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강원도)/행정
1. 개관
고성군은 광복 당시 2읍 6면이었으나, 6.25 전쟁 휴전 이후 2읍(고성읍, 장전읍), 2면(외금강면, 서면)과 수동면의 8개리가 북한령이 되면서 나머지 4면(간성면, 거진면, 현내면, 수동면(나머지 8개리)만 남한령이 되었고[1] , 현재는 남한만 2읍 4면이다.[2] 그나마도 수동면은 민통선 지역으로 주민이 없어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만 있고 면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지 않기에, 사실상 2읍 3면이나 다름없다. 취소선을 그은 곳은 면 전체가 민통선에 속해 있어 주민 거주가 금지되어 있는 곳이거나 북한에 완전히 넘어간 곳이다. 남북통일이 되어야 봉인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 위치상 '''남한 최북단'''에 해당되는 곳들이 많다.
2. 각 읍면
2.1. 간성읍(杆城邑)
- 관할 리 : 하(下), 간촌(艮村), 광산(廣山), 교동(校洞), 금수(金水), 동호(東湖), 봉호(蓬湖), 상(上), 선유실(仙遊室), 신안(新安), 어천(魚川), 장신(長新), 진부(陳富), 탑동(塔洞), 탑현(塔峴), 해상(海上), 흘(屹)
2.2. 거진읍(巨津邑)
- 관할 리 : 거진(巨津), 냉천(冷泉), 대대(大垈), 반암(盤巖), 봉평(蓬坪), 산북(山北), 석문(石門), 송정(松亭), 송죽(松竹), 송포(松浦), 오정(梧亭), 용하(龍下), 원당(源塘), 자산(慈山), 초계(草溪), 화포(花浦)
2.3. 죽왕면(竹旺面)
- 관할 리 : 오호(五湖), 가진(加津), 공현진(公峴津), 구성(九城), 마좌(麻佐), 문암(文巖), 삼포(三浦), 송암(松巖), 야촌(野村), 오봉(五峰), 인정(仁亭), 향목(香木)
1919년~1962년 사이에는 양양군 소속이었다.
2.4. 토성면(土城面)
- 관할 리 : 천진(天津), 교암(橋巖), 금화정(錦花亭), 도원(桃院), 백촌(栢村), 봉포(鳳浦), 성대(城垈), 성천(星川), 신평(新坪), 아야진(我也津), 용암(龍巖), 용촌(龍村), 운봉(雲峰), 원암(元巖), 인흥(仁興), 청간(淸澗), 학야(鶴也)
2.5. 현내면(縣內面)
- 관할 리 : 대진(大津), 검장(劍藏), 대강(大康), 마달(馬達), 마차진(麻次津), 명파(明波), 명호(明湖), 배봉(培峰), 사천(泗川), 산학(山鶴), 송도진(松島津), 송현(松峴), 제진(猪津), 죽정(竹亭), 철통(鐵痛), 초도(草島), 화곡(禾谷)
현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 이 곳이 열산현[5] 이라는 곳의 현소재지였기 때문. 사실 현내면이라는 이름보다 면 소재지인 대진리의 이름을 딴 대진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대한민국 최북단인 고성군의 최북단 지역이기에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북쪽 끝 지역이며, 북쪽으로 가면 휴전선을 넘어 북한 고성군지역과 경계한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진리는 북한의 사리원(북위 38° 30')과 위도가 비슷하고, 통일전망대를 비롯한 구 고성읍 지역은 은률, 은천(북위 38° 35'), 서해갑문(북위 38° 40') 등지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화진포해수욕장[6] , 금강산자연사박물관(2019년 현재 폐쇄됨), 대진등대, 마차진해수욕장, 명파해수욕장[7] , 명파초등학교[8] , 대진중고등학교[9] 가 있다. 남한 최북단 역인 동해북부선 제진역도 민통선 내에 있다. 또한 대진터미널은 남한 최북단 시외버스터미널이다. 여기서 부산까지도 갈 수 있었으나, 현재는 동서울가는 버스만 운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북단 편의점(GS25 대진항점)도 여기에 있다. 옛 고성읍 지역엔 주민이 없고 군사적인 이유로 출입영농도 이루어지지 않으나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 등 남북통일 관련 시설이 있어서 민통선 검문소에 신고하고 허가를 얻어 명호리 통일전망대까지 들어갈 수 있다. 명호리에서 휴전선이 끝난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길목인지라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도 있는데, 이산가족상봉행사때 북한지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출경심사를 받는다.
2.6. 수동면(水洞面)
- 관할 리 : 신대(新垈), 고미성(姑味城), 내면(內沔), 덕산(德山), 사비(沙飛), 사천(沙泉), 상원(上院), 신탄(新炭), 외면(外沔), 정월(汀月), 초현(草峴), 태봉(台峰), 흑연(黑淵)
금강산 자락의 서면에서 발원하여 수동면과 고성읍을 거쳐 동해로 흘러가는 남강을 따라 마을들이 들어섰으며 면 이름의 기원이 됐다. 남강을 따라 도로가 나 있었으며 남강 및 북쪽의 서면을 통해 다른 지방과 왕래하였다. 강 상류부터 흑연리, 신탄리, 상원리, 사천리, 고미성리, 사비리, 신대리, 외면리, 덕산리, 내면리, 태봉리, 정월리, 초현리가 차례로 있었다. 일제 시대에 활발히 광산과 산림이 개발되어 사천리에서 고성읍까지 남강을 따라 철도가 계획되기도 했다. 면 소재지인 신대리에 중학교가 있었으며 두 번째로 컸던 고미성리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남강으로 인해 면의 살림이 넉넉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면민들의 회고에 의하면 남강의 수산물, 인근 두무산 월비산 등의 임산물과 산과 산사이 농산물이 풍부하여 인제와 양구에서도 일하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이곳에 동경제국대학의 농학부 연습림이 존재하여 임산보전이 가능했으나, 중일전쟁이 격화되면서 임산자원 반출이 활발해졌다.
남강일대에는 니켈도 풍부하여 일제는 항공기 동체용 합금강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니켈광산을 개발하여 흥남제철소로 공급했다. 철도 부설은 측량까지만 된 채 패망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면의 중심이었던 남강을 따라 휴전선이 설정되어 면 외곽의 산악 지역들만 남한령이 됐으며, 면 전체가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온전하게 수복된 곳은 향로봉이 있는 상원리가 유일하며, 고미성리·덕산리·사비리·사천리·신대리·신탄리·외면리는 부분 수복되었다. 인제군 서화면을 지난 휴전선은 남강변의 신탄리에서 북쪽으로 꺾여 강변을 따라 덕산리까지 북쪽으로 이어지다 동쪽으로 꺾여 동해안을 향한다. 신대리의 면사무소를 비롯한 시가지는 현재 북한 지역인 남강 서쪽에 있었다. 신대리와 고미성리 사이에 있었던 사비리에는 전주 이씨 집성촌이 있었으며, 전쟁 중 주민들은 산을 넘어 거진읍에 피난민 마을을 만들었다. 외면리는 신대리 북쪽 남강 동쪽에 있었으며 휴전선이 동쪽으로 꺾이는 덕산리에는 2019년 폐쇄된 동해안 GP가 있었다. 남강 하류의 내면리·태봉리·정월리·초현리, 상류의 흑연리는 북한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정월리에는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월비산이 있다. 월비산은 안타깝게도 북한령이 됐다. 사천리에는 수동면 지역 중 유일하게 도로명주소를 받은 곳이 있었다.[10] 물론 이 곳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략한다.
남한 측 강원도 고성군에서 앞서 서술한 현내면에 편입된 고성면 일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 고성군에 속했던 곳이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는 산으로 막혀 고립된 지역이다. 행정은 간성읍에서 관할한다.
3. 미수복지역
3.1.
- 관할 리 :
3.2.
- 관할 리 :
3.3.
- 관할 리 :
3.4.
- 관할 리 :
[1] 고성읍 일부는 비무장지대(단, 유일하게 송현리는 비무장지대에 속하지 않는다.)여서 현내면에 통합되었다.[2] 1919년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면서 군청이 간성에서 고성으로 옮겨질 때 양양군에 편입되었던 토성면, 죽왕면이 1963년 환원되었다. 1973년 거진면이, 1979년 간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3] 아래에 있는 건봉사라는 절이 있는 동네.[4] 그렇다고 민통선도 아니다. 아마도 군 부대 시설 때문에... 참고로 옆 동네인 간성읍 선유실리는 민통선이다.[5]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현재 화진포가 있는 지역에 열산현의 소재지가 있었으나, 어느 날 큰 비가 내려 마을이 통째로 떠내려가고 물 속에 잠겨 지금의 화진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열산현은 고려 시대까지 존속하였으나 조선 시대 때 간성군에 폐합되었다.[6] 현내면과 거진읍 경계에 있다.[7] 동해안 및 남한 지역 최북단에 있는 해수욕장이다.[8] 남한 지역 최북단에 있는 초등교육기관으로 2019년부터 대진초등학교 명파분교로 바뀌었다.[9] 남한 지역 최북단에 있는 중등교육기관이다.[10] 2019년 12월 현재 수동면 일원에 도로명주소를 제공하지 않는다.[11] 통일전망대 가는 길목에 있는 7번 국도 표지판을 보면 이북 방향에 ‘온정’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그 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