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투수
1. 개요
어원은 사이버 가수 아담으로 추정. 거액의 계약금이나 연봉을 받거나 트레이드를 통해 온 투수, 혹은 나름대로 기대를 받은 투수 중 부상이나 부진 등의 이유로 1군에 등판하기는 커녕 2군, 재활조조차 나오지 못하는 투수를 프로야구 게임의 로스터 파일 등 가상에서만 존재한다는 의미로 조롱하는 용어. 보통은 부상이 주 원인이 되기 때문에 유리몸하고도 겹친다.
이 표현은 KIA 타이거즈 - LG 트윈스 -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강철민에 의해 유래됐는데, 1998년 고졸 연고우선지명을 받은 강철민은 2002년에 KIA에 입단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서 2006년 이후 1군 기록이 전무했으며, 당시만 해도 2군 기록이 미흡했던 데다가, 2군 등판 횟수도 적다보니 여러모로 까였다.
2009년 시즌 초 LG의 김상현+박기남 ↔ KIA의 강철민 트레이드 이후 2009년에 김상현이 타격 3관왕&MVP를 달성하고 팀 우승에 크게 기여하고, 박기남 역시 2009년 이후로 몇 년 동안 밥값을 한데 비해 강철민은 여전히 재활만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버 투수라 불리면서 되려 예전보다 유명해졌다.
강철민은 2006년 6월 7일 KIA에서 등판한 후 2010년 7월 18일에 드디어 1군 경기를 치렀는데, 무려 4년만의 등판이었다. 하지만 결국 2011년 5월에 일찌감치 방출되어버렸고, 2013년 한화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1군 엔트리는 커녕 재활군에만 머물면서 그야말로 망했어요.
그 뒤로 강철민 같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2군에서 길고 긴 재활만을 하거나, 혹은 아예 1군에 못 올라오는 경우에 사이버 투수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2. 목록
2.1. KBO 리그
- 구본범: 8년 동안 1군에서 6경기에 등판했다. 정확히는 6년간 1군에 못 올라오고 2년간 3경기씩 나누어 뛴 것. 2017년 스프링캠프 명단에 드는 등 여전히 구단에서는 희망을 갖고 있는 듯했으나, 2017년 6월 육성선수 계약이 해지되며 조인성, 이종환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 강철민: 사이버 투수의 원조. 항목 참고.
- 김명성 : 대학 재학 시절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3승, 평균자책점 1.20으로 활약하면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도 승선해 병역 특례까지 받았다. 하지만 손이 무뎌지는 증상으로 인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후로도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했다.
- 김성계: 2004년 KIA에 입단해 2012년 말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2군에서만 9년을 썩었다는 소리다. 이후에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014년 NC로 이적했다가 다음해 방출당했다.
프로생활 12년동안 1군 경력은 단 1경기였다. 사실 프로에서 저정도 선수면 짧게는 2년, 길면 5년안에 방출당해 프로 생활을 마감하는게 대부분인데 12년이나 프로에서 버틴 것도 놀라울 정도이다.
- 김세현: 사실 이 문서는 김세현을 위한 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세현이 김영민이었던 시절인 2009년에 선발로 나오면 망했지만 롱 릴리프로 나올 때는 패동열급의 피칭을 선보여서 히어로즈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2010년 1월에 어이없는 부상[1] 을 당하여 2010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은 바람에 싸이버 투수로 불렸다. 이 때문에 싸융짱문오에서도 싸로 구분된다.
- 김유선: 2007년 1차 지명을 받았지만 고교 시절부터 부상이 있었던지라[2]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5년을 부상과 그에 따른 재활 등으로 인해 허송세월로 날리다가 2012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강철민과 더불어 LG의 사이버 투수 원투펀치.
- 김진웅: 한때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급격히 몰락해 버렸고, 팔꿈치 수술 후 군 복무를 위해 구단에서 상무 입대를 제안했지만[3] 이를 무시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다. 결국은 공익으로 복무하는 동안 살이 급격히 찌며 체중이 무려 120kg대로 불어났으며, 살이 잔뜩 찐 상태로 제대한 뒤에는 무릎 부상까지 찾아오며 살을 뺄 수도 없는 사정에 이르는 등 자기 관리에 완벽히 실패하며 사이버 투수로 전락,[4] 제대 후 1군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한 채 2010 시즌 끝나고 방출되어 비교적 이른 30세에 은퇴했다.
- 박명환: 두산 시절만 해도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선발이었으나 이 때부터 유리몸 기질이 있었고, LG 이적 후에는 2007년을 제외하면 매년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사이버 투수로 전락했다. 특히 2011~2012시즌은 아예 1군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 NC로 와서도 재기하는 모습을 잠깐 보이나 싶었지만 잠시 뿐이었고 2군에서 탈탈 털리다가 은퇴했다.
- 서동환: 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할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고교 시절부터 혹사를 당한 탓인지 프로 입단 후에는 어깨, 팔꿈치, 허리 등의 부상으로 인해서 수술만 몇 차례나 받았고 사이버 투수화되었다.
- 석지형: 김해님의 롯데 스카우터 시절 최악의 뻘픽. 일본 사회인 야구에서 뛰던 30살 선수를 하드웨어만 보고 덜썩 4라운드에 잡아버린다. 이 때 드래프트 현장이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물론 실력은 처참해서 2군에서도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1년만에 방출당했다.
- 성영훈: 이른바 두산 팬들의 민간신앙. 2010년 플레이오프서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후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재활에만 매진했다. 1차 지명이었고 기대치도 굉장히 컸기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는 더더욱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수. 한동안 재활을 거쳐 2017년 드디어 다시 마운드에 섰고 1군 무대도 오랜만에 밟았으나, 또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며 결국 2018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시절인 2010~2011시즌에 부상으로 재활하느라 1, 2군 등판기록이 없다.
- 안태경: 전형적인 하드웨어만 보고 뽑은 투수. 김해님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평가되며 사이버화된 뒤 결국 방출당했다.
- 우병걸: 고교와 대학 시절 등판 경력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KIA에 지명되면서 '사이버 투수' 별명을 얻었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수행하였다.
- 윤석민: 고속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한때는 류현진, 김광현과 함께 괴물투수 3인방이었으나, 메이저리그 도전 후 트리플 A 노포크를 전전하다 국내로 유턴했다. 유턴하자마자 90억 원의 FA 계약으로 대박을 쳤으나 한시즌 반 정도만 마무리로 뛰고 이후 그대로 드러누우면서 사이버 투수에 등극했다. 4년 후 연봉을 10억 5천만원이나 삭감된 2억 원에 계약했으나 그 연봉마저도 먹튀가 되었고, 결국에는 은퇴를 선언하였다.
- 윤호솔: 6억 원을 받고 입단했지만....
- 이건욱: 2014년 SK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으나 곧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했고, 얼마 안 가 교육리그에서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1군 데뷔가 늦어지며 사이버화가 되는 듯 싶었으나, 2016년 9월, 마침내 1군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2020년 시즌 드디어 포텐이 터지며 문승원과 함께 SK의 토종 선발투수 원투펀치를 형성하고 있다.
- 이대진: 2001~2006년에 길고 긴 재활의 길을 걸어야 했고, 이 때문에 투수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잠시 타자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에 호성적을 올렸었고 본인이 성실하게 재활에 임했기에 결국 복귀하여 사이버 투수 반열에서 벗어났다.
- 이범준
- 이승호: SK의 에이스였으나 팀 창단 초기부터 전천후로 혹사당하다가 어깨 부상으로 3년간 재활하였고,[5] 부상 복귀 후에는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지며 불펜으로만 뛰다가 롯데로 이적했다. 이적한 뒤에는 하향세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롯데에서 NC로 이적한 이후 2군에서도 탈탈 털리며 사이버투수 + FA먹튀로 전락했다. 결국 돌고 돌아 친정 SK로 복귀한 뒤 활약 없이 은퇴했다.
- 이정용: 그나마 데뷔 2년차부터 1군 무대를 밟긴 했다.
- 이정호: 2001년 무려 5억 3,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으나 고교 때부터 당한 혹사로 인해 프로 입단 후에는 어깨, 팔꿈치 부상과 재활 실패로 인해 1군에서 몇 경기 뛰지도 못하고 201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1승에[6] 그쳤다.
- 이케빈: 즉시 전력감이라며 큰 기대를 받고 삼성에 입단했으나 정작 2군에서도 탈탈 털렸고 이후 부상까지 당했다. 2018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고 2019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선발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으나 왼쪽 눈의 시력 약화로 그 해 은퇴했다.
- 이호중: 대학 야구 최고 투수로 평가 받으며 2015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에서 NC의 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원에 입단했으나 이후 1군은 커녕 2군 기록조차 없다. 입단 시즌에는 스프링캠프 출국 이틀을 앞두고 스쿼트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전역 이후에는 팔꿈치 수술이 예정되면서 2018 시즌을 앞두고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그러다가 긴 재활 끝에 2020년 드디어 1군 무대를 밟으면서 사이버 투수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 임경완: 한화 시절, 2군에서 1경기 올라온 이후로 존재가 공기화 되었다. 결국 방출되어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했다.
- 장진용: 2군에서는 사실 에이스지만 1군에서는 1년 평균 4경기도 못 출전하는 2군 페드로. 1차 지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6년만에 1군에 출전할 정도로 사이버 선수였다. 2014년부터 2군에서의 대활약 덕분에 1군에 다시 올라왔고, 2015년에는 땜빵 5선발 구실을 하면서 11경기에 출전하여 선발승까지 거두었으나, 2016년에 땜빵 선발로 두 경기 뛴 것을 모두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두 경기만 뛰고 2군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2017 시즌 후 방출.
- 전병두: 2012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갔다가 결국 2016년 은퇴했다. 김성근식 투수 혹사의 최대 피해자 되시겠다.
- 최향남: 롯데 자이언츠 시절인 2011시즌 한정. 시즌 초에 방출됐지만 2012년 친정팀인 KIA에 입단해 커리어를 이어갔다.
- 한기주: 2010년 초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11년 7월 복귀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부상으로 아웃, 2013~2014년에 재활하느라 등판 기록이 없다. 결국 2015년에 복귀는 했으나 2016년 선발 최다 자책점[7] 을 기록하는 등 불운에 시달렸고 2017년엔 아예 1군에도 오르지 못하다가 타자 이영욱과 트레이드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이후 2년 더 뛰고 은퇴. 그래도 트레이드 상대였던 이영욱보다는 1년 더 뛰었다.
- 한희: LG 시절 박종훈 감독에 의해 임찬규와 함께 어마어마하게 던졌고, 갑자기 키가 커서 투구 밸런스를 잃었다고 한다. 결국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가 방출당했다.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스캇 카즈미어: 다저스의 금지어.에이스급 활약을 기대하고 영입했지만 제대로 몇 경기 뛰지도 못하고 방출되었다.
- 셸비 밀러: 디백스가 엔더 인시아테와 댄스비 스완슨까지 내주고 영입했는데....2017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며 시즌 아웃되었다.
2.3. 일본프로야구
- 마쓰자카 다이스케 : 이 분야의 끝판왕. 세이부 시절까지의 혹사로 인해 메이저에서 부진하더니 일본에 돌아와서는 소프트뱅크와 4년 16억 엔에 계약했으나 3년 간 1군 등판 한 번에 방어율 18.00이라는, 윤석민도 울고 가는 세계구급, 역대급 사이버 투수 반열에 오르고 말았다. 이러면서 현역 생활 계속 하겠다고 FA를 신청하여 4억엔에서 무려 96%가 삭감된 1500만엔에 주니치와 계약하였다.
- 사이토 가즈미 : 2007년 시즌 도중 어깨 부상으로 낙마한 이후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6년간을 공식 경기 등판 없이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으나 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전성기의 활약이 인상적이고 유리몸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무리하게 등판 간격을 좁힌 결과 부상이 악화된 것이라 팬들로부터 비난보다는 안타까운 시선을 받았다.
3. 기타
- 지안카를로 스탠튼: 데이비드 프라이스가 트위터에서, 스탠튼의 생김새가 MLB the show의 생성선수(Create a player)랑 똑같이 생겼다는 트윗을 남겼다. 게임에서 만드는 사기 캐릭터급 능력이라는 칭찬이기는 한데... 워낙 거구에 근육질이라 부상이 많아 자주 DL에 내려가 사이버 타자화되기도 한다.
- 국해성: 이쪽은 사이버 타자. 위에 투수들과는 달리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긴 하는데 유독 본인이 활약하는 경기만 중계가 제대로 안 된다(...) 특히 2016년 6월 25일 문학 SK전은 홈런을 쳤으나 카메라 고장으로 스킵되었다.
- 대니 워스: KBO 팬은 물론, SK 와이번스 팬들도 입단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 사이버 타자. 2017년 트레이 힐만 감독의 추천으로[8] 70만 달러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으나 정작 시범경기때 어깨 부상으로 많이 나오지 못했고, 정규시즌에서도 지명타자로 꼴랑 3경기 뛰고 2군으로 내려갔고, 결국 그 좋은 수비도 못 보여준 채 방출되었다. 다만 퇴단하면서 대체 선수로 제이미 로맥을 추천해 팀에게 최후의 선물은 남기고 간 셈이 되었다.
- 아도니스 가르시아: 2018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외국인 타자로 실력자체는 좋았으나 잦은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빠졌고 그럼에도 실력이 좋았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기다려줬다가 시즌끝나고 나서야 방출되었다. 가르시아는 근육량이 지나치게 많아 부상이 잦은 케이스다.
- 이현동: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잘 모를 201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더. 원래 투수였으나 2017년 외야수로 전향한 선수로 2017년까지 한번도 1군에 못 올라오다가 2017년 1군 16경기 출장-바로 다음 시즌 1군 기록없음-2019년 2경기 출장후 2020 시즌 부상으로 1군은 커녕 퓨쳐스리그 출장 기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2021시즌 보류 선수 명단에서 살아남았다.
[1] 헬스장에서 개인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눈이 얼어붙은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2] 이는 당시 LG 스카우트 팀장이었던 이효봉의 삽질 목록 중 하나다.[3] 김진웅은 현역 시절 자기 관리를 잘 하지 못했던 걸로 유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삼성도 김진웅의 관리를 위해 관리가 엄격한 상무에 입대시키려고 했던 것. 반면 김진웅의 대구고 3년 후배인 손승락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경찰청에 입대했고, 제대 후 넥센의 주축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으며 세이브왕을 수상했다.[4] 이때 확 불어난 체중에 비유한 사이버 스모 선수라는 별명도 생겼다.[5] 이때 서류상으로 임의탈퇴까지 되었다. 보호 선수 명단 작성 등에 이용하기 위한 편법이었지만...[6] 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마저 입단 3년차이던 2003년에야 와서 거둔 승리다.[7] 3.2이닝 13실점. 1년 후 삼성 라이온즈의 재크 페트릭이 2이닝 14실점으로 이 기록을 깨 버렸다.[8] 메이저리그에서 323.1이닝 연속 무실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실책이 많았던 헥터 고메즈를 대신해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영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