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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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용희 (金容熙 / Kim Yong-Hee)
생년월일
1978년 10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강릉시
신장
175cm
포지션
미드필더
유스팀
중앙대학교 (1997~2000)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2001~2003)
부산 아이콘스 (2004)
광주 상무 (2005~2006)
부산 아이파크 (2007)
전북 현대 모터스 (2008)
강릉시청 축구단 (2009)
인천 코레일 (2009)
페르시바 발릭파판 (2010~2011)
스리위자야 FC (임대) (2011)
아레마 말랑 (2011~2012)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5. 관련 문서


1. 소개


대한민국수비수. 강릉시 출신이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운 기동력과 빼어난 측면돌파로 인해 폭주기관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무명 시절을 극복하고 머리를 밀어 빡빡이로 만들어 활약할 정도로 강렬한 의지를 보이며 대기만성형 선수로 거듭났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강릉중학교와 강릉상고를 거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중앙대학교 시절까지는 스트라이커를 맡았으나, 프로 입단 이후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동하였다.

2.2. 프로 경력


2001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데뷔했으며, 당초에는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던 무명 선수였으나 데뷔 시즌에 가이모토 코지로가 부상을 입자, 그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우측 수비수로 낙점받았다.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서 단번에 주전을 꿰차며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신인 시절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러한 활약으로 국가대표팀 상비군에 발탁됨과 동시에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1] 이후 2003년까지 성남 일화에서 뛰며 성남의 3회 연속 K리그 우승에 한 몫을 담당했을 정도. 그야말로 거칠게 없었던 상승세를 타며 활약했다.
하지만 2003년, 이기형, 박충균 등이 성남에 영입되면서 김용희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거의 출장하지 못하며 위기를 못하게 되고, 마침 윙백을 찾던 이안 포터필드에 의하여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부산이 김용희 영입에 지불한 금액은 약 3억. 연봉은 1억 3천만원에 3년 계약이었다고 한다. 김용희를 4-4-2의 우측 윙백[2]으로 쓰려고 영입했다.
2004년 부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당시 이안 포터필드의 극단적인 수비전술은 김용희 선수의 오버래핑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김용희는 그대로 광주 상무로 군입대를 하게 되고, 광주 시절에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는 올스타전에 선발될 정도로 리그 내에서 수준급 윙백으로 인정받았다.
제대 후인 2007년 부산으로 다시 복귀하였으나, 김용희 선수는 광주 시절 기량이 온데간데 없었고 여기에 2007년 이안 포터필드의 급작스런 사임과 박성화의 야반도주 사건등 부산 선수단 분위기가 막장으로 치달았다. 김용희도 코칭 스태프와의 마찰설이 돌면서 활약을 못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2008년 마침 측면 수비수를 찾고있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1:2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트레이드 된 선수는 최광희, 최철우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기대에 걸맞는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고 결국 1년만에 팀에서 방출되어 강릉시청 축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선보이다 시즌 도중 인천 코레일으로 팀을 옮겼고, 시존 종료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무대로 진출해 페르시바 발릭파판, 스리위자야 FC, 아레마 말랑 등의 팀에서 활약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왕성한 활동량과 거친 몸싸움이 특기인 터프한 수비수였다. 활동량을 보고 윙백으로 낙점하여 이안 포터필드가 영입을 추진하며 4-4-2의 윙백으로 썼다.
광주 상무시절에는 지능적인 오버래핑으로 곧잘 공격포인트도 기록했던 선수로 왕성한 활동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지만, 국가대표급으로 뽑히기에는 모자란다는 평을 받았다.

4. 기타


아마추어 시절에 공격수였으나 프로 데뷔 후에 수비수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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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2006년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당시에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가발을 쓰고 등장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브라질호베르투 카를로스를 좋아하는 선수로 꼽았다.

5. 관련 문서


[1] 다만 신인상은 최종적으로 송종국이 수상하게 되었다.[2] 인터뷰를 보면 잉글랜드식이라고 쓰여 있는데, 아무래도 첼시 FC레딩 FC에서 감독 경력을 한 것을 보고 말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