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인왕후 김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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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추존 황후''' '''철인장황후 | 哲仁章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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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5대 왕비''' '''철인왕후 | 哲仁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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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6px -1.5px -11px"명순휘성정원수령경헌장목철인왕후 (明純徽聖正元粹寧敬獻莊穆哲仁王后) <colbgcolor=#bf1400> '''시호'''
| 철인왕후(哲仁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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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출생'''
| 1837년 4월 27일 (음력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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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성부 순화방 사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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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8년 6월 12일 (음력 5월 12일) (향년 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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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성부 창경궁 양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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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예릉(睿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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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조선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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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11월 17일 ~ 1864년 1월 16일 (음력 신해년 9월 25일# ~ 갑자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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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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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월 21일 ~ 1878년 6월 12일 (음력 갑자년 12월 13일# ~ 무인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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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본관'''
| 안동(安東)[11]
| '''전호'''
| 효휘전(孝徽殿)#
| '''부모'''
| 영은부원군 김문근(永恩府院君 金汶根) 모친 흥양부부인 여흥 민씨(興陽府夫人 驪興 閔氏)
| '''형제'''
| 1남 1녀 중 장녀 남동생 김병필
| '''부군'''
| 철종
| '''자녀'''
| 이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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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철종의 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김씨 혹은 명순대비(明純大妃). 후에
대한제국 고종의 추존으로 인해 사후 종묘에는 명칭이 황후로 격상되어 철인장황후 김씨(哲仁章皇后 金氏)가 되었다.
2. 생애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딸로,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 김씨와
헌종의 첫번째 비인
효현왕후 김씨에 이어 세 번째로 안동 김씨로서 왕비가 된 인물이다. 순원왕후에게는 조카 뻘인 친척.
[2]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김조순은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집의 4대손인데, 철인왕후의 아버지인 김문근은 김창집의 동생인 김창협의 5대손이다.
1851년 15살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어 철종과 가례를 올렸다.
하지만 단지 가문의 이해를 위해 간택되었을 뿐, 정작 왕후 본인은 한 번도 정사에 나서거나 가문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말수가 적고 기분의 좋고 나쁨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며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와 왕대비
효정왕후를 극진히 모셔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철종과의 사이에서 외아들
이융준을 소생으로 두었으며 1878년 42세로
창경궁 양화당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조선 왕실의 마지막 '대비'이다. 철인왕후 다음의 왕비들인
명성황후나
순명효황후는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그 다음인
순정효황후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 제국 최후의 황후다.
3. 왕대비 아닌 '대비'?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원칙적으로 선왕의 정실 부인인 대비(大妃)의 정식 명칭은 '''왕대비(王大妃)'''다. 하지만 보통 줄여서 대비라고 부르는 것. 따라서
인수대비(
소혜왕후),
소성대비(
인목왕후)
[3] 흔히들 인목대비로 알고 있는데, 정식 존호는 소성왕대비이고 인목의 존호는 왕후에 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인목왕후, 소성왕대비가 맞는 호칭
등의 정식 존호는 인수왕대비, 소성왕대비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 말기로 오면서
순조,
헌종이 젊은 나이에 승하(昇下)하고, 헌종이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왕으로 추존하면서 왕실에 여성 웃어른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철종 대에는 선선선대 왕비(순조비
순원왕후), 선선대 왕비(추존 문조비
신정왕후 조씨), 선대 왕비(헌종비
효정왕후)가 모두 생존해 있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이렇게 되자 대왕대비 위 혹은 대비(왕대비) 아래에 새로운 단계를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비(왕대비) 아래에 '대비'라는 단계를 새로 만들었고, 선대 왕비들의 서열이 '대왕대비' - '왕대비'의 2단계에서 '대왕대비' - '왕대비' - '대비'의 3단계로 재편된 것이다. 그래서
효정왕후는
정희왕후,
소혜왕후,
문정왕후,
인원왕후,
정순왕후 등 이전 왕비들이 대비(왕대비)로 존봉된 것과는 다르게 '대비'로 존봉되었다.
그런데
철종 또한 후사를 볼 젊은 나이에 승하하면서 철인왕후도 왕대비가 아닌 '대비'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고종이 즉위할 당시 선선선대 왕비 효명세자비
신정왕후 조씨와 선선대 왕비인 헌종비
효정왕후 홍씨가 모두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종이나 신정왕후 조씨보다 일찍 사망해 왕대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사망하여 최종적으로 대비로 남게 되었다.
[6] 효정왕후도 처음엔 대비로 존봉되었지만 당시의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김씨가 사망하자 신정왕후와 함께 한단계씩 올라가서 왕대비로 존봉되었다. 게다가 효정왕후는 73세의 나이로 1903년에 사망하여, 대한제국 수립까지 보고 황태후 칭호를 들었다. 철인왕후도 생전에 두 대비 중 한명이 사망했다면 한단계 올라간 왕대비로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신정왕후 조씨는 83세까지 생존해 불과 명성황후보다 불과 5년 전에 사망하여 '''조선 역사상 제일 장수한 왕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철인왕후가 일찍 사망한 탓도 있지만, 동서(신정왕후)와 $(document).ready(function(){ $("#rfn-4").bind("contextmenu",function(e){ $("#Modalrfn-4").attr("style", "display: block;"); return false; }); $("#Modalrfn-4").on("click", function(){ $("#Modalrfn-4").attr("style", "display: none;"); }); $("#rfn-4").bind("touchend", function(){ $("#Modalrfn-4").attr("style", "display: block;"); }); $("#Modalrfn-4").bind("touchstart", function(){ $("#Modalrfn-4").attr("style", "display: none;"); }); }); [4] 신정왕후의 남편 익종과 철인왕후의 남편 철종은 같은 항렬이고, 더군다나 철종이 순조의 양자가 되어 족보 상으로는 익종과 형제다. 조카며느리(효정왕후) $(document).ready(function(){ $("#rfn-5").bind("contextmenu",function(e){ $("#Modalrfn-5").attr("style", "display: block;"); return false; }); $("#Modalrfn-5").on("click", function(){ $("#Modalrfn-5").attr("style", "display: none;"); }); $("#rfn-5").bind("touchend", function(){ $("#Modalrfn-5").attr("style", "display: block;"); }); $("#Modalrfn-5").bind("touchstart", function(){ $("#Modalrfn-5").attr("style", "display: none;"); }); }); [5] 그러니 익종의 아들인 헌종의 비는 족보 상 조카며느리다.가 유독 장수하여 최소한 12년은 더 살아야 선선선대 왕비의 죽음(...)을 보고 승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초
성종 연간에
세조비 자성대왕대비(
정희왕후) 윤씨와 성종의 모후인 인수왕대비(
소혜왕후),
예종비 인혜왕대비(
안순왕후) 이렇게 3명의 대비가 함께 생존해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는 동서지간이고, 게다가 인수대비의 남편이자
성종의 생부인 도원군은 세자 시절 요절했으므로 공식적으로 즉위한 적이 없어, 특별히 명칭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성종이 즉위할 때
정희왕후가 성종의 정통성과 왕실의 서열을 고려하여
인수대비를 인혜대비보다 위에 두는 것으로 결정하여, 자성대왕대비 >인수왕대비 >인혜왕대비의 서열이 확정되었다.
4. 창작물 속 철인왕후
남편인
철종부터
사극에 잘 등장하지도 않는다. 설령 철종이 등장하더라도 조연 또는 단역 수준으로,
세도정치 시기 고통받는 민초들에 초점이 맞춰졌을 때 잠깐 얼굴만 비춰지거나
고종의 즉위 직전에 골골거리다가 사망하는 역할로 나온다. 그러한 입지로 인해 철인왕후도 사극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자주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방영된
tvN 토일 드라마 <
철인왕후>에서
남편과 함께
주인공으로서 재조명된 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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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조남경. 큰 비중은 없으며, 원자
이융준을 잃고 슬픔에 빠진 모습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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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채유미
[7] 전작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의 후궁 숙빈 임씨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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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최수종 분)의 비가 되었으나 첫날 밤부터 양순이(신윤정 분)를 잊지 못하는 철종에게 소박맞는다. 그래도 항상 남편 철종을 생각하며 걱정한다. 철종이 죽기 직전에
조 대비가
대보를 챙겨 나가려하자 "아직 전하(철종)가 살아있는데 이럴 수 없다"면서 눈물로 막지만 밀렸다.
고종 즉위 이후엔 간간히 왕실 어른 1 정도의 단역으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와는 달리 1880년대에도 살아있는 것으로 나온다.
[8] 갑신정변, 경복궁에 처음 전기가 설치되었을 때에도 나온다.
대한제국 시기까지 생존했던
헌종의 왕비
효정왕후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보아 효정왕후의 포지션도 철인왕후가 담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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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유혜영. 항상 대왕대비
신정왕후(
김용림 분), 왕대비
효정왕후(김정하 분)와 쪼르륵 앉아 맞장구치는 정도의 비중으로 나왔으며 실제 역사대로 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으로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찰을 빚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중 병수발을 들던
명성황후(
이미연 분)에게 '선왕(철종)은 여색을 가까이 해 몸을 버리고 정사를 그르쳤다'며 '주상(고종,
이진우 분)이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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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신혜선. 주인공. 역대 최강의 '철인왕후' 캐릭터.
[9] 신혜선의 뛰어난 연기력이 빛을 발했지만서도, 종전까지는 철인왕후의 역사 속 안습한 포지션으로 인해 조명되지도 않았다.
철인왕후 김씨를 모티브로 하는 가공의 등장인물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사는
남자 요리사 '
장봉환'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1851년 조선의
왕비 '
김소용'의 몸에 깃들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안송 김씨
[10] 신 안동 김씨(장동 김씨)를 모티브로 하는 가공의 가문.
의 험난한
세도정치 속에서 남편
이원범을 도와 자기 가문과 격하게 대립하며 역사를 크게 뒤바꾼다. 극중
장봉환의 성격이
주색을 밝히는 바람둥이인데, 그 모습이 김소용에게서도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배우
신혜선의 독보적인 코믹 연기가 돋보이며, 한편 그녀는 극중 '오리지널 김소용 / 장봉환 / 김소용화 되고 있는 장봉환 / 장봉환화 된 김소용' 등 다양한 성격을 딱 봐도 알 정도로 명확하게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