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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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NC 다이노스 소속의 투수. 192cm, 86kg으로 몸집이 큰 편이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처음엔 타자였으나 충장중학교 3학년 때 투수로 전향하였으며, 광주제일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고3이던 2003년에 동기인 모창민과 함께 팀을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1] 하지만...
3. 프로 선수 시절
KIA 타이거즈 입단 후에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계속 2군에서만 뛰었으며, 제구력 난조 때문인지 1군으로 콜업되는 일이 아예 없다.
2008~2009년에는 상무 야구단에서 뛰며 군복무를 했지만 2012년 9월까지도 1군 등판 기록이 전무하여 사이버 투수나 진배없었다. 무려 9년을 2군에서만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2012년 10월 2일, 월명 야구장에서 드디어 1군 데뷔전을 치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19차전(최종전) 9회초, 10:2로 이미 패색이 짙은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피칭을 하였다. 그리고 KIA는 이 경기에서 4강 탈락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것이 1군 데뷔전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상태로 시즌이 끝나고 2013년 11월 22일 열린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 결과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이는 김경문 감독의 의중이 있었다고 하는데, 퓨처스 리그에 있으면서 김성계의 투구를 보면서 기회를 주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뽑았다고 한다.
2014 스프링캠프 KT 연습경기 중 구속이 150km/h 가까이 나오며 구속이 급격하게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정작 시즌 들어와서는 퓨처스에서 8점대 ERA를 보여주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5월 30일 이후로 퓨처스리그 등판 기록이 없으며 1군에 등록되지도 못했다.
육성선수로 신분이 바뀐 2015 시즌 들어와서도 퓨처스리그서 ERA가 8점대다. 등판할 때마다 최소 안타 1개씩은 얻어맞았으며 이 탓에 피안타 갯수가 이닝을 상회한다. 피안타율도 0.378이나 된다. 부상이 있는지 5월 28일 이후로 등판 기록이 없다.
계속된 부진에 구단도 지쳤는지 결국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무려 12년동안 선수로 활동했지만, 1군에는 1경기 등판하여 1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다. 은퇴하고 2016년부터 인테리어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5. 여담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잠깐 와서 자화자찬하는 글 및 댓글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있다.
6. 관련 문서
[1] 1년 선배들인 김대우와 고우석이 활약하며 2002년 전국대회 2관왕(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을 달성했던 것에 비하면 실적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2003년 광주광역시 라이벌 광주동성고는 청룡기를 제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