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J. 심슨
1. 개요
Orenthal James Simpson(오렌탈 제임스 심슨), 약칭 O.J.심슨(1947.7.9.~)은 미국의 전 미식축구 선수이다. 별명은 전류를 뜻하는 'Juice'이다.[1]
2. 생애
2.1. 선수 생활
미식축구 명문인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하기 전부터 미식축구의 러닝백과 단거리 육상 선수로서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고,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하이즈만 트로피를 1968년 수상했고, NFL 버펄로 빌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11년 동안 뛰면서 1973년 AP 선정 시즌 MVP에 뽑히는 등 70년대 최고의 러닝백이자 최고의 미식축구 슈퍼스타였다. 당시만 해도 그가 은퇴할 때 올타임 러싱야드에서 그 위에 있던 선수는 역대 최고의 러닝백으로 칭송받는 짐 브라운뿐이었으며, 당시 정규리그는 14경기만 치뤘음에도 처음으로 시즌 2,000 야드를 돌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 누구도 14게임 2000야드는 다시 깨지 못했다. 1973년도의 게임당 143.7 야드 기록은 아직도 누구도 깨지 못한 기록이다. 또한 미식축구 PER에 따르면 심슨의 1975년 시즌은 모든 프로 미식축구선수 역사상 최고 시즌으로 꼽힌다. 운동선수로의 위상만 놓고 본다면 OJ 심슨은 분명히 NFL 한 시대를 대표할 역대 최고의 러닝백들에 거론될 수준의 레전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의 아이콘이었기에 마이클 조던등장 이전 70년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1명이다. 워낙 인기가 높았던 데다 본인이 워낙 놀기도 좋아하다보고 대학시절때부터 배우활동하는것도 즐겼고 프로선수로 활동할 때도 비시즌엔 배우로 TV나 영화에 출연했고, 1977년엔 아예 영화사를 차리고 자기가 직접 주연한 TV 영화까지 찍게된다. 70년대 영화 타워링이나 카산드라 크로싱에서는 소방관이라든지 수사관 같은 정의로운 인물로 나와 영화상에서 많은 사람을 구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특히 1988년 그가 주연 배우 중 하나로 활약한 총알 탄 사나이(The Naked Gun)는 1988년의 북미 최고 히트작이자 역대 최고의 코미디 필름 중 하나로 극찬을 받았고 북미의 가장 저명한 필름 전문가인 로저 이버트가 꼽은 1988년 최고의 영화로까지 꼽혔다. 1985년 NFL 명예의 전당 입당 자격이 생기자 마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끼가 넘쳐서 쇼호스트나 예능, 버라이어티 쇼도 많이 출연했음은 당연지사다.
심슨은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결혼해 3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이중 셋째 딸이었던 아렌이 2살 생일 때 자기 집 수영장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불행이 찾아온다. 이미 이혼과정에 있었지만 이 충격으로 심슨은 첫 부인과 사이가 완전히 갈라지면서 이혼하게 되고, 이 사건 이후로 2년 뒤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당시 18살이었던 니콜 브라운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하고 2명의 아이를 낳게 된다. 이후 심슨은 두 번째 부인인 니콜 브라운과도 1992년에 이혼한다.
2.2. O. J. 심슨 사건
니콜 브라운이 1994년에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론 골드만과 함께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고, 이 사건에서 O.J. 심슨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으나, 재판에서 증거가 부족함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 문제, 대스타의 범행 혐의, 확률과 통계의 함정 등 여러 분야에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2.3. O. J. 심슨 사건 이후
비록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들에게 엄청난 수임료를 준 탓에 출소 후 그는 알거지가 되었고, 명성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출소 직후 1995년에는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I Want to Tell You: My Responses to Your Letters, Your messages, Your Questions라는 책을 출간했다.
1997년 피해자 니콜과 론 골드만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소 판결을 받고 배상금으로 총 '''3350만 달러(한화 약 370억 원)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2]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온갖 재산을 빼돌리는 등 법의 함정들을 이용하여서 O.J. 심슨으로부터 2017년 8월까지 유가족들은 100만 달러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O.J. 심슨은 진짜로 돈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백 달러 규모의 세금도 못내서 탈세혐의로 수감되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2007년 O.J. 심슨은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만약 내가 했다면 (If I Did It)"이라는 책을 고스트라이터를 통해 출판한다. 이 책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작업으로 출판되었으나, 이 책이 출판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극도의 반발로 출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 때 이미 찍혔던 40만부의 책이 파기되었고, 사업계획들도 무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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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중에는 "만약 내가 했다면: 살인자의 고백 (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로 제목을 바꾸어 발행된다. 그런데 이 책의 출판 과정에서, O.J. 심슨의 가장 큰 채권자인 론 골드만의 유가족은 사전에 책을 검토한 후, 'If'를 아주 작게 만들도록 해서 언뜻 보면 책의 제목이 "I Did It"처럼 보인다.
2007년에는 강도질을 하다가 경찰에게 체포되고 2008년에는 33년 형을 선고 받는다. 네바다 교정청에서 복역하다 2017년 10월 2일 가석방되어 출소했다. 기사
2019년 6월 15일부로 O.J. 심슨의 트위터를 개설했다.
3. 기타
- 제임스 카메론은 원래 아놀드 슈워제네거 대신 이 사람을 터미네이터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만둔 이유가 더 압권인데 O.J. 심슨이 사람을 냉정하게 죽이는 살인 기계를 맡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워 보여서.
- O.J 심슨의 소속팀이였던 버팔로 빌스는 심슨의 은퇴 이후 유니폼 넘버인 32번을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사실상 영구결번이였던 셈. 그러다가, 2019년에 빌스와 계약한 러닝백인 서노리스 페리(Senorise Perry)에게 32번을 부여하면서 42년만에 암묵의 룰을 깼다.
- 킴 카다시안의 친 아버지인 로버트 카다시안이 이 사람과 절친으로 유명하다. 소송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직접 도와주기도 하였다.
- 헐크 호건이 과거 전처와 그녀의 내연남 때문에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여러차례 입은 후 한 인터뷰에서 O. J. 심슨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 심슨이 살인을 저지른게 맞다는 가정 하에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을만큼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상당히 크게 입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