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가수)

 

1. 개요
2. 생애
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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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은 조용호. 종교는 개신교이다.[1]

2. 생애


1952년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수창동에서 살다가 서울 종로구로 이사갔다.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장을 지내고 출판사를 경영했으며 어머니는 담양에서 활동한 명창 박숙자다.
김정호의 음악적인 재능은 모계에서 물려받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외가는 그야말로 국악 집안이라고 할 만큼 후덜덜한 집안이었다. 그보다 오래 생존했던 모친은 물론 외조부 박동실도 판소리 명창이었는데, 일제시대 열사가로 유명했다.[2] 외가의 5촌 아저씨는 국립국악원 아쟁 수석 단원을 역임한 박종선이다.[3][4][5] 이 정도면 국악계의 성골 핏줄을 타고 난 셈이다.
하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국악은 물론 모든 음악을 하는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는 당연히 아들이 다른 길을 가기를 원했고, 김정호가 6살 되던 해에 국악에 관심을 보이자 집안에 있던 모든 국악기를 내다 버렸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은 어쩔 수 없는지, 김정호는 결국 학교도 때려치우고 서울 우이동에 틀어박혀서 기타를 붙들고 살았다고 한다. 뛰어난 음악 감각 덕인지 빨리 기타를 익혔고 이후 미8군 무대에 섰었던 이상일의 밑에서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이 당시에 만난 친구 중에서 한 명이 어니언스의 임창제이다. 김정호는 어니언스로 데뷔하는 임창제를 위해서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였다. 이때 김정호가 준 곡들은 "'''사랑의 진실'''", "'''작은 새'''"로 이 곡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임창제 작곡으로 표기되었다. 히트를 치게 된 뒤에 임창제는 이 곡의 실제 창작자가 김정호라는 것을 밝혔고 김정호는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니언스의 히트곡들을 실제로 만든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1974년 9월,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임창제의 추천으로 당시 TBC패티김 스페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게스트로 함께 나온 신인가수가 바로 조용필이었다.
이후에 인기 정상의 가수로 잘 나가던 김정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1975년에 일어난 "대마초 파동"이었다. 친구인 어니언스의 임창제뿐만 아니라 김정호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었고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사실상 음악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마초[6] 파동에 연루된 다른 가수들은 1979년에 해금 조치를 받은 이후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해금 조치를 받은 김정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죽도록 맞았다든지.
사실은 이 당시에 김정호는 파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방위병으로 소집을 받았지만 지방 공연을 하는 친구를 따라가는 바람에 입영 날짜에 입영을 못해서 탈영병으로 영창에 있다가 겨우 나와서 군복무를 마쳤지만 제대하던 때에 호되게 앓은 감기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다. 결국 폐결핵을 진단받고 해금 조치 이후에도 활동을 재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80년에 오랜만에 앨범 "인생"을 냈지만 폐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인천의 요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충분한 요양을 취하면서 적어도 1년 이상은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김정호는 결국 4개월 만에 요양원을 뛰쳐나와 음악에 몰두했다.
1983년, 김정호는 새 앨범 "'''님'''"을 내놓았다. 김정호의 유작이 돼버린 이 앨범은 김정호의 건강 때문에 진척 속도가 매우 더뎠다고 한다. 숨이 차서 한 소절을 녹음하고 휴식한 뒤에 다시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 탓에 무려 5개월이나 걸려서 겨우 한 곡의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정호는 유난히 꽹과리를 붙들고 새 앨범을 만드는 것보다 꽹과리를 두들기는 데 더 열중했는데 이런 한 서린 감성이 "님"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김정호 - 님 (1983)'''
결국 악화된 건강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1985년 11월 29일에 '''"내 죽거든 앞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34살의 나이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3. 그 외


요절한 탓에 결혼여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7년 선배의 사촌여동생 이영희와 결혼해 쌍둥이 딸 조정숙, 조정운이 태어났다.
그의 노래에는 묘하게 한국의 정서인 한이 서린 노래들이 많은데 김정호 자신의 인생이 파란만장하고 고통의 연속이었으니 한이 서릴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났던 천재적인 가수로 동료 가수들도 그 재능을 인정하던 가수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6년에 한국 가요사상 최초로 그를 추모한 추모앨범이 만들어졌을 정도였으니. 이때 추모앨범에 참여한 가수들의 면면이 후덜덜 한데 송창식, 윤형주, 김현식, 윤시내, 하남석, 이정선 등이다.
한동안 잊혀져 있던 김정호는 2011년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묘하게도 1박 2일에서 그의 노래 ""의 도입부를 쓰기도 했지만 이때는 별로 반향이 없다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조관우가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 하면서 수면위로 부상한 것.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한 태진아는 김정호의 데뷔곡인 "이름 모를 소녀"를 선택해 부르기도 했다. 심은경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도 ‘하얀 나비’를 방송에서 부르면서 그녀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오버랩되며 나온다.
사실 그의 노래 '님'의 첫 소절이 이미 MBC 표준 FM 2시 만세[7]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찍기의 달인 코너[8]에서 청취자가 문제를 맞히지 못해 기회를 놓쳤을 때 사용되고 있다. 그것도 수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니 이미 그 노래가 김정호의 노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제법 있지만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외에도 아기공룡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BGM으로도 실린 적이 있다.
대마초 파동에 연루된 탓인지 폐결핵으로 사망했음에도 실은 마약중독이 사인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1990년대 초 경기도 시 여러 곳으로 나눠주던 마약근절 홍보 책자에서 유명가수 김모~라는 이름으로 마약으로 파멸을 맞이한 사람으로 언급되었는데 이때 '''대표곡들을 언급하는 바람에''' 다들 김정호인줄 알았다. 아마도 대마초 파동 이후 활동금지를 당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이런 루머의 원인이 된 듯하다.

[1] 묘비에 '성도 조용호의 묘' 라고 써있으며, 요한복음 14장 27절의 성경구절이 쓰여있다.[2] 박동실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문화재 김소희, 한승호, 한애순 등을 길러낸 희대의 대가이며, 명고수#s-1.3 김동준이 그 밑에서 소리를 배웠을 정도다. 그 자신이 김채만재의 소리를 했던 만큼, 후일 정정렬의 서편 신제 계보와 정응민의 보성제 계보와는 다른 서편 고제 계보의 전승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인물이다.[3] 어떤 글에서는 '삼촌'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박종선은 박동실의 동생 박영실의 아들로, 김정호의 어머니 박숙자와는 사촌간이다. 박영실은 명고수 김동준의 스승이기도 하다. 다만, 박종선을 삼촌이라고 표기한 기사들은 박종선의 아버지 박영실이 죽자, 그가 백부 박동실을 친부로 알고 자랐다는 증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간, 그렇다고 해도 직접 양자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김정호에게는 5촌 아저씨 뻘이 맞는다.[4] 박종선의 외가 또한 엄청난 국악인 집안인데, 저 유명한 공옥진이 박종선의 7촌 이모가 된다. 공옥진의 부친은 공대일 명창으로 1970년대에 서울까지 이름을 날린 고사소리의 대가이고, 그 사촌이 되는 공창식이 박종선의 외조부가 되며, 박동실과 월북한 공기남이 박종선의 삼촌이다.[5] 박종선은 현재도 생존하여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일섭에게서 아쟁을 배워 독자적인 유파를 이루었는데, 그의 유파는 현재 판소리 명창 김일구가 주도하는 김일구류와 함께 아쟁 연주의 양대산맥으로 꼽힐 정도다.[6] 김정호의 외조부 박동실도 대단한 아편 중독자로 중년 이후 목이 상해버린 것을 생각하면 꽤나 묘하다.[7] 현재 이 프로그램은 '''박준형 정경미의 2시 만세'''가 정식 명칭이다.[8] 이 코너는 3시 이후에 방송되기 때문에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지방 자체방송 관계로 이 코너를 방송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