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석(1984)
1. 개요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로, 보직은 투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시절 김대우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활약했다.[1]
김대우와 고우석이 고3이던 2002년 고교야구 판도는 광주일고와 천안북일고가 천하를 양분했다. 광주일고는 첫 번째 대회와 두 번째 대회인 대통령배와 청룡기를 제패했고, 천안북일고는 뒤이어 열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화랑대기, 전국체전의 정상에 올랐다.[2][3]
2.2. KIA 타이거즈 시절
데뷔 시즌인 2003시즌엔 37경기에 나와서 58이닝 동안 3승 1패 2홀드 평균 자책점 3.88 과 스탯티즈 기준 war 1.21을 찍으며 나름 괜찮은 기록을 보이며 2004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고, 군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2004년 시즌 종료 후 상무 야구단에 입대해 군 복무를 하였고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제대했다. 상무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절엔 2005년 5월 8일 퓨처스리그 역대 2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혹사 후유증으로 어깨가 좋지 않아져서 제대 후에도 무명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전 KIA 타이거즈의 대표적인 사이버 투수 중 한 명.
2012년 4월 13일 경기에서 동점상황 10회말에 등판, 2사까지 잘 잡아놓고 안타-볼넷-볼넷으로 만루를 채웠다가 다음 타자 심광호를 루킹삼진으로 잡으면서 KIA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날 1⅔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2003년 9월 10일 이후 무려 3,138일만의 승리를 챙겼다. 이것으로 통산 4승째.
한 달 이후로는 별 활약이 없었고, 시즌 초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로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3. 은퇴 후
방출된 뒤 곧바로 은퇴했고 이후 별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8년 2월 18일 '''폭력혐의로 구속'''되었다. 은퇴 후 광주 지역 조직폭력배 집단에 가입해 활동해 온 걸로 알려졌으며 조폭집단 내 행동대장으로 있었고 광주 상무지구의 한 술집에서 부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예전에 조직을 탈퇴한 두 명을 만났고, 우발적으로 두 명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고 한다.기사 어찌보면 한때 기대받는 유망주였다가 은퇴 후 조직폭력배에 가입해 활동한 위대한과 비슷한 케이스인 셈.
4. 연도별 주요 성적
[1] 김대우는 롯데 자이언츠에 투수로 입단했다가 타자로 전향했지만 결국 2017년 6월 투수로의 재전향을 선언하였다.[2] 여담으로 이 당시 김대우와 고우석보다 원래 1년 선배였으나 유급하여 동기가 된 광주일고 중견수는 이대형. 3루수는 2학년 모창민.[3] 천안북일고는 에이스 안영명을 필두로 유격수 나주환이 주장을 맡아 중심을 잡고, 2학년 김창훈이 투수진을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