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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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체역사물 고종, 군밤의 왕의 주인공. 본래 가진 재주라고는 군밤을 기막히게 굽는 재주뿐인 박복한 노점상(86)이었지만, 북악산 산신령의 신통력으로 군밤을 원없게 먹게 해 달라 소원을 빌던 평행세계의 철부지 소년 이명복(10), 즉 훗날의 고종과 몸이 뒤바뀌었다.
2. 상세
온화한 성품과 산신령마저 감동시킨 밤 굽는 실력은 여전하며 노점상 시절 연마한(?) '사람 보는 눈' 또한 건재하다. 졸지에 조선의 운명을 짊어지게 됐지만 군밤장수나 하던 자신이 무너지는 나라를 고쳐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비명횡사나 하지 않고 백성들 열심히 보살피며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잣거리에서 '효자율(孝子栗)'이라는 이름으로 군밤을 판 것을 시작으로 별생각 없이 아니면 제딴에 '선의'로 행동들이 무시무시한 나비 효과를 불러와 순조롭게 조선의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망국의 미래를 알고 있는 터라 권력에 어떤 집착도 보이지 않지만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숙청도 없이 확고부동한 조선의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다. 귀남 본인은 아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신료들 특히 세도정치 시기를 기억하는 대신들이 열성조의 보우로 금세에 임한 성군이라고 진심으로 존경할 정도. 귀남 본인은 명석하지도 않고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나, 미래에서 보고 들었던 문물에 대한 기억과 노인의 지혜, 그리고 본인의 선한 성품으로 인해 육조거리만큼이나 넓게 트인 언로가 결합되어 귀남이 발상해 낸 기묘한 생각을 주변 신료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밤샘)으로 실현가능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메타적으로는 '선량하지만 나이가 나이인만큼 좀 꼰대인' 할아버지이다. 즉 완전무결한 선인도, 그렇다고 교활한 악인도 아닌 그냥 그 나이 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노인일 뿐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대체 머리가 어디까지 깨였는지 짐작도 못할 극렬 진보주의자로 보인다는 것이 포인트.
지식도 마찬가지로 시골 출신에 소학교도 형편이 어려워 다니다 말았기에 제대로 된 역사지식이라고는 '미국은 좋은 나라, 일본은 나쁜 나라, 이완용은 매국노, 이등박문은 나쁜놈 두목, 공산당 나쁜 놈, 김일성 나쁜 놈' 정도에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변화상을 묵묵히 지켜본 게 전부지만 그러한 것만으로도 조선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극까지 편향하기 쉬운 사상적 문제를 "역시 군대를 가야 철이 든다.",[1] "학생은 공부가 본업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와중에 다른 짓거리를 하는 거 보니 시험 난이도가 낮은 모양",[2] "배운 사람이 존중받는 직업은 판사랑 검사."[3] 로 잡아버리는 것도 백미.
3. 행적
3.1. 전생
1934년,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자랐다. 어머니 병구완으로 집안이 빈한해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였고 위로 형이 2명 있었지만 큰형은 훈장을 타오겠다며 자랑스레 입대했다가 6.25 전쟁 때 전사, '큰형 죽인 빨갱이 놈들 모가지 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둘째 형은 다리 한 짝 손 팔 한 짝씩을 나라에 바치고 돌아왔으나 그 이후 폐인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마저 피난내려온 타향 부산에서 돌아가시고 전쟁 말에 성인이 되었다고 징집되었는데 다행히 최전방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욕 먹고 얻어맞으며 되놈·빨치산·추위와 굶주림을 상대하는 고된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기껏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 나 있었다. 그리하여 무작정 상경하여 군밤을 팔기 시작하였다. 장사 사 년차에 겨우 식모살이하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몇 년을 악착같이 벌고 귀신같이 아껴서 겨우 판잣집을 면한 집 한 칸을 얻었지만, 그 해 겨울 아내와 어린 아들이 연탄 가스를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저 제 팔자려니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아내와 아들을 묻고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를 어떻게든 이겨내며 계속 밤을 굽다가 '그 옛날 비류랑 온조가 내려온 시절 이래' 가장 맛난 밤을 먹고 감탄한 북악산 산신령의 신통력으로 훗날 대한제국의 고종 태황제가 되는 흥선군댁 둘째 아들 이명복의 삶을 살게 되었다.
3.2. 현재
3.2.1. 즉위 이전
엉뚱한 천장 아래서 눈을 뜨게 되어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86년을 살면서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뜬금없이 돌아갈 때가 있다는 것 정도는 체득했고 몸에 원 주인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리 티를 내지 않고 새로운 일상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하응이 임금의 생부 흥선'대원군'이 아니라 파락호 '흥선군'일 때 이명복이 되어 글공부 제대로 하라고 맞으며 지내다가 영 실력이 어설픈 군밤장수 '천덕기'를 대신하여 밤을 구운 것을 계기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조선의 역사를 뒤바꾸는 행보를 시작하였다.
오경석 밑에서 실전 위주의 경서 공부를 하다가 임술년 시월부터 훗날 철종이 되는 이원범이 하사한 은과 비단을 밑천 삼아 차린 노점에서 이른바 '효자율'을 판매하여 도성의 명물 '효자 군밤장수'가 되었다. 이후 효자율이 불러온 나비 효과로 안동 김문이 흥선군과 개화당 영수 박규수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원 역사보다 빨리 그리고 더 처참하게 몰락한 계해년(1863년)에 원범의 양자 완정군이 되어 조선의 세자가 됐다. 그리고 그해 가을 원범의 조언을 듣고 이 나라가 다가올 미래에 일본에게 삼켜질 운명이라고 해도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3.2.2. 즉위 이후
갑자년(1864년), 왕위에 올랐다. 지난 생에 듣기로 조선이 망한 이유는 우물안 개구리로 지냈기 때문이라 박규수에게 자신 또한 개화에 뜻이 있다고 밝혔다. 단오가 지나 조정 중신들 사이에서 흥선대원군이 주도하는 서원 철폐를 놓고 정쟁이 시작되자 막연히 서원을 학교 정도로 생각하여 조선이 망하기 전에 무식쟁이 듣는 사람 줄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원을 확충한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택지를 골랐다. 이와같이 전생의 기억으로 어쩌다 툭툭 뱉은 말들이 광기의 시대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조선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4. 기타
- 첫 선거가 제2대 대통령 선거였는데 저의 주소가 지금 어떻게 되는지 몰라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었더니 무효표가 되었고, 그 다음 제3대 대통령 선거 때는 뽑으려던 신익희가 작고하여 투표를 하지 못했다.
- 작품 묘사상으로 현재 귀남의 용모는 '순박하게 생긴 난쟁이'다.(...) 원 역사의 고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
[1] 극렬 북벌주장파 이필제와 그 수하들이 사고를 거하게 치자 징병제를 만들어서 이들을 모조리 입대시켜버렀다. 징병제로 간 사람들은 국경 경비에만 투입되는 게 아니라 인프라 건설 등도 하는 모양. 그래서 이필제가 온갖 욕 다들어먹으며 길림성에서 뺑이치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2] 실제로 이들 학생층이 치르는 과거시험이 대폭 어려워졌는데 이에 근대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능력 부족을 실감하던 기존 관료층들은 이러한 시험 내용 추가 및 강화에 적극 찬동해서 자기네들이 필요한 걸 마구잡이로 시험과목으로 넣어버렸다. 참고로 저렇게 만든 원흉이던 학생 단체 대표는 '''고시에서 합격할 실력이 없으면''' 조직 자체가 와해될 판이라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별 영향을 안 받았을거라고.[3] 초야에 묻힌 선비들이 여전히 옛날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참고로 판검사 등장에 대해서 사법 독립이 익숙하지 않던 관료들이 반발하자 귀남옹에 의하여 튀어나온 게 사법부 독립을 성문화한 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