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국

 

'''송종국의 역임 직책'''



'''송종국의 수상 이력'''

[image] '''신인상'''
'''2000년'''

'''2001년'''

'''2002년'''
양현정
(전북 현대 모터스)

'''송종국'''
'''(부산 아이콘스)'''

이천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image]
'''송종국
(宋鍾國 / Song Chong-Gug)'''

'''생년월일'''
1978년 3월 5일[1] (46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종교'''
무종교개신교[2]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 조건'''
177cm, 74kg, O형
'''가족'''
형, 누나, 1남 1녀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2번
부산 아이콘스 - 24번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24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 8번
울산 현대 - 14번
'''학력'''
명원초등학교 (1985~1991)
배재중학교 (1991~1994)
배재고등학교 (1994~1997)
연세대학교 (1997~2001)
'''프로 입단'''
2001년 부산 아이콘스
'''소속 팀'''
부산 아이콘스 (2001~200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2~200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10)'''
알 샤바브 FC (2010~2011)
울산 현대 호랑이 (2011)
톈진 터다 (2011~2012)
'''국가대표'''
1998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1999 FIFA U-20 월드컵 국가대표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국가대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
2006 FIFA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국가대표
60경기 3골
U-23 2경기
U-20 11경기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축구 해설자, 방송인. 4강 신화를 기록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활약했다.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경기에 교체 없이 출장[3]했으며 대표팀의 마지막 골까지 기록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일찍이 붙박이 주전으로 발탁되어 탁월한 볼 관리, 완급조절, 강철 체력, 슈팅 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였다. 특히 당시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최고 미드필더라 불린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은 역대급 수비력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4][5]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간 것은 박지성, 이영표 등이였지만, 2002년 당시만 보면 가장 두드러진 선수는 단연 '''송종국'''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가장 먼저 송종국을 데려가려 했지만, 이미 다른 팀과 계약을 해버려 그 다음 생각했던 박지성, 이영표 등을 데려갔을 정도. 2002년의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대표팀 역사를 통틀어 최정상급 윙백 라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송종국 역시 박경훈과 함께 한국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성기가 짧았던 것이 무척 애석하지만,[6] 그래도 한국 축구 최전성기에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다. 물론 방송에서도 피구를 막는 장면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니 너무 식상하다는 팬도 있지만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팀이나 선수입장에서도 역대급 임팩트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부산 아이콘스


연세대학교졸업하고 2001년에 부산 아이콘스에서 프로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K리그의 떠오르는 수비수로 활약하였다.[7]

2.1.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image]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부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며 맹활약, 결국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이 400만 달러[8]의 이적료로 영입해가게 된다. 당시 페예노르트 외에도 아스날 FC에서 영입 제안을 했으나 구단간 사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부산 쪽이 시간을 끌어 영국 이적시장 시간을 지났다고 한다. 화가 난 송종국은 구단에서 짐을 모두 빼 집으로 와버리는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이후 아직 이적시장이 닫히지 않은 페예노르트로 결국 이적하게 되었다고 꽁병지TV에서 송종국이 스스로 밝혔다.[9] 최근과는 달리 그 때만 하더라도 에레디비시에는 유럽 수위의 리그로 통했고 페예노르트 또한 2001/02 UEFA컵우승하였고, 2002/03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한 강호였기에 주전경쟁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아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꽁병지TV에서 그 당시 자신은 히딩크 감독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고 누구랑 붙어도 다 이긴다는 마인드였다고 한다. 아스날에 갔어도 잘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김병지 선수는 제 1의 주멘이 되었을 거라고 깠다.송종국은 그당시 데뷔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는등 대활약을 펼쳤다.
이 당시 부산 아이콘스 측은 송종국이 달고 있던 24번을 '''영구결번'''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는데 그 당시만 해도 김주성(16번)과 같이 부산에서만 계속 뛴 선수에게만 이뤄진 영구결번을 달랑 2년 정도 뛴 선수에게 준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 논란을 무시하고 24번을 영구결번하기는 했으나, 송종국이 국내 복귀 후 이적료로 높은금액을 지불한 수원으로 이적하자 결국 슬그머니 영구결번이 없어졌다.
페예노르트 이적 후엔 바로 주전으로 풀타임 활약을 펼치며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특히 2002/03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 유벤투스 전에서 폭풍 활약은 지금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인생 경기 중 하나. 당시 파벨 네드베드, 에드가 다비즈,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릴리앙 튀랑, 다비드 트레제게 등이 활약하던 유벤투스는 명실공히 유럽 최강의 팀이었으나 월드컵을 마치고 곧장 날아온 동양의 한 무명 선수에게 측면을 탈탈 털리며 힘겨운 원정 무승부를 기록한다.
[image]
페예노르트 시절. 바로 옆에 반 페르시도 보인다.[10]
이후 페예노르트는 유럽 대항전에서 낙마하였으나 송종국은 이후로도 팀내 붙박이 주전 자리를 굳힌 채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한다. 송종국 축구인생에선 이때가 최고 정점이었고, 연이은 부상으로 그 이후로는 차츰차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다. 그 다음 시즌에도 초반엔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자신을 기용해준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감독의 사임과 신임 루드 굴리트 감독과의 불화(송종국이 예스맨이라는 이유로 싫어했다고 한다), 잦은 부상 및 재활, 꽤 오래 머물렀음에도 네덜란드어를 잘 못하던 현지 부적응, 그리고 2003년에 결혼한 김정아 씨와의 불화건으로 선수생활에서도 문제를 보이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1.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후 송종국을 데려간 팀은 수원이었다. 수원의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고, 멀티포지션 능력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등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하였다. 2002년 당시의 그 실력이나 위상까지는 아니었으나 멀티 포지셔닝 능력을 살려 나름 괜찮은 활약을 했다.
여담으로 K리그1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히는 2008년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전반 36분 결승골을 넣고 곽희주, 서동현 등과 함께 기성용을 도발하는 세레모니를 펼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1.4. 알 샤바브 FC


계속된 부진에서 통 탈피할 기미가 없어 수원에서 입지가 줄어들던 2010년 6월, 윤성효 감독으로 수원의 감독이 바뀌는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이 거액의 주급으로 이적을 요청해왔고, 결국 알 샤밥으로 이적하였다. 2010년 알 샤밥은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 역시 4강에 오른 성남 일화와 자웅을 겨루게 되었고 송종국은 1, 2차전 두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결과는 1차전 홈경기 4-3(승), 2차전 원정경기 0-1(패)로 결승 진출 실패.

2.1.5. 울산 현대 축구단


이후 반 시즌만에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2011년 2월에 K-리그의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 김호곤 감독 밑에서 새로이 싹 바뀐 울산의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2.1.6. 톈진 터다


울산에서 주전을 먹고 뛰던 중 갑작스럽게 울산으로부터 7월 5일자로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고 바로 중국텐진 터다로 이적하게 된다. 울산 측의 설명으로는 송종국과의 계약옵션에 따라서 연봉 및 계약기간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서로 이견이 있어서 결국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게 되었고 중국의 텐진 터다가 영입하게 되었다고... 송종국의 영입에 있어서는 전 수원 삼성 소속이자 현 텐진 소속인 리웨이펑의 추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2012년 1월 10일, 텐진 터다로부터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된다. 잘 하긴 했지만, 나이가 있어서 새로운 한국인 미드필더로 아시아 쿼터를 채우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밀리게 되었다는 듯.

2.1.7. 현역 은퇴


2012년 3월 27일, 은퇴를 선언하였는데, 그 이유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도저히 선수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고... 사실 송종국의 어머니는 운동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11] 갑자기 쓰러지고, 송종국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만다. 큰 충격을 받은 송종국[12]은 더 이상 축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항간에는 '이제 갈 데가 없어서 은퇴하는거 아니냐'라는 얘기도 나왔는데, 실제 여러 구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2.2. 국가대표 경력



2.2.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본인의 최전성기 시절이었던 한일월드컵'''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며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하게 된다.[13]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루이스 피구 를 지워서 이영표와 더불어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14]

터키와의 3/4위전에서는 공격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그래서 비록 차두리의 몸 을 맞고 굴절되어 들어가긴 했지만 중거리 슛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그의 골로 경기 결과는 2대 3으로 마무리.
단일 월드컵 최장시간 출전한 한국 선수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687분을 뛰었다.[15] 이운재와 타이 기록이지만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로 국한시켜보면 단연 유일하다. 게다가 송종국은 단일 월드컵에서 출장할 수 있는 최다 경기인 7경기에 모두 나와 풀타임을 뛰었고, 거기에 한국은 2002 월드컵에서 연장전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한국 축구사에서 도저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이처럼 월드컵 내내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02 월드컵 이후 한국선수들의 유럽 이적 돌풍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는 박지성, 이천수 등도 아닌 송종국이었다.

2.2.2.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2002년 월드컵 때 가장 각광받던 선수였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한 폼 저하로 대표팀에서의 위상이 많이 변했다. 마침 2005년 K리그로 다시 돌아오는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그 해 대표팀 경기를 한 차례도 치르지 못했고, 월드컵 직전인 2006년 5월 23일 세네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했다. 소속팀 수원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기 때문에 우측 풀백으로서의 기량은 의문기호가 붙었고, 결국 평가전에서 수원에서 송종국 대신 우측 윙백을 맡고 있던 조원희가 주로 우측 풀백을 맡게 되지만 수비력에서 혹평을 받자 왼쪽 풀백에서 김동진이 맹활약하자 이영표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16]
이후 23인 최종 명단의 한 자리를 두고 이제 막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경기를 치르던 차두리와 경쟁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풀백 몇 경기 뛰었다는 것만으로 수비력을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사실상 차두리의 탈락이 유력하게 점쳐졌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2002년때의 위상과 비교하면 굴욕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1차전 토고와의 경기에만 선발 출전했지만 매우 부진하였고, 이후에는 좌동진-우영표로 풀백 라인을 가동하면서 송종국의 월드컵 커리어가 마무리되었다.


2.2.3.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이어진 2007년 AFC 아시안컵에도 선발되었지만 세간의 인식을 뒤집진 못했다. 이 대회에서 공수 모두 답답한 경기력을 보인 대표팀의 몇 안되는 성과물로 주목받은 양풀백 김치우오범석과는 달리 송종국은 공수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뻥크로스나 날리며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결국 허정무호 출범 이후로는 오범석이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사실상 낙마하게 된다.
2011년엔 국대에 발탁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종종 떴지만, 예전 송종국이 해 오던 롤을 차두리가 잘 소화해주고 있으며 백업으로 오범석, 최효진 등이 있기에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지 못했다.

2.3. 기록



2.3.1. 부산 아이콘스


  • K리그 컵 준우승 : 2001

2.3.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KNVB 컵 준우승 : 2002-03

2.3.3.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우승 : 2008
  • FA컵 우승 : 2009
  • K리그 컵 우승 : 2005, 2008
  • 대한민국 슈퍼컵 : 2005
  • A3 챔피언스컵 : 2005
  • 팬퍼시픽 챔피언십 : 2009

2.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3위 : 2007
  • CONCACAF 골드컵 4위 : 2002
  • FIFA 월드컵 4위 : 2002

2.3.5. 통산 성적



2.3.5.1.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11
0
U - 23
2
0
A 대표
60
3
종합기록
73
3

2.3.6. 주요 개인 수상


  • K리그 베스트 XI : 2001
  • K리그 신인상 : 2001
  • 백상체육대상 최우수신인상 : 2001
  • AFC 선정 11월의 선수 : 2001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17]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 2013

2.4. 플레이 스타일


CM 2002 당시 송종국의 포지션[18]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필요 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이 멀티 플레이어를 중시하는 히딩크 감독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이후로는 오른쪽 풀백으로 많이 회자되지만 초창기에는 '포스트 홍명보'라고 불리며 스위퍼로 주목받았다.
일단 외모로는 호리호리해 보이고 말씨도 운동선수답지 않게 온화하지만, 피지컬이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2002 월드컵 전 경기에서 687분 풀타임을 뛰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력이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피구는 유럽 무대에서도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는데, 이런 루이스 피구를 상대로 어깨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다.
또한 양발을 잘 구사했다. 전성기 때는 오버래핑 능력이 매우 출중했고 라 크로케타로 상대 윙백/풀백도 쉽게 벗겨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가며 날리는 중거리 슛도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페예노르트 시절 부상과 폼 저하를 겪으면서 공격적인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맨 위의 프로필에서 보이듯이 '''전성기는 굉장히 짧았다.''' 2001년에 프로에 데뷔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2년 ~ 2003년에 정점을 찍었으나, 그 이후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완만하긴 하지만 내리막길 일변도였다.

3. 은퇴 후


은퇴 후 한동안 TV조선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안 그래도 수원 경기 많이 해 주는 채널인데 중립적이지 못하고 친 수원적 해설을 한다고 얘기가 있다.
1년 차에는 발음이 꽤 부정확하고, 말의 리듬과 높낮이가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조금 횡설수설 전달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2년차에 접어든 2013년에는 해설 외에도 방송 짬밥이 많이 쌓였는지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며 농담과 선수 사생활, 왕년 전성기 영원히 고통받는 피구.등을 언급하는 류의 완급조절도 능숙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킥 오프 후 20분 정도 지나고 경기 상황이 급박해지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간다.
2013년에 TV조선에서 K리그 중계를 중단한 이후에는 MBC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김성주가 MBC와 축구 중계 캐스터 계약을 맺은 덕분에 아빠! 어디가?에 이어 김성주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 이후로는 차차 예능 쪽으로도 활동을 넓히기 시작했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 라디오 스타 등에도 출연했으며, 고정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가 대박이 나자 지아 아빠로 유명해지고 국민 딸바보로 등극하며 불멸의 국가대표 시즌 2에도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2013년 11월에는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인 풋볼데이의 CF에 출연했다. 1인 4역으로 감독, 행정가, 팀 닥터 등을 연기했는데 그중 압권은 자그마치 '''아랍 구단주(...).''' 능청스러운 아랍어 연기가 일품이다. CF 영상
2002 한일 월드컵을 보았던 세대들에게는 '''저 사람이 정말 피구를 막았던 그 송종국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송에 굉장히 잘 적응하고 있다. 토크쇼에 나오면 아예 저 피구 막았다는 이야기를 곰탕마냥 우려먹는 기믹을 얻었을 정도(…). 안정환도 라디오 스타에서 농담으로 '방송 많이 하더니 변했어'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다.
2014년에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중계를 위해 브라질 현지에 입성해서 열심히 해설을 하는 중이었다. 주로 김성주 캐스터, 안정환 해설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자신보다 방송 경력이 짧은 안정환을 해설 중에 틈틈히 돕는 중이다. 해설을 할 때는 자신이 주로 섰던 포지션인 미들과 수비를 중점적으로 보면서 말을 하는 편. 해설 외적으론 안정환에게 딴지를 걸어주는 역할(...)이며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드립이 MBC 중계를 보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
6월 18일, 홍명보호의 첫 경기인 러시아전을 중계했으며 안정환 해설과 괜찮은 호흡을 보였다. 대체로 선수들을 격려하며 상황을 조근조근 짚어주며 해설을 하고 있었으나 이근호의 선제골 이후 5분도 안돼서 실점하는 과정을 보고는 드물게도 큰 소리로 '''"이러면 안되죠!"'''라며 발언하는 모습을 보였다.[19]
알제리전에도 어김없이 안정환 해설과 호흡을 맞췄지만 '''아주 눈알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처절한 경기력'''에 단단히 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첫 번째 실점에서부터 수비수가 두 명이나 붙었는데 공격수 하나도 못 막고, 정성룡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골을 먹히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코너킥 상황에서 실점을 하자, 안정환 해설과 함께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세 번째 실점 상황에서는 기가 찼는지 허탈하게 웃기까지 했다. 본인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혼자서 루이스 피구를 막고 포르투갈을 털었는데, 수비수들이 공격수 하나를 못 막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히 선배로서 빡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송종국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 안정환 해설은 아예 포기한 모양인지 10분 동안 침묵하기도 했다.
이 경기 후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내가 지금까지 우리 애들을 너무 아끼기만 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쓴소리도 좀 해야겠다" 라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했다.
여담이지만, 딸 송지아가 러시아 VS 벨기에 전에 에스코트 키드에 깜짝 발탁되기도 했었다. 관련기사
월드컵이 끝난 후인 2014년 7월 23일, MBC SPORTS+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 VS 포항 스틸러스 경기의 해설을 맡으며 오랜만에 K리그 경기 해설을 했다.
2017 시즌 MBC SPORTS+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술하겠지만, 불륜 사건 때문에 여론은 영 좋지 않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에 출연하였다.
2018년 8월 4일, FC 서울제주 유나이티드 FC 경기의 해설을 맡았다. 그러나 극심한 편파 해설, 말도 안 되는 농담 따먹기,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자신은 보지 못했다는 등 매우 수준 낮은 해설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선배이을용 감독대행을 향해 "옷차림이 촌스럽다"느니 "우기고 있다"느니 하며 직접적으로 디스하였고, '''심지어는 선배를 반말로 툭툭 부르기도 했다'''! 당연히 경기 종료 후 폭풍까임을 당했다. 오죽하면 경기 기사 베댓 1위가 송종국 해설 실화냐는 글일 정도.
해설 관련 논란 및 개같은 사생활 때문이었는지 이후로의 해설가로서의 활동은 전무하며, 현재는 김병지와 함께 꽁병지TV에서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후 개인 사정으로 꽁병지TV에서 하차하였는데 후에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 송타크로스를 만들어서 활동 중이다.

4. 사생활 논란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사생활로는 상당히 말이 많은 선수이다.
같은 축구선수 이천수자서전에서 어떤 선배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가 말하기를 ''''선수들끼리 있을 때와 팬들 앞에 있을 때가 너무 다르고 가식적인데다 여자를 너무 밝히는 선배''''라고 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쉽사리 누군가를 떠올리기 힘든 묘사지만,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책에 묘사된 선배가 송종국이라는 것이 정설 수준으로 퍼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라디오 스타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송종국은 그 소문에 대한 사실을 부인했고 이천수는 자기를 디스할 선수가 아니다라며 쉬쉬했지만, 옆에 있던 안정환은 오히려 '''잘 썼네''', '''별명이 안개였어요, 조용히 몰래 다닌다고'''라며 확인사살했다. 김구라의 말에 의하면 축구계에선 이미 선수 시절 때부터 사생활이 영 좋지 못한 선수로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단다.
결혼이혼을 모두 두 번씩이나 했는데, 이 두 결혼에 관해서도 상당히 말이 많다.
첫 번째 부인인 김정아씨는 이영표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이영표의 부인이 다니던 교회 신도이자 송종국의 팬클럽 회장이었고 연을 이어오다 2003년 6월에 결혼에 골인했다...라고 알려졌으나, 첫 번째 결혼에 대해서도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 일단 확실한 팩트로는 송종국이랑 김정아 씨는 '''김정아 씨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다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송종국은 신애[20], 이진 등과 스캔들이 나는 등,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결혼후 이혼해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21]
이후 2006년 12월에 탤런트 출신인 박잎선과 결혼해[22] 2007년엔 송지아[23]가, 2008년엔 아들 송지욱이 태어났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가 싶더니만...
2015년 10월 6일에 이혼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친권, 양육권, 살고 있는 집 등은 모두 부인 쪽이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SNS에는 벌써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자의 실명과 둘이 찍은 사진까지 공개'''됐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던건 아내 박잎선의 인스타에 올라왔던 난로의 사진인데, 이 사진에는 '건강한 커플이라... 우리 지아와 지욱이를 아프게 한 만큼 너에게 돌려줄게'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적혀있었고 곧 얼마 안 가 삭제되었다. 이때 올렸던 난로 사진은 여자친구로 추정된 여성의 인스타의 올려진 사진이었고 그 게시글에는 남자친구와 운동을 다녀왔으며 자신들을 '건강한 커플'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은 송종국이 이 여성과 불륜(간통) 관계가 아닌가 의심하였고, 난로 사진 외에도 이 여성의 남자친구라는 인물이 송종국임을 의심하게 되는 사진들이 발견된다. 우선 이 여성이 남자친구와 다정히 찍은 사진에서 남성은 얼굴이 가려져 있으나 남성이 입은 모자와 옷이 송종국이 방송에서 입고 나왔던 옷들과 같았으며 남자친구의 생일이라는 날과 송종국의 생일이 얼추 일치한다. 또 이 여성은 아육대의 방청객으로 갔던걸 인증했는데, 이 당시 송종국이 아육대의 감독으로 있었다.[24] 페이스북에선 남자친구가 남동생에게 선물로 줬다며 박지성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운동화를 올렸다.[25] 당시 별거 상태였다고는 하나 아직 송종국은 이혼 전이었으며 방송에서는 딸바보 아빠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모으던 상태였는데, 이 운동화를 부러워하는 친구의 댓글에 이 여성이 '다들 왜 이래 '처남'에게 잘 보이겠다고 내 남자친구가 준 거야'라고 댓글을 남겼다. 해당 SNS들은 논란이 되자 계정을 지워 현재는 당시의 네티즌들이 찍은 캡쳐본으로만 확인 가능하다.
증언으로는 올림픽 중 해외에서 해당 여성과 다정히 여행 중인 송종국을 알아본 한국 관광객이 여성을 누구냐 묻자 조카라고 소개했다고 하며 논란이 되자 해당 여성이 친조카가 아니라 '의리로 맺은 조카'라는 한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의조카'라는 관계로 소개해서 한층 더 논란이 되었다.
의혹 이후 얼마 안 가 이혼 기사가 나와 사실상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송종국의 바람으로 이혼'이라는 게 확정되었고 자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만큼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자 박잎선이 이혼에 대해 해당 사건은 루머이며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좋은 아버지였다고 해명함으로써 일단은 잠잠해졌긴 했는데.. 사실 이건 박잎선이 자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봐 좋게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식들한테 아빠가 바람나서 이혼했다고 밝혀서 좋을게 없으니...
그리고 나서 루머는 실시간으로 퍼졌고, 결국 2013년 MBC 축구 해설위원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2017년 MBC SPORTS+로 4년만에 K리그 해설위원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러나 최근 박잎선이 SNS에 홍상수 & 김민희에 대한 저격글을 올린 것과 한 게시글의 올린 해시태그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26] 해당 글들은 현재 전부 삭제되었다.
현재는 서로간의 상처, 오해를 풀면서 딸인 송지아, 아들 송지욱은 前 아내인 박잎선이 맡고 있으며 양육권을 주면서 前 아내인 박잎선과 이제는 친구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이 덕에 요즘 들어서는 송종국을 그나마 긍정적으로나마 다시 보게 된 의견도 제법 많아졌다.
2018년 11월 13일 방송된 tvN둥지탈출 시즌3에서 5년이 지난 송지아, 송지욱 남매의 삶이 방송되었다. 물론 5년 전 출연은 안 하지만, 아빠 어디가 시즌 1의 인연으로 김유곤 CP 덕에 두 아이의 성장 과정이 현재까지 더더욱 네이버 실시간에 오르고 있었다. 기사. 이 방송 때문인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연속 오르기도 했다.
송종국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루머 때문에 1년간 칩거 즉 산에서 살았으며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며 “아이들 엄마와 부부로 살면서 좋은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함께 있으면 아이들까지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결국 제가 집을 나와서 따로 살았다”며 “그런데 많은 분들이 ‘송종국의 귀책으로 가정이 망가졌다‘고 알고 계신다. 어떻게 가정사 하나하나를 꺼내어 밝힐 수 있겠는가? 관련해서 수많은 확대 해석과 사실과 다른 억측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어서 “사실과 다른 것들이 사실처럼 여겨지며 지난 4년간 많은 상처를 받았다. 2년 가량 집밖에 못 나가가고 1년간 산에서 살았다. 사회생활도 못했고 안했다. 우리 가정에서 ‘욕’은 한 사람이 먹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참고 참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컸고, 휴대폰을 통해 언제라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나이가 됐다”며 “저에 대한 루머나 사실과 다른 부분, 악의적 비방에다 심지어 아이들에 대한 욕설까지도 난무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악성 댓글과 루머를 적은 사람들에게 고소 방침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딸인 지아는 일주일에 2~3회 만나고 있으며, 아들인 지욱이는 축구클럽 회원이기도 하기에 주4회 차러 온다며[27]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휴대폰 기사도 볼 나이가 되었다며 아이들이 상처를 깊지 않게 자제를 부탁드린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기사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다.
또한 2018년 11월 14일 SPOTV 해설위원이자 2002년 월드컵 멤버 인연이기도 한 김병지 해설위원의 유튜브 채널인 꽁병지TV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출연해서 오늘 이슈가 된 해당 내용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악성 댓글에 관해 주의를 주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꽁병지TV 그리고 결국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개인 사정을 이유로 꽁병지TV에서 하차하였다. 이후 잠잠해지자 개인 유튜브 채널 송타크로스를 만들었다.

5. 여담


동탄신도시에 본인의 이름을 건 스포츠센터를 열고 개인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것저것 갖출 것은 갖춰놓은 피트니스 센터에 가깝다고... 아주 가까운 곳에는 이관우가 개업해서 장사 잘 하던 식당도 있었다.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한 온라인 리듬 게임 오투잼에 송종국이 부른 버전의 찬송가 "주는 나의..."가 잠깐 수록된 적이 있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음치 인증을 한 적이 있어서 음치로 알려져 있었다더니만, 의외로 가창력이 준수한 편.
2015년에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이사하였다. 2017년에 근처에 본인의 이름을 건 축구교실을 건설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MBC SPORTS+박건하, 서형욱, 이주헌 등과 함께 송종국을 K리그 2017 시즌 해설자로 공개하자, 네티즌들은 홍상수, 김민희, 이병헌 등을 거론하면서(...), 사람이 그렇게 없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기사[28].
송타크로스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복면을 쓴 게스트들을 섭외해 외부에서 섭외한 팀과 3쿼터 3:3 축구 대결을 한 후 송타크로스가 골을 넣을 때마다 1만 원, 도전 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2만 원이 기부되는 '복면 풋살'을 주 컨텐츠로 하고 있다. 복면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 축구 선수가 송종국 축구 교실의 어린이들에게 축구 레슨을 하는 컨텐츠도 있다.[29] 현재까지 출연한 복면 게스트는 설기현, 김용대, 조재진, 이영표, 안정환. 고정 멤버로는 송종국, 노우진, 이강, 윤창희, 남윤아가 있다. 그 외 송종국의 딸 지아와 지아의 친구(영상통화)가 첫 영상에서 출연했고, 박문성이 해설 게스트로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몇몇 부적절한 발언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본인들이 2002년 시절 장기 합숙을 한 것을 가지고 "한국이 발전되려면 리그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내뱉어 김병지마저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병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자, "우리 때는 되지 않았냐."하면서 K리그 팬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2002년 리그의 희생 및 장기 합숙은 구단주들의 세대가 교체되는 시운도 맞아떨어지고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축구협회가 간곡히 부탁하여 구단들이 2001-2002년에 과감히 희생해준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감독이 장기적으로 팀을 완성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정석적이며,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9년 대한민국 VS 이란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와 볼란치 역할을 맡은 백승호를 공격형 미드필더의 잣대로 평가해 혹평을 내려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뭉쳐야 찬다 방송에 출연했을때 벌칙 딱밤에서 도발했다가 3연속으로 맞았다.
[1] 호적상으로는 1979년 2월 생이지만, 실제로는 1978년 3월 생이라고 한다. 기사 1, 기사 2.[2] 기사.[3] 이 출장 기록은 역대 월드컵 필드 플레이어 최장시간 출전 기록이다. 이후 12년 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아르연 로번에 의하여 경신된다.[4] 이경규가 간다에서 당시 막간 화면식으로 활약상을 보여줬는데, 급기야 나중에는 피구가 노마크 상황에서 공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도 공이 오지 않았다. 하여간 피구가 공을 잡기만 하면 달려들어 틀어막는 통에 그 천하의 피구조차도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을 정도.[5] 당시 피구는 전 세계 축구선수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최강의 스타 중의 스타였고, 세계 4대 미드필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세계구급 선수가 동방의 어느 나라 듣보잡 수비수에게 지워졌으니... 당시 외신들도 상당히 경악한 경기였다.[6] 전성기 임팩트는 우리나라 최고였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기에 전문가들과 올드팬들은 박경훈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실제로 송종국은 2013년에 발표된 K리그 30주년 베스트 11에서 박경훈에게 밀리며 선정되지 못했고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위원 또한 한국 역대 베스트 11에서 송종국이 아닌 박경훈을 선택했다.[7] 여담으로 이 신인상 이후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 KT 소닉붐, 부산 아이파크를 통틀어서 '''신인상 수상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롯데는 이 기간 동안 비참한 육성능력으로 인해, KT는 드래프트 픽의 불운으로 인해 2020년 현재까지 신인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8] 페루자에서 뛰던 안정환이 '''10배 올린''' 이적료가 400만 달러였으니 2002년 당시로선 꽤 큰 이적료였다.[9]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후에도 아스날은 통 관심을 버리진 못했는지 잊을 만하면 송종국과 링크가 뜨곤 했다.[10] 이 사진은 2003년 6월 23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 아이콘스와의 친선경기였다. 다만 송종국이 나왔음에도 예상 유료관중 30,000명의 1/5인 6,000명만이 경기장을 찾았다. 기사. 이 때문에 송종국이 눈물을 흘렸다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11]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선수들의 식사는 물론 원정 응원과 숙소 청소 등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12] 전 아내 박잎선씨에 따르면 아직도 침대에서 잠을 안 잔다고 한다. 자기가 두 발 뻗고 편하게 자면 어머니한테 미안하다며 맨날 쇼파에서 잔다고 한다.[13] 원래 히딩크 감독은 송종국을 홍명보를 대신할 중앙수비수 겸 멀티 플레이어로 쓰려 했으나 평가전에서 보여준 중앙수비수로서의 모습에서 잔실수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고, 이에 다시 홍명보를 불러들이며, 송종국은 오른쪽 윙백으로 돌려쓰게 된다.[14] 2021년 현 시점에도 송종국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당시의 활약상을 언급할 때면 '''피구지우개'''라는 별칭과 함께 칭송받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15] 세계 기록으로는 199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후안 시몬, 디에고 마라도나가 연장전 두번을 거치며 690분을 뛴 적이 있다. 2014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의 노장 아르연 로번이 7경기 690분을 뛰었고 루카 모드리치2018 월드컵에서 694분을 뛰면서 기록을 갱신한다.[16] 실제로 아드보카트, 본프레레 두 감독이 좌측에 김동진을 기용하고 우측에 이영표를 기용하여 경기에 나선 적이 많았지만 김동진이 부진한 경기가 많고 이영표도 좌측에서만큼의 실력은 보여주지 못하자 논란이 되며 결국 좌측 풀백은 로테이션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김동진이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발전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우측 풀백이 아쉬워지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된 것.[17] 한일 월드컵 선수단 전원에게 대통령령으로 수훈[18] 미드필더 이하 전 포지션 소화 가능.[19]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방송 3사의 중계진엔 2002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골고루 포진되어 있는데 이들은 월드컵 전의 각 방송사의 특집 방송에서 한 목소리로 '자의적으로 파울을 판단하지 말 것, 넥스트 플레이에 집중할 것'을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며 후배들에게 조언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20] 한강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찍혀버리는 바람에 파장이 컸다. 처음에는 둘 다 부인했지만, 대중들은 믿지않았다.[21] MBC 섹션 TV에서 그 당시 결혼식 장면을 공개했는데, 송종국은 결혼식내내 굳은 표정으로만 일관했으며, 폐백때도 손을 놓아서 신부가 넘어지는 장면이 그대로 나왔다. 안그래도 결혼소식도 갑작스러웠는데 결혼식때 저러는거 자체가 억지로 하는 결혼이냐며 말이 많았다. [22] 이 과정에서 결혼 상대자의 이름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 박잎선 씨가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쓰던 개명 전의 본명 박근영, 개명 후의 본명 박연수, 그리고 예명 박잎선까지 죄다 달라서...[23] 태어날 당시 이름은 송은환이었으나 너무 남자 이름 같았는지 이후 개명했다.[24] 같은 날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당시 송종국의 딸 송지아도 자신의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아육대를 방청하러 왔다.[25] 다른 경위로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일단 박지성과 친분이 있거나 같은 업계의 종사자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26] 해시태그는 #가족#책임감#어른이라면#짜증나고질리면#물건바꾸듯이#쉽게버리고바꿈#가족버리는남자#매력없음[27] 당시 아빠 어디가에서도 시즌2에서 1에서 하차했지만 깜짝 출연하여 활약한 모습이 방송되었다.[28] 기사의 이주원은 이주헌의 오타로 보인다.[29] 설기현은 크로스, 조재진은 헤딩, 이영표는 드리블을 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