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선수단
1. 감독ㆍ코칭스태프
2. 현역 선수
2.1. 투수
2.2. 포수
2.3. 내야수
2.4. 외야수
3. 군 입대 선수
※ 상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소속, 현역: 일반 군복무, 사복: 사회복무요원 근무
4. 역대 외국인 선수
- USA : 미국
- DOM : 도미니카 공화국
- VEN : 베네수엘라
- CAN : 캐나다
- AUS : 오스트레일리아
- NED : 네덜란드
5. 역대 감독
6. 역대 선수
6.1. 프랜차이즈 스타 및 레전드
6.2. 프랜차이즈
6.3. 올드 멤버
- 강귀태 (24)
- 강동우 (2)
- 강영식 (15)[17]
- 강철민 (27 - 21 - 27)
- 강하승 (107)[18]
- 강한울 (10 - 13)
- 곽채진 (37)
- 고우석 (29 - 55 - 25 - 28)
- 고장혁 (36 - 67 - 52)
- 고효준 (35)
- 권명철 (29)
- 권윤민 (32)
- 김건한(김희걸) (41 - 47 - 16)
- 김경언 (10 - 29 - 24)
- 김광연 (4)
- 김기웅 (017)
- 김동재 (87)[19]
- 김무종 (25)
- 김병현 (45)
- 김상진 (11)[20]
- 김상현 (46[21][22] / 27)[23]
- 김성계 (51 - 60 - 13)
- 김성현 (019)
- 김세현 (49 - 50)
- 김연훈 (9)
- 김영광 (45)[24]
- 김영수 (36)
- 김용인 (08)
- 김주형 (5 - 33 - 9 - 33)
- 김준 (14 - 010)
- 김지성 (5 - 53)
- 김지영 (32)
- 김지훈 (12)
- 김지훈 (40 - 011)
- 김태룡 (3 - 33)
- 김태영 (27 - 08)
- 김평호 (15)
- 김현수
- 김호 (9)
- 노수광 (98)
- 동봉철 (44)
- 류은재(유재원/류재원) (100 - 60 - 56 - 01)
- 류현철 (08)
- 문경찬
- 문성우 (018)
- 문현정 (11)
- 문장은 (018)
- 박경태 (53 - 14 - 47 - 57)
- 박기남 (48 - 6)
- 박기철 (50 - 032)
- 박계원 (9)
- 박노준 (10)
- 박성호 (49 - 55 - 50 - 49)
- 박재용 (8)
- 박지훈 (37-39-37)
- 박정태(투수) (30 - 38)
- 박준수 (45) [25]
- 박정수
- 박찬 (45 - 104)
- 박철우 (24)
- 박충식 (19 - 15)[26]
- 박희주 (020)
- 배힘찬 (12 - 37)
- 백재엽(백세웅) (5 - 013)
- 서동욱 (4 - 17)
- 서용주 (103 - 42)
- 성영재 (13)[27]
- 손영민 (39 - 19 - 21 - 1 - 038 - 26 - 19)
- 손지환 (33 - 5)[28]
- 송구홍 (9)
- 송산 (42 - 45 - 42)
- 신동주 (25 - 37 - 40)[29]
- 신승현 (27)[30]
- 신용운 (49 - 19)
- 신제왕 (025)
- 신창호 (95 - 37 - 44)
- 심재학 (14)
- 신종길 (2)
- 안영명 (1)[31]
- 양승호 (8)
- 양준혁 (10)[32]
- 오두철 (44 - 06)
- 오봉옥 (67)
- 오준혁 (50 - 9)
- 우병걸 (65)
- 유승안 (24)
- 유재혁 (4)
- 유용목 (5 - 40)
- 유재신 (24 - 14 - 33)
- 윤민섭 (52 - 040)
- 윤정우 (52 / 15)[33]
- 윤해진[34] (68 - 9)
- 윤희영 (61)
- 이경록 (61 - 041)
- 이대환 (31)
- 이동희 (047)
- 이동현
- 이두환 (98)[35]
- 이병훈 (44)[36]
- 이범석 (35 - 61 - 1 - 04)
- 이상화 (46 - 41)
- 이성우 (59 - 32)
- 이승우 (031)
- 이영욱
- 이은총 (69 - 07 - 05 - 66)
- 이인행 (48 - 67 - 13 - 15)
- 이재주 (25)
- 이정훈 (60)
- 이정현 (022)
- 이종환 (96 - 67 - 53 - 50)
- 이준호 (93 - 64 - 033 - 52 - 07)
- 이호신
- 이호준 (29 - 38)[37]
- 이호현 (029)
- 이홍구 (34 - 27)
- 이효상 (20 - 107 - 039)
- 임기준 (34 - 63 - 56 - 26)
- 임준섭 (11)
- 임준혁 (32 - 11 - 32 - 35)
- 임창용 (57 - 37 - 037 - 12)
- 임한용 (14 - 100 - 55 - 62 - 03 - 01)
- 장문석 (26)
- 장일현 (7 - 55)
- 장정석 (8)
- 전병두 (28)
- 전우엽(전태현) (50 - 37 - 10 - 105 - 30 - 59 - 02)
- 전은석 (026)
- 전현태 (95 - 030)[38]
- 정동현 (59)
- 정민태 (64)
- 정상교 (58 - 028)
- 정성룡 (10)
- 정성훈 (6 - 5 - 56)
- 정용운 (17 - 37 - 63 - 47)
- 정회열 (25)
- 조규제 (24)
- 조충열 (3 - 1 - 3)
- 조영훈 (16)
- 조태수 (57 - 28 - 20)
- 주동식 (15)
- 진해수 (50 - 47 - 14)
- 채종범 (28 - 33)
- 차일목 (12)
- 최병연 (58 - 109 - 0)
- 최영완 (30 - 68)[39]
- 최영필 (19)
- 최원준 (69 - 06)
- 최익성 (23)[40]
- 최재원 (021)
- 최준식 (57 - 035)
- 최향남 (31 - 69 - 39/ 37 - 32 / 99)
- 최현정
- 최훈재 (10)
- 한기주 (10 - 52 - 17 - 14 - 17)
- 한성구 (93)
- 허준 (15)[41]
- 홍건희 (43 - 20 - 51)
- 홍성민 (55)[42]
- 홍재호 (5 - 17 - 23 - 5 - 6)
- 황두성 (52)
- 황수현 (98 - 66)
- 황정립 (46 - 5)
6.4. 흑역사
- 김상훈 (3)
- 손혁 (47)
양준혁과의 맞트레이드로 해태에 왔으나 팀 합류를 거부, 은퇴 선언을 했다가 1년만에 복귀. 허나 그 후 제 기량을 찾지 못하고 2003년 두산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4 시즌초에 은퇴했다. 해설가가 되고나서 중계중 과거에 타이거즈를 거부하는등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하여 사과했다.
- 숀 헤어 (29)
타격,수비,주루 모두 안되는 병신정도로 회자되지만, 사실 해태 구단측이 잘못했다.
- (27)
타이거즈의 4번타자. 프랜차이즈 스타. 하지만 비극적인 4모녀 살인사건으로 인해 팀내에서 금지어로 전락.
- 진필중 (35)
손혁, 김창희, 8억을 주고 비싸게 사왔다. 그러나 태업을 하는데다가 FA로 1년만에 이적. 그 후 홍현우를 이은 최악의 먹튀가 된다.
- 박재홍 (62)
1992년 해태의 1차지명을 받았으나, 해태 특유의 군대식 분위기를 싫어하여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졸업할쯤 해태입단을 거부하고 올림픽 출전핑계를 데고 현대의 아마팀인 현대 피닉스로 입단키로 한다. 결국 최상덕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현대에 입단하나, 2002시즌 종료후 10억+정성훈을 상대로 기아로 이적. 활약은 그럭저럭 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고, 그를 데려온 김성한 감독이 잘리고 유남호 감독과의 불화로 SK로 이적한다.
- 마해영 (49)
28억 금액[43] 을 내고 데려왔으나, 그런성적을 냈다. 그것도 모자라 준플레이오프 에서 최고참인 이강철이 만루홈런을 맞아 탈락했는데 배고프다고 빵을 사먹는등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서정환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LG로 트레이드된다.
선동열 감독이 야심차게 단행한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KIA에 왔으나, KIA 이적 첫 해 평균자책점 7.35, 다음 해 7.32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FA 자격으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부상을 가지고 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타이거즈에 애정을 가졌던 김상현을 내주면서까지 트레이드 했음에도 선발로나 불펜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트레이드로 그를 영입한 선동열 감독, 그리고 개인으로나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시기의 KIA 타이거즈 서로에게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한화가서도 퇴물 수준의 파멸적인 투구를 보이고 있다. 다만 16시즌의 경우는 한화 투수진이 제대로 무너지면서 의외로 재평가를 받고있다. (보상선수인 임기영이 2017년 보물로.)
- (49 - 11)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가담자. 2011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계약금 7억원의 대형 신인이었다. 한화에서 불만지르다 2015년 3대4 트레이드로 기아에서 재기를 꿈꾸었다. 하. 지. 만 . 기아에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져 활동정지 징계를 받게된다. 비록 한화 이글스 시절에 저지른 범죄이기는 하지만 자수 이후에도 추가 범죄 사실이 밝혀지면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1] 타이거즈에 소속 되었던 기간을 기준으로 한다.[2] 개명 전 이름은 윤완주.[3] 함평 재활센터 트레이너[4] 티부로네스 데 라 과이라를 마지막으로 은퇴.[5] 함평 재활센터 트레이너[6] 윌리엄스 감독 전담 통역사로 코치 직함을 가지고 있다[7] 제6군단 복무 중.[8] 제50보병사단 복무 중.[9] 제1보병사단 복무 중.[10] 제28보병사단 복무 중.[11] 육군미사일사령부 복무 중.[12] 제12보병사단 복무 중.[13] 제50보병사단 예하 501여단 기동대 복무 중.[14] 정식 계약 이전에 방출을 했기 때문에 용병 교체 슬롯을 소모하지 않았다.[15] 2017시즌과 동일[V1~V9] 83,86,87,88,89,91,93,96,97 한국시리즈 우승[V10]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V11]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16]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프랜차이즈 스타인건 맞긴 하다. 흑역사 하단 항목 참조.[17] 롯데에서 활동 중이었던 투수로 당시 해태 감독이었던 김응용이 애타게 좋아했을 정도다.[18] 고양 원더스에서 영입한 선수였으나 2013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고양 원더스에서 프로 팀으로 간 선수 중 가장 먼저 방출된 기록을 남겼다.[19] 해태에서 선수로 생활한 적은 없지만 조범현 감독 부임 시 수비코치로 몸을 담았다. 2010년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다. 연말이면 김동재 코치를 돕기 위한 자선호프를 개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하고 있다.[20] 타이거즈의 팬들에겐 가슴 아픈 선수로 199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했던 선수[21] 2000~2001시즌 LG트레이드 전 까지 사용됨[22] 트레이드 상대인 송은범도 46번을 달았었다.[23] KIA 타이거즈에 2번 있었다. 2000년 해태에 데뷔한 뒤 2002년 LG 트윈스 이적 후 2009년 트레이드로 다시 타이거즈에 복귀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 그 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에 2013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을 때 본인 뿐만 아니라 팬들도 아쉬워했다. 2014년 KIA에 온 두산 출신의 투수와 동명이인이었다. 준프랜차이즈 선수였지만, KT가서 영 좋지 못한 사건을 터뜨려서 반 쯤 흑역사 확정.[24] 2014년 지명 신인이었으나, 김병현의 맞트레이드 상대로 본격적인 커리어는 히어로즈에서 시작하게 되었다.[25] 불펜 투수로 뛰며 현대 유니콘스 시절 마무리로 반짝 활약.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된 이후 KIA에서 부활을 노렸으나 노쇠화를 이기지 못하였다.[26] 광주 출신이지만 삼성의 원조 라이언 킹. 해태 이적 당시 훈련 시설을 대놓고 디스했다.[27] SK에 이호준을 조공하면서 데려왔으나, 얼마 써먹지도 못했다.[28] 진필중의 FA 보상선수로 입단, 04~05년 두 시즌간 LG에서는 한번도 치지 못 한 두자릿수 홈런을 치며 이현곤의 군 입대 공백을 메웠다. 굵직한 선수들에 좀 가린 면이 있지만 손지환도 나름대로 탈쥐효과의 수혜자.[29]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이 팀에서 2번씩이나 있었다.[30] 이대형을 FA로 사오면서 반년밖에 써먹지도 못했다.[31] 이범호를 FA로 사오면서 반년밖에 써먹지도 못했다.[32]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1999년 임창용과의 트레이드로 1년간 몸담기도 했다.[33] 2차 드래프트로 KIA를 떠났다, 또 다시 2차 드래프트로 KIA로 돌아오고, 트레이드로 KIA를 떠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34] 개명 전 이름은 윤완주.[35] 2011시즌 2차 드래프트로 두산 베어스에서 KIA로 옮겨왔으나 대퇴골두육종으로 인해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거포 유망주로 손꼽혔지만 이른 나이에 큰 병으로 꿈을 피우지 못한 채 쓰러진 안타까운 선수.[36] 우리가 아는 그 해설자 맞다. 다만 김응용과의 불화로 인해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37] 투수로 입단했지만 바로 타자로 전향, 98년부터 99년까지 두자릿수 홈런을 치며 활약하다 SK로 트레이드되었다.[38] 한화 이글스에서 2015년 방출된 이후 KIA가 영입했으나 시즌 말미 1타석 소화한 것을 제외하고 육성선수로 전환 뒤 다시 시즌 중 방출되었다.[39] 1999~2004 시즌까지 활약한 좌완투수. 별 다른 뚜렷한 활약은 못했지만 최영완이 떠난 지 10년뒤 그의 형이 이 팀에 오게 되었는데 최영완의 형이 바로 최영필이다.[40] 삼성 라이온즈 출신 저니맨. 하필이면 서정환으로 인해 또 팀을 떠돌어 다녀야 했다.[41]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았던 선수. 역대 KBO 현금 트레이드 중 최저 금액 트레이드로 잠시 화제가 되었다.(웨이버 공시였기에 300만원만 주면 되었다.)[42] 김주찬의 보상선수가 되어 롯데로 가버렸다. 노장들이 필승조로 활약해야하는 기아 불펜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아쉬운 선수이다.[43] 보상금 포함시 45억 1천만원 + 호타준족의 외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