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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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부터 2006년 11월 15일까지 방송한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의 주 목적은 신인 발굴로, 아마추어들이 나와 대결을 하고 평가받는 형식이었다. 즉, MBC의 하땅사와 웃찾사 2기의 평가 방식을 차용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시청률은 매우 낮았고[1] 재미도 없었지만, 신인 발굴이라는 목표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KBS 공채 개그맨 21기, 22기 중 상당수는 개그사냥 출신이다. 대표적으로 21기 김기열, 김지민, 권재관, 김경아, 22기 박성광, 박영진, 송준근, 김원효, 최효종[2] , 이광섭, 김준현, 조윤호, 23기 김민경, 류정남, 27기 오기환 등. 이 외에 타 방송국에 데뷔한 개그맨들도 몇몇 있다. 예를 들어, 김진곤이나 임준빈 등.
방영 당시 반응이 좋았던 코너는 출연진과 내용 그대로 개콘 무대에 올리곤 했는데[3] 결과는 대부분 시망. 신인이 갑자기 개그 콘서트라는 대형무대에 서게 된 것에 따른 중압감도 컸을 뿐 아니라 매주 같은 질의 코너를 유지할 수 있는 구성력이나 연기력 등이 부족해 일어난 결과이다. 특히 권재관과 곽한구는 개그사냥 시절에는 완전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였지만, 개그 콘서트 무대에서는 개그사냥 시절의 포텐셜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이 시기 개그 콘서트는 초창기와 달리 김석현 PD와 제작진의 '마사징'이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본디 코너가 갖고 있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빛이 바래는 경우가 의외로 있었다. 특히 권재관의 '진실 혹은 거짓'은 타사 프로그램의 코너명을 패러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살짝 바꾸었는데 이 때문에 특유의 호흡이 죽어버렸다. 곽한구의 경우에는 초기의 강원도 촌놈기자 컨셉을 버리고 개콘에서 양아치 기믹으로 재기한 케이스다.
개그사냥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도 계속 포텐을 보여 준 멤버로는 최효종, 김원효, 박성광, 박영진이 있다. 김기열은 개그사냥 시절에 비해 조연이 많아지면서 다소 묻힌 케이스.
그래도 나름대로 개콘에 진출해 흥했던 코너가 있긴 있었다. 그 코너 중 하나가 고혜성이라는 반짝 스타를 만들어낸 현대생활백수.
개그스타의 전신격이라고 할 수 있다.[4]
2000년대 초 개그 콘서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에 자극을 받은 MBC에서 만든 개그 프로그램의 이름도 이 개그사냥이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했던 개그들은 시청자들의 엄청난 혹평을 들었고 차력쇼와 프로 레슬링을 편성하는 등 개그 프로그램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리며 얼마 못 가서 그대로 묻히고 종영해 버렸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MBC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여담으로 이혁재가 데뷔한 프로그램이며 이 개그사냥이 망한 후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5]
한편, MBC판 후속으로는 <코미디 닷컴>이 신설되었는데 KBS 2TV 개그콘서트를 모방했다가 9회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한 전작(개그사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콩트 형식의 코너를 가미하고 전문개그맨이 아닌 인물을 출연시켰으며 81년 6월 제 1회 MBC 라디오 개그맨 콘테스트로 데뷔했으나 그 해 9월 KBS로 옮긴 후 91년 가을 SBS 이적 전까지 KBS에서만 활동해 오다가 96년 가을 프리랜서를 선언한 뒤 SBS와 KBS에서 활약한 최양락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친정 나들이를 했다.
1. 개요
2005년 5월 7일부터 2006년 11월 15일까지 방송한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의 주 목적은 신인 발굴로, 아마추어들이 나와 대결을 하고 평가받는 형식이었다. 즉, MBC의 하땅사와 웃찾사 2기의 평가 방식을 차용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시청률은 매우 낮았고[1] 재미도 없었지만, 신인 발굴이라는 목표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KBS 공채 개그맨 21기, 22기 중 상당수는 개그사냥 출신이다. 대표적으로 21기 김기열, 김지민, 권재관, 김경아, 22기 박성광, 박영진, 송준근, 김원효, 최효종[2] , 이광섭, 김준현, 조윤호, 23기 김민경, 류정남, 27기 오기환 등. 이 외에 타 방송국에 데뷔한 개그맨들도 몇몇 있다. 예를 들어, 김진곤이나 임준빈 등.
방영 당시 반응이 좋았던 코너는 출연진과 내용 그대로 개콘 무대에 올리곤 했는데[3] 결과는 대부분 시망. 신인이 갑자기 개그 콘서트라는 대형무대에 서게 된 것에 따른 중압감도 컸을 뿐 아니라 매주 같은 질의 코너를 유지할 수 있는 구성력이나 연기력 등이 부족해 일어난 결과이다. 특히 권재관과 곽한구는 개그사냥 시절에는 완전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였지만, 개그 콘서트 무대에서는 개그사냥 시절의 포텐셜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이 시기 개그 콘서트는 초창기와 달리 김석현 PD와 제작진의 '마사징'이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본디 코너가 갖고 있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빛이 바래는 경우가 의외로 있었다. 특히 권재관의 '진실 혹은 거짓'은 타사 프로그램의 코너명을 패러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살짝 바꾸었는데 이 때문에 특유의 호흡이 죽어버렸다. 곽한구의 경우에는 초기의 강원도 촌놈기자 컨셉을 버리고 개콘에서 양아치 기믹으로 재기한 케이스다.
개그사냥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도 계속 포텐을 보여 준 멤버로는 최효종, 김원효, 박성광, 박영진이 있다. 김기열은 개그사냥 시절에 비해 조연이 많아지면서 다소 묻힌 케이스.
그래도 나름대로 개콘에 진출해 흥했던 코너가 있긴 있었다. 그 코너 중 하나가 고혜성이라는 반짝 스타를 만들어낸 현대생활백수.
개그스타의 전신격이라고 할 수 있다.[4]
2. 참고
2000년대 초 개그 콘서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에 자극을 받은 MBC에서 만든 개그 프로그램의 이름도 이 개그사냥이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했던 개그들은 시청자들의 엄청난 혹평을 들었고 차력쇼와 프로 레슬링을 편성하는 등 개그 프로그램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리며 얼마 못 가서 그대로 묻히고 종영해 버렸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MBC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여담으로 이혁재가 데뷔한 프로그램이며 이 개그사냥이 망한 후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5]
한편, MBC판 후속으로는 <코미디 닷컴>이 신설되었는데 KBS 2TV 개그콘서트를 모방했다가 9회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한 전작(개그사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콩트 형식의 코너를 가미하고 전문개그맨이 아닌 인물을 출연시켰으며 81년 6월 제 1회 MBC 라디오 개그맨 콘테스트로 데뷔했으나 그 해 9월 KBS로 옮긴 후 91년 가을 SBS 이적 전까지 KBS에서만 활동해 오다가 96년 가을 프리랜서를 선언한 뒤 SBS와 KBS에서 활약한 최양락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친정 나들이를 했다.
[1]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모 기자의 말에 의하면 시청률 1%였던 적도 있었다고...[2] 정범균,이원구와 함께 했던 '지역광고'라는 코너 역시 개그사냥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개그사냥 버전의 제목은 '쌍문동 동네광고'.[3] 애초에 3주 연속 1등하면 부상으로 개콘 무대에 서게 해준다는 조건이 있었다.[4] 개그스타의 경우 개그사냥과 달리 우승하면 개콘에 출연시켜준다든지 하는 조건이 없었는데 개그사냥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렇게 한 듯하다. 대신 개그스타에서 우승을 하면 개그맨 시험에 가산점을 줬다고 한다.[5] 이혁재는 KBS판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김미화가 메인 MC로 활동한 SBS <웃는밤 좋은밤> 고정 게스트였는데 코미디와 버라이어티 쇼를 결합한 퓨전 코미디를 표방했으나 인기 개그맨 캐스팅에 실패한 데다가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아성을 넘지 못한 채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여 4회 만에 조기종영되어 <김혜수 플러스유>가 2000년 8월 100회로 막을 내린 뒤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