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키에

 




'''아베 아키에
安倍昭恵 | Abe Akie
'''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1962년 6월 10일 (62세)
도쿄도
'''학력'''
세이신 여학원 초등과
세이신 여학원 중등과
세이신 여학원 고등과
세이신 여자전문학교 영어과
릿쿄대학 대학원
'''배우자'''
'''아베 신조'''
'''가족'''
마츠자키 한자부로(증조부)
마츠자키 이츠오(할아버지)
마츠자키 아키오(아버지)
마츠자키 에미코(어머니)[1]
모리나가 타이치로(외증조부)
모리나가 타헤이(외할아버지)
이케베 료(대숙부)
오카모토 타로(먼 친척)
오카모토 카노코(먼 친척)
1. 개요
2. 상세
3.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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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정치인아베 신조의 부인이다. 결혼 전 성씨는 마츠자키(松崎). 외가인 모리나가 가문은, 유명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창업주이다. 결혼 전에는 광고회사 덴쓰에서 일했다.

2. 상세


남편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일관제 사립학교 출신이다. 가톨릭 미션스쿨세이신 여학원에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학교까지 쭉 다녔다.[2] 이후, 릿쿄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베 퇴임 기간 미얀마의 교육정책에 대해 석사 논문도 썼을 만큼 뛰어난 인재지만 불임이라 부부 사이에 자식은 없다. 그래서 부부가 '로이'란 이름의 닥스훈트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 이래로 가장 활동적인 총리 부인이다. 도쿄 금융가 뒷골목에서 우즈(소용돌이)라는 유기농 선술집도 열었으며[3],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 속에 TPP나 원전 노선[4]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정한 '''가정의 야당'''인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받는다.# 남편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어떨 때는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부부 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기 임기 당시엔 첫 해외 순방길에 나섰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아베 신조 총리의 손을 잡는 모습이 공개돼 대중에게 신선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또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에 졸린 표정을 한 총리의 모습과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파자마 차림으로 빙과류를 먹는 모습 등을 대중에 공개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했고, 한 번은 아베 신조 총리가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을 애완견에게 먹이는 사진을 아베 아키에가 게재한 적도 있었다. 정치적 의견 차이가 금슬과는 무관한 모양. 그녀의 이런 활동이 남편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을 주는지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적어도 남편의 강성 이미지를 완화시키는 역할은 한 것으로 보인다.
한류 팬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인이 된 박용하의 팬으로 그가 자살한 뒤 조화를 보내고 부부가 함께[5] 조문한 적도 있다. 하지만 2012년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편의 정치적 위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한류 드라마 시청을 끊었다고 밝혔으나[6], 한일관계가 다시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다시 한류 드라마 시청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기 페이스북에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고 감상한 글도 올렸다. 한일 관련 행사에도 자주 참가해 주일한국대사와도 꽤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모 행사에선 한일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잘 알려진 한류팬이어서 일본 극우들로부터 조선계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극우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아키에의 외증조부인 모리나가 제과의 창업주 모리나가 타이치로 집안은 대대로 큐슈 사가현 이마리시에서 도자기를 팔던 도매상이다. 이마리시는 대마도를 사이에 두고 부산과 마주보고 있어서 한국과 교류가 많은데다가, '도자기'를 취급하는 것은 대대로 '조선계' 였기 때문에 이런 루머가 생긴 것. 또한 모리나가 타이치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과기술을 배우는 동안 기독교를 믿게 되고 나중에는 일본에 복음 전도까지 하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과거 기독교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인구는 일본 전체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으며, 그 1% 마저도 대부분이 조선계이라는 편견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내 조선인들은 일본의 종교인 신토를 믿고 신사참배를 하며 천황을 받드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서양의 기독교를 믿는다는 핑계로 신사참배를 거부할 수 있었고 이 덕택에 실제로도 조선인들이 기독교를 많이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리나가 타이치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을 때부터 기독교를 믿은 사람이며 이를 숨긴 이유는 조선계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라는 것이 일부 극우들의 주장이다. 아키에 역시 기독교계열 여학교를 나왔기도 하고, 지금에도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 조선계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극우들은 이런 점을 들어 '아키에는 조선계라서 한류를 좋아한다'는 식의 음모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주장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극우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인 점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의 행동들이 한국의 입장에서 이해되어 질 순 없을 것이다.
2014년 3월에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몰래 방문해 일본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돌아간 가운데, 나눔의 집 측에서 이 관계자들에게 아키에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 제안을 아베 부부가 어찌 생각할지는 미지수.
그런데 2015년 8월, 아베 아키에가 한일혼혈 출신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불륜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언론에 터져나와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선 아베 신조를 보고 "국가는커녕 가정도 제대로 못 다루는 남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다만, 해당 내용의 기사 이후 추가되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단순 해프닝 또는 '''찌라시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 사진에서는 호테이 토모야스가 일본에서는 잘 하지 않는 매너손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식적인 자리와 사석에서의 행동이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사진에서는 둘만의 은밀한(?) 자리가 아니라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참석하고 있는 자리로 보여진다.
2015년 12월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를 맺은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야스쿠니 문제만큼은 아베와 같은 입장 아니냐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로 인해 뿔난 일본 내 극우들 민심 달래기용으로 아베가 아내를 야스쿠니 신사에 보낸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7], 애초 그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이긴 하다.
2020년 3월 27일 자민당아베 신조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일본 전역 확산을 암묵적으로 주동하다 뒤늦게 바이러스 방역에 대처하는 모양새라도 보이던 도중 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으로 아베 부부가 끓어오르는 민심 진화에 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아키에가 코로나 일본 확산 도중 정치인들과 벚꽃놀이를 즐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2020년 4월 16일엔 아베 신조가 코로나 경계 발언을 한 바로 다음날 오오이타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50명이 되는 인원을 모아서 신사 참배 및 관광을 했다는 것이 들통나서 반성은 커녕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3. 논란



3.1.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1] 결혼 전 성씨는 모리나가(森永).[2] "미치코 황후와 대학 동문"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 미치코 황후는 4년제인 세이신여자대학 영문과 출신이고, 아키에는 2년제인 세이신 여자전문학교 영어과 출신이다. 두 학교 모두 세이신 여학원 소속이고, 중학교&고등학교는 같은 학교 동문이기는 하다.[3] 적자는 간신히 면하는 정도라고. 아베 신조도 "1년 해보고, 적자 내면 때려치라"고 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최근에 알려진 사실로는 남편 아베 신조와 "총리직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직접 운영하지 말며, 정치인 및 이해 관계자들을 접대하지 말라"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즉, 현실 정치에 개입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국빈방문과 미셸 오바마 미국 영부인 단독 방문일 때 아베 아키에가 술집에 초대해 접대하여 약속을 깼다고 한다. 남편과 사전에 이야기가 된 문제이든 아니든 간에,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에 타국 정상의 부인을 초대해 수회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대중들 및 정치권에 부정적인 시그널과 오해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비선실세, 막후정치, 친족정치 논란 등)[4]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 야당 의원은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의 '이너 서클(즉, 아내 아베 아키에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조롱도 했으나 아베는 웃으면서 "이 두 사람이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시켜야 한다"라며 무마했다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이후 3년간 2,700억 달러(270조 원) 가까이 화석연료 수입에 쓰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총리 입장에서 이상론인 원전 반대보다는 현실론을 택할 수밖에 없다.[5] 현재 정치 정책과 다르게 예전의 아베는 지한파였다.[6] 당시 일본 극우들에게 SNS 테러를 무지하게 당했다.(…)[7] 이와 관련해 남편이 아내의 소원(위안부 관련 문제 해결)을 들어주고, 아내가 남편의 소원(야스쿠니 참배) 들어주는 딜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론 당시 아베 총리는 협상을 담당한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에게 '반드시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협정문에 넣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협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아베 총리는 정말로다가 사죄의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발목을 잡지 못하게 매듭을 지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