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스카 멘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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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현재는 DJ겸 라리가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시절 발렌시아 CF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 번의 UCL 준우승을 이끄는 등의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2] 그러나 SS 라치오로 이적한 뒤 급격한 내리막을 걷고 만 비운의 선수.
2. 선수 경력
2.1. 유소년 시절
멘디에타의 아버지 안드레스 멘디에타는 왕년에 지역 클럽인 카스테욘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들을 일찍부터 축구 유스팀에 포함시켰고 멘디에타는 곧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선보이며 1991년 17살의 나이에 카스테욘과 정식계약을 맺었다. 이후 멘디에타는 카스테욘에서 한 시즌 동안 16경기를 출장했는데,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의 탁월한 기량은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1992년, 발렌시아는 멘디에타를 전격 영입했다.
참고로 멘디에타는 어릴 때 육상을 했던 경험이 있다.
2.2. 발렌시아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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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에타는 발렌시아 CF에서 레전드급 활약을 펼쳤다. 그가 처음으로 진가를 드러낸 시기는 1997-98 시즌이었는데 30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고 코파 델 레이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후 그는 매 시즌 10골 이상을 꽂아넣었고 대단한 활동량과 개인기를 선보이며 리그를 씹어먹었다. 또한 1998년에는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달성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대활약하며 발렌시아를 1999-2000, 2000-01 시즌에는 결승전까지 진출시키는데 기여했다. 특히 2000-01 결승전에서는 FC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전반 초반에 페널티 킥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켜 리드를 잡았으나 결국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배했다.
이렇듯 그는 발렌시아에서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며 세간의 찬사를 받았다. '''2000, 2001년에 UEFA 올해의 미드필더[3] 에 2년 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CF 등 수많은 빅클럽들이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는데 2001년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SS 라치오가 4800만 유로를 지불하면서 그를 전격 영입했다. 이때 발생한 이적료는 발렌시아에게는 현재까지도 역대 최고 방출 이적료이며 라치오에게는 에르난 크레스포가 기록한 5500만 유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영입 이적료이다.
2.3. SS 라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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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에타가 SS 라치오에 입단하자, 사람들은 그가 라리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리에 A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선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월드 클래스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라치오에서 리그 20경기, 유럽 대회 7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한 개의 골과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무릎 부상을 입기도 했고 피지컬이 그리 중시되지 않는 스페인에서 피지컬이 중시되는 이탈리아로 가는 바람에 적응을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갑작스런 몰락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현재도 그가 이탈리아에서 참혹한 실패를 맞이한 것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튼 48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라치오에 입단한 그는 전혀 몸값을 해주지 못했고 라치오 역시 이적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면서 몇몇 선수들을 발렌시아에 넘겨주는 것으로 일부 금액을 면제받아야 했다.[4] 이로 인해 라치오의 전력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현재도 라치오는 멘디에타 영입으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멘디에타는 2002-03 시즌에 FC 바르셀로나로 임대 이적하여 리그 33경기 4골, 유럽 대회 13경기 2골을 기록하는 등 총 47경기 6골을 기록했는데 여러모로 발렌시아에서의 전성기 때와는 너무도 격차가 심했기에 사람들은 왕년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의 몰락을 가슴아파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반론을 하자면 멘디에타가 비록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주진 못했지만 멘디에타의 부진이 라치오의 몰락을 가져왔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화살은 라치오의 프런트에 돌려야 한다. 애초에 라치오는 방만한 경영으로 2000년부터 서서히 재정이 악화되어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멘디에타를 영입할 무렵엔 파벨 네드베드를 유벤투스 FC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그리고 1년뒤인 2002년에는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AC 밀란으로 원치 않는 이적을 시켜야 했을만큼 최악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선수들에게 주급으로 지급할 현금도 없어서 미지불 상태였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 되어 있는 만큼 라치오는 멘디에타 이적료를 분할로 지급하다 재정이 부족해 지급을 하지 못하고 팀 내 선수들을 대신 트레이드 시키는 방향으로 이적을 마무리 지었을 정도.
2.3.1. 부진의 원인
멘디에타의 라치오 이적 후 삼각한 부진의 이유를 찾자면, 상단에 서술한 피지컬적 문제도 있지만 감독의 잘못된 역할 부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본래 멘디에타는 화려한 발기술과 엄청난 활동량을 무기로 하는 선수이다. 하지만 라치오의 감독이었던 디노 조프는 멘디에타에게 중앙에서 패스만 뿌리는 역할을 부여했는데, 이는 멘디에타의 장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멘디에타는 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멘디에타가 라치오에서 한참 부진하다가도 바르샤로 임대 갔을 때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자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은 그가 부진했던 이유가 감독의 잘못된 역할부여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2.3.2. FC 바르셀로나 (임대)
라치오에서 부진 탓에 한 시즌만 뛰고 2002-03 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로 1년간 임대를 갔다. 라치오에서는 부진했으나 바르셀로나에서는 당시 팀의 부진때문인지[5] 선수가 부활한 것인지 리그 33경기에 출장하면서 4골 6도움으로 팀 내 공격포인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1위는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2위는 하비에르 사비올라, 4위는 후안 로만 리켈메였다.
이러한 활약 덕에 바르샤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퍼졌으나, 결국 루머로만 남았다.
2.4. 미들즈브러 FC
2003-04 시즌에는 미들즈브러 FC로 1년간 임대를 가 31경기에 출전하였는데 팀도 마침 풋볼 리그 컵에서 우승을 하는 등,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멘디에타의 활약에 고무된 미들즈브러는 2004년 여름에 그를 자유계약으로 완전 영입하여 주전 윙어로 기용하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 해당 시즌에는 겨우 리그 7경기에만 출장하는 등 하향세에 접어든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간간이 나올 때마다 어느 정도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멘디에타가 미들즈브러에서 보여준 가장 유명한 활약상은 아무래도 2005-06 시즌 혼자 두 골을 쓸어담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4-1로 침몰시킨 경기일 것이다. 마침 박지성이 선발 출전했었기 때문에 국내 팬들도 기억하는 경기인데 멘디에타가 첫 골과 마지막 골을 넣으면서 그야말로 멘디에타로 시작해 멘디에타로 끝난 경기였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에서 대패한 후 로이 킨이 선수단의 퀄리티를 지적하며 불화를 일으킨 일명 "키노게이트"가 터지는데 맨유는 결국 킨을 방출하면서 사건을 수습한다.
미들즈브러가 UEFA컵 결승까지 진출한 2005-06 시즌에는 어느정도 폼을 회복하면서 리그 17경기 포함 27경기를 뛰기도 했으나 유에파컵 8강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멘디에타는 이 시즌까지만 해도 미들즈브러와의 계약이 끝나면 라리가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마칠 생각이었던 것 같으나 부상이 계속 발목을 잡자 미들즈브러와의 계약이 끝나면 그대로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팀이 방출을 통보한 2008년 5월 13일에 은퇴했다.
3. 은퇴 후 삶
은퇴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간간히 축구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DJ로서의 활동도 행하고 있다.
2017년 여름 바르셀로나와 맨유 출신들의 레전드 매치에 바르사 소속으로 참여하며 오랜만에 필드에 모습을 비췄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무대는 오른쪽 측면이었지만, 중앙 미드필더로도 오른쪽 측면 못지 않게 많이 뛰었으며, 왼쪽 측면과 가끔씩 수비수로도 뛰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최전성기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맞이하였다.
어린 시절 장거리 육상선수였던 경험이 있는 그는 전성기 시절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또한 화려한 발재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크로스, 프리킥, 중거리 슈팅 등에도 능하였다. 드리블 스타일은 에당 아자르와 유사하였다.
여담으로 공을 보지 않고 공을 다루었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라 한다. 페널티 킥도 정말 잘 찼다. 특히, 몸과 발이 따로 노는 페이크 슛이 압권이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발렌시아 CF (1992~2001)
- 코파 델 레이: 1998-99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9
- UEFA 인터토토컵: 1998
-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999-2000, 2000-01
5.2. 개인 수상
- UEFA 올해의 미드필더: 1999-2000, 2000-01
- ESM 올해의 팀: 2000-01
- 옹즈 드 옹즈: 2000, 2001
6. 여담
- 이름 때문에 한때 국내에서 버스를 타면 '맨 뒤에 타'는 선수라는 개드립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안정환, 김성주가 출연하여 축구해설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는데 그 와중에 이름을 말하기 껄끄러운 축구선수들이 많다며 그 명단을 공개할 때 나왔다.
- 과거 상단에 키가 181cm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위키피디아에는 173cm, 한국의 발렌시아 팬사이트 AMUNT에는 176cm으로 등록되어있다. 170cm대 초중반인 것이 유력하며, 181cm은 나올 수 없는 수치다.
7. 관련 문서
[1] 멘디에타는 왼쪽, 중앙, 오른쪽 모두에서 활약을 했다. 가끔씩 수비수로도 뛰었다. 주무대는 중앙과 오른쪽 측면이었다. 오른쪽 풀백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당시 감독이 멘디에타의 공격력을 보고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 변경을 시켰고, 이후에는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측면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였다.[2] 이 때 베컴, 지단, 피구 등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을 제치고 무려 2년 연속으로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받았다. 당시 멘디에타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3] 이 상은 지단, 베컴, 네드베드 등의 전설적인 미드필더들이 받은 상이다. 멘디에타는 이런 전설적인 선수들을 제치고 2년연속으로 수상받은 것이다. 당시 멘디에타의 위상을 보여주는 부분.[4] 이 때 발렌시아로 넘어간 선수가 스테파노 피오레, 베르나르도 코라디였는데 다행히(?) 이들도 모두 이탈리아 국가대표 경험까지 있는 수준 높은 선수였음에도 발렌시아에서 모두 먹튀가 되어 라치오는 결과적으로 복수에 성공했다.[5] 02-03 시즌 바르샤는 6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