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무 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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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고다이고 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친정했던 시기. 겐무는 고다이고 덴노의 연호다.
2. 역사
2.1.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가마쿠라 막부 말기가 되자 막부 내부에서는 권력투쟁이 일어났고, 외부에서는 원나라의 일본 침략으로 정세가 어지러워졌다. 그리하여 반막부 세력들이 점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를 기회로 여긴 대각원통의 고다이고 덴노는, 헤이안 시대처럼 천황과 귀족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이상으로 여기고 천황 계승의 일원화[1] 와 가마쿠라 막부의 타도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1324년 정중의 변, 1331년 원홍의 변을 일으켜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려 하였다. 그러나 2번 모두 발각되어, 고다이고 덴노는 오키섬으로 유폐되고 가마쿠라 막부는 지명원통의 고곤 덴노를 옹립했다.
그러나 고다이고 덴노의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공감한 반막부세력들이 동참하여 조정과 전국적으로 반막부세력들을 규합했고 1333년, 고다이고 덴노는 오키섬을 탈출하여 호키노쿠니에서 거병했다. 막부는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보내 반막부세력을 토벌하고자 했으나, 아시카가는 오히려 막부 타도를 외치며 고다이고 덴노에게 붙어버렸다. 닛타 요시사다는 가마쿠라를 기습하여 호죠씨 일족을 멸함으로써 가마쿠라 막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자, 고다이고 덴노는 교토로 귀환한 후 '''막부와 관백을 폐하고 천황이 친정하는 체제를 선포했다.'''
2.2. 신정 내의 내분
이후 고다이고 덴노는 의욕적으로 천황의 친정을 선포하고 새로운 정치를 펴보려고 했지만, 겐무 신정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겐무 신정에 동참한 세력들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천황의 친정이라는 체제에 일치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다카우지와 모리요시 친왕은 서로의 공을 내세우며 크게 반목했다. 고다이고 덴노는 일단 모리요시 친왕을 정이대장군에 임명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려 했다.
그러나 논공행상의 과정에 있어서도 귀족인 공가와 승려들이 상을 많이 받았고 상대적으로 무사들이 소외되면서 무사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다. 더욱이 고다이고 덴노는 성급하게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천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무사들이 반발하였고 더욱 혼란은 심화되었다.
2.3. 남북조시대의 시작
결국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우선 자신을 경계하고 있던 모리요시 친왕을 제거하기로 하고, 모리요시 친왕이 다카우지를 친다는 명목으로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천황에게 고변했다. 이에 고다이고 덴노는 모리요시 왕자를 다카우지가 있던 가마쿠라로 유배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는 다카우지의 계략이었다.
한편 호조씨의 잔당들은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가마쿠라로 쳐들어왔다(나카센다이의 난). 다카우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수중에 있던 모리요시 친왕을 살해하고 겐무 신정에 반기를 들 것을 선언했다.
결국 다카우지는 교토로 입성하였고 고다이고 덴노는 요시노로 도망쳐, 이로써 신정은 3년여 만에 붕괴하고 말았다. 아시카가는 고곤 덴노의 남동생인 고묘를 천황으로 옹립하여 북조가 성립되었고, 고다이고 덴노는 요시노에서 자신이 진짜 천황이라고 주장하며 버텼다. 그리하여 일본은 교토의 북조와 요시노의 남조로 분열되어 60여 년 동안 내전을 치루는 남북조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1] 당시 황위를 놓고 지명원통과 대각원통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