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문

 


'''이화문 | 李花紋'''
The Seal of Joseon Dynasty and Yi Clan of Je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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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문의 음각문과 양각문
1. 개요
2. 역사
3. 의의
4. 바리에이션
5. 활용 예시


1. 개요


대한제국국장. 또한 조선 왕실, 대한제국 황실의 가문인 전주 이씨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자두꽃(이화, 李花)[1]을 도안화한 문장이다. 자두의 순우리말인 '오얏'을 써서 '오얏 문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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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중앙의 이화문 부조.
개항 이후 일본의 국화문, 중화민국의 국장과 더불어 쓰여지기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7년의 일이다. 프랑스의 백합이나 일본의 국화처럼 '''원래는 황실 문양이지만, 군주국이기에 사실상 국장으로 쓰였다.''' 때문에 대한제국 시기의 국가 프리미엄이 부여된 곳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공문서나 궁궐 건물들은 물론이고, 내/외부 장식, 가구, 심지어 가정용품에도 이화문이 그려진 문화재가 종종 확인된다. 또한 근대엔 군의 개인화기 가늠쇠 밑에 국장이나 왕실 문장을 새겨 넣는 것이 유행이라, 당시 수입된 화기엔 항상 이화문을 새겨넣곤 했다.[2] 이화문 장식을 직접 보고 싶다면 덕수궁 석조전에 마련된 황실 복원관을 견학해 보면 좋다. 또한 운현궁 이로당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양관(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건물이 보이는데, 그 양관 지붕에도 금속으로 된 이화문 투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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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대만)의 매화 문장.
일본의 국화 문장.
중화민국매화 문장과는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구분법은 이화문은 한 변당 꽃술이 3개이고 매화문은 작은 꽃술 2개가 큰 꽃술 사이에 껴 있는 형식이다.
일본국화 문장과 유사점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무늬라는 것 외에는 없다. 국화문보다는 차라리 일본 경시청이나 육상자위대 등에서 쓰이는 사쿠라 문양이 더 유사하다.

3. 의의


국기(태극기)나 국가(애국가)와 함께 근대 주권국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디자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는 문양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은 단청과 수묵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미술에서 탈피해 근대식 가문 문장을 도입하였으며, 이를 잉크와 인쇄기라는 장비를 통해 소도구와 비품 등에 적용함으로써 '''생활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의 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문장은 황실의 중후함, 고풍스러운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모더니즘하고 심플한 세련미가 돋보인다. 바리에이션도 다양해서, 꽃술이 없는 것에서부터 3개, 5개까지 있는 문양도 있고 겹꽃잎이 추가된 문양도 있으며, 여타 서양 문장들이 겉에 월계수를 두듯 오얏 가지를 두르거나 황금으로 만든 원이 장식된 문양도 있다. 색은 노랑색(금색) 혹은 빨강색이며, 전주 이씨 종친회의 경우 꽃술 안쪽에 '종(宗)' 자를 새겨넣기도 한다.

4. 바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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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이화문.
사동궁의 겹꽃잎 이화문.
덕수궁 석조전 내실의 이화문.

5. 활용 예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한인회(Oxford University Korea Society; OUKS)가 이화문을 활용하여 한인회 문양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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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항은 옥스퍼드 대학교/한국 문서 참조.
[1] '花'(이화학당,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의 '이화'가 이것)가 아님에 유의. 이화문의 이화는 배꽃이 아닌 자두(오얏)꽃이다.[2] 당시 대한제국은 무기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었기에 서구로부터 많은 무기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게 좀 대중 없이 섞였던지라 거의 무기 전시장급이었다고. 그만큼 훈련 난도는 더 높아졌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