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2/평가

 


1. 개요
2. 평가
3.1. 영화 리뷰 유튜버 평
4. 유저 평가
4.1. 긍정적 평가
4.1.1. 스케일의 확장
4.1.2. 엘사와 안나의 성장
4.1.3. 더 깊게 스며든 OST 음악들
4.1.4. 디테일한 영상미
4.1.5. 기존 팬들에 대한 예우의 측면에서
4.1.6. 훌륭한 한국어 더빙
4.2. 부정적 평가
4.2.1. 음악에 대하여
4.2.2. 내용 전개에 대해서
4.2.3. 결말에 대하여
4.2.3.1. 반론
4.2.4. 엘사는 아렌델을 떠나야만 했나
4.2.4.1.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
4.2.4.2. 엘사는 여전히 아렌델과 함께한다
4.2.4.3. 전편에 이은 성장의 연장선이다


1. 개요


영화 겨울왕국 2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평가

















Frozen II can't quite recapture the showstopping feel of its predecessor, but it remains a dazzling adventure into the unknown.

'''겨울왕국 2는 전작의 화려하고 놀라운 느낌을 완벽히 되찾지는 못하지만, 숨겨진 세상으로 가는 눈부신 모험을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총평

전체적으로 '''영상미'''는 훌륭하지만, '''스토리'''의 급전개가 상당히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전작보다는 평이 좋지 않지만, 충분히 흥행할 만한 영화였다는 것이 중론.

3. 영화 평론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바르다, 전편처럼.'''

이동진 (왓챠) (★★★☆)

'''넓어진 시야, 줄어든 감흥'''

박평식 (씨네21) (★★★)

'''마법의 이름은 음악과 애니메이션. 단점을 메울 시간에 잘하는 걸 한번 더 보여주는 디즈니식 확장'''

송경원 (씨네21) (★★★☆)

'''미(왕)국의 기원을 찾아 새롭게 개척하기'''

허남웅 (씨네21) (★★★)

'''정치적 올바름과 기술의 진보를 등에 업고 쌓은 디즈니 공주 왕국'''

이주현 (씨네21) (★★★)

'''방향도 결과도 모두 옳은 완벽한 귀환'''

심규한 (씨네플레이) (★★★★)

'''현실과 통하는 디즈니의 마법'''

정유미 (더 스크린) (★★★★)


3.1. 영화 리뷰 유튜버 평


영화 리뷰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은 전작보다 비주얼적으로 발전했고 노래도 '그냥 괜찮은 수준이지만 작중에서는 아무 감흥이 없는' 크리스토프의 것을 제외하고는 훌륭했으며 더빙의 질이 대단히 높았으나, 크리스토프의 캐릭터는 영화 내내 청혼 클리셰만 반복하고 올라프는 참기 힘들 만큼 짜증나며, 결말(엘사가 마법의 숲에 남고 안나가 아렌델을 통치하는 것으로 추정)은 캐릭터 파괴일 뿐더러 굉장히 중대한 결정임에도 너무 간단히 결정짓고 남들도 물 흐르듯 받아들여 최악이었다고 하며 C+을 주었다.
제레미 잔스는 역시 비주얼적인 발전을 호평했고, 음악이 제법 좋았으며 후반부 몰입도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서는 착상은 좋았으나 잘 살리지 못했고 군데군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며 반전이 너무 뻔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엘사와 안나가 함께 등장할 때는 좋으나 엘사가 안나로부터 분리되면서 재미없는 캐릭터가 됐고, 크리스토프는 그냥 전개에서 잘려나가 버린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올라프는 1편에서는 좋은 캐릭터였는데 제작진이 캐릭터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활용하려다 보니 결과물이 썩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으로는 '술 먹고 보면 좋을' 수준의 영화라는 평.
Nostalgia Critic 등의 캐릭터로 영화를 리뷰하는 유튜버 더그 워커는 제법 흥미로운 설정이 있었고 엘사가 나오는 부분(+안나 파트 일부)은 좋았으나, 크리스 스턱만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프와 올라프의 캐릭터는 끔찍했다고 비판했고 쓸데없는(...) 캐릭터들에 분량을 할애하다가 스토리는 급전개되는데다 첫 5분만에 '반전' 요소가 뻔히 보이는데 영화 내내 중대한 비밀마냥 숨긴다고 비판했다. 또한 마지막에 아렌델이 휩쓸리더라도 댐을 파괴하는 안나의 결정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동화적 이야기에서는 나름대로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엘사가 물을 막아버려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래의 경우 엘사와 안나의 노래(안나의 경우 상황 때문에 몰입하지 못했지만)는 좋았으나, 차세대 Let it Go를 몇 곡이나 만들어내려는 야망이 뻔히 보임에도 그 수준에 도달한 곡은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4. 유저 평가



4.1. 긍정적 평가




4.1.1. 스케일의 확장


  • 영상미가 발전했고 세계관의 규모가 커졌다. 훈훈한 결말을 낸 전작이 대히트를 쳤으니, 후속작에서는 가벼운 이야기, 또는 전작의 히트친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심각하고 세계관의 규모를 확장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의견들이 보인다. 특히 2019년 후반을 기준으로 디즈니가 각종 할리우드의 영화 스튜디오들을 흡수 합병하여 문화 시장의 거의 절반을 먹어 버린 상태이다. 디즈니가 먹어버린 그 제작사들이 담당했던 영화 예술의 발전 대한 과감한 시도의 측면들까지 상업성을 기준으로 디즈니에 의해서 묻혀 버리고, 오직 대중에게 쉽게 먹힐 것 같은 블록버스터들, 그나마도 수십 년 전의 명작을 고민을 덜 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들, 또는 영화 시리즈의 관성의 힘을 많이 빌린 영화들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경고하는 영화계의 목소리도 많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그 때 마침 나온 이 영화는 그런 편한 길에 안주하지 않고, 주 타겟 대상에게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감수하고 과감하게 한 걸음 더나가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것은 디즈니 영화들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시도라 보기 힘들지 몰라도,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세계 역대 애니메이션 매출 1위를 찍은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사실 선량하게 보였던 우리들이 나쁜 놈들이었어. 그래서 과감하게 모든 것을 직접 파괴해서라도 해결해야 해'라는 것을 핵심 주제로 삼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전반적으로 전작에서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던 떡밥이나 복선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엘사가 가진 마법의 힘의 원천,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진짜 이유,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연애의 마무리 등등. 다만 정리되지 못한 복선들이 이두나를 중심으로 있었기에 3편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갈 궁금증을 던지는 요소도 많이 남겼다고 볼 수 있다.[1]

4.1.2. 엘사와 안나의 성장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편의 마지막에서의 엘사와 안나의 모습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간 것도 훌륭하다. 1편의 엔딩은 완벽했지만 엘사가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다 되찾은 유대를 소중히 하면서도 자신의 힘에 고민하던 여왕에서 홀로 위험에 맞설 수 있는 정령의 모습으로 안나가 언니를 마침내 되찾았다는 안도감에서 그 언니를 잃어버려도 옳은 일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아렌델의 여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왜 이 2편이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 지가 납득이 될 정도로 큰 변화다. 대호평을 받은 1편의 엔딩의 완벽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등장인물들에게 선사한 고뇌와 고난이 관객들에게 잘 설명되었다.
  • 엘사의 성장 스토리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내적인 괴로움을 완벽하게 극복한 모습이며 감정선은 물론 액션씬이나 활약도 면에서도 전작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고 행동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알려 주는 정도가 아니라, 관객들이 느낀 이 영화의 좋은 인상을 거의 지배할 정도로 너무 잘 표현했다.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 보면 '엘사가 XX 하는 장면', '엘사가 부른 노래', '엘사의 그 글썽거리는 모습', '엘사의 모습 변화'가 뇌리에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그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라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전작에선 설명되지 않았던 엘사의 능력의 기원, 부모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있을 장소에 대한 고민을 공감하기 쉽게 잘 표현해 주었기에 관객들은 더더욱 이해하기 쉽고 거기에 몰입하기도 쉬웠다.
  • 안나의 성장 스토리 역시 엘사에 못지 않게 잘 연출되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불안' - '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의 절망' - '극복' -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된 이별' 까지의 정서를 멋진 화면 구도 연출과 함께 잘 살렸고, 그것을 시각화 청각화하는 과정에서 장점이 많았다. 특히 동굴에서 바위를 하나하나 기어 올라가며 출입구에서 비쳐 오는 빛을 향해 올라 가는 장면과 그 장면을 거쳐 산 정상에 선 듯하여 멀리 보이는 댐과 눈높이를 마주하는 장면이 그 연출들의 정점을 찍는다. 그로서 제작진은 이 시리즈의 이야기의 메인 진행자는 안나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마침내 맨 마지막 전개에서 안나는 엘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해결의 발단은 댐을 부숨으로 안나가 열었고, 그 해결법으로 인한 파멸적인 결과는 클라이막스에서 엘사가 막았지만, 그러기 위해 잠자는 얼음강 속의 엘사를 깨운 것은 왕자님이 아닌 동생 안나의 역할이었다.

4.1.3. 더 깊게 스며든 OST 음악들


  • OST에 대한 혹평란의 의견 요소들이 있음에도 이 점을 드는 것은, 전편과 비교 대상으로서, 혹은 하나의 팝송곡으로서의 완성도와 장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 OST로서의 장점을 말하는 부분이다. 다회차 관람에 대한 평이 쌓이면서, 팬들이 느낀 노래 연출들과 영상 화면 연출들과 이야기 내러티브 진행 요소들의 어우러짐을 종합적으로 비교한 평가들에서 언급되는 OST 곡들의 위상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이다. 물론, 이 곡들의 장점이 전편의 영화사적인 의미까지 부여 받을 법한 그 렛잇고까지 능가했다는 평가 정도는 아니다. 대신에 이번에 소개된 7곡들의 이야기 내용과 유기적으로 얽혀서 작용하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호평 요소들의 평균이 전편 OST의 호평 요소의 평균보다도 더 발전했다는 평이다. 이야기의 숨겨진 열쇠와 복선으로 자리 잡다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을 울게 만들었던 All Is Found며, 다섯 주요 멤버의 이야기의 시작점을 평화롭게 잘 도입한 Some Things Never Change며, 사건 전개의 시작을 열면서 이 영화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Into the Unknown이며, 이야기의 마스코트 올라프의 변화와 정령의 조우를 코믹하게 묘사한 When I Am Older며, 의도 전달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의도를 알아본 이들에게는 재밌는 씬 스틸러가 되어 준 Lost in the Woods며, 이 영화의 중심에서 빛나는 두 기둥 Show YourselfThe Next Right Thing. 이 곡들이 이야기 진행과 밀착해서 다소 의문도 생길 수 있을 법했던 내러티브에 강렬한 감성적인 힘을 부여하여 이 영화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리는 데 공헌 했다고 볼 수 있다.

4.1.4. 디테일한 영상미


  • 전작의 강점인 캐릭터 설정의 디테일(팔을 꼰 채로 움츠리거나, 눈을 마주치지 못하거나, 당황할 때 입을 가리거나, "Wait, what?(잠깐, 뭐?)" 대사를 자주 쓰거나, ... 이런 세세한 습관도 캐릭터의 특징과 결부시켜 배치 된)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잘 구사 된다. 제스쳐 게임 하나에서도 조물조물 거리는 몸짓 밖에 못하면서 자기 표현을 잘 못하다가 혼자 노래할 때만 되면 온 세상의 정기는 다 받은 듯 생동감 넘치는 엘사나, 반대로 표현을 너무 과하게 잘하다가 이야기 진행에도 도움을 주기까지 하는 올라프, 상대의 말을 잘 끊으면서 말을 잘 하지만 그걸 밉지 않게 하는 안나 등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에 대한 관찰과 연구 수준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후속작까지도 잘 표현 되면서 이 겨울왕국 영화 시리즈의 강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 전작의 또다른 강점인 아름다운 영상미와 캐릭터 디자인도 여전히 호평이 많다. 안나의 바뀐 헤어스타일이나 엘사의 최종 각성폼 등 캐릭터 개개인 뿐 아니라 겨울 풍경의 아름다움 등 외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특히 바뀐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는 엘산나 자매는 머리를 풀 수록 예뻐진다며 수많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중. 그 뿐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홍채에 비친 상대방의 인물들까지 일일이 다 3D로 그려내고, 옷의 옷감 실의 질감까지 3D로 구현하며, 캐릭터의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다 3D로 구현할 정도였다. 인간의 머리칼은 평균 10만 가닥 정도라고 하는데, 엘사의 3D로 재현된 머리칼은 약 40만 가닥이었다고 한다.
  • 그래픽과 연출 면에서도 호평이 많은데, 작품 내 옷의 무늬의 디테일, 배경과 캐릭터의 조화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물이 나오는 장면도 상당히 많은데,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물과 눈이 3D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하기 가장 힘든 오브젝트라는 걸 생각하면 이 장면들에 들어간 정성도 대단하다. 원래 유체의 구현은 진짜 토나오도록 어려운 부분이다. 한가지 예시로 시네마틱 영상에는 이골이 나 있는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단편 애니메이션 슈팅스타의 비 오는 장면을 애니메이션 팀이 구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다음부터는 비 오는 장면은 넣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특수촬영에서 구름효과는 실제로 수조에 물감이나 우유 같은 걸 풀어서 그 밑에서 찍는 전통적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 장면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실사영화에 쓰이는 연출기법을 많이 도입했다. 핸드헬드 패닝샷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하나하나 훝는다든지 등장인물이 진짜 현실의 배우 움직임처럼 화면 앵글의 이미지너리 라인 밖으로 나가면서 장면전환이 된다던가,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 이동 속도에 맞춰서 주변이 흐릿해지는 기법을 3D 애니에서 구현해 낸다던가...참고로 안나의 키스씬은 실제 성우인 크리스틴 벨의 키스씬 장면들의 특징과 닮은 장면이 매우 많다. 가령 키가 작은 벨이 위로 올려다본다던가 하는 식이다. 또한 물의 정령 노크를 묘사할 때 물 속에서 따로 영역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모습으로 구현했다. 그냥 자연의 물을 묘사한다면 물리 엔진을 쓰면 될 것인데, 자연이 아닌 마법 판타지의 물을 묘사한다면 물리 엔진도 복잡하게 써야 한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물의 영역 속에서 또 한 번 물'을 구현해 낸 것이다.
    • 그 수많은 낙엽들조차도 하나하나 전부 색칠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정성들여 묘사했다. 엔딩 크레딧에 이런 비주얼을 구현한 보면 3D 랜더러가 10명으로 파악된다.
이 퀄리티의 영상을 위해 구글의 슈퍼 컴퓨터를 대여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3D 그래픽은 퀄리티가 높을수록 제작과정부터가 녹록치 않기 때문. 특히 아토할란으로 가는 길에 물의 정령 노크와 싸우는 장면의 파도와 기타 물을 구현하려고 8개월을 공들였다고 한다.

4.1.5. 기존 팬들에 대한 예우의 측면에서


  •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픽사는 2018년을 기점으로 주먹왕 랄프 2토이 스토리 4에 이어 겨울왕국 2까지 주연들의 성장과 이별을 테마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서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본다면, 바넬로피에 대한 과도한 랄프의 집착이 호볼호의 반응을 이끌어 낸 주먹왕 랄프2나, 전작 3작품에서 일관적이게 유지된 우디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버린 점에서[2] 팬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토이 스토리 4에 비해서 본작의 주인공들의 성장과 이별은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제시했다고 보는 쪽이 우세한 편이다.
다른 작품들은 무언가 '더 좋아 보이는 요소'를 던져 주고, 그와 과거 이야기들의 요소와 비교하여 우열을 정하고 새로운 길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처럼 묘사되며, 그런 과정에서 과거 작품들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감동한 점이 마치 성장과 변화라는 명분으로 푸대접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의견들이 각종 팬들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나 SNS들에서 무시 못하게 보인다. 그런데 겨울왕국 2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 요소들(과거사의 해결, 노덜드라와의 새로운 구도, 정령의 세계관,...)이 아렌델 국가와 아렌델 백성을 향한 두 왕족 자매의 애정이나, 두 왕족 자매의 서로를 향한 끈끈한 가족애, 그리고 주요 캐릭터들의 유대를 거스르지 않은 채로 평행하게 흡수되는 형태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물론, 이는 이야기의 만듦새와 별개의 요소이다.[3] 그러나, 제작자들의 '의도'를 위해서 팬들의 추억과 정서를 희생시키는 듯한 판을 만들어버리는 두 작품들에 비해서, 팬들이 정서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지혜롭게 변화를 수렴한 겨울왕국2의 접근법은 현명했다고 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래서 혹자에게서 "디즈니 리바이벌에서 흔들리는 기조가 보였데, 겨울왕국 2를 보고 다시금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는 의견들도 보이곤 한다.

4.1.6. 훌륭한 한국어 더빙


  • 전작과 마찬가지로 우리말 더빙의 퀄리티가 매우 좋다. 한국어 더빙판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디즈니 코리아의 정성이 돋보인다. 전작의 퀄리티도 좋은 편이었지만 본작은 히트작후속작이라는 점에 디즈니 코리아가 한국어 더빙판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 전작에서 잘 구성된 성우진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성우들의 대사 연기도 열연이 돋보인다. 2편이 개봉하기 전까지 6년이란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목소리는 1편과 거리감이 없으며 오히려 연기력은 2편 때 더욱 높아졌다. 한국판 OST의 완성도 또한 매우 뛰어나서 큰 호평을 받았으며 Into the Unknown 엔딩 크레딧 버전을 태연이 불렀다. 한국은 전작에 Let It Go 엔딩 크레딧 버전을 씨스타효린이 부른 것처럼 2편 역시 태연이 불렀다. 태연의 가창력 역시 매우 좋은 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등지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 1편에서 소연과 목소리 차이가 커서 아쉬움을 남긴[4] 박혜나가 창법을 바꾸면서 소연과의 목소리 차이가 훨씬 덜해진 것도 장점. 박지윤과 이장원은 여전히 클래스를 보여주는데다가 2편에서 크리스토프와 조영경의 단독곡이 추가되면서 정상윤과 조영경까지 OST에 하드 캐리를 해주면서 관객들의 노래에 대한 만족도가 어마어마하게 크다.[5] 디즈니 갤러리, 겨울왕국 갤러리에서는 갓지윤과 갓혜나는 영원하다며 찬양하고 있다. 이 덕분에 겨울왕국 갤러리에서는 더빙을 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보는 것을 권장하는 편이다. 퀄리티가 정말 뛰어나기 때문.

4.2. 부정적 평가


  • 전반적으로 기승전결의 러닝타임 분배가 좋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서사의 규모는 커지고 볼거리와 비주얼은 더 좋아졌지만, 그 서사의 규모를 스토리텔링의 흐름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하기도 전에 다음 상황이 연달아 펼쳐지고, 새 설정이 공개되어도 그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실한 채로 진행을 강행하는 이야기 진행의 경향이 보인다는 의견들이다.(##, ##) 그 점에서 상당수의 관객들이 개연성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결말 부분의 급전개가 상당히 심하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공통적으로 단점으로 꼽고 있다.
특별히 결말 부분에서 러닝타임 분배는 아쉬운데, 중반까지 어찌어찌 필요한 부분과 강조할 장면과, 설명이 필요한 설정들을 부족한 대로 빠질 건 없이 빌드업한 영화가 결말 부분에서는 너무도 빨리 일사천리로 해결된다. 그런 과감한 선택과 고뇌의 결단을 내리는데 이미 영화 러닝 타임의 대부분은 끝나 있다. 그래서 댐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다 해결하고 재회하는 데까지 겨우 몇 분도 되지 않는 러닝 타임 내에 급격히 휙 하고 다 해결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안나가 댐을 무너뜨리고 마음 아파하는 장면을 더 추가해 주거나, 정령들이 서로 합의 하는 묘사를 추가 하거나, 깨어난 엘사가 해결하는데 난관이 있었고, 그걸 각성한 엘사에 맞춰서 멋지게 해결하고 나서 폭류를 막아냈거나, 이런 식의 해결 장면에서 갈등 요소나 극적 전개 등의 볼륨도 풍성하게 구성되어야, 빌드업한 이야기의 규모와 비교해서 균형이 좀 맞는데, 이 영화는 쌓아올 때는 공들여서 쌓다가 무너 뜨릴 때는 너무 쉽게 무너뜨리고 바로 에필로그로 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러닝 타임을 늘려서 상황과 설정을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구간을 좀 더 늘리거나 추가했으면 이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급전개는 필연적으로 설명이 부족하게 보이는 단점을 낳게 되고, 설명이 부족하면 서사와 장치를 너무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6]
  • 어린 아이들이 쉽게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건 둘째치고, 그 주제를 명확하게 풀어내는 방식도 실패했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가해자 입장[7]에서의 이야기다 보니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엘사와 안나 중심의 서사이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인 노덜드라가 극적인 장치로 사용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후술된 혹평란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로, 이는 마치 근래 이슈가 되고 있는 몇몇 국가들의 역사 문제처럼 가해자 중심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관점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러닝타임에 쫓긴 이 영화에서는 이 과거사 자체가 쌍방의 문제였던 것인 만큼, 피해자인 노덜드라 입장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 지, 거기서도 반발하는 요소는 없었는 지, 그들이 받은 고통은 어떻게 해소되었는 지에 대한 묘사들이 있어야 완결성을 갖춘 접근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요소가 생략되고, 철저히 가해자가 해결하면 그냥 아무 리액션 없이 순응하기만 하는 객체인 양 묘사했다는 점이 아쉬웠다는 관점이다.
  • 5원소설을 채택해놓고 5원소는 얼음이다라는 부분은 보는 동안 의아함이 든다. 물과 얼음의 차이가 있던것도 아니었고 물은 모든걸 기억한다는 유사과학을 소재로 들고와 부모님의 기억과 올라프를 살리는 소재로 사용하는데 그럼 물과 얼음은 무엇이 다른가?
  • 이렇듯 부정적인 평가는 OST나 영상미 같은 부분이 아닌 스토리에서 주를 이룬다.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많았고 애들이 보기에는 심오하나 어른이 보기에는 얄팍한 주제. 유사과학의 등장. 5원소설은 얼음. 등 소재적인 부분도 부족했고 정령의 강함을 주의시킨것에 비해 바위의 정령을 제외하면 엘사에게 바로 제압당하는 어이없음. 1에 비해 2의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비중이 없는 수준이다. 밑에 많은 부정적 평가와 그에 따른 반론들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보자면 영상미 OST에 비해가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과 주제전달 의식이 모자랐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에 대해 생각하면 찝찝한 기분이 남는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겨울왕국 2는 아동용 대상 영화고, 어른들 마저 세세히 보아야만 개연성이 납득된다면 이미 그 영화는 실패한 것이다. 이유를 찾자면 찾을 수 있지만 영화내에서는 끝까지 명확한 개연성을 표출하거나 이해하기 쉽도록 그 이유를 보이지 못하고, 이해가 어렵고 불확실한 전개에 찜찜함은 부정적 평가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4.2.1. 음악에 대하여


  • OST가 좋기는 했지만 1편보다 OST가 별로였다는 평이 많다. 이러한 반응은 1편의 OST가 그 Let it Go여서 그 임팩트가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품 내적으로도 전편에 비해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노래가 수록된 탓에 노래 배치에 걍약이 없어서 충분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관객들에게는 뭔가 한 곡을 대표적으로 인상 깊게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배치나 빌드업 면에서도 본작의 주제가인 Into the Unknown는 작품 초반부부터 엘사의 스토리 전개로 포석을 깔고 중반부에 터트리는 Let it Go와 달리, 별다른 포석도 없이 너무 초반부부터 나오는지라 충분한 발판을 깔아놓지 못했다.[8][9] 그리고 엘사의 Show Yourself가 비주얼 연출이 워낙 압도적이다보니 중요한 주제의 한 축인 다음 노래 안나의 The Next Right Thing이 첫 관람에서는 조금 묻힌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는 1편의 트롤들의 노래 Fixer Upper랑도 비슷한 단점.
  • 노래의 전체적인 톤이 팝 음악스러운 노래에서 뮤지컬 노래에 가까워져 1편의 노래와 방향성이 달라졌다. 1편 역시 뮤지컬 장르적 특성이 강한 영화였지만, 이번 OST 들에는 그 1편 때보다 뮤지컬 장르적 특성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에, 1편의 음악들을 기대하고 간 관객들에겐 실망할 수 있다. 또한, 1편과는 다르게 이야기의 전개와 진행, 화자의 생각의 변화가 노래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노래를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스토리 전개를 놓치게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자막판의 가사가 더빙판을 그대로 차용해서 들리는 뜻과과 약간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 물론 음악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
  • 다른 노래들보다 특히 크리스토프의 Lost in the Woods에 대한 호불호 의견이 존재한다. 일단 노래 자체는 감미롭고, 원래 보컬 실력도 출중한 조나단 그로프의 아름다운 목소리와도 잘 어울렸다는 평에는 거의 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 노래가 왜 그런 이상한 센스로[10] 그 타이밍에 제법 긴 분량으로 자리잡았냐는 점에서 의견이 갈린다. 개그 센스였다고 하기에는 노골적으로 웃긴 요소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기에는 90년대 미국 MV를 향유하기 힘들었던 영어권 외의 사람들이나 40세 이전의 사람들이 재빨리 알아보기 힘들 법한 패러디 연출들이었다. 그렇다고 개그 센스가 아니라 진심으로 넣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연출이 너무 쌈마이(...)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캐릭터들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전개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뭔가 영화가 이 음악으로 인해 단절된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이 노래가 나올때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혹평을 남겼을 정도.

4.2.2. 내용 전개에 대해서


  • 엘사가 급히 떠나야 해서 안나가 크리스토프를 두고 가는 것도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였다는 말이 많다. 그냥 안나와 엘사가 길을 인도하는 불의 정령 브루니를 잡아 둔 채로 돌아와서 잠시 기다렸다가 크리스토프와 합류해서 같이 가도 되는 전개가 나왔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 전개에서 일행이 서둘러야 할 이유는 빈번해지는 정령들과의 조우로 인해 노덜드라 족을 위험하게 한다는 정도였다. 그 역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합류하고 같이 갔어도 되었을 일이었다. 즉, 이런 전개는 일행을 떨어뜨리기 위한 무리한 전개로 보일 수 있다.[13]
    • 반론의 의견으로, 당장 떠날 것을 결심한 이유는 정령들과의 빈번한 조우라기 보다는 땅의 정령의 무서운 힘이 원인이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엘사의 존재를 느껴 주변을 배회하게 되었다는 점이있다. 엘사의 능력으로도 제압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몇씩이나 주변을 헤집고 다니면 조그만 인간의 마을은 순식간에 박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증거로 게일과 브루니에게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제압했던 엘사가 땅의 정령은 보자마자 기겁하며 나무 뒤로 숨어버린다.[11] 따라서 조금 떨어진 위치 정도로는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한시바삐 길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볼 수가 있다.[12]
  • 엘사가 아토할란에서 본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보낸 얼음상 하나만 가지고 안나가 과거의 복잡한 전말을 단번에 이해했다는 전개는 모든 것을 본 관객이 보기에는 바로 알 수 있지만, 극중 캐릭터 입장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결정적인 장면을 표시하는 얼음상과 함께 음성이 전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후 전개도 모르고 그 때 그 자리에도 없었으며 못 본 인물이 나오는 그 한 얼음상을 보고 바로 핵심부터 바로 이해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전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 반론의 의견으로, 영화 극초반에 제스처 게임에서 엘사의 표현에 대해 정답을 하나도 맞히지 못한 안나가 엘사에게 '가족끼리 제스처 게임은 원래 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엘사가 급박하게 보낸 얼음상 하나만으로 안나가 전후 사정과 댐을 부숴야 한다는 결론까지 도출해내는 장면은 그만큼 엘사와 안나 사이의 정신적 유대가 더욱 발전했고 안나가 왕위에 오르기 적합한 성품을 가졌다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극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 정령의 땅에서 갇힌 노덜드라 족은 삶의 터전이 거기라서 그렇다 쳐도, 같이 갇힌 아렌델 군인들은 거기서 군인 체계, 심지어 군복 복장까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십년 간 싸움을 계속 유지했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1~2년도 아니고 무려 34년 5개월 24일 동안 갇혀있었다고 나오는데 나이만 든 걸 빼면 무기도 깨끗하고 옷도 깔끔한 걸 보면 싸우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일 지경. 심지어 주인공 일행을 만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노덜드라족이 사는 곳으로 같이 간다(...). 서로 영역을 정하고 침범하지만 않으면 싸우지 않기로 합의하고 휴전했을 수도 있다지만, 이를 납득시킬 만한 묘사는 부족했다.
    • 반론의 의견으로, 마주치자마자 싸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이 같혀 있는 기간 동안 어느 정도 공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엘사 일행이 나타났을 때처럼 아주 사소한 것 으로 싸우게 된 적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아렌델 군인들이 군인 체계와 복장을 유지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채택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무인도에 떨어진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질서없이 여러 사람이 덩그라니 사회에서 떨어져 살게 되면 헝거게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숲에서 살아본 적이 없을 군인들로서는 더더욱. 게다가 적군인 노덜드라 족이 있는데 최대한 불필요한 내부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 안나가 댐을 부수는 것도 부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아렌델을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까지 싹 무시하고 일단 부수기부터 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는 지는 의문이다. 영화상 묘사를 보면 정령들의 위협도 엘사 안나의 여정을 통해서 점점 완화되어가는 추세였다.
    • 반론의 의견으로, 이는 당시 안나의 입장에서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자이자 마법도 부릴 수 있는 엘사는 죽었지, 그 다음 왕위 계승권인 본인은 마법의 땅에 갇혔지[14], 더군다나 바깥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태에서 본인이 마지막으로 본 아렌델의 모습은 돌풍이 불고, 불씨가 모두 사라지고, 물이 마르고, 지진이 일어나는 개막장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댐을 무너뜨려 원상복귀 시키는 것밖에 없다. 물론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는 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좋겠지만, 아렌델은 한순간에 가장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권자 두 명이 다 공석이 되어버린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태가 왕정 국가에겐 치명적인 일이라는 걸 안나 정도 되면 모를 리가 없다. 즉, 시간을 더 주고 고민을 한들, 안나에게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할 만한 옵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갇힌 시간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 지금껏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물론 미국 영상 매체 전부를 통틀어서 원주민-침략자 간의 갈등 시나리오는 너무나도 많이 쓰인 시나리오라서 북유럽 원주민의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의도와는 별개로 전개 자체는 매우 식상했다는 혹평이 많다. 당장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극 초반부에 댐을 건설해주었다는 파트부터 다소 아리송했을 것인데, 상술했듯이 댐은 인간에 의한 자연 통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며 댐 건설은 필연적으로 수몰지역을 발생시키고 환경파괴와 이재민을 초래하여 현대에도 분쟁의 요소가 되고는 하는데, 자연 친화적인 노덜드라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는 개연성 문제가 발생해버린다. 또한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인 루나드 왕이 아렌델-노덜드라의 분쟁을 초래하고 정령의 분노를 유발한 빌런이었다는 것은 작중에서는 엘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밝혀낸 대단한 반전으로 밝혀지지만, 작품 외적인 시선으로 보면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밝혀지기 이전부터 매우 간단하게 짐작이 가능할 수 있는 요소이다.
    • 그에 대한 반론으로 각자의 창작물들에 익숙한 경험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클리세에는 역클리세도 있으므로 뻔한 반전인 줄 유도한 역 반전도 쓰이는 편이다. 그러므로 이런 '뻔해 보인다'는 의견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수 없다. 이번 편에서는 다소 애매해졌지만, 어디까지나 겨울왕국 시리즈의 메인 타겟은 아직 창작물의 클리세와 반전을 접한 경험이 적은 미취학 아동 연령대이다.
    • 또한 노덜드라 사람들이 댐의 건설을 반겼다는 것을 개연성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작중 배경 시대와 등장하는 집단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다. 댐이 결과적으로 환경 파괴와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건설 이후 드러나는 문제들이며, 문명과 멀리 떨어져 있는 노덜드라족이 이를 알았을 리 없다. 아렌델은 본인들 기준에서 댐의 이로운 점만을 들먹이며 어디까지나 친화적인 목적(루나드를 제외하면)으로 댐 건설을 추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덜드라 족의 족장이 댐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서 연회때에 국왕에게 뒤늦게 얘길 꺼낸 것.
    • 이 구도를 두고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 몇 가지 사실을 서술하자면 이런 내용들이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미국인 -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 비유되기 쉬우나, 아렌델의 모티브 국가가 노르웨이임을 떠올려 본다면, 노르웨이 정부의 사미족에 대한 탄압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역사가 일차적인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작진 역시 마법의 숲 주민들은 사미족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사미족 공동체의 리더들에게 이번 영화의 자문을 많이 부탁했다고 인증했다.##. 아렌델의 배경이 된 노르웨이도 북부의 사미족, 원주민 등을 탄압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유럽 3국의 공통된 역사의 어두운 면이며 이를 모티브로 한 동화도 있다.[15] 또한 평지와 드넓은 땅이 많아 땅을 빼앗고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미국에 반해 추운 숲과 호수가 많은 노르웨이는 특성상 댐과 호수와 관계된 갈등이 상당히 많았다.[16] 물론 주류민족과 소수민족, 원주민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과 전쟁은 전세계 어느 민족에게서나 벌어지는 일이므로 미국 -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대입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4.2.3. 결말에 대하여


  •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와 그 갈등의 양상이 꽤나 진지한 것[17]임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 전형적이고, 가볍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 피해자인 마법의 숲 주민의 입장의 무게감을 묘사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구조를 엘사안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소재와 주제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결말이 너무 아동영화 스럽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18]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가 원주민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대한 자성과 사죄로 보이는데, 이러한 묘사가 빠진 부분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 [19] 삭제된 결말 장면에서 아렌델이 쓸려나가고 여왕으로 즉위한 안나가 아렌델의 침략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아렌델과 노덜드라가 협력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더 나을 뻔했다는 평가도 많다.
  • 마법의 숲 정령들의 분노한 이유와 그 해결 과정이 다소 애매하게 묘사된다. 일단 작중 초반에 묘사되기로 마법의 숲 정령들은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고 노덜드라인들의 일상 속에 섞여서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었지만, 정령이 분노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아렌델인들과 노덜드라인들이 마법의 숲에서 살육전을 벌이는 시점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령들이 분노한 원인은 아렌델인-노덜드라인들이 숲 안에서 분쟁을 벌인 일로 보이다. 그러나 작중 묘사에서 이 정령들의 분노는 안나가 댐을 부수자 마자 풀려서, 엘사는 얼음에서 풀리고, 아렌델의 정령에 의한 재앙들이 가라앉게 묘사가 된다. 그렇다면 정령들이 분노한 일차적 원인이 인간들 간의 전쟁이었는지, 정령이나 마법을 거스르는 댐이었는지, 만약 둘이 연결된 요소였다면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에 대한 묘사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여러 장면에서 추론이 가능하다.[20] 그러나 이런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 작품 곳곳에서 세심한 작업을 해 왔던 제작진은 그 세심함을 발휘해 미취학 아동부터 전연령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연출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을 또 애매하게 넘어간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다.
  • 정령의 힘이 댐으로 인해 약해지고 마법의 숲이 단절되게 된 위기상황으로 묘사된 것 치고는 정령들의 반응이 애매하다.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은 그냥 장난치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분노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의 정령이지만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길들여지지 않은 물귀신에 가까워서 엘사가 힘으로 길들여버린다. 특히 이질적인 것은 땅의 정령 바위거인들인데, 다른 세 정령은 엘사와 조우해서 그녀를 시험하고, 그녀에게 복종하는 과정을 공통적으로 다 거치는데, 유독 땅의 정령들은 엘사를 겪어 보지 않고도 엘사의 냉동을 풀어주는 데 합의 하고, 마지막에 복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심지어 바위거인들은 아예 그냥 짜증나고 시끄럽다는 본능에 의해서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댐을 부숴버린다. 이렇게 전개해 버리면 댐이 위기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근거는 루나드의 발언 뿐이고, 정작 정령들이 직접 부수는 전개가 되면서 인간이 정령을 달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었다.

4.2.3.1. 반론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렌델의 대표인 안나는 분명 아렌델의 멸망을 각오해가며 속죄의 행동을 하였고, 댐을 부순 건 안나의 의지에 의해 유도된 행동이므로 정령 스스로가 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정령들이 댐이 부숴져서 분노를 풀었다기 보다는 엘사와 안나의 의지를 쭉 지켜보았고 최종적으로 시련을 통과한 것을 보고 용서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 이 같은 결론을 추론하자면 과거의 일의 또 다른 당사자들인 정령들이 어떤 의도를 작중에서 내비쳤는지 하나하나 고민해보아야 하며, 작품 내에서 잘못 인지된 사실들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 작품 초반에 엘사에 의해 깨어난 정령들의 첫번째 행동은 모든 아렌델 국민을 고지대로 쫒아내다시피 대피시키는 것이었다.[21] 말하자면 결말부에 댐이 파괴될 것을 정령들이 이미 전제로 두고 작품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후반부 안나가 언급하며 확인된다.
  • 땅의 정령이 후반부에 댐을 부쉈듯 정령들은 댐을 파괴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 아렌델을 수장시킬 수 있었다.
  • 다툼이 발생하여, 그리고 루나드 왕의 악한 의도를 알아 낸 정령들이 분노하긴 하였으나, 이두나의 호소에 아그나르를 구한것은 다름아닌 정령이었다.
  • 댐을 부순 건 땅의 정령이나, 그것은 오롯이 안나와 아렌델 병사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 댐이 마법의 숲의 지반을 약하게 만들긴 하나, 정령들의 힘에 영향을 미친다는 묘사는 없으며 루나드의 의도는 약화된 지반으로 노덜드라 족이 아렌델에 더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결말부 엘사의 대사에 오역이 있었는데, 안나에게 아렌델의 왕위를 넘긴다는 것에 정령들이 동의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대사 "The spirits all agree, Arenedelle deserves to stand with you"를 정확히 해석하자면, 정령들이 안나와 함께하는 아렌델의 존속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22]
종합하여 줄거리를 함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령들은 이두나와 아그나르의 관계를 통해 향후 역사를 바로잡고 댐을 무너뜨릴 사람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대상이 둘의 딸이며, 다섯번째 정령이자 아렌델의 여왕인 엘사가 이끌고 온 안나였다. 결국 안나는 아렌델을 대표해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과거를 바로잡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정령들은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함과 동시에, 엘사를 도와 아렌델의 멸망을 막아주었다. 즉, 아렌델 사람이 큰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속죄의 의지를 보인다면 정령들은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댐이 정령들이 분노한 이유나 부수는 것이 갈등해소의 계기가 된다기 보다는, 루나드 왕의 후손들인 엘사와 안나가 그의 악한 의도가 담긴 결과물인 댐을 파괴함으로 그의 죄업을 청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령이 준비한 시련이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장면이 나오지 않아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려우나, 안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나라가 수몰되는 걸 무릅쓰고서라도 댐을 부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 안나는 엘사가 죽은 줄만 알았고 부활할 거라는 것도, 그리고 아렌델을 보호할 것도 전혀 몰랐기에 사실상 (안나가 알기론 엘사가 죽었으니) 왕위를 승계 받자마자 처음 한 일이 아렌델이 파괴되더라도 할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엘사 또한 본인의 자아 실현의 목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여행을 했고 마침표를 찍었다. 목숨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아토할란의 깊숙히 들어가 진실을 목격하고 이를 안나에게 전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무려 전제군주제 나라의 여왕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23] 모든 일 이후에는 자신보다 안나가 여왕에 어울림을 인정하고, 다섯 번째 정령으로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왕위에서 내려왔다. 노덜드라의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숲의 보호자이자 축복을 베푸는 정령으로서 살기 위해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아렌델은 그 어떤 말보다 과거에 대해 책임지는 행동을 한 것이며 이를 정령들이 분명히 알아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장에 이르러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정령들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안나와 엘사의 행동에 적절성은 둘째치고 앞에서 언급된대로 노덜드라 인들이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4.2.4. 엘사는 아렌델을 떠나야만 했나


엘사 이야기의 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어 문단이 분리되었다.

4.2.4.1.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

겨울왕국 1의 과정에서 엘사는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외면당했던 자신의 능력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그것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존중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으나 극복했고 아렌델을 사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정령의 소리를 처음 접한 그 순간에도 Some Things Never Change를 부르며 현재의 상황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Into the Unknown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 때문에 안나에게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나마도 정령의 숲에 들어설 적에는 가지고 있던 아렌델에 대한 마음이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능력의 근원과 자아실현으로 변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엘사를 생각해봤을 때 20년 넘게 고통이었고 의문의 대상이었던 제 능력의 근원을 밝히고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변화임은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극 후반부 아렌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에서는 아렌델 여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다섯 정령 중 한 존재로서 소임을 다한 것' 같은 제3자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져 다소 위화감이 든다. 종국에 아렌델에서 태어나고 자라 여왕으로서 사랑받고 사랑했던 엘사가, 어느새 아렌델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남으며 안나에게 여왕을 물려주는 전개는 결국 엘사가 아렌델과 같은 일반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기이한 존재라는 걸 확인사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회국가세계적인 관점으로 보면 엘사와 안나를 통해 국가 간의 오해를 풀고 정령들의 조화를 되찾았으나, 캐릭터 개인의 관점에서 엘사는 끝내 정령의 역할을 위해 아렌델에서 분리된 별도의 존재로서 안나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령이 됐지만, 영원히 본인이 사랑하던 곳과 관계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봤을 때, '이게 엘사의 진정한 성장과 행복인가?' 의문을 가지게 한다. [24]
겨울왕국 1의 결말과 겨울왕국 2의 초반부 노래를 생각하면 엘사는 본인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여 아렌델에서 고통을 겪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에게서 벗어나 초월적인 상태가 되어 지금이 최적이라고 말하는 결말이 영화를 보는 청자로 하여금 모순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엘사가 안나와 떨어져서 지낸다는 결말이 기존의 겨울왕국의 주제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비단 1편만이 아니라 겨울왕국 열기의 스토리나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엘사와 안나의 듀엣곡에서도 엘사와 안나가 가족으로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재차 강조한다.
향후에 교류를 많이 한다고는 해도, 활발한 소통이 오고 간다 해도 엄밀히 엘사는 아렌델과는 분리가 된 상황이다. 겨울왕국 1에서는 다름에 대한 반대 급부를 넘어서 분리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반면, 겨울왕국 2은 분리되어 있지만 둘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괜찮다는 이미지의 어정쩡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엘사가 어떤 존재가 되었든 간에 여전히 아렌델의 한 구성원으로서 남아 살아가는 엔딩이었다면, 1과의 괴리감이 적었을 것이고 오히려 더 발전된 차원의 맥락으로 해석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따로 살아가게 된 엔딩을 맞이하게 된 지금으로서는 '한 집단 내에서 다름을 극복하지 못 하고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으로 간' 인상을 줄 수 있다.[25]
종합하자면, 엘사가 아렌델 사람과 다름을 깨닫고 아렌델도 엘사의 능력을 받아들여 아렌델에서 지낼 수 있는 전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순응적인 환경이 제격이라며 자신의 직위를 양위하고 떠나는 전개로 흘러가야 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아렌델에선 엘사를 배척하며 분리하지 않았고 엘사도 아렌델을 사랑했는데,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안 것만으로 '아렌델이 아닌 여기가 내 자리야'라고 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록 본인의 선택이긴 했지만 엘사는 결국 자신의 능력 때문에 남은 것이다. 자신의 남다른 능력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결말은 1에서 나타난 달라 보여도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감상보다 서로 다른 존재로서 행복하게 살아가자라는 느낌을 더 많이 주는데, 굳이 이런 결말로 낼 필요가 있었냐 하는 것이다. 본래 후속작 계획 없이 완결을 냈던 작품이니 만큼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 작품은 엄연히 1 이후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그렇기에 1과의 연결성, 특히 1에서 나타난 엘사의 캐릭터성과 처지에 주목하고 공감하던 사람들이라면 2에서 나타난 엘사의 면모에 의문을 품거나 실망할 여지가 분명 존재한다.

4.2.4.2. 엘사는 여전히 아렌델과 함께한다

위의 주장은 한가지 질문으로 돌파가 가능하다. "가족은 반드시 한 장소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가?"
살다보면 가족끼리라도 많은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어른으로 독립하기 위해,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누군가는 이민을 가서.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 멀리 떨어졌든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엘사는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았을 뿐이다. 이를 두고 "엘사는 결국 아렌델에 속하지 못한 것인가?"라는 것은 1차원적인 질문이다. 이전에도 엘사는 북쪽산에 얼음성을 만들었으나 이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도피처에 불과했다.[26] 그러나 정령으로 각성한 시점에선 엘사는 정령과 마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땅에 남아 정령을 다스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령을 달래고 인간과 중개하는 소임을 다하고 안나는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 통치의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앞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와 마찬가지로 이별과 독립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식을 따르는 것에 맞추어 겨울왕국 2도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의 숲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벽지로 그려지지 않았으며, 그 동안 안개가 왕래를 막고 있었을 뿐 거기까지 가는 길이 험하게 묘사되진 않았다. 순록을 타고 하루 정도 달려가면 되며, 선대의 잘못 이전에는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하던 지역이다. 이것을 멀리 떨어진 곳에 남아 세상을 등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주먹왕 랄프 2의 경우 바넬로피는 랄프가 사는 오락실로부터 꽤 먼 슬로터 레이스라는 인터넷 게임에서 살게 되었고, 랄프와 바넬로피가 만날려면 통신으로 대화해야 하고, 새벽이 지나면 오락실이 문을 열어서 그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오래 놀지도 못한다. 애초에 WI-FI는 고전압 방지기가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토이 스토리 4의 경우도 5편이 나오지 않는 한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레귤러 멤버들과 우디의 접점은 더 이상 영원히 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겨울왕국 2는 클라이맥스 장면,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보듯 엘사는 물길을 이용해 순식간에 주파가 가능하다(...).[27] 안개가 걷힌 이후, 아렌델과 노덜드라는 동맹국으로서, 앞으로도 교류가 활발할 것이고 외교 상대 1순위가 노덜드라일 것이기 때문에 엘사의 방문이 잦을 것이 뻔하다. 결말 부분에 간접적으로 묘사되긴 했으나, 안개가 걷힌 후 아렌델 본국과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묘사가 있었다면 더욱 명쾌했을 것이다.[28]

4.2.4.3. 전편에 이은 성장의 연장선이다

다른 해석으로 엘사가 겨울왕국 1 때보다 더욱 성장한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말하자면 1편의 엘사는 자기 능력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만을 바랬을 뿐 자신에게 왜 능력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가지고 태어났는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통제력이 생기고 주변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생긴 여유로 점차 능력을 통제하거나 잘 사용하는 것을 넘어, 마음껏 능력을 펼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엘사가 마법의 땅에 도착해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능력을 펼쳐 시련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변된다.[29]
사람의 성장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한 논리인 것이, 청소년기는(시기적으로 개인차가 있으나) 자신의 적성을 찾아 해메고 괴로워하다 자아 실현의 방향성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쫒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후 그런 일을 찾아 해메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필요로 해주는 곳을 찾게되면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물론 현실에서는 금전적인 사정이란 변수가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겨울왕국 2의 엘사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자신의 업을 찾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작품 초반에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로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을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 이는 엘사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아니라 이미 품고 있던 마음을 끌어낸 것이다[30]. 안나처럼 엘사 또한 지금의 행복한 생활이 변치 않음을 바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법의 힘이 있는 이유를 쫒고 그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어하는 강한 갈망이 있었으며, 그 답이 정령의 목소리를 따라간 끝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31] 이러한 마음은 본인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주변도 그러한 재능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여주고 또 응원해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32] 이러한 갈망을 바탕으로 엘사는 방황 끝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집(아렌델)으로 돌아온 뒤, 본인의 재능을 발휘할 업(마법의 땅)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하자면 겨울왕국 2의 내용은 올라프가 성장에 뒤따르는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냐고 자문을 구하고 다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엘사는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를 펼칠 장소를 원했고[33], 안나는 그런 엘사의 모습을 꿰뚫어보고 떠나보내는 것이 싫어 과보호 심리가 작용하여 다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물들 개개인의 성장을 통해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는 내용이 이번 2편의 내용인 것. 안나의 성장 스토리가 뭔지 상기해보면 간단한 게, 안나는 작품 내내 언니가 어디론가 떠날까 두려워 붙잡기만 했으며 결국에는 기꺼이 보내줄 수 있을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엘사도 안나도 청소년기를 지나고 가족의 품을 떠나 한명은 정령의 여왕으로, 한명은 아렌델의 여왕으로 독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겨울왕국 1은 개인의 다름을 본인도 주변도 사랑으로 받아들여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과정이며, 겨울왕국 2는 함께하는 것을 넘어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독립을 또 한번 사랑으로 받아들여가는 과정으로 서로 방향성이 다른 셈이다. 그러니 2편은 1편에서의 성장의 연장선일 뿐 전작의 내용을 부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1] 1편이 워낙 잘 만들어져서 2편은 아그나르와 이두나가 어디로 향했는가. 엘사의 힘의 기원은 무엇인가 딱 2가지 정도밖에 쓸 이야기가 없었다. 여기서 추가를 한다해도 크리스토프의 사랑의 행방 정도? 그리나 제작진은 이런 작은 요소들을 토대로 세계관을 훌륭하게 넓혀놓았고, 그 능력이 건재하다면, 다음 편이 나온다고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2] 물론 잘 흔들었는 지, 잘 흔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팬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납득이 되는 지는 의견이 갈린다.[3] 각종 공신력 있는 평가에서 토이 스토리 4는 겨울왕국 2를 제법 높은 차이로 앞지르고 주먹왕 랄프 2도 겨울왕국과 별 차이는 없다.[4] 자세히는 목소리가 소연보다 영어판인 이디나 멘젤에 가까웠다는 평. 유튜브에서 각국에 Let It Go를 비교하는 영상에서 한국판과 영어판 목소리가 유사하게 들렸다는 반응이 많았다.[5] 특히 짧긴 했지만 조영경의 Show Yourself에서 '어서 오렴 아가야' 부분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울컥했다는 관객들도 많았다. 초반부 All Is Found에서도 자장가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후반부에 다시 똑같은 소절을 들으니 감격 그 자체였다는 평.[6] 후술하는 내용에 자세히 서술했듯이, 외부 세계와 격리된 아렌델의 군인들이 그 상태를 30여 년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것에 대해서 한 예를 들 수 있다.[7] 아렌델이든 영화를 만든 미국이든[8] 내용의 흐름상 Into the Unknown이 나오는 위치는 겨울왕국 1편으로 대입하자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이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의 파트에 해당한다.[9] 작중 역할을 보면 Into the Unknown보다는 Show Yourself가 Let it Go에 가깝지만, 후반에 나오는 곡이라 이 곡을 메인으로 삼았다간 영화 보기도 전에 스포일러를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Into the Unknown을 사용한것으로 보인다.[10] 개그성 연출이었는데 곳곳에 제작진이 약을 빤(...) 느낌이 다분할 정도다.[11] 조금 뒤 긴장되지만 밝은 표정으로 뒤따라 나서 제압하려던 엘사를 안나가 뜯어말린 것을 봐서는 내용 전개에 따라 진짜 제압했을 수도 있겠다. 안나 말마따나 죽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이건 저연령층 대상 영화에 디즈니다.[12] 또한 아렌델 주민들이 집을 잃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토프가 합류할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통치자의 선택이라 할 수 없다.[13] 안나는 언니를 혼자보내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저 멀리 숲속으로 가버린 크리스토프를 찾지도 못하고 엘사를 서둘러 따라가느라 크리스토프가 낙오했다. 이후 후반부에 댐이 붕괴된 후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크리스토프가 괜찮다면서 안나를 다독여주는 장면이 묘사된다.[14] 엘사&안나 자매 말고는 그 시점에서 현재 아렌델 왕국엔 왕족이 없다. 크리스토프와도 연인 관계일 뿐, 아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토프가 부군으로써 국왕대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 둘 다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아렌델의 권좌는 공석이 되버려 국민들이 새로 왕을 뽑거나, 최우방 국가에서 아렌델을 합병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15] 스웨덴인의 탄압으로 인해 일곱 겹의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지하실에 가둬놔도 북극의 별빛을 보고 노래하는 마법쓰는 라플란드 소녀 얘기 같은...(핀란드 낭만주의 아동 작가 '사크리스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 이야기이다.) 다만 핀란드의 경우 본인들의 정체성을 '수오미'에 놓고 있고 국토 자체도 라플란드에 상당히 걸쳐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나 스웨덴에 비해서는 조금 덜한 편이다.[16] 특히 당국인 노르웨이의 경우 1970-80년대까지도 사미족 거주지역에 alta 댐을 건설하여 환경 단체와 사미인들의 강력한 반대운동을 낳아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작중의 댐에 관한 갈등 역시 이 사건을 참고한 듯 하다.[17] 아렌델 왕국과 마법의 숲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사실, 아렌델 왕국이 침략의 의도를 숨긴 채, 접근한 것이었다. 즉, 마법의 숲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몇십년간 그 숲에 갇혀버린 꼴이 된 셈이다. 즉 그 숲의 주민들은 명백한 피해자이고, 아렌델은 가해자인 셈이다.[18]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더라도 아렌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노덜드라족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공식적으로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19] 비단 이 영화의 이야기가 단순히 원주민과 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특정국가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역사로 대입이 될 수 있다. 이 국가들 사이의 문제는 미국이 겪었던 문제와는 다르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과거에 대한 책임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는 해피엔딩이 되려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20] 물론 작중에서 밝혀지듯이 이 댐은 선선대 왕인 루나드가 마법의 숲 지역의 정령이나 마법의 힘을 약하게 하여 그들을 모시고 사는 노덜드라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사악한 의도로 건설한 것이었으며, 노덜드라인의 부족장 역시 루나드에게 이를 항의하다가 루나드가 이를 말을 돌리며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무방비 상태로 꾀어낸 다음 뒤에서 살해하는 장면이 묘사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댐 자체가 노덜드라에 대한 아렌델의 분쟁과 탄압의 상징이기는 하다. [21]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정령에게 아렌델 국민을 헤칠 의도가 안 보이며, 특히 게일과 땅의 정령은 모든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유도한다.[22] 자세한 것은 겨울왕국 2 오역 문단 참조[23] 처음에는 벽을 부수라는 안나의 말에 고민하던 병사들도 안나가 '언니가 진실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요.'라고 하니 곧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엘사의 목숨은 국가 자체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렌델 국민에게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24] 물론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원할 때 언제든 아렌델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표현은 해 주었기에 그 위화감을 다소 경감시키기는 한다.[25] 비슷한 예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 등 최근 디즈니 계열 애니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마냥 이전 시리즈들에서 지속적으로 말하던 메세지와는 사뭇 다른 이별과 독립을 강조하는 듯한 결말을 보여주는 추세다. 이 때문에 기존 시리즈의 주제의식에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으며 겨울왕국 2도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결말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26] 작중에서도 엘사는 이 시절의 기억을 보자마자 흑역사가 들춰진 사람마냥 민망해 한다(...)[27] 엘사는 그냥 재노덜드라 아렌델 외교관 정도로 해석해도 왜곡이 아니다.[28] 그냥 간단히 결말이나 쿠키 영상에서 축제나 무도회 장면에서 노덜드라인들이 아렌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으면 됐을 문제.[29]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으로 따지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더 윗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엘사가 자신의 마법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를 바라는 시점은 존중 욕구 정도의 하위 단계인 결핍 욕구였다면,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 욕구 정도의 상위 단계인 성장 욕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엘사가 Into the Unknown을 노래하는 단계에서 그러한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30] Into the Unknown의 가사 내용은 능력으로 인해 아렌델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마음을 지금껏 억누르고 있었는데 구태여 자극하지 말라고 떼쓰는 것에 가깝다.[31] 자신의 갈망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를 어떻게 아는지 찬찬히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경을 실제로 보고 싶다면 본능적으로 종이와 펜이 필요함을 알고 그림부터 그릴 것이며, 머릿속에 울리는 음을 듣고 싶다면 자연히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찾고 악보를 완성할 것이며, 공을 차고 싶다면 공을 사고 공터로 나갈 것이다. 엘사가 정령을 따라가고자 마음먹는 것은 이와 다를 것이 없다.[32] 억압적인 환경,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의 멸시 가득한 시선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획일화되도록 하는지는 우리나라나 일본 등의 가까운 나라들의 교육 환경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지 않은가.[33] 결국 그 장소를 찾았다고 확신했을 때(Show Yourself) 유난히 해방감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살아온 십수 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능력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와 해답, 보상을 드디어 찾아낸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