방어력이나 생존성에서 한 수 아래로 일본기 일반의 방어력과 내구성 부족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원샷 라이터로 악명을 날린 해군기들과 비교하면 조종석 보호장치와 같은 기본은 갖췄을 정도로 신경은 썼다.[1] 그런데 이렇게 최소한의 기본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조 히데키가 강력히 주장한 결과였다고 한다. 또 해군기들 처럼 '장대한 항속거리'에 목숨거느라 아무 안전설비도 없이 익내연료탱크를 달고다니는 상태는 아니었으니 그나마 나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시 무게를 줄이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비슷한 탓인지 연합군 조종사들의 평가에선 그냥 '맞으면 불 잘 붙고, 잘 부서진다'로 제로센 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다르기는 다른데 상대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만 다르다'는 것. 그런데 하야부사가 이런 부분이 방어력만은 아닌듯...
물론 기본적으로 제로센과 비슷한 시점에 등장한 기체이고, 엔진기술이 받쳐주지 않는 채 경량화를 통한 고기동성을 추구한 방향도 비슷하기에 전쟁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이미 성능으로는 시대에 뒤쳐진 전투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중전 플랩 등을 통해 저속선회전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래도' 제로센에 비해서는 튼튼한 기체였기에 위험성은 존재하는 기체였다. 이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쟤랑 저속 선회전하면서 놀면 안된다"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그러나 '30구경 2정 → 30구경 1정 + 50구경 1정 → 50구경 2정'의 소소한 화력은 전쟁 내내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물론 하야부사가 개발되던 시점엔 다른 나라의 전투기들도 30구경급 기관총 같은 무장을 여전히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전금속제 단익기의 시대가 되며 갈수록 견고해지는 항공기를 상대로 30구경급 화기만을 믿기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확산되던 시기이다. 그 결과 이미 1930년대 말이 되면 12.7~13mm 급 중기관총이나 20mm급 기관포도 전투기용 무장으로 속속 채택되던 시기이다.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탓에 하야부사는 내내 화력부족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하야부사의 화력문제는 원래 일본군이 경전과 중전 믹스 개념을 채택하여 장거리 폭격기의 호위전투기로 적 전투기를 주로 상대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경전투기 하야부사와, 적 폭격기를 요격하는 고화력 중전투기 Ki-44 쇼키란 투톱체계를 구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개전하고 나니 전투기조차도 갈수록 튼튼해진 탓에, 이 투톱 체계는 당초 생각한 것과 달리 신나게 삽질한 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전쟁 초반 싸웠던 F2A 버팔로같은 경우는 다수 형식이 방탄판이나 방탄유리, 자동방루 연료탱크 등을 장비하지 않은 상태였기에[2] 이런 소소한 화력도 이빨이 먹혔는지 모르지만 전쟁 중,후반부에 마주칠 전투기들은 빼고라도 P-40이나 F4F 와일드캣만 되어도 버거운 무장인 것은 틀림없다.
일례로 전쟁 초기부터 하야부사와 (제로센인줄 알고) 전투를 벌였던 플라잉 타이거즈가 일격이탈 전법과 함께 즐겨 사용했던 것이 바로 '헤드온 대결'이었다. 이는 P-40이 하야부사에 대해 기체의 방어력이나 내구도로도 우세할 뿐 아니라, 화력면에서도 우세하기 때문에 활용되었고 또 나름 재미를 본 것. 그런데 사실 공랭식 엔진 전투기와 수냉식 엔진 전투기가 헤드온으로 싸우면 '원래는' 공랭식 엔진인 쪽이 유리해야 한다. 단 적기의 엔진에 쉽게 타격을 줄 만큼의 화력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기본 맷집도 빈약한데다 (특히 초기버전)이라면 7.7mm 두 정 혹은 7.7mm와 12.7mm 한 정 씩을 쏘고 있을 하야부사에 대해, 애초 맷집도 더 좋은데다 그 두 배를 넘는 화력 - 12.7mm 2정에 7.62mm 4정을 퍼붓는 플라잉 타이거즈의 P-40B의[3] 대결이라면 하야부사가 공랭식 엔진이라는 것 같은 건 별 상관도 없어진다. 그냥 더 많이 쏘고 더 많은 피탄을 버틸 수 있는 쪽이 유리한 싸움이 될 뿐이고 이런 전투라면 P-40이 더 유리해진다.[4] 이는 결국 하야부사의 맷집도 맷집이지만 (어차피 이는 일본기 대부분의 공유사항인데다, 제로센 등에 비하면 하야부사는 그보다는 나은 편이었으니) '펀치력' 부족에서 기인한다.[5]
그 후에도 하야부사는 최대 12.7mm Ho-103 기관총[6] 2정이라는 소박한 무장만 지닌 채 방어력, 화력, 기동성에서 한 수준 이상 더 강력한 연합군 전투기들을 상대해야 했다...
아무튼 이 상황에서도 좀 더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 '12.7mm 고폭탄' 같은 것도 사용했다.[7] 이는 앞서 말했듯 12.7mm급 화기치고는 약간 약한 탄을 사용해서 일반적인 철갑소이탄 등을 사용했을 때의 관통력이나 파괴력이 다소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Breda 12.7mm x 81SR탄을 사용하던 이탈리아군도 '12.7mm 고폭탄' 같은 걸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고폭탄을 사용하기엔 너무 작은 구경의 화기라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게다가 당연히 장갑방호부위에 대한 관통력은 철갑탄이나 일반탄보다 미미했다. 그럼에도 화력부족을 조금이라도 벌충하기 위해 많은 기체들이 종종 탄약전부를 이 탄종으로, 혹은 고폭탄과 소이탄으로 채워 운용하기도 했다.
그나마 대전 후반에 Ho-5[8] 라는 나름 적절한 성능을 가진 20mm 기관포가 개발되어 하야부사의 기수에 장착될 수 있었으나 이 때는 이미 전세가 기울어 이 기관포 장착형은 몇 대 생산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애초 주익에 무장탑재가 가능하게 설계했으면 이런 고생을 할 일도 없었을 것 같지만...)
4. 그 외 이야기
대중들의 인식에서 제로센에게 밀린다. 사실상 제로센이 해군 함상전투기의 상징을 넘어서 구 일본군 항공기의 상징으로 인식되는지라 본 위키에서의 항목도 비교적으로 부실해보인다.
플라잉 타이거즈를 이끌었던 클레어 셰놀트는 '제로센과 싸웠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주로 하야부사와 싸운'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셰놀트 보고서'를 작성, 미 육군과 해군에 제출한다. 보고서는 '격투전에 말려드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고, 대신 '붐 앤 줌'의 일격이탈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을 골자로 하는 '대 제로센 대응전술'을 제안한다. 이는 이후 미군의 '대 제로센 전술' 수립의 기틀이 된다. 그러나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는 하야부사와의 전투를 제로센과 싸운 것이라 헷갈린 '착각'에서 출발한 대 제로센 전술이었던 셈. 하지만 미군은 이 '착각을 바탕으로 만든 대 제로센 전술'을 통해 정말로 제로센의 초반 우세를 꺾는데 성공했다. 이는 하야부사와 제로센이 모두 경량화로 요구성능을 달성한 저속선회전 위주의 전투기라서 혼동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만큼 전투 특성이 흡사했던 탓이라 하겠다. 애초에 군수를 등한시하고 별 차이도 없는 물건을 육해군이 따로 만드는게 일본의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육군은 이미 구식기가 된 하야부사를 대체하기 위해 Ki-61 히엔과 Ki-84 하야테 등 신형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대전말 그야말로 안습한 일본의 자원 및 공업사정 등으로 인해 일선에 배치된 신형전투기들은 어딘가 한 군데씩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지닌 경우가 다수였다. 그 때문에 신형 전투기를 몰아보고 나서 심하게 데인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신뢰성이 보장되는 하야부사를 끝까지 버리지 못했고 결국 전후까지 운용됐다. 버마의 64전대 이야기.
그 영향으로 일본이 패망한 직후에도 남아있는 기체들이 상당했으며, 동남아시아에 방치된 하야부사는 인도네시아 공군이 사용했고, 프랑스도 북베트남, 즉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노획한 기체를 쓰기도 했다.[9] 일본에도 비행 가능한 기체가 상당히 남아있다고 한다.
[image]
이러한 사정은 일본의 주요 식민지였던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어서, 광복 이후 북한이 각지 비행장에 남아있던 일본군 군용기를 정비, 재도색하여 한국전쟁 당시 운용했다고 한다.[10] 그 중 미림 비행장에 방치되어있던 Ki-43-III을 평양 사람들이 위 사진처럼 재도색하고 정비했다는데, 결국 나는 것은 실패했다고 하는 등[11] 정상적인 전력으로 운용되지는 못한듯 하고, 소련에서 Yak-9을 받은 뒤로 전량 교체해버렸다. 2015년 전투비행술 경기대회에 하야부사가 관측되었다고 하는데, 해당 기체는 하야부사 보다는 Yak-18 훈련기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하야부사는 남북한 통틀어서 유일하게 운용된 일본 노획제 전술기이다.[12]
가토 하야부사 전대로 유명한 64전대의 경우 Ki-84를 운용하던 50전대와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Ki-84 파일럿들이 일격일탈 전술로 한두번 치고 빠지면 약이 바짝 오른 스핏파이어 무리들과 Ki-43만으로 교전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그런데 일본 패망 이후 64전대는 영국공군과 항복협상 당시 영국군의 호의로 스핏파이어를 몰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전대장이던 미야베 소좌가 몰고 싶은 사람은 손들라고 했더니 전대원 모두가(...) 손들어서 결국 최고참 파일럿에게 기회를 줬다는 일화가 있다.
5. 미디어 등장
- 극우 미디어물인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에서 카미카제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일본군 전투기로 등장한다. 문제는 A6M보다 한참 약해빠졌다는 거지만.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에서는 코스모 팔콘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오키타 쥬조가 별칭으로 하야부사라고 부른다.
워 썬더에서 Ki-43 하야부사는 일본 육군 항공대 2랭크와 3랭크, 중국 공산당 2랭크에 배치되어 있는 전투기로 공통적으로 뛰어난 기동성과 랭크 대비 적절한 비행 성능을 자랑한다. 첫째 사진은 Ki-43-1으로 7.7mm 기관총 1정과 12.7mm 기관총 1정을 기본으로 사용하며 둘째 사진은 Ki-43-2 모델로 12.7mm 기관총 2정을 탑재하였다. 비행 성능과 기동성은 제로센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지만 화력의 부족함은 단점이다. 하지만 셋째 사진의 Ki-43-3 모델은 20mm 기관포 2문을 탑재하여 화력의 증강을 꾀하였는데 워 썬더 하야부사 계열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다, 비행 성능, 기동성, 화력의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사진은 미군이 노획한 모델로 은장 도색과 미 항공 마크가 외관상 특징이다. Ki-43-2 하야부사 모델로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이며 비행 성능과 기동성 그리고 화력은 다를 바가 없으나 이 전투기를 운용할 경우 추가 라이언 포인트 및 연구 경험치 등과 같은 프리미엄 혜택을 부여 받는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는 중화민국 노획기로 중국 4티어 프리미엄 전투기(Ki-43-Ic)로 처음 등장한 뒤, 이후 1.9.6 업데이트로 일본 2차 전투기 트리가 등장하면서 Ki-43-I이 4티어, Ki-43-II가 5티어로 등장했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도 일본 정규트리 라인업에 구현되어 있다. 선회성능은 제로센과 맞먹는 수준이지만 저질스러운 화력때문에 역시나 버려져있다.
- 함대 컬렉션에서는 2017년 봄 이벤트 "출격! 북동방면 제5함대!"에서 1식전 하야부사 2형, 3형甲, 3형甲(54전대), 2형(64전대)가 이벤트 클리어 보상으로 풀렸다.
- 애니메이션 황야의 코토부키 비행대에서 코토부키 비행대의 전투기로 등장한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 육군항공대 전투기로 등장한다.
일본 육군항공대 1티어 무료 전투기 Ki-43 오스카
[image]
일본 육군항공대 프리미엄 전투기 Ki-43 오스카
[1] 이런 점 등 때문에 제로센을 신나게 까는 구일본군약소열전에서도 하야부사에 대해서는 '그래도 당시 일본의 수준에서는 나름 견실한 전투기'라고 비교적 후한 대접을 한다.[2] 초기형 F2A-1, F2A-2와 네덜란드군이 사용한 B-339C,D는 원래 없었고, 방탄판 등이 도입된 후기형 F2A-3이나 영국군의 B-339E도 기체가 중량증가를 버티지 못해 급격하게 비행성능이 악화된 탓에 다시 철거하고 운용한 사례가 많았다.[3] 물론 12.7mm 4-6 정, 심지어 8정을 사용하던 이후 미군전투기들과 비교하면 사실 이쪽도 소소한 화력이다.[4] Ki-84 하야테 항목에 '하야부사인 줄 알고 헤드온을 걸었다가 날아오는 탄환을 보고 기겁하는' 미군 조종사의 일화가 있는데, 뒤집어 말하면 하야부사였다면 헤드온을 걸어볼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5] 그런데 A6M3-22형 이전의 제로센이 99식 기관포의 저성능 탓에 거의 7.7mm 두 정으로 대 전투기 전투를 하다시피 했던 걸 생각해보면 실제 전투에서 발휘되는 화력으로는 하야부사가 제로센에 비해 딱히 더 나쁜 것도 아닐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제로센에 비해서는.[6] 브라우닝 M2 중기관총 (초기버전인 M1921)의 카피판. 그러나 사용 탄약이 .50BMG(12.7 x 99mm) 보다 위력이 낮은 'Breda 12.7mm x 81SR'이라 오리지널 보다 위력은 떨어진다. 대신 발사속도는 약간 더 높다. 그래도 일본군이 사용하던 항공기관총 중에는 나름 준수한 물건이다. 달랑 1~2정 탑재한 것이 문제일 뿐. 그런데 일본군이 사용한 '브라우닝 M2'의 카피판 중기관총은 Ho-103만이 아니었다. 육군에 12.7mm Ho-103이 있었다면, 해군엔 브라우닝 M2를 기초로 사용탄을 일본해군이 사용하는 13.2mm 호치키스탄으로 바꾼 '3식 기관총'이 있었다. 제로센 52형 '을'부터 탑재된 바로 그 기관총. 즉 같은 '브라우닝 M2'를 육군과 해군이 각기 따로 베낀 것. 다론 애초 포도 아니고 소총, 기관총의 탄약규격까지 육군과 해군이 따로 썼다는 점에서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이지만.[7] 덧붙여 어째선지 일본군은 12.7mm Ho-103을 'cannon'으로 분류했다.[8] 항목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Ho-5는 소련의 베레진 UB 중기관총과 B-20 기관포의 경우처럼 Ho-103의 확대버전격인 기관포로 역시 '브라우닝 M2'에 기반한 것.[9] 개중 일부는 랜딩기어의 예비부속이 없어서 랜딩기어를 접지않고 비행하기도 했다.[10] 대한민국의 경우 미 군정이 이렇게 일본 항공기를 다 폐기해버린 이유는 당시 조선항공협회의 실책 때문이다. 일본군 항공기를 인수하는 사업을 추진하던 협회 조종사 중 하나가 비행 전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포고령을 무시하고 대구 비행장에서 비행했다. 이에 격노한 미 군정이 일본 항공기를 모조리 폐기해서 그릇업자들에게 재료로 넘겨버렸다. 덕분에 미군정청이 군용기를 포함하여 일본군의 군용 장비를 죄다 폐기처리하는 바람에 신생 한국군이 쓸만한 장비는 기껏해야 보병용 소화기와 장구류 정도에 불과했다.[11] 논란이 있지만 어짜피 야크기 공여받은 뒤로 사용기록이 전무한걸로 보아 제대로 운용하진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2] 남한에도 김포비행장이나 여의도비행장 같은 곳에 일본기들이 몇 기 남아 있었으나 모두 미군정에 의해 폐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