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한 칙어
1. 개요
1890년부터 1948년까지 사용된 일본(사실상 일본 제국)의 교육방침. 일반적으로 '교육칙어'라고 줄여 부르지만, 정식으로는 '교육에 관한 칙어'라 해야 옳다.
특히 대일본제국 헌법 시기 본토와 식민지 조선 소학교에서 이걸 외우게 시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기르도록 하였다. 일본군 버전으로 군인칙유가 있었고 군인칙유에선 상관의 명령=천황의 명령이라며 상관과 천황에게 복종할 것을 강조했다. 1941년에는 군인칙유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동규정인 전진훈(戰陣訓)도 나왔다. 그리고 교육칙어는 군인칙유와 더불어 1948년 6월 19일에 중의원에서 배제, 일본 참의원에서 실효가 결의되었다. 일본의 교육기본법도 교육칙어에서 말미암은 교육을 배제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조선에서도 비슷하게 1895년 2월 2일 고종이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하였다.
2. 내용
朕惟フニ我カ皇祖皇宗國ヲ肇ムルコト宏遠ニ德ヲ樹ツルコト深厚ナリ
我カ臣民克ク忠ニ克ク孝ニ億兆心ヲ一ニシテ世世厥ノ美ヲ濟セルハ此レ我カ國體ノ精華ニシテ教育ノ淵源亦實ニ此ニ存ス
爾臣民父母ニ孝ニ兄弟ニ友ニ夫婦相和シ朋友相信シ恭儉己レヲ持シ博愛衆ニ及ホシ學ヲ 修メ業ヲ習ヒ以テ智能ヲ啓發シ德器ヲ成就シ進テ公益ヲ廣メ世務ヲ開キ常ニ國憲ヲ重シ國法ニ遵ヒ一旦緩急アレハ義勇公ニ奉シ以テ天壤無 窮ノ皇運ヲ扶翼スヘシ
是ノ如キハ獨リ朕カ忠良ノ臣民タルノミナラス又以テ爾祖先ノ遺風ヲ顯彰スルニ足ラン
斯ノ道ハ實ニ我カ皇祖皇宗ノ遺訓ニシテ子孫臣民ノ倶ニ遵守スヘキ所
之ヲ古今ニ通シテ謬ラス之ヲ中外ニ施シテ悖ラス
朕爾臣民ト倶ニ拳々服膺シテ咸其德ヲ一ニセンコトヲ庶幾フ
明治二十三年十月三十日 御名御璽
전전(1945년 이전)에 사용했던 문어체로 쓰였다. 현대 일본인도 근대 일본어학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쉽게 읽을 수 없다.일본 황실에서는 아직도 이 문체를 사용한다는 설명이 구판에 있었지만, 궁내청 사이트나 일본 언론에 공개되는 덴노의 연설이나 기자회견문 등은 모두 평이한 말투로 작성되었다.[3]짐이 생각건대 황조황종(皇祖皇宗)[1]
이 나라를 열어 굉원(宏遠)한 덕을 세움이 심후(深厚)하도다.우리 신민이 지극한 충과 효로써 억조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 바가 우리 국체(國體)의 정화(精華)인 바, 교육의 연원 또한 실로 여기에 있다.
그대들 신민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부부 간에 서로 화목하고, 붕우 간에 서로 신의하며, 스스로는 공손하고 겸손하며, 박애를 여러 사람에게 미치고, 학문을 닦고 기술을 익혀 그로써 지능을 계발하고, 덕과 재능을 성취하며, 나아가 공익을 넓혀 세상의 의무를 다하고, 항상 국헌을 중시하고 국법에 따라, 일단 유사시에는 의용(義勇)으로 봉공(奉公)하여 그로써 천양무궁(天壌無窮)한 황운(皇運)을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된다면 하나하나 짐의 충량한 신민이라 부를 뿐만 아니라, 족히 그대들 선조의 유풍(遺風)을 현창(顯彰)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도는 실로 우리 황조황종의 유훈(遺訓)으로[2]
자손인 천황과 신민이 함께 준수해야 할 것들이다.이는 고금을 통하여 그릇되지 않고, 이를 중외(中外)에 베풀더라도 도리에 어긋나는 바가 없느니라.
짐은 그대들 신민과 더불어 이를 항상 잊지 않고 지켜서 모두 한결같이 덕을 닦기를 바라는 바이다.
메이지 23년(1890) 10월 30일
어명어새
3. 기타
- 카리야 테츠는 《일본인과 천황》에서 교육칙어의 내용이 실제 사실과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극딜했다.
- 80~90년대에 관리교육이 이루어진 역사가 짧은 사립학교에 다닌 일본 학생들에게 강요하도록 했다.
- 2017년 2월, 오사카에서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이 터졌다. 모리토모 학원 유치원에서 강당에 욱일기를 걸고, 뜻도 모를 어린이들에게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는 시대착오적 작태가 보도되었다. 이 소름끼치는 일을 자행한 유치원 원장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도 하고 헌법 개정에도 찬성하고 원장실에 메이지 덴노&쇼켄 황후 부부 사진도 놓는 강경 극우파. 게다가 이 유치원이 포함되는 교육재단에서 새로 세우는 초등학교는 아베 신조의 부인 아베 아키에가 명예 교장을 맡게 되는데, 아베 아키에는 "이 유치원에서 하는 훌륭한 교육을, 초 중학교에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일본의 우경화를 훌륭히 증명해냈다.[4] 해당 보도가 나오고 하루 이틀 지나 해당 초등학교는 홈페이지에서 명예 교장 아키에를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잽싸게 삭제했고, 아키에는 이후 행사에서 이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