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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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자민당 소속으로, 시즈오카현 제1구 중의원, 법무대신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나 시즈오카 후타바 중, 고등학교와 도쿄대학 교양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쓰비시 종합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을 가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 뒤 미국 상원 의원의 정책 스태프로 근무한다. 이후 귀국하여 미쓰비시 종합 연구소 연구원, 주식회사 글로벌 링크 종합 연구소의 대표이사를 맡는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신의 출신지가 속한 시즈오카현 제1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 이후 자민당에 입당하지만 공천을 못 받았는 지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1년 후 자민당에 복당했으며, 이후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하기 전까지 중의원으로 당선된다. 아베 신조 1차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저출산 대책, 남녀 공동 참여 담당) 등을 역임했다.
2009년 한 차례 낙선한 이후 3년 뒤인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복귀 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공직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한 달 만에 사퇴한 마쓰시마 미도리의 후임으로 법무대신을 역임한다. 그 후 1년 뒤인 2015년 경에 퇴임하나 2017년에 다시 법무대신으로 임명되어 1년 간 다시 법무대신을 역임한다.
법무대신을 2번째로 역임하던 시기에 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세키 데루히코의 사형과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사형을 집행했다. 가미카와는 이들을 포함해 법무대신 역임 시절 총 16명의 사형수들의 사형을 집행했는데, 이는 13명의 사형을 집행해 ‘사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하토야마 구니오 대신보다 더 많다.
법무대신 퇴임 후에는 자민당 1억 총활약 추진 본부장과 시즈오카현련 회장을 맡는 등 당직을 맡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이후 다시 법무대신에 재임명되면서 법무대신을 3번이나 역임하게 되었다.
3. 소속 정당
4. 기타
-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2001년과 2007년에 한일 국회의원 간담회 등이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으며, 2007년에 시즈오카 시내에서 열린 조신통신사 400주년 심포지엄에도 참석해 “대화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면 과거의 잘못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연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