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의
麴義
(? ~ 197?)
후한 말의 인물. 원소의 수하 장수.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양주 서평군 출신.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야말로 잡장 그 자체의 취급을 받았지만, 알고 보면 삼국지의 '''숨은 맹장'''으로 '''후한 말 군웅할거의 흐름을 바꿔버린''' 장군이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전한 상서령 국담(鞠譚)의 후손으로 그 집안은 원래 국(鞠)씨였다가 이후 국담의 아들 국비(鞠閟)가 난리를 피하여 서평으로 도망가서 국(麴)씨로 고치며 살았다고 한다.
국의는 오랫동안 양주의 국경 지대에 주둔하여 강족의 전술에 능하였다. 처음에는 한복을 섬겼는데 그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켜 한복과 싸우나 패한다. 원소는 한복을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국의와 서로 결탁했다.
어부라가 장양을 납치한 후 원소를 배반하고 반기를 들자 원소의 지시를 받아 어부라의 군대를 업현 남쪽에서 격파했다.
192년, 계교 전투가 발발하는데 국의는 여기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 공손찬이 원소를 공격하기 위해 4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반하에 주둔하자 원소가 국의에게 영을 내려 방패를 든 8백의 군사와 1천의 강노대를 이끌게하여 선봉에 세우고 원소 자신은 보병 수만으로 후위에서 진을 형성했다.
공손찬은 원소군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기병을 보내 원소군을 공격했다. 국의가 이끄는 병사들은 방패 아래에 숨어 움직이지 않다가 공손찬의 기병대가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동시에 모두 일어나면서 돌진했으며, 원소군의 강노 부대가 강노를 발사하여 공손찬의 기병 천명을 대파하고 공손찬이 임명한 기주자사 엄강을 사로 잡아 참수했다.
이어진 추격전에서는 다리 위에서의 공손찬의 후위 병사까지 격파하고 마침내 공손찬의 진영까지 들어가 아문(牙門)을 뽑아버리고 대장기를 노획하는 등 맹활약한다. 이렇게 원소의 전군이 패주하는 공손찬군을 쫒는 상황에 원소는 다리에 이르러 승리를 확신하고, 말의 안장을 풀었다. 이때 원소 주변에는 수십명의 강노병과 대극병만이 있었는데, 이 때 흩어졌던 공손찬의 부하들 2천명이 이를 노리고 포위해서 공격해와 긴급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전풍이 원소를 데리고 도망치려하자 원소는 오히려 투구를 벗어던지며 맞서 싸웠고, 이에 원소군이 사기가 올라 항전하고 때마침 국의가 와서 공손찬 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후 195년 12월, 원소는 국의와 유우의 아들 유화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 선우보와 합쳐 공손찬을 대파하고 2만의 수급을 얻는다. 그러나 역경성에 들어간 공손찬을 1년 동안 공격하다가 국의의 군량이 다 떨어져 병사들이 굶주려 도망갔고 때를 노린 공손찬의 우회 공격에 크게 패하여 치중을 모조리 잃기도 했다.
그런데 그 뒤 197년 무렵, 갑자기 원소에게 숙청되어버렸다. 영웅기와 후한서 원소열전에 따르면 국의가 스스로 공적이 있음을 믿고 교만하게 굴었으므로 원소는 불러들여 죽이고 그 국의의 무리를 아울렀다고 하는데, 자세한 기록이 없으니 정말 뜬금없어 보일 뿐. 이후 국의의 패잔병이 죽을까 두려워 저항했으나 원소가 소탕했다.
국의의 숙청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공적을 믿으며 교만방자했다는 기록 뿐이라 여러가지 추론이 난무하나, 단순한 패전 책임 문제에 따른 숙청설, 혹은 애초에 원소와 연합 관계로 시작했고 독자적인 부곡을 거느리고 있었던 점에서 원소와 명확한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반 종속적인 관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객장[1] 에 가까운 관계였던 데다 시기적으로는 곽도, 심배와 원담, 고간으로 대표되는 원소의 친위 세력들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권력 독점을 노린 원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는 설, 더 나아가서는 북방 전선의 핵심 책임자였던 국의의 입지에 더해 '불궤'[2] 라는 표현, 잔당들이 공손찬과 연합하고 있었다는 것 등에 주목해 원소의 권력 강화 움직임에 자극받은 국의가 공손찬과 원소의 대립각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믿고 반란 혹은 독자적인 세력화 등의 계획을 품었다가 원소에게 선통수(...)를 맞았다는 설 등으로 나뉜다.
국의 자신의 본심이 어느 쪽이었든 간에 원소가 국의를 '불러들여' 죽인 뒤 그 무리를 병합했다는 표현을 보면, 국의는 원소의 움직임을 예상치 못하고 순순히 소환에 응하다 죽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국의는 숙청되고, 유우의 아들인 유화는 더 이상 기록상에서 등장하지 않으며, 선우보는 공손찬 멸망 이후 아예 조조 진영에서 활동하는[3] 등 원소 세력 내 북방 전선 핵심 인물들의 행보가 석연찮고, 국의 숙청 이후엔 원소 본인이 친정에 나서며 그 공백을 채우기 때문에 대대적인 숙청과 조직 개편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양주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민족인 강족이나 대기병 전술에 능한 장수였을 공산이 크다. 당장 공손찬 상대로 얻은 전과를 보면 특히 기병을 박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공손찬의 기병이 그 당시 상당한 위상이었음을 감안하면 전술로 그걸 무찌른 국의도 충분히 명장이라 할 수 있지만 처세에는 그다지 밝지 못했는지 일찍 숙청되면서 별로 잘 안알려진 장수이다.
삼국지연의에서도 공손찬의 군사를 상대로 활약하면서 여기서는 엄강을 직접 죽이는 등 활약을 펼치지만 조운을 띄워주기 위한 희생양으로 조운에게 죽는다. 심지어 이문열 평역본에는 정사를 자주 인용하는 작품임이 무색하게 "국의 따위"라는 말이 더 붙어 더 잡장처럼 만들어놨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통솔력, 무력에 특화된 장수이다. 궁노병으로 공손찬의 백마의종을 막아낸 기록이 있어서 궁병 관련 특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3에서는 그냥 원소 휘하의 잡무관으로 등장 능력치는 육전 65/수전 24/무력 73/지력 39/정치 31/매력 53로 연의 기준으로도 뭔가 아쉬운 능력치. 수명은 연의 반영인지 매우 짧다.
삼국지 8에서는 무력이 70인 주제에 차현이 4레벨, 제사가 5레벨이다. 전법 레벨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7/무력 72/지력 62/정치력 25. 돌파, 주사, 연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9 시스템의 특성상 적당한 무력과 2단계 병법은 다른 게 시궁창이어도 쓸 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3/무력 79/지력 50/정치력 20/매력 29에 특기는 돌격, 화시, 기습, 기합, 삼단 총 5개. 전투 특화 장수로 전투로는 나쁘진 않다. 안량, 문추가 지력이 국의만도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계교 전투 이벤트가 벌어지면 조운한테 죽는다.[4] 국의가 아깝지 않으면 그냥 이벤트 보고 버리고, 아깝다면 이벤트가 벌어지기 전에 공손찬을 조져버려야 하는데, 업 탈취 이벤트 후 금방 발생하는 데다가 공손찬 사이에 유우가 있기 때문에 좀 귀찮아진다. 물론 업을 탈취하기 전에 조운을 얻는게 더 편하지만. 심지어 황건동란 시나리오에서는 조운이 아직 나오기 전의 시대이라서 계교 전투에서 조운 대신에 장비에게 죽는다. 이리 저리 국의만 안습.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2/무력 78/지력 51/정치력 18/매력 37에 특기는 궁장이다. 공손찬의 제장인 엄강의 기마대를 박살낸 전적이 있어 노병 적성이 S이고, 공손찬의 백마의종을 상대로도 잘 싸웠다는 점이 반영되어 창병 적성도 A다. 더불어 기병도 A로, B급 중에서는 훌륭한 장수. PK에서는 장수 육성으로 무력을 키워주면 꽤나 괜찮은 무장이 된다. 그러나 실제의 실적이 매우 뛰어난데 손상향보다 능력치가 떨어져서 논란이 되었다.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총맹사. 일러스트는 공손찬의 기병을 향해 활을 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80/77/51/19. 특기는 훈련 6, 순찰 1, 신속 6, 분전 3, 연전 1. 전수특기는 훈련이고 전법이 위무였지만 PK에서 금족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82, 무력 78, 지력 50, 정치 19, 매력 27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상승한 대신 무력과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원시, 앙양, 친강, 저돌, 탐욕, 주의는 아도, 정책은 안행강화 Lv 4, 진형은 봉시, 안행, 추행, 전법은 돌격, 제사, 매성,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공손찬의 구원군으로 가던 도중 거록 전투와 청하 전투를 선택하는 분기에서 청하 전투를 선택하면 총대장으로 등장하며, 레벨 9의 경기병으로 나온다. 전투 시작 때에 엄강을 일기토로 참살하는데 능력치는 무력 73, 지력 39, 통솔력 65로 보통 수준. 또한 아이템빨을 받지 않아 그리 위협적인 적은 아니다. 암튼 대우는 안량 이상이며 장합과 같은 중간보스급으로 아주 좋다. 사실상 앞으로도 가망성이 없는 만큼 영걸전 1장 계교 전투가 국의의 리즈 시절. 일러스트도 태사자, 능통급의 미소년으로 등장한다. 인상은 좀 더 차갑지만.
여기에서는 조운이 아니라 관우와 일기토 끝에 죽는다.[5] 숙련된 유저들은 대개 거록 루트를 선택하기 때문에 묻혀버리지만 거록의 어마어마한 난이도에 기절초풍하여 청하 루트를 선택한 뉴비들도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관우는 일기토에서 승리한 뒤 '''"나도 아직 멀었군. 이까짓 상대로 애를 먹다니..."'''라면서 국의를 디스한다.(...) 무력 54인 봉기도 이런 소리를 안 들었다.
만약 선택 분기에서 청하가 아닌 거록 전투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 전투인 계교 전투에서 레벨 10으로 등장하며, 전투 이후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의에서처럼 사망 처리된 듯하다.
공손찬이 조운을 의심하자 조운이 의심을 풀기 위해 공을 세우겠다고 해 달려들자 한 칼에 썰렸다.
외전에서만 나오는 인물로 조운이 B랭크이고 공손찬의 유주학원에 있을 당시 원소가 보낸 자객으로 등장.그 당시로서는 최강급에 속하는 A랭크 투사로 마검과 계약했다고 하고 실제로도 강해서 공손찬을 지키기 위해 모은 유주의 B랭크 전후의 투사 백명이 속절없이 당했다. 하지만 무라마사에게 알몸을 보이면서 까지 요도 무라마사를 받아간 조운에게 베이고 패배.정작 조운이 지키던 공손찬은 여포에게 살해당한다.
적장 엄강이 우디였기 때문이었는지 버즈 라이트이어로 패러디되어 등장. 삼국외전에서는 국의가 뛰어난 실력으로 공손찬을 몰아붙여 역사를 바꾼 장수이나 사람됨이 싸가지가 없었고 충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소 입장에서는 배신당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image]
한복의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다가 원소의 꼬뜨김을 받고 반란을 일으킨 후, 원소군으로 들어간다. 이후 정사대로 계교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연의와는 달리 원소를 노린 조운의 창을 저지한다. 연의에서는 조운한테 죽는 설정인데 여기서는 죽지 않은 것을 보아 정사 쪽으로 반영할 듯하다. 하지만 삼톡의 시기가 199년으로 넘어가 결국 묻히고 나와봐야 회상으로 나올듯하다. 안습.
결국 역경 전투가 끝난 74화 시점에서 각주로 숙청되어 죽었다는 언급만 나왔다.
(? ~ 197?)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원소의 수하 장수.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양주 서평군 출신.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야말로 잡장 그 자체의 취급을 받았지만, 알고 보면 삼국지의 '''숨은 맹장'''으로 '''후한 말 군웅할거의 흐름을 바꿔버린''' 장군이다.
2. 생애
자치통감에 따르면 전한 상서령 국담(鞠譚)의 후손으로 그 집안은 원래 국(鞠)씨였다가 이후 국담의 아들 국비(鞠閟)가 난리를 피하여 서평으로 도망가서 국(麴)씨로 고치며 살았다고 한다.
국의는 오랫동안 양주의 국경 지대에 주둔하여 강족의 전술에 능하였다. 처음에는 한복을 섬겼는데 그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켜 한복과 싸우나 패한다. 원소는 한복을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국의와 서로 결탁했다.
어부라가 장양을 납치한 후 원소를 배반하고 반기를 들자 원소의 지시를 받아 어부라의 군대를 업현 남쪽에서 격파했다.
192년, 계교 전투가 발발하는데 국의는 여기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 공손찬이 원소를 공격하기 위해 4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반하에 주둔하자 원소가 국의에게 영을 내려 방패를 든 8백의 군사와 1천의 강노대를 이끌게하여 선봉에 세우고 원소 자신은 보병 수만으로 후위에서 진을 형성했다.
공손찬은 원소군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기병을 보내 원소군을 공격했다. 국의가 이끄는 병사들은 방패 아래에 숨어 움직이지 않다가 공손찬의 기병대가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동시에 모두 일어나면서 돌진했으며, 원소군의 강노 부대가 강노를 발사하여 공손찬의 기병 천명을 대파하고 공손찬이 임명한 기주자사 엄강을 사로 잡아 참수했다.
이어진 추격전에서는 다리 위에서의 공손찬의 후위 병사까지 격파하고 마침내 공손찬의 진영까지 들어가 아문(牙門)을 뽑아버리고 대장기를 노획하는 등 맹활약한다. 이렇게 원소의 전군이 패주하는 공손찬군을 쫒는 상황에 원소는 다리에 이르러 승리를 확신하고, 말의 안장을 풀었다. 이때 원소 주변에는 수십명의 강노병과 대극병만이 있었는데, 이 때 흩어졌던 공손찬의 부하들 2천명이 이를 노리고 포위해서 공격해와 긴급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전풍이 원소를 데리고 도망치려하자 원소는 오히려 투구를 벗어던지며 맞서 싸웠고, 이에 원소군이 사기가 올라 항전하고 때마침 국의가 와서 공손찬 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후 195년 12월, 원소는 국의와 유우의 아들 유화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 선우보와 합쳐 공손찬을 대파하고 2만의 수급을 얻는다. 그러나 역경성에 들어간 공손찬을 1년 동안 공격하다가 국의의 군량이 다 떨어져 병사들이 굶주려 도망갔고 때를 노린 공손찬의 우회 공격에 크게 패하여 치중을 모조리 잃기도 했다.
그런데 그 뒤 197년 무렵, 갑자기 원소에게 숙청되어버렸다. 영웅기와 후한서 원소열전에 따르면 국의가 스스로 공적이 있음을 믿고 교만하게 굴었으므로 원소는 불러들여 죽이고 그 국의의 무리를 아울렀다고 하는데, 자세한 기록이 없으니 정말 뜬금없어 보일 뿐. 이후 국의의 패잔병이 죽을까 두려워 저항했으나 원소가 소탕했다.
3. 평가
국의의 숙청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공적을 믿으며 교만방자했다는 기록 뿐이라 여러가지 추론이 난무하나, 단순한 패전 책임 문제에 따른 숙청설, 혹은 애초에 원소와 연합 관계로 시작했고 독자적인 부곡을 거느리고 있었던 점에서 원소와 명확한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반 종속적인 관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객장[1] 에 가까운 관계였던 데다 시기적으로는 곽도, 심배와 원담, 고간으로 대표되는 원소의 친위 세력들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권력 독점을 노린 원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는 설, 더 나아가서는 북방 전선의 핵심 책임자였던 국의의 입지에 더해 '불궤'[2] 라는 표현, 잔당들이 공손찬과 연합하고 있었다는 것 등에 주목해 원소의 권력 강화 움직임에 자극받은 국의가 공손찬과 원소의 대립각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믿고 반란 혹은 독자적인 세력화 등의 계획을 품었다가 원소에게 선통수(...)를 맞았다는 설 등으로 나뉜다.
국의 자신의 본심이 어느 쪽이었든 간에 원소가 국의를 '불러들여' 죽인 뒤 그 무리를 병합했다는 표현을 보면, 국의는 원소의 움직임을 예상치 못하고 순순히 소환에 응하다 죽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국의는 숙청되고, 유우의 아들인 유화는 더 이상 기록상에서 등장하지 않으며, 선우보는 공손찬 멸망 이후 아예 조조 진영에서 활동하는[3] 등 원소 세력 내 북방 전선 핵심 인물들의 행보가 석연찮고, 국의 숙청 이후엔 원소 본인이 친정에 나서며 그 공백을 채우기 때문에 대대적인 숙청과 조직 개편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양주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민족인 강족이나 대기병 전술에 능한 장수였을 공산이 크다. 당장 공손찬 상대로 얻은 전과를 보면 특히 기병을 박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공손찬의 기병이 그 당시 상당한 위상이었음을 감안하면 전술로 그걸 무찌른 국의도 충분히 명장이라 할 수 있지만 처세에는 그다지 밝지 못했는지 일찍 숙청되면서 별로 잘 안알려진 장수이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도 공손찬의 군사를 상대로 활약하면서 여기서는 엄강을 직접 죽이는 등 활약을 펼치지만 조운을 띄워주기 위한 희생양으로 조운에게 죽는다. 심지어 이문열 평역본에는 정사를 자주 인용하는 작품임이 무색하게 "국의 따위"라는 말이 더 붙어 더 잡장처럼 만들어놨다.
5. 미디어 믹스
5.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통솔력, 무력에 특화된 장수이다. 궁노병으로 공손찬의 백마의종을 막아낸 기록이 있어서 궁병 관련 특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3에서는 그냥 원소 휘하의 잡무관으로 등장 능력치는 육전 65/수전 24/무력 73/지력 39/정치 31/매력 53로 연의 기준으로도 뭔가 아쉬운 능력치. 수명은 연의 반영인지 매우 짧다.
삼국지 8에서는 무력이 70인 주제에 차현이 4레벨, 제사가 5레벨이다. 전법 레벨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7/무력 72/지력 62/정치력 25. 돌파, 주사, 연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9 시스템의 특성상 적당한 무력과 2단계 병법은 다른 게 시궁창이어도 쓸 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3/무력 79/지력 50/정치력 20/매력 29에 특기는 돌격, 화시, 기습, 기합, 삼단 총 5개. 전투 특화 장수로 전투로는 나쁘진 않다. 안량, 문추가 지력이 국의만도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계교 전투 이벤트가 벌어지면 조운한테 죽는다.[4] 국의가 아깝지 않으면 그냥 이벤트 보고 버리고, 아깝다면 이벤트가 벌어지기 전에 공손찬을 조져버려야 하는데, 업 탈취 이벤트 후 금방 발생하는 데다가 공손찬 사이에 유우가 있기 때문에 좀 귀찮아진다. 물론 업을 탈취하기 전에 조운을 얻는게 더 편하지만. 심지어 황건동란 시나리오에서는 조운이 아직 나오기 전의 시대이라서 계교 전투에서 조운 대신에 장비에게 죽는다. 이리 저리 국의만 안습.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2/무력 78/지력 51/정치력 18/매력 37에 특기는 궁장이다. 공손찬의 제장인 엄강의 기마대를 박살낸 전적이 있어 노병 적성이 S이고, 공손찬의 백마의종을 상대로도 잘 싸웠다는 점이 반영되어 창병 적성도 A다. 더불어 기병도 A로, B급 중에서는 훌륭한 장수. PK에서는 장수 육성으로 무력을 키워주면 꽤나 괜찮은 무장이 된다. 그러나 실제의 실적이 매우 뛰어난데 손상향보다 능력치가 떨어져서 논란이 되었다.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총맹사. 일러스트는 공손찬의 기병을 향해 활을 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80/77/51/19. 특기는 훈련 6, 순찰 1, 신속 6, 분전 3, 연전 1. 전수특기는 훈련이고 전법이 위무였지만 PK에서 금족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82, 무력 78, 지력 50, 정치 19, 매력 27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상승한 대신 무력과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원시, 앙양, 친강, 저돌, 탐욕, 주의는 아도, 정책은 안행강화 Lv 4, 진형은 봉시, 안행, 추행, 전법은 돌격, 제사, 매성,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5.2. 삼국지 영걸전
공손찬의 구원군으로 가던 도중 거록 전투와 청하 전투를 선택하는 분기에서 청하 전투를 선택하면 총대장으로 등장하며, 레벨 9의 경기병으로 나온다. 전투 시작 때에 엄강을 일기토로 참살하는데 능력치는 무력 73, 지력 39, 통솔력 65로 보통 수준. 또한 아이템빨을 받지 않아 그리 위협적인 적은 아니다. 암튼 대우는 안량 이상이며 장합과 같은 중간보스급으로 아주 좋다. 사실상 앞으로도 가망성이 없는 만큼 영걸전 1장 계교 전투가 국의의 리즈 시절. 일러스트도 태사자, 능통급의 미소년으로 등장한다. 인상은 좀 더 차갑지만.
여기에서는 조운이 아니라 관우와 일기토 끝에 죽는다.[5] 숙련된 유저들은 대개 거록 루트를 선택하기 때문에 묻혀버리지만 거록의 어마어마한 난이도에 기절초풍하여 청하 루트를 선택한 뉴비들도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관우는 일기토에서 승리한 뒤 '''"나도 아직 멀었군. 이까짓 상대로 애를 먹다니..."'''라면서 국의를 디스한다.(...) 무력 54인 봉기도 이런 소리를 안 들었다.
만약 선택 분기에서 청하가 아닌 거록 전투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 전투인 계교 전투에서 레벨 10으로 등장하며, 전투 이후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의에서처럼 사망 처리된 듯하다.
5.3. 창천항로
공손찬이 조운을 의심하자 조운이 의심을 풀기 위해 공을 세우겠다고 해 달려들자 한 칼에 썰렸다.
5.4. 일기당천
외전에서만 나오는 인물로 조운이 B랭크이고 공손찬의 유주학원에 있을 당시 원소가 보낸 자객으로 등장.그 당시로서는 최강급에 속하는 A랭크 투사로 마검과 계약했다고 하고 실제로도 강해서 공손찬을 지키기 위해 모은 유주의 B랭크 전후의 투사 백명이 속절없이 당했다. 하지만 무라마사에게 알몸을 보이면서 까지 요도 무라마사를 받아간 조운에게 베이고 패배.정작 조운이 지키던 공손찬은 여포에게 살해당한다.
5.5. 삼국전투기
적장 엄강이 우디였기 때문이었는지 버즈 라이트이어로 패러디되어 등장. 삼국외전에서는 국의가 뛰어난 실력으로 공손찬을 몰아붙여 역사를 바꾼 장수이나 사람됨이 싸가지가 없었고 충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소 입장에서는 배신당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5.6. 삼국지톡
[image]
한복의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다가 원소의 꼬뜨김을 받고 반란을 일으킨 후, 원소군으로 들어간다. 이후 정사대로 계교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연의와는 달리 원소를 노린 조운의 창을 저지한다. 연의에서는 조운한테 죽는 설정인데 여기서는 죽지 않은 것을 보아 정사 쪽으로 반영할 듯하다. 하지만 삼톡의 시기가 199년으로 넘어가 결국 묻히고 나와봐야 회상으로 나올듯하다. 안습.
결국 역경 전투가 끝난 74화 시점에서 각주로 숙청되어 죽었다는 언급만 나왔다.
[1] 조조 밑에서 움직일 때의 유비, 여포 밑의 장패와 같은 포지션. 삼국지연의에서 일반 부하 장수로 표현된 인물 중에는 이런 객장의 위치에 가까웠던 인물들도 상당수이다.[2] 해석에 따라서는 반란을 계획했다고 볼 수도 있다.[3] 전예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원소와 선을 긋고 조조의 편을 든 것은 그렇다 쳐도 아예 자신의 세력 기반이던 유주를 떠나 관도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공손찬 멸망 이후 조조와 연계하며 원소를 견제하다 유주에서 쫓겨났고 원소 사후 조조가 하북을 평정하면서 유주로 돌아갔다는 설이 유력.[4] 국의로 플레이할 경우 해당 이벤트를 NPC무관이 대신 수행하고, 국의는 생존한다.[5] 그 대가로 조운은 원래 관우의 몫인 관해를 스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