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민

 



모창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8
2020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13번}}}
이성우
(2007)

모창민
(2008~2010)


최윤석
(2011~2013)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나주환
(2007~2010)

모창민
(2012)


나주환
(2013~2019)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16번}}}
송수
(2012)

모창민
(2013~2014)


임시결번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3번}}}
이창섭
(2014)

모창민
(2015~2018)


유영준
(2019~2020)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16번}}}
김건태
(2018)

모창민
(2019~)


현역


<colbgcolor=#315288> NC 다이노스 No.16
<colcolor=#FFFFFF> 모창민
牟昌民 / Mo Chang-Min

생년월일
1985년 5월 8일 (38세)
출신지
[image] 광주광역시 서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8cm, 89kg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image] 광주제일고 - [image] 성균관대
포지션
지명타자, 내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2차 1라운드 지명 (전체 3번, SK)
소속팀
[image] SK 와이번스 (2008~2012)
[image] NC 다이노스 (2013~)
병역
[image]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1~2012)
등장곡
포미닛 - 이름이 뭐예요?[2]
응원가
[ 이전 응원가 보기 ]
SK 시절 : 늴리리 맘보[35][36]
클론 - 쿵따리 샤바라[37]
Handel - Joy to the world[38]

구단 자체 제작 - 작사/작곡 : M.H.[3]
연봉
3억원 (FA, 2021년)
에이전트
[4]
종교
개신교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회 (2008, 2020)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별명
6. 기타
7. 연도별 주요 성적

[clearfix]

1. 개요


NC 다이노스 소속의 내야수. 원래 포지션은 3루수[5]이지만 2016년 이후로는 지명타자1루수로 나오는 일이 많다. NC 다이노스 1군 팀 1호 안타의 주인공.

2. 아마추어 시절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해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균관대 시절 단국대학교나지완과 함께 각종 대회 홈런왕을 다투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6][7]
대학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7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서 열린 한미대학야구선수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했다.[8]
고교-대학 통산 성적은 127경기 454타수 138안타 타율 .304 24홈런 93타점 27도루 50볼넷 70삼진. 초반에 빛을 못 보다가 갈수록 미친듯이 활약한 나지완과는 달리 고1을 제외하면 꾸준히 붙박이 주전으로 나와서 경기수가 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127경기에서 20-20을 기록하는 등 주루와 타격 모두 최상급이었고[9] 선구안도 나쁘지 않았다.

3. 프로 경력



3.1. SK 와이번스 시절


[image]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10] 당시는 기존의 SK 내야구도를 흔들 선수로 주목받았고 시즌 초에는 실제로 나주환을 제치고 유격수로도 출장했지만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치고 수비력도 국가대표급의 주전 내야수들보다 부족해 곧 주전 경쟁에서 밀려 내야 유틸 요원으로 출장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에 비해 더딘 성장으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해 결국 2010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과 동의 없이 신청하여 구단과 김성근 감독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11]
툴플레이어의 자질을 가졌다. 성균관대학교 시절 보여 준 파워와 더불어 제법 빠른 발을 가졌으며, 내야 전 포지션과 외야수까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은 선수지만, 수비력이 주전 선수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백업 수비요원으로 김연훈, 조동화에 밀린다. 결국 공격력으로 어필하여 주전경쟁을 해야 하는 타입. 2군 본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1군에서 별 성적이 없는 것에 비해 퓨처스리그에 내려가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다.
상무에서는 4번 타자, 3루수로 출장하며 2011년 야구 월드컵 국가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53 11홈런 61타점이란 성적을 남기고 2012년 9월 3일에 제대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야수진의 부상으로 인해 상무 입대 동기인 포수 이재원과 함께 1군에 복귀해 9월 7일 KIA전에서 교체 멤버로 전역 신고를 했다. 이 때문에 결국 한국시리즈를 마친 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5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2,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5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모창민은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6차전은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모창민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9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222를 기록했다.

3.2. NC 다이노스 시절


2012년 시즌 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 훈련을 받다가 이적 통보를 받게 되었다.[12] 2012년 11월 15일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선수 지명을 받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SK 프런트와 스태프들은 SK 팬들에게 욕을 좀 먹었다. 왜냐 하면, 모창민과 이재원은 2012년 전역하여 1군에 등록되지 않았다면 전역선수 신분이라 특별 지명에서 자동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때문에 전역 후 1군에 등록되었을 때도 굳이 등록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13] SK 팬들 사이에선 우리 팀에선 안 터지지만 타 팀에 가면 터질 선수 1순위가 모창민이었는데...

3.2.1. 2013 시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3년 4월 2일 NC 다이노스의 1군 정규시즌 첫 경기인 마산 롯데전에서 팀의 1군 리그 경기 사상 첫 안타와 첫 볼넷을 기록했다.[14] 거기에 경기 당일에 득녀하는 겹경사를 맞이했지만 팀은 져서 약간은 아쉽게 되었다. 더 아쉬운 건 6회 2번째 안타로 출루한 후 주루 중에 허벅지에 통증을 호소했고, 경기 후 2군으로 내려갔다. #[15]
NC로서도 안타까운 것이 부상당한 모창민 대신 1루수로 나온 조영훈이 타격, 수비 모두 부진하기 때문.
4월 21일 목동 넥센전에 1군에 올라왔었으나 주루플레이 도중 부상을 입으면서 다시 4월 22일에 1군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약지 골절이라고한다. 타선의 강화와 수비의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던 NC 입장에서는 날벼락.
5월에는 부상에서 회복되고 마침 돌아온 나성범과 4번 타자인 이호준과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하며 타선에서 활약중. 주로 3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1루수 주전인 조영훈이 빠지면 1루수를 보기도 하지만 5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지옥같은 1루 수비를 보여줬다.
5월 21일부터 23일 친정인 SK와의 원정 3연전에서 쏠쏠히 활약했다. 특히 5월 23일에는 2번이나 홈런을 쳐 주며 친정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기에 그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던 SK팬들은 모창민을 NC에 넘겨준 이만수를 다시 깠다. 친정에 대몿을 박은 모창민
6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선 연타석 홈런을 쳐냈다.
7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5호 홈런을 쳤다. 이 날 1회의 뇌주루로 까이는가 했으나 6회의 호수비와 함께 8회 솔로홈런을 포함 3타수 3안타의 활약을 펼쳐 팀의 2:0 승리에 일조 했다. 참고로 3번인 나성범도 함께 홈런을 치는 덕에 이때 친 홈런은 백투백 홈런이었다.
최근에는 2번 타자로 주로 출전하고 있다가, 7월에 장타가 터지면서 이호준 뒤를 받치는 5번으로도 자주 출장하기 시작했다.
7월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유동훈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쳤다. The 'MO'ment 다음날인 27일에도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쳐서 팀의 위닝 시리즈를 확정지었다.
7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 초 적시타를 쳐서 2루에 있던 김종호를 홈으로 불러들였고, 5회 초에 솔로 홈런을 쳐서 결승타를 만들어냈다.
8월 21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내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8월 21일 경기 설명 이후 2014년 2월까지 이 부분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맞이한 풀 타임 시즌이라 그런지 후반기에 들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1군 108경기 395타수 109안타 12홈런 51타점 16도루 타율 .276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3할을 노릴만 했는데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아쉬울 뿐.

3.2.2. 2014 시즌


4월 11일 양 팀의 투수들이 화려하게 불을 지르는 4월 11일 경기에서 결승 솔로 홈런 포함 5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결승 솔로 홈런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개인 통산 최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24일 SK 와이번스전 8회초에서 쐐기 3점 홈런(시즌 3호)을 쳤다.
5월 현재 타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한 3루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지석훈에게 밀리고 있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와의 1차전에서 선발 이태양을 상대로 시즌 5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5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조지훈을 상대로 시즌 6호 3점 홈런을 쳐냈다.
5월 29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6타수 5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이 날 활약으로 타율을 3할로 끌어 올렸으며 다시 주전 3루수로 기용되고 있다.
6월 10일 두산 베어스와의 1차전에서 정재훈을 상대로 시즌 7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6월 14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송창현을 상대로 시즌 8호 솔로 홈런을 쳐내는 등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벌써 타율이 0.311로 작년 타율 상위권을 맴돌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다만 잘 치는 날은 몰아치고 못 치는 날은 삽만 푸는게 함정.
6월 15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9호 3점 홈런을 쳐내는 등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또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6월 2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에버렛 티포드를 상대로 시즌 10호 2점 홈런을 쳤다. 이로써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였다.
7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여건욱을 상대로 시즌 11호 3점 홈런을 쳤다.
7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오재영을 상대로 2회초 시즌 12호 솔로 홈런, 4회초 시즌 13호 솔로 홈런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에릭 테임즈에 가려져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인데, 모창민이 홈런을 친 게임에서는 팀이 모두 승리하였다!! 7월 기준으로 에릭 테임즈의 공식은 깨지고 모창민의 공식이 이어지는 중.
7월 18일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로 선정되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웨스턴 리그 선수로 참가하였다. 광주 출신인 그에게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인 셈. 초구를 때려 홈런을 날리며 올스타 무대에 신고식을 했다.
더불어 장녀 모하은의 모습이 많은 NC 팬들에게 귀염사를 선사해줬다.
[image]
공교롭게도 하은 양이 입고 있던 유니폼에 '모하율'이라는 마킹이 되어 있어, 이 아이의 정체를 두고 엔갤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뫃으로 본 붕당정치

3.2.3. 2015 시즌


시즌전 등번호를 16번에서 3번으로 변경했는데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4월 16일에 그 이유가 공개되었다.# NC 다이노스구단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등번호 4과 16번을 비워두게 되면서 등번호가 이동된 것이라고 한다.
시즌 전에는 김경문감독이 모창민에게 골든글러브에 도전하라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나 타어강처럼 저주를 받았는지 시즌 개막 후 5경기 4실책으로 최악의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4월 23일 이후로는 대타로만 출전하다가 5월 19일에 노성호와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1군에 올라온 선수는 조평호민성기.
6월 3일 LG와 홈경기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6월 한달동안 주로 대타로 나와 0.167의 월간 타율을 기록.
7월 11일 넥센전에 9회초 무사 1루에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치긴 했지만 다음 타자인 조영훈이 2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힌뒤 2루 주자였던 용덕한과 1루 주자였던 본인이 차례대로 귀루에 실패하여 아웃당하면서 삼중살을 당했다. 팀이 대승을하여 욕을 먹진 않았고 본인의 잘못으로 당한 삼중살이라고 할순 없지만 안타를 치고도 마무리가 아쉬웠다.
7월 21일 롯데전에 7회초 이호준의 대타로 나와서 첫 타석에 삼진을 당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의 경기에서 보여준 내용때문에 납득할만한 모습이었지만 9회초 1:1의 팽팽한 국면에서 1사 1, 2루의 상황에서 타석에서 초구에 병살타를 쳐 순식간에 이닝을 종료시켰다. 결국 9회 말 이민호의 볼질 끝에 팀은 패배.
9월 13일 SK전에서 대타로 나와서 1볼넷 1뜬공으로 큰 활약이 없긴 했지만 포지션 경쟁 중인 지석훈이 끝내기 홈런을 치자 제일 먼저 뛰어나와 좋아해 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9월 20일 넥센전에서 6회 대타로 나와 바뀐투수 김대우의 초구를 노려쳐서 솔로 홈런을 기록하였다.
중반기 까지 2할 초반대 타율을 기록하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후반기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이며 2할 9푼으로 시즌 마감.
그러나 지석훈에게 3루 자리를 빼앗기면서 완전히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구단에서 트레이드 카드로 쓴다는 썰이 있다. 만일 그가 트레이드 카드가 된다면 롯데나 LG가 가장 유력한 팀.[16]
설상가상으로 2015 시즌 후 NC 구단이 FA 시장에 나온 박석민을 4년 96억원에 영입하면서 모창민의 입지는 더욱 위험해졌다. 20인 보호명단에서 풀릴 가능성이 많았고, 덕분에 주전 3루수를 순식간에 잃은 삼성 라이온즈가 박석민의 보상 선수로 3루 보강을 위해 모창민을 뽑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최재원이 지명되었다. 실제로 박석민의 FA 영입 때 최재원과 함께 보호명단에서 풀려있었음이 2019년 최재원의 전역 후 류중일 감독의 언급에서 드러났다.
시즌 후에 펼져진 야구대제전에서 고척 스카이돔 개장 이후 프로선수 첫 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3.2.4. 2016 시즌


2016년 3월 11일 왼쪽 무릎 외측 반월판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외야(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다 부상이 생겨서 김경문 감독은 외야 변경을 취소할 계획.
박석민이 기복있는 모습을 보이고 지석훈도 타격에서 죽을 쑤면서 아무래도 모창민의 부상이 더욱 안타까운 상황.
5월 복귀를 점치고 있으나 5월 말까지도 잠잠한것으로 보아 복귀가 조금 더 미뤄질 듯하다.
7월 7일 복귀 첫 안타를 때렸다. 팀은 이 날 8:4로 승리.
8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7번 지명 타자로 나서 무려 5타수 5안타를 때려내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한 경기 5안타는 자신의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 기록이며, 공교롭게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화전에서 달성했다.
8월 14일 kt wiz전에서는 3회 밴와트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쳐냈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5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하여 5-5 동점을 만드는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 그 다음 날에도 솔로 홈런을 쳐냈다. 0:1로 이겼기에 결승타가 된 건 덤.
9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선발 3루수 5번 타자로 나서 솔로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3타수 40안타 5홈런 20타점 .331 .370 .504 wRC+118.4. 비율 스탯은 나쁘지 않았지만 무릎 부상으로 6월 말이나 돼서야 1군에 합류한 것이 아쉬울 따름.

3.2.5. 2017 시즌



총 136경기 527타석에 나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7개의 홈런과 148안타 90타점을 기록했으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공격 면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부상에서 벗어나 타선의 중심으로 돌아오는데 성공.

3.2.6. 2018 시즌



좋지 않은 타격감으로 시즌을 시작하더니 5월 중순에는 족저근막 파열이라는 부상까지 당하며 팀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하지만 8월 초 복귀전부터 홈런포를 터뜨리더니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멀티 홈런을 쳐내는 등 복귀 이후에만 12개의 홈런과 .604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물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 지난 시즌보다 213타석에나 덜 들어섰음에도 홈런수는 똑같이 17개를 맞췄다.

3.2.7. FA


3루 자원을 노리는 팀들은 많으나 1985년생이라는 나이, 부족한 수비력이 걸림돌이 되어 타팀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갈 확률은 낮다. 사실 구단이나 본인 모두 잔류를 희망하는 상황. 2018년 11월 22일 김종문 단장은 "모창민은 우리 팀에 공헌도도 크고 꼭 필요한 선수다. 빠른 시일 내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히면서 연내에 협상을 마칠 것임을 알렸다.
2018년 11월 28일 3년 최대 20억에 계약을 완료하면서 NC에 잔류하게 되었다. 구단과 선수 모두 강한 잔류 의지를 드러내면서 FA 시장 1호 계약을 맺게 되었다. 6년 전 이호준이 FA로 NC에 이적할 때와 똑같은 기간과 똑같은 금액의 계약.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019년 FA 시장이 예상 외로 얼어붙으면서 조용히 제일 먼저 도장을 찍은 모창민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야구팬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실력은 특급 선수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고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당한 기간인 3년을 보장받았고, 20억이라는 거액도 챙겼기 때문이다. 모창민 본인은 현 FA 상황에 대해 KBO가 FA 상한제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선수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단과 선수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3.2.8. 2019 시즌



시즌 기록은 101경기 341타수 104안타 10홈런 55타점 49득점 3도루 41볼넷 62삼진 타출장 .305/.358/.466 OPS 0.824 wRC+ 124.4. 비율 스탯만 따지면 커리어하이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타격을 보여줬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것과 후반기의 급격한 타격감 저하가 아쉬웠다.

3.2.9. 2020 시즌



시즌 기록은 62경기 136타수 41안타 2홈런 13타점 10득점 8볼넷 22삼진 타출장 .301/.340/.449 OPS 0.789 wRC+ 98.7. 올 시즌도 개막 나흘만에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강진성에게 주전 1루수 자리를 내주었고, 9월에는 부진과 허리 뭉침으로 45일정도 1군에서 자리를 비웠다. 선발 출장 기회가 적어져서인지 타격성적도 예년만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모창민의 타격 폼
타격의 정교함/장타력/주력을 고루 갖춘 타자. 주전으로 한 시즌에 10개 이상의 홈런, 3할 근처의 고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준수한 타격 능력과 손쉽게 장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펀치력[17], 두 자릿수의 도루는 능히 해낼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졌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승부를 좋아해서 경기 흐름을 깨뜨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배트 적극성이 굉장히 높은 타자[18]이며 초구 적극성도 40%를 넘나들어, 40% 중반을 꾸준히 기록하는 나성범 정도는 아니지만 타석에서 초구를 노리는 경향이 강하다. 스트라이크 존 내 공에 대한 배트가 나올 확률인 I-swing이 71.9%로 굉장히 높고, 존 밖 공에 대한 배트가 나올 확률인 O-swing 역시 34.4%로 높아 헛스윙도 많다.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낮고, 통산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고작 5푼에 불과한 것은 이 때문.
모창민의 다이빙 캐치[19]
수비 면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모창민의 3루수 도전기가 NC 3루수 경쟁의 역사라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창단 이후 2014년까지 주전 3루수로 출장하면서 수비이닝을 그럭저럭 소화하다 2015 시즌에는 개막 직후부터 처참한 실책갯수를 적립하며 주전 3루수 경쟁에서 지석훈에게 밀려났다. 그 지석훈도 타격면에서 부침을 겪자, 팀이 2016 시즌 시작 전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석민을 영입하게 되면서 주전 3루수 자리를 또다시 위협받았다. 그러나 모창민의 타격능력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김경문 감독에 의해 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훈련 과정에서 무릎 부상이 생겨 포지션 변경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2016년 6월 말 부상에서 회복해 1군에 뒤늦게 합류한 이후에는 박석민에 이은 백업 3루수로 출장했다. 2017 시즌부터는 박석민이 잦은 부상으로 드러눕기 시작하면서 3루수 백업인 지석훈과 비슷하게 200이닝 남짓한 3루수 수비이닝을 소화했으나, 이때부터 1루수 출장이 283이닝으로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다. 송구 부담이 없어지면서 주전 1루수 스크럭스의 백업으로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으며, 2018 시즌에는 박석민이 완전히 드러누움과 동시에 3루수로 거의 나서지를 못하면서 노진혁에 이은 백업 3루수로 더 자주 출장했다. 허나 필딩율은 2017년 9할을 살짝 넘겼고 2018년에도 0.931의 처참한 수준.
2019년에는 3루 수비에서 완전히 빠지며[20] 주전 1루수로서 545이닝을 소화[21]했는데, 필딩율 0.991로 3루수 시절보다는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따금씩 호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모창민의 도루[22]
주루 면에서는 2015 시즌까지 도루 시도도 많이 했고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며 주루RAA도 리그 3루수 중 가장 높았다. 허나 은근히 부상을 자주 당해 2016~2019년동안 2017년만 제외하고는 부상으로 재활군에 한번씩 내려가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다 보니[23] 훌륭한 주루 툴을 못 써먹고 있다. 발 자체는 느리지는 않지만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주루를 자제해야 하는 상황.

5. 별명


  •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못하는 선수는 일희일비하며 모두 까이는 분위기이지만 유독 자주 까이는 편이었는데, 모창민은 야구를 잘 한다고 몿으로 통하며[24] 팀에 창민이 또 한명 있어 헷갈리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몿으로 부른다. 이렇게만 불리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본명을 말하면 어색해하는 갤러도 있는 편. 그래서 모창민과 딱히 상관없는 곳에서도 '못'을 '몿'으로 치환하는 것이 NC 팬들 사이의 공식이다.
  • 엔갤에서는 모창민을 갤주로도 부르고 있다. 디시에서 갤주의 특징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타격 포텐이 있었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모창민을 까는 별명이었다. 베테랑으로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2017 시즌 부터는 지명타자로 전환, 좋은 타격을 보이자 갤에서는 애증을 담아서 더욱 갤주[25]로 부르면서 찬양하고 있다. 한 방이 있는 선수다 보니, 2019시즌 전반기에는 모창민이 잦은 뜬금포와 끝내기 홈런 등 연이어 좋은 활약을 펼치자 노성호, 강윤구, 김태진, 이민호 등의 갤주 후보군들에게 갤주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다음 날 귀신같이 공수에서 폭망하는 기복있는 패턴이 이어지고, 시즌 내내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제대로 주루를 하지 못함은 물론 수비에서도 사실상 그냥 세워놓은 듯한 활약을 보이자 "역시 갤주는 갤주다" 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아마 은퇴 전까지 갤주자리는 모창민 고정일 듯.
  • 여기에 2020 시즌 강진성이 부상당한 모창민의 백업으로 들어와 시즌 초반 타율 4할 중반대의 미친 활약을 펼치자 그동안 보여준 모창민의 행보가 또한번 재평가되며 "역시 갤주님" "엔씨밖에 모르는 사람" 등으로 불리며 찬양받고 있다.반박불가... 지금의 엔씨를 빚어낸 선수...jpg 이제는 미래의 프런트, 미래의 단장님이 되어달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엔씨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빛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 상기한 강진성의 맹활약으로 주전 1루수 자리를 위협받자 이호준 코치가 "모창민이 애기가 된 거 같다"고 얘기를 해서 모애기라는 별명이 생성되었다. 애기란 '어린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모처럼 경기에 스타팅으로 출장하면 의욕이 넘치다보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26] 마침 아가는 아가야 밈이 디시에서 흥하고 있던 차라 엔갤에서도 관련 드립이 나왔다.#
  • 매년 정규시즌이 개막한 후 봄에 유독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남겨서 NC 팬들은 봄몿으로 부르곤 한다.
  • 2018 시즌 왕웨이중의 선발 경기에서 중요한 타점을 뽑아주고, 두 번째 경기에선 홈런까지 치며 왕웨이중 경기에서 활약한 덕에 대만 현지에서 대만의 친구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왕년에 한국에서 게리 셰필드라울 몬데시박찬호 도우미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의 별명. 한국에도 가생이닷컴 등 해외반응 번역 사이트를 통해 이 별명이 역수입되었고, 이름에서 유래한 '몿'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히 인상깊은 별명이 있던 선수가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도 가끔 이 별명이 쓰이곤 했다. 왕웨이중이 1년만에 팀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별명.
  • SK 와이번스 시절 별명은 모리아노[27], 에너자이저[28], 모잉여, 모레기, MCM, 몿칠놈 등. 비슷한 포지션의 툴플레이어였고 모창민보다 후순위로 지명된 롯데 전준우의 포텐이 먼저 터져버리면서 2008년 SK의 신인지명은 전거몿으로도 불렸다.

6. 기타


  • 팀 동료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결같이 평이 좋다. 성실하고 재미있다는 듯. 안경현 해설이 중계에서 말하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굉장히 성실한 선수였고, 지금도 하루에 공 1000개정도는 쉬지도 않고 치는 것 같다고 한다.
  • 가장 자신있는 신체 부위는 허벅지, 학창시절 별명은 모기 였다는 것이 2019년 플레이어데이 때 밝혀졌다. 엄청난 훈련량만큼 몸이 엄청 탄탄한데, 팀 동료 이명기엔튜브 인터뷰에서 밝히길 몸이 "진짜" 좋다고 한다.[29] 조동화 등 동료들에게는 잘생겼다는 얘기도 듣는다(?)#
  • 상당한 대식가라고 한다. SK 시절 채병용이 "학창 시절에는 밥 12공기 정도 먹어서 자신의 별명이 밥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모창민을 따라갈 수 없다. 내 별명이 밥통이면 모창민 별명은 식신이다"란 말을 한 걸 보면 맘먹고 먹으면 그 이상을 먹는 듯 하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그래서 홈런을 치면 티보잉 세레머니를 한다. 본인 말로는 상무에서 복무하던 시절 교회에서 티보잉 영상을 보고 따라하게 됐다고. 사인에도 십자가가 들어간다. 2020 시즌에는 보호대에 John 3:16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 2017 시즌 NC가 가을야구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모창민의 응원가도 지상파 중계방송에 여러번 나왔는데, 한 네티즌이 네이버 지식in에 "환타를 쳐드세요 곱창님"[30]이 어느 선수의 응원가인지 물어보는 글을 남긴 것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광주광역시 출신이기 때문에 서남 방언을 쓴다. 원래 광주는 어휘나 단어는 그렇게 심하게 쓰지는 않고 억센트만 쎈데, 같은 광주 출신인 이호준 코치가 모창민의 말투를 듣고서 해남군 땅끝마을 할머니들이 쓰는 말투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호남 사람들이 봐도 사투리가 꽤 심한 듯 하다.[31] 들어보자.
  • 은근히 NC와 관련한 기록에 많은 이름을 올린 사나이로, 특히 NC 다이노스의 홈 구장에 관련된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마산 야구장의 첫 안타와 첫 볼넷[32], 마지막 끝내기 홈런과 마지막 아웃, 창원 NC 파크의 첫 도루와 첫 끝내기 홈런 등의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NC 다이노스의 첫 홈 구장의 마지막 끝내기새로운 홈 구장의 첫 끝내기를, 그것도 모두 끝내기 홈런으로 기록했다는 점도 특이한 부분.
  • 한때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다. SK에서 주어진 기회에 비해 안습한 플레이를 보였었고, 이적 후에는 SK에서 기회가 없었다고[33] 인터뷰한 것 때문에 곱게 보지 않았으나, 2019년 NC 다이노스 모창민 플레이어 데이 때 공식 원정응원단을 파견했고 모창민의 타석 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제는 그것도 옛말인 듯 하다.
  • 2019년 스토브리그 최대어 양의지를 NC로 영입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유인 즉슨 2018 시즌이 끝난 후 김택진 구단주와 선수단이 만난 자리에서 김택진 구단주가 팀에 필요한 것을 묻자, 모창민이 "양의지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택진 구단주가 그 자리에서 바로 옆에 있던 황순현 사장에게 영입 검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34][2016년 박석민 영입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컨텐츠로 스프링캠프에서 모자에 카메라를 달고 내야 펑고를 하는 모습이 엔튜브를 통해 업로드 되어 팬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 2019 시즌 종료 후 팬 감사 행사인 타운홀 미팅을 맞아 노진혁과 페어를 이루어 무엇이든 물어보살 컨셉으로 팬들에게 고민상담을 해 주었는데 무당으로 분해 행사에 참가한 팬들과 엔갤러들을 열광시켰다. 사진12 모창민이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
  • 팀 선배 지석훈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팔랑귀라고 한다. 특히 몸에 좋은 거라면 닥치는대로 시도해 보는 모양.#
  • 빠던이 호쾌하다. 2020시즌 KBO리그가 ESPN에 중계되자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홈런을 때려내고 배트플립을 하는 모습이 해외 언론과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 이에 모창민은 "(ESPN 중계를)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 항상 그런 배트플립을 해 왔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고 한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8
SK
91
130
.223
29
5
0
1
20
30
10
12
.287
.285
2009
92
114
.237
27
5
2
4
17
31
5
10
.298
.421
2010
65
60
.183
11
2
0
1
2
14
5
5
.246
.267
201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2
15
32
.250
8
2
0
1
2
7
2
2
.294
.4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3
NC
108
395
.276
109
24
3
12
51
57
16
38
.339
.443
2014
122
419
.263
110
15
0
16
72
62
14
37
.320
.413
2015
103
214
.290
62
14
0
6
35
23
5
18
.340
.439
2016
63
133
.331
44
8
0
5
20
16
3
10
.370
.504
2017
136
474
.312
148
25
3
17
90
64
9
43
.361
.485
2018
81
287
.279
80
10
1
17
62
38
2
23
.328
.498
2019
101
341
.305
104
21
2
10
55
49
3
34
.358
.466
2020
62
136
.301
41
10
2
2
13
10
0
9
.340
.449
<color=#373a3c> KBO 통산
(12시즌)

1039
2735
.283
773
141
13
92
439
401
74
239
.336
.445
[1] 2015 시즌까지는 주로 3루수로 나섰으나 기본적으로 수비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고, 이후에는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1루수지명타자로 나서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급할 때는 2루도 소화 가능.[2] 이름이 뭐예요? (모창민!) 전화번호 뭐예요? (모창민!) 이름이 뭐에요? (모창민!) 시간좀 내줘요 (모창민!) '뭐'와 '모'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에서 착안한 듯.그리고 What's your name할 때 잘 들어보면 모창민으로 들린다.[3] 아 NC의 모창민 (모!창!민!) 힘차게 거침없이 홈런 (모!창!민!)(x2)[4] 팀 동료 노진혁, 양의지, 이재학, 이명기, 임창민 등이 소속되어 있다.[5] 그런데 하필 소속된 두 팀의 3루수가 모두 리그 정상급 선수인 최정박석민. 최정을 건너 NC 이적 이후 3년만에 박석민이 영입되며 또다시 주전에서 밀리는 불운을 겪었다(물론 부상도 있었지만). 그러나 본인이 지명타자로 전환되고 박석민의 2017시즌 부진과 함께 이제야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6] 리틀 김성근이라 불리는 이연수 감독이 부임한 2001년부터 강도 높은 지옥훈련 아래 성균관대학교 야구부는 황금기를 열게 된다. 당시 성균관대에는 모창민 외에도 넥센 히어로즈김태완SK 와이번스김연훈도 있었다. 투수 중에는 이우선, 허유강, 황재규 등이 포진.[7] 다만 성대 4학년 때는 나지완과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 나지완이 11홈런을 친 반면 모창민은 단 2개.[8] 이 때 대학 대표팀에 같이 갔던 선수로 전준우, 허도환 등이 있다.[9]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가 프로처럼 나무배트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라는데 모창민은 나이가 좀 되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만 나무배트를 썼다. 고교 시절에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다.(한국대학야구는 2000년부터, 한국고교야구는 2004년부터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10] 추후 김성근 감독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모창민과 나지완 중 누구를 먼저 뽑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사전 테스트 당시 나지완의 인상이 좋지 않아서 모창민을 먼저 뽑고 나지완은 2픽으로 뽑을려고 했다고. 그런데 KIA 타이거즈가 1픽으로 물어가더니 2009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크리. 그러나 실상은 나지완은 당시 대학 최고의 타자로 모창민보다 높게 평가받으며 리그 초토화시켜서 1라운드가 아니면 지명할수 없었다. 기아가 패스했어도 삼성이 지명했다는게 정설.[11] 김성근 감독이 알았다면 성향상 입대를 막았을 거겠지만, 지금 보자면 잘 갔다 온 셈이다.[12] 2020년 엔튜브 영상에서 비하인드가 공개되었다. 당시 플로리다 캠프에서 훈련만 하느라 NC로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조차 안하고 있어서 평소대로 밤 11시에 잠을 잤는데 새벽 4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룸메이트이던 김성현이 전화를 받고 모창민을 깨웠는데 처음에는 한밤중이라 꿈인 줄로 알았다고 한다. 둘이 눈이 마주친 후 핸드폰을 봤더니 문자랑 카톡이 정말 많이 와 있었다고 한다. 입국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실망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고 하며, 드디어 이호준에게서 해방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곧 이호준도 FA로 NC에 오게 되어 절망했다며 너스레도 함께 떨었다.[13] 군보류 선수는 제대해도 선수로 등록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보호선수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1군에 등록하면 해당 등록선수도 보호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같은 해 시즌 막바지에 두산 베어스에서 정수빈의 부상으로 민병헌이 등록된 경우도 마찬가지다.[14] 모창민이 친 1호 안타 볼과 1호 볼넷 출루 볼은 NC 다이노스가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15] 방송 중 해설자는 모창민이 만지는 부위를 보고 햄스트링 부상인것 같다고 추측했으며, 그렇다면 부상이 오래 갈 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16] 롯데는 황재균이 FA 자격을 얻어 이적할 가능성 때문에 한 시즌을 맡길 수 있는 3루수가 필요한 상황이고, LG 역시 정성훈의 노쇠화 등으로 3루수가 필요하다. 루이스 히메네스가 있다곤 하지만 문제는 백업 3루수. 히메네스의 일시부재시 밑고 맡길 3루수가 정성훈밖에 없다는게 문제다.[17] 특히 높은 코스의 빠른 볼을 공략해 장타로 연결해낼 정도로 힘 하나는 타고났다.[18] 2019 시즌 배트 적극성 50.4%로, 300타석 이상 선 1루수 중 1위의 기록이다.[19] 2019년 9월 23일 사직 롯데전영상[20] 박석민이 그나마 반등하며 3루수 자리에 일단 섰고, 노진혁, 지석훈, 이상호, 김태진이 3루를 번갈아 맡았다.[21] 2019 시즌 팀 내 1루 수비이닝 1위 모창민, 2위 이원재(369이닝), 3위 이상호(181.1이닝).[22] 2017년 10월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영상[23] 2016년에는 무릎 수술을 했고, 2018년에는 족저근막 파열 부상을 겪었으며, 2019년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49일간 엔트리에서 빠졌다. 2020년에는 하체쪽 부상은 아니지만 수비 중에 어깨와 베이스가 충돌하면서 부상을 입어 32일간 전력에서 이탈했고 여름에 입은 허리 부상으로 10월 초까지 퓨처스리그에 머물렀다.[24] 도깨비불 현상에 의해 모창민의 이름을 치는 중에 자연스레 몿이 나오게 된다. "몿"으로만 검색해도 이 문서로 연결된다.[25] 그 전에도 그런 별명이 있었지만 2017년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빈도가 증가했다. 그만큼 그동안 팀과 팬들에게 기대치는 높았던 대신 실망감도 컸었다는 뜻.[26] 2020년 6월 27일 잠실 두산전 영상의 1시간 10분경 언급.[27] 모창민의 롤 모델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대표적 호타준족이자 돌글러브의 소유자인 알폰소 소리아노다. 그런데 롤모델의 대표적 이미지 중에 하필이면 돌글러브 속성까지도 닮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28] 지칠 줄 모른다고 해서 당시 이광길 2군 코치가 지어준 별명. 문학구장 가로전광판의 선수별 닉네임에도 이 별명이 반영됐다.[29] 여러번 강조했다.[30] 응원가의 정확한 가사는 "안타를 쳐주세요 모창민" 이다.[31] 이호준 왈, "저는 일반 전라도 사투리, 이종범 위원은 아재 사투리, 저기 있는 창민이는 저쪽 땅끝마을 해남쪽 할머님들이 쓰시는 사투리."[32] NC 다이노스의 1군 진입 후 기준.[33] SK의 철벽 내야진 속에서도 김성근감독은 모창민을 믿고 당시 능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주었다. 백업이나 대수비로 들어간 경기가 많긴 하더라도 군입대 전 3시즌 동안 SK에서 출장경기수 248경기 출장은 적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본인이 주어진 기회를 차버린 적이 많았다.[34] 원래는 같이 FA로 나온 이재원도 고려해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양의지와 계약 이전에 SK가 최정과 함께 팀의 프랜차이즈라며 잽싸게 4년 69억으로 재계약을 했다. 결국 125억을 주고 양의지를 산 후 2019년의 결과는.... 이 소식이 알려지자 솩갤에서는 이젠 팀 나가서도 저러냐며 또 모창민을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