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증

 



'''대한민국 제13대 법무부 장관
고원증
高元增 | Go Won-jeung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21년 3월 15일
봉천성 통화현
(現 중국 지린성 퉁화시)
'''사망'''
2006년 5월 17일 (향년 85세)
'''본관'''
제주 고씨 #
'''호'''
운산(雲山)
'''재임기간'''
제13대 법무부 장관
1961년 5월 20일 ~ 1962년 1월 8일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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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2. 생애


1921년 중국 봉천성 통화현[1]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평안북도이다. 신의주상업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1943년 만주국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8.15 광복 후 1948년 8월경 육군사관학교에 7기 후기반으로 입교하여 그해 12월 법무 병과로 임관#, 대한민국 육군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였다. 1950년 10월 육군 중령으로 육군본부 중앙고등군법회의 재판장을 맡았고, 이후 대령으로 진급하여 1952년 7월 서민호 의원 사건의 군사재판 담당 심판관을 맡기도 했다. 1954년 4월에는 서울지구 계엄민사부장으로 전임되었고, 그해 5월 육군본부 법무차감으로 승진했다. 1956년 1월에는 육군 중장 김창룡 특무대장 암살사건에 대한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에 법무사로 참여했다.
1959년 7월 김근배(金根培) 육군준장 군수품횡령사건 재판에 법무사로 활동했으며, 1960년 6월 준장으로 진급했다. 그 해 법무차감으로 국방부 법제위원회 상임간사도 겸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내각에서 법무부장관에 선임되었고, 재임 중 1961년 10월 전과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갱생보호법을 공포했다. 1962년 1월 원대복귀를 명령 받고, 그해 7월 5.16 장학회가 발족되자 상임이사로 활동했으며 8월부터는 문화방송 취체역 사장을 지냈다. 문화방송 사장 재임 중이던 1963년 8월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64년 8월 문화방송 사장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5.16 장학회 이사장 및 상임이사, 문화방송 이사를 역임했다. 1990년 7월 세종대학교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2006년 5월 17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지린성 퉁화(通化)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