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1. 개요


猛將
용맹한 장수라는 뜻.

2. 상세


명장을 뛰어난 장수를 통틀어서 말한다면 맹장은 말 그대로 용감무쌍한 장수들에 많이 사용한다. 다만 좁은 의미의 맹장은 교묘한 책략이 아니라 무식하게 밀어붙인다는 의미가 되기에, 맹장이라는 말은 용맹해도 지략이 있는 지휘관에겐 잘 쓰지 않는다.[1] 혹은 평시에는 맹장이란 게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냥 성격 나쁜 장성들을 맹장이라고 가리킬 때도 많다.
맹장형 장수는 보통 명장으로 거듭나는데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일신의 무용만 믿고 돌격하는 형태는 넓디넓고 수만의 병사들이 싸우는 전장에서 큰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싸우는 수백 정도의 적군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불러올 수 있겠으나 전장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대체로 이런 장수는 총사령관보다는 소수의 정예부대를 맡아 총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무용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여기에 가까운 장수로는 신립이나 조아킴 뮈라 등이 있는데, 매우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는 무장들로 기병대장이나 소규모 여진족을 진압하는 일선 지휘관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대규모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자 군대를 잘도 말아먹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 맹장형 장수가 총사령관이 되어서도 혼자서 전장을 좌지우지하는 먼치킨급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극히 드문 타입의 장수가 맹장인지라 적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우며, 예측한다고 해도 그 예측을 벗어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 적 입장에서 극도로 대응하기 힘들다.[2] 따라서 이런 맹장들은 등장할 때마다 엄청난 임팩트를 당대에 남겼으며, 어지간한 명장들보다도 훨씬 이름을 날린 경우가 많다. 확실한 것은, 이런 맹장은 단순히 혼자 싸움을 어마무시하게 잘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 그 싸움 실력을 전장에서 응용할 만한 전술적 이해가 받쳐줘야 제대로 된 명장이자 맹장이 탄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항우, 곽거병, 콘스탄티누스 1세, 리처드 1세 등이다. 이들은 심지어 '''전투로 죽지않았다.'''[3]
허나 위 케이스는 워낙에 넘사벽의 수준이라 그렇지 이런 맹장 타입 장수들 가운데 오래 산 장수는 별로 없다. 애초에 자주 전쟁이 있던 시대에 일신의 무력을 믿고 싸우는 장수가 오래 살아남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용맹한 장수를 찾고 싶으면 용장 항목으로 가자.


3. 실존인물



3.1. 아시아



3.1.1. 한국



3.1.1.1. 고구려


3.1.1.2. 신라


3.1.1.3. 고려


3.1.1.4. 조선



3.1.2. 중국



3.1.2.1. 초한전쟁

  • 항우 - 중국 역사를 통틀어서 최강의 자리를 다투는 장수. 또한 평범한 맹장들과는 다르게 전술, 전략적 능력 및 군사 지휘, 통솔 능력도 당대 최강이었다.
  • 영포
  • 용저
  • 번쾌
  • 관영 -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의 전기를 쓴 번역등관열전에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관영의 경우 다른 3장수 열전에서는 볼 수 없는 "치열하게 싸워", "온 힘을 다하여 격렬하게 싸워" 등의 흔치 않은 표현들이 쓰였고 자신의 별동기병대를 이끌고 각지에서 적들을 격파해내는 기록들을 봤을 때 정말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해 전투에 임하는 장수이며, 자신이 직접 누군가를 사로잡거나 베거나 하는 기록도 다른 세장수의 열전 기록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나오는 걸 봤을 때 상당한 무력을 가진 장수였을 거라 보인다. 항우군의 맹장 용저를 격파하기도 했고, 유방과 항우가 대치했을 때, 항우와 가장 최전선에서 맞써 싸우는 역할을 맡아서 항우군을 패배시킨 공적이 있고, 해하 전투 이후 쫓기던 항우를 추격하여 항우를 자살하게 만든 것도 관영이었다.
  • 조참 - 원척(爰戚)과 항보(亢父)를 점령할 때는 병사들보다 먼저 성벽에 오르는 맹장의 면모를 보였고, 논공행상에서 어마어마한 식읍(10630호)을 받았을 정도로 공적을 많이 세웠고 그렇게 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70여 개나 되는 상처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상처의 수나 성벽을 먼저 오르는 일화를 보면 전쟁터에서 병사들과 같이 전선에서 실제로 싸운 맹장형 장수임을 알 수 있다.
  • 종리말 - 무용 외에도 병법에도 능하였으며, 유방을 수차례 사지로 몰기도 했다.

3.1.2.2. 전한

  • 곽거병 - 용장 항목에도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맹장에 가깝다.

3.1.2.3. 삼국시대

  • 강유
  • 전위
  • 허저 - 전위와 허저는 개인의 뛰어난 용력으로 조조의 경호실장 역할을 했다.
  • 조인 - 조조의 친족 장수들 중 최강의 장수로 남군 공방전 때는 소수의 특공대를 편성하고 직접 포위망을 몇 차례 돌파하며 아군을 구했다.
  • 조홍#s-1 - 명장이라고 하기는 부족하지만 용맹함으로 신뢰받았다.
  • 염행
  • 문앙 - 삼국지 후반기의 몇 손가락에 꼽히는 인간흉기.
  • 정봉 - 문앙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용맹을 보여줬던 삼국시대 말기 오나라 맹장이다.
  • 관우 - 적진 가운데 안량을 베어 유일하게 포상을 받았다는 기록과 당대에 관우를 가까이에서 보거나 싸워본 인물들이 일관적으로 '무서운 장수이자 병력을 지휘할 줄 아는 인물' 평을 한 것처럼 뛰어난 맹장인 것은 확실하다. 장비와 더불어 당대 만인지적으로 불리었다.
  • 장비 - 관우와 더불어 당대 만인지적 별명을 얻은 용맹한 장수. 특히 장판파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 주태 - 손권과 더불어 선성을 지키다가 산월의 습격을 받자 손권을 지키며 창에 12군데나 찔렸으면서도 살아남아 손권을 구했고, 이후에도 용맹함으로서 손권의 신뢰를 받았다.
  • 손책
  • 반장
  • 동탁
  • 국의
  • 이통
  • 장료 - 문서를 들어가서 읽어보면 실로 무시무시한 전투경력을 갖고 있다.
  • 악진 - 덩치는 작지만 담력이 뛰어난 맹장이라는 기록이 존재한다.
  • 방덕
  • 서황 - 형주 공방전 시기 관우우금군을 깨트리고 양양과 번성을 포위했을 때, 서황은 12영(2만 4천)의 군사를 이끌고 위두의 둔영을 공격하는 것처럼 널리 소문을 퍼뜨리고는 은밀히 사총을 공격하였다. 관우는 사총이 곧 무너지려 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서황이 이를 들이쳐 패주시키고, 포위망 안까지 깊숙이 추격하여 격파하여 관우가 이끄는 형주군들은 스스로 면수에 투신해 죽기도 했을 정도로 대승을 거두었다. 조조는 서황이 거둔 관우의 형주군에 대한 압도적인 승리에 대해 감명받았는지 3번[4][5][6]이나 서황을 극찬하였다.
  • 감녕
  • 공손찬
  • 여포 - 인중여포 마중적토[7]라는 말도 나왔고 남들이 비장으로 불러줬을 정도로 용맹한 장수였다. 동탁군 잔당의 에이스였던 곽사를 일기토로 꺾었는데 곽사는 아래에도 써있지만 연의에서의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는 수백의 군사를 가지고 수만의 이각군을 깨트린 매우 용맹한 장수였다. 그리고 수천 명의 기병대가 포함된 1만명 정도의 장연[8]군을 상대로 자기 휘하의 소수 기병대로 수차례 돌격해 깨트렸다. 원소에 의탁하러 갔다가 사이가 틀어져서 장양에게 다시 의탁하러 떠날 때 원소가 괘씸하게 여겨서 추격병을 보냈으나 여포가 무서워서 어느 누구도 여포를 공격할 엄두를 못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기령과 유비를 중재시키려고 먼 곳에서 활을 쏘아 극(창의 일종)의 끝을 명중시켜서 결국 화해시킨 걸로 볼 때 궁술도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보면 여포는 기병 전술에 매우 능한 기병대 돌격대장에 가까운 장수였고, 활을 매우 잘 쐈으며 그 용맹은 당대에도 매우 유명해서 원소가 보낸 추격병들도 무서워할 정도의 맹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곽사 - 정치적인 능력은 아예 없다고 봐야하지만 군사적 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로 여포, 마등, 한수 등 군벌들과의 전쟁에서 모조리 승리했다. 헌제기거주(獻帝起居注)에 따르면 이각과 싸울 때 수백의 군사로 수만의 적을 무너뜨렸고, 영웅기(英雄記)에는 패하긴 했지만 여포와 1:1 대결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심지어 먼저 여포에게 일기토를 신청한 것으로 나와있다.
  • 황충 - 기록이 얼마 없지만 그 용맹이 항상 삼군의 으뜸이었으며, 그 용맹함이 한고제 유방의 장수들인 관영과 하후영에 필적한다는 칭송을 받았다.
  • 조운 - 황충과 함께 관영과 하후영에 필적한다는 칭송을 받았다. 장판 전투에서는 유비의 처자가 전투 한복판에 고립당하자 홀로 역주행하여 유비의 처자 일부를 구해 돌아왔으며, 맹장으로서 공훈을 세웠다는 계한보신찬의 기록도 존재한다.
  • 위연-비록 오호대장군에 비하면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위연 역시 엄청난 맹장으로 수년간 전장을 누비며 크고작은 공들을 세웠다. ~
  • 장억
  • 태사자
  • [9]

3.1.2.4. 남북조시대

  • 염민 - 염위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로 용맹하면서도 책략에 뛰어나 후조의 석륵이 조카 석호에게 양자로 삼게 하였다. 많은 전투에서 엄청난 공적을 쌓았고 결국 석씨를 밀어내고 염위를 세워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내전을 치르는 동안 국력은 약해졌고 국력이 융성해진 전연이 쳐들어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전연의 명장 모용각과의 대결에서 10전 10승을 거두었다. 그러고나서 혼자서 적군에 돌격하여 300명을 도륙하였다. 이후엔 붙잡혀서 사망.
  • 등강 - 전진의 대표적인 맹장. 술마시고 적진에 뛰어들어서 수백명을 썰어버리는 등의 활약을 하면서 전연을 멸망시키는 인간병기.
  • 우율제 - 북위의 도무제~태무제의 3대에 활약했던 명장으로 검은칠을 한 삭을 잘 다루어 적군의 무제(유송)도 이를 두려워하여 보내는 편지에서 '흑삭공휘하(黑矟公麾下)'라 불렀고 이것이 그대로 본국에서 흑삭장군이라는 칭호가 된다. 훗날 편찬된 위서(魏書)에서 열전의 한 권을 단독으로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손자대에 이르러 북위의 외척이 된다.
  • 유유 - 손은의 난 당시 홀로 수천 명의 적병을 상대로 무쌍을 찍어 적군을 밀어낸 기록이 있다.
  • 설안도 - 만인적으로 평가받던 노상을 단칼에 썰어버려 당시 사람들로부터 관우가 안량을 벤 것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위와 싸울 때 갑옷도 벗고 적진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적군을 헤아릴 수 없이 학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 양대안 - 당시 사람들로부터 "그(양대안)의 용맹함과 과감함을 헤아리니, 모두 관우, 장비도 이를 넘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의 남북조시대 최강의 맹장이었다.
  • 고오조 - 무려 항우에 비견됐던 남북조시대 최고의 맹장. 기마술과 창술이 당대에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10명으로 적 5천을 격파한 기록이 있다.
  • 소마가 - 남진의 장수로 남조 최후의 명장이자 맹장. 어릴 때부터 전장을 휩쓸며 무쌍을 찍었다. 북제와의 전쟁에서 한번은 적들이 힘이 세고 활쏘기에 능한 서역의 이민족을 내보냈는데 오명철이 관우가 안량을 벤 일화를 언급하며 소마가를 내보내니 소마가는 표창같은 무기를 던져 적을 단숨에 절명시켰다. 북제는 10여 명의 역사를 더 내보냈으나 모두 소마가에게 베여 죽었다.

3.1.2.5.


3.1.2.6. 남송


3.1.3. 일본


  • 시바타 카츠이에 : 오다 군세에서 가장 맹장이어서 "멧돼지 시바타"라고 불렸다.
  • 소고 카즈마사 : 상처를 입어도 내색하지 않고 적에게 돌격했다하여 "오니 소고"라고 불렸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 혼다 타다카츠 : 도쿠가와 군의 맹장.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야마시타 도모유키 : 일본군 장군. 싱가포르 전에서 적보다 적은 병력으로 돌격을 행해서 영국군을 항복시킴. 당시 탄약량이나 병력이나 일본군이 불리했는데도 영국군은 일본군의 허세에 쫄아서 항복...

3.1.4. 아시리아



3.1.5. 유럽



3.1.5.1. 고대 로마

  • 콘스탄티누스 1세 : 황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장에서는 일선에서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는 맹장이었다.

3.1.6. 잉글랜드


  • 리처드 1세 사자심왕
  • 호레이쇼 넬슨 : 상관 명령을 무시하며 독단으로 돌격을 감행해 승리한 사례가 있을 만큼 매우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술 성향을 보였다.

3.1.6.1. 프랑스


3.1.6.2. 독일



3.1.6.3. 러시아


3.1.7. 아메리카



3.1.7.1. 미국


3.1.8. 아프리카



3.1.8.1. 줄루


4. 가공인물



5. 같이 보기


[1] 예를 들어 이순신이성계는 넓은 의미에서는 맹장이라 할 수 있지만, 좁은 의미의 맹장에는 해당하지 않는다.[2] 사실 이들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는 역덕 위키러들조차 이들의 승리 비결을 쉽게 설명하기가 힘들다.[3] 항우는 전쟁 중 죽긴했으나 자결인데다 본인 의지만 있었다면 살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전황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4] 내가 30여 년간 용병해왔고 또 옛적에 용병을 잘하는 자들에 관해 들어보았으나, 멀리 말을 몰아 달려가서 곧바로 적의 포위망에 돌입한 자는 일찍이 없었다. 장군의 공은 손무사마양저를 뛰어넘는다.[5] 번성, 양양을 보전한 것은 모두 장군의 공이오.[6] 서장군은 가히 주아부의 기풍을 갖추었다 할 만하오.[7] 사람 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가 으뜸이다.)[8] 장연도 용맹하여 비장으로 불리웠던 장수였다.[9] 이쪽은 연의 기준이고, 정사에서는 인성이 좋은 군 행정관에 가깝다.[10] 그저 사람 때려죽이는게 활약의 전부인게 장갑척탄병인데 거기에서 시작해서 원수 바로 밑인 상급대장까지 진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