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진아

 


'''태진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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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대상 대상'''
조성모
송대관
'''For Your Soul
네 박자'''
(1999년)

조성모
'''태진아'''
아시나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2000년)'''

god
태진아
'''길
잘났어 정말'''
(2001년)
조성모
태진아
'''아시나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2000년)

god
'''태진아'''

'''잘났어 정말
(2001년)'''

장나라
'''Sweet Dream'''
(2002년)

[image]
'''서울가요대상 대상'''
변진섭
<어떤 이별>
(1990년)

'''태진아
<거울도 안 보는 여자>
(1991년)'''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년)



<colbgcolor=#283593><colcolor=#FFFFFF> '''태진아
太珍兒 | Taejin-ah'''
'''본명'''
조방헌 (曺芳憲)
'''출생'''
1953년 2월 16일(음력 1월 3일)[1][2](71세)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3]
'''국적'''

'''본관'''
창녕 조씨
'''신체'''
174cm[4], 68kg, B형
'''가족'''
누나: 조남순[5], 동생: 조방원[6]
'''배우자'''
이옥형[7]
'''자녀'''
장남: 조유명(의붓아들)
차남: 조성현(친아들)
'''종교'''
불교개신교[8]
'''소속사'''
진아엔터테인먼트
'''데뷔'''
1972년 〈내 마음 급행열차〉
'''SNS'''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이박사와의 악연
5. 광고
6. 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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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대표 트로트 가수이다. 예명인 '태진아'는 배우 태현실의 ''''태'''', 가수 남진의 ''''진'''', 가수 나훈아의 ''''아''''를 따와 지었다고 한다. 무명 시절 지방 공연을 갔다가 그의 본명을 들은 작곡가가 조방헌은 평범하니 예명을 지으라고 해서 지었다고... 이런저런 일이 있은 후 옥경이, 거울도 안보는 여자, 미안 미안해가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트로트 가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대표곡으로는 '옥경이', '노란 손수건', '미안 미안해', '거울도 안 보는 여자', '장미와 우산', '사모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동반자', '진진자라', '아줌마' 등이 있다.

2. 생애


충북 보은군에서 4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14살 때 상경하여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살다가 작곡가 서승일에게 발탁되어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노래 '추억의 푸른언덕'이 흥하면서 신인상을 휩쓸었으며, 1975년불륜 사건으로 구속된 흑역사가 발생했다.[9] 기사. 이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연예협회 가수분과에서 제명되어 낙향한 뒤 '이쁜이들'이라는 여성 듀엣의 음반에 기획자로 나섰다. 이 시기중 어느 한 시기에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쳤다.
그 후인 1980년, 다시 가수 복귀를 꿈꿨지만 과거 일 때문에 방송 출연 금지를 먹어, 미국으로 가서 먼저 정착해 있던 선배 가수 송대관의 도움으로 교포 사회의 밤무대 활동 등을 하며 가정을 꾸렸다. 1984년 1월, 방송 출연 금지가 해제되자 한국에서 음반을 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를 반복하던 중, 89년 '옥경이'가 히트를 친 다음 90년에 '거울도 안보는 여자'가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다음 후속곡인 91년 '미안 미안해' 역시 여러 번 1위를 할 정도로 히트하면서 송대관, 설운도, 현철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이 되었다.
2010년에는 송대관 후임으로 제3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취임했고, 카라 전속계약해지 통보 사건을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해서 사태를 안정시켰다. 덕분에 카라의 팬덤 카밀리아에서는 태진아를 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감사하고 있다. '진아기획'이라는 음반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양자 조유명이 설립한 자회사 'YMC엔터테인먼트'라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존재하며, 양쪽 소속 가수가 동일하다.

3. 여담


  • 송대관과 방송에서 라이벌 겸 앙숙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다. 티격태격하는 것은 기믹이고, 실제로는 서로 자가용도 빌려줄 정도로 깊은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송대관과 태진아처럼 겉으로는 서로 티격태격 하지만 실제로는 친한 사이인 사람들에게 'X진아-X대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 부인의 이름이 '이옥형'인데 왜 태진아 노래의 제목은 '옥경이'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태진아도 실제로 아내의 이름을 '이옥경'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며, 혼인신고를 하면서 제대로 된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10] 그런데 이것 때문에 부부 사이가 틀어지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부인인 이옥형 씨도 마찬가지로 태진아에게 '조방헌'이란 본명이 따로 있다는 것을 혼인신고를 하면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둘 다 서로의 본명모르고 연애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 신혼 초 미국에 살 때 장모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했는데, 당시 장모의 집은 원룸이었다고 한다. 태진아는 방 한쪽에 커텐을 쳐놓고 살았는데, 이때 이루가 생겼다고...
  • 아들 이루도 가수로 데뷔했으며,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대박을 쳤다. 대신 장르는 다르다. 그리고 아들은 현재는 가수 활동보다는 배우 활동이 더 많다.
  • 선술하였듯이 카라 팬클럽인 카밀리아에서는 신으로 숭배받고 있는데, 전속 계약 문제로 난리가 난 카라 해체를 막는 데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공로 덕분이다.
  • 1996년 말에는 김자옥을 위해서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을 제작한 적이 있다.
  • 1997년, 본인의 소속사에서 발굴한 보이그룹 에이알티를 데뷔시켰으며, 데뷔곡 '슬픈 얼굴'이 가요톱텐 차트에서 5위까지 올라가면서 선전했고, 그 뒤로도 많은 곡들을 남겼다.[11]
  • 동반자로 동방신기 팬을 낚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당시 상황을 방송에서 이야기 했는데 의도적으로 한 낚시라고 한다. 원래 보통 행사 레퍼토리는 동반자를 제일 처음에 불렀는데 이 날 동방신기 팬들이 쫙 깔린걸 보고 의도적으로 순서를 제일 마지막으로 돌려 3번째에 배치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반'의 발음도 일부로 뭉개서 '방'과 헷갈리게 발음했다고.
  • 'La song'과 태진아 본인의 동반자를 매시업 한 영상들이 인기를 끌면서(해당 영상 중 하나) 두 명이 한 무대에 같이 선 적이 있다. 비진아 인기가요 버전 당시 비는 연예병사 논란이 컸고 'La song' 곡 자체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곡의 후렴구가 어딘가 태진아의 창법과 유사해서 이를 이용한 패러디 영상이 인기를 끌자, 비가 아예 태진아와 듀엣 공연을 한 것이다. 이 병맛 공연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대성공했다.
  • 2010년 가을, 무명 작사가였던 최희진이 허위글을 올려 태진아 본인과 아들 이루 모두 한동안 마음고생을 한 적도 있다. 기사. 이후 최희진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사. 하지만 이 사태 때문에 태진아도 이루도 이후로 모두 이미지들이 조금 안 좋아졌다.
  • 2015년에는 억대의 도박을 했다는 잘못된 설로 또 한동안 곤욕을 치렀고, 이에 대해 본인이 결정적 증거를 보이면서 직접 해명했다. 본의 아니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이 사진들이 주로 인터넷에서 짤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사.
  • 무대 의상은 항상 두 벌을 제작한다고 한다. 장지기장 활동 당시 강남과 옷 사이즈는 물론 신발 사이즈까지 맞아서 활동 내내 강남은 태진아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고...
  •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해 우유 콜라 라면이라는 괴악한 라면 조리법을 소개해 큰 이슈가 되었다. 방송에서 먹어본 이들과 일부 따라해 본 시청자들은 얼큰하면서 달달하다며 호평했지만, 그 외의 대부분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이를 직접 따라해본 사람들 혹은 스트리머들은 토할 것 같다는 후기. 아마도 방송만으로 정확한 레시피를 알 수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 건물주 연예인 중 한 명이다. 2013년 여름에 아들과 함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5층 건물을 구입하였다. 1년 사이 7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으며, 부동산 전문가에 따르면 태진아 명의 건물은 도로가에 위치해 있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시세가 약 5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현재 이 건물의 1층에는 식당이 입점해 있으며,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태진아가 사장으로 있는 진아기획, 태진아의 장남 겸 의붓아들인 조유명이 사장으로 있는 스윙 엔터테인먼트 및 이루기획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태진아는 강남에게 이상화결혼을 할 경우 3000평 땅을 준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실제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해 화제를 모은 바도 있다.
  • 영화 마강호텔에 본인역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4. 이박사와의 악연


  • 이박사의 팬들에겐 원수와도 같은 존재다. 그의 면전에서 대놓고 광대라고 폄하한 것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실제로도 이박사와 그의 주요 장르인 뽕짝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일례로 2014년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한 Mnet 트로트 엑스에서 이박사가 참가자 자격으로 무대를 펼치자 정말로 짜증이 가득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아티스트로서 그다지 좋게 볼 수는 없는 태도다. # 얼마나 대놓고 짜증을 냈는지 옆에 있던 설운도가 이박사를 좋게 봐 주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주저할 정도. 이 때 이박사 또한 태진아를 향해 삿대질을 날렸고, '디스코를 잘 추며 잘 노네' 부분에서 급발진 버럭을 외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실 이는 태진아 VS 이박사 간의 가요계 내 신경전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이 때를 제외하면 이박사 쪽에서 특별히 태진아를 비난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상 태진아의 일방적인 혐오라고 보는 것이 옳다.
  • 태진아가 이박사뽕짝을 대놓고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기에 태진아는 뽕짝 앨범을 내지 않았을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태진아도 뽕짝 앨범을 세 장이나 낸 적이 있다. 뽕짝은 사실 트로트 메들리로 부르는 게 맞으며, 트로트 메들리를 흔히 '뽕짝 메들리', '관광버스 메들리'라고도 한다. 트로트 메들리를 좀 정겹게 이름 붙인 게 뽕짝인데, 무명 트로트 가수들은 메들리 음반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지금은 유명한 유명 트로트 가수들 중에도 이러한 메들리 음반을 내는 경우가 있다. 태진아도 '끝내주는 디스코 메들리'라는 이름으로 음반 석 장을 냈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1960년대의 정통 트로트에서 갈려진 '블루스 트로트[12]', '발라드 트로트[13]', '락 트로트[14]'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 이후 댄스 트로트[15], 세미 트로트[16] 등도 연달아 등장하여 젊은 층의 인기를 얻게 되자 인기=정통이라는 인식으로 자신들을 이른바 '정통 트롯'이라며 자화자찬하며 다른 트로트 장르들인 올드 트로트, 엘레지 트로트, 국악 트로트, 뽕짝, 품바, 각설이 등을 오래되고 수준낮은 트로트 장르라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뽕짝이 태진아를 위시한 현 트로트 업계에서 대놓고 무시당하게 된 이유는 무시당하던 다른 트로트 장르들은 점차 인기가 줄어들어 사실상 사장되었다면 뽕짝은 흥이나는 창법이 관광업의 성장과 맞물려 함께 성장하여 살아남았고 뽕짝으로 유명한 이박사가 일본에 진출하여 대박을 거두며 일본에서도 현지 교민 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매니아 층이 생기며 하나의 장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뽕짝을 좋아하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상당수 존재하기에 한국의 현 트로트 업계에서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의견도 많고, 현재 인기 트로트 가수들 중에서도 뽕짝 메들리로 유명한 가수들로는 김용임, 진성, 박구윤 등이 있다. 뽕짝이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트로트 장르라면 뽕짝은 진작에 취급하는 가수들이 없이 사장되어 명맥을 유지 못 했을 것이지만, 뽕짝은 이박사의 전유물이 아닌 유명한 트로트 가수들도 취급한 장르로 발전하는 중인데도 태진아를 위시한 트로트 가수들이 뽕짝을 무시하는 이유는 현 트롯 업계에서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정작 일본에 진출하였을 때 엔카의 굳건한 인기 속에 맥을 못춘 것과 달리 뽕짝은 일본에서도 성공했으며 그 외에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에서 자신들이 관광음악이라고 무시하던 뽕짝이 다른 국가에 진출하여 발전하며 한 장르로 자리잡자 그에 대한 반감으로 '뽕짝'을 더욱 홀대하며 아예 트로트가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 뽕짝을 대놓고 무시하는 태진아도 정작 뽕짝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면서 인기를 얻게 되자 다른 트로트 장르로 갈아타고는 뽕짝을 멸시하는 태도를 취한다며 한국의 몇몇 트로트 가수들과 같이 뽕짝을 이박사가 일본에 선보여 성공한 것에 시기하여 무시하는 것이라는 의견 또는 자신이 신인 시절 뽕짝 메들리 앨범을 여러 장 낸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서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에서 자신이 트로트 가수 신인 시절 뽕짝으로 활동하다가 다른 트로트 장르로 바꿔서 활동하면서 뽕짝을 대놓고 무시했는데, 이박사는 뽕짝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일본에 진출하여 인기 장르로 자리잡았기에 질투심, 수치심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라는것이 의견에 대한 근거라고 보고 있다. 태진아가 무시하던 이박사는 일본에 진출하여 후지테레비의 HEY!HEY!HEY!에 2번째로 출연한 외국인 가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에는 한국인에게 흔히 붙는 비하나 욕이 전혀 달리지 않으며 애초에 영상에 붙는 태그가 '한국을 싫어하는 나도 인정하는 한류 슈퍼스타'일 정도로 인기를 얻게된다. 일본에서 뽕짝이 트로트의 한 장르로 자리잡자 일본에서는 한국의 다른 트로트 장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이박사가 다른 한국 트로트 장르 가수들의 일본 진출을 도운 셈이다. 이박사를 염두한 듯 태진아는 정통 한국 트로트를 일본에 보여주게다며 호언장담하며 일본에 진출했지만, 한국에서는 태진아가 인기 트로트 가수이나, 일본에서는 별로 인지도가 없다. 일본에 자신의 곡들을 선보였지만, 사실상 망했다. 태진아, 日서 굴욕?… "관객 2명 앞에서 노래" 눈물 펑펑이라는 기사 헤드라인처럼 트로트 한류를 만들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일본에 진출했지만 실패한 흑역사가 있는데, 이박사는 일본에 진출한 직후부터 뽕짝 스타일의 흥겨움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 태진아나 이박사나 모두 일본 진출의 시기는 달라도 진출할 당시에는 인지도가 없었는데, 이박사는 성공리에 안착한 반면 태진아는 실패했으니 태진아의 일본 진출 실패가 더욱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태진아가 일본에서 실패한 이후부터 더욱 이박사나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의 강도를 높인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태진아가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와 별개로 한국에서는 과거보다 더 뽕짝을 다루는 트로트 가수들이 늘면서 뽕짝에 대한 편견들도 상당수 사라지면서 과거 지나치게 뽕짝을 멸시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 나쁘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 현상을 알 수 있는 근거가 Mnet 트로트 엑스이다. 이 방송에서 태진아는 뽕짝과 이박사를 묶어서 멸시하는 태도를 취해 뽕짝을 한국 트로트계의 이단으로 취급했고, 박현빈홍진영도 이런 태진아의 태도에 편승해 이박사보다 연령이나 경력이 한참 후배인데도 불구 이박사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취했고, 오히려 이 행동들로 인해 태진아, 박현빈, 홍진영의 인성 문제 제기와 동시에 아직도 이런 시대 착오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는가 등 여론의 분노를 사서 뽕짝을 무시하던 가수들이 자신의 발등만 찍는 꼴이 되었다. 오히려 설운도가 이박사를 좋게 평하면서 이를 보고 설운도의 인성이 좋다는 평과 한국의 트로트 가수들이 뽕짝을 무시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그간 태진아가 주도했던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가 현재에 와서 더욱 비판을 받게 되었다.

5. 광고


연도
광고
2004년
오천콜 대리운전 (라디오CF)
2005년
고창서해안복분자 (전주MBC TV 방영)
2006년
참이슬
2017년
트라이
2003년 ~ 2015년
청원생명쌀
2008년 ~ 2010년
보은대추
2019년
치킨더홈
2020년
첵스 파맛(인터넷)
2020년
라그나로크 오리진

6. 히트곡


곡명
발매일
옥경이
1989년
거울도 안 보는 여자
1990년 7월
미안 미안해
1990년 7월 30일
사랑은 토요일 밤에
1992년 5월
사모곡
1993년 6월
노란 손수건
1993년 9월
가버린 사랑[17], 그대곁에
1994년 12월
사랑은 아무나 하나[18]
2000년 4월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2002년 5월
바보, 이유가뭘까
2003년 4월
잘살거야
2005년 2월
동반자
2004년 4월
아줌마
2006년 2월
일나겠네, 사랑했나요
2011년 2월 18일
사랑은 눈물이라 말하지
2012년 2월 27일
진진자라
2015년 7월 16일
최고의 사랑
2017년 3월 12일
사랑엔 답이 없네요
2018년 7월 28일
그게 답이야
2018년 8월 10일
자기가 좋아
2019년 4월 9일
김선달
2019년 10월 27일

[1] 1953년 5월 17일(음력 1953년 4월 5일)은 호적상 생일이다. 2015년 원정도박 사건 의혹 당시에 본인이 YTN 뉴스에서의 통화에서 "제가 올해 육십세 살 이잖아요."라고 말했고, 뿐만 아니라 구정 다음다음날이 자신의 생일인 것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아침마당에서도 이용식보다 한 살 적다고 알려졌으니, 1952년 1월 29일생 설은 20년 가까이 잘못 알려진 정보다.[2]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4월 5일에 생일 축하를 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에 4월 5일에 생일 케이크를 받은 장면들이 몇 있다.[3] #[4] 2004년 7월 3일 방송된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한지혜와 같이 선 걸 보면 약간 비슷하거나 살짝 크게 보이나, 방송 당시에 한지혜의 발 부분은 계속 가려져 있어서 한지혜가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그날 방송이 진행되었는지 아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와 별개로 장지기장을 부를 때 처음에 강남과 등을 맞대고 서는데, 이 과정에서도 새끼손가락 한 마디 비슷하게 차이난다. 단, 머리숱이 많아 붕 뜬 머리는 예외이며, 한때 다음 프로필 상의 키는 174cm 이었다.[5] 달고나에서 밝혀졌다.[6] 1956년 생이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인간극장에서 밝혀졌다.[7] 옥경이라는 노래에서처럼 '옥경'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많은데, 처음 만났을때 소개해 준 사람과 사귈때 만난 처가식구들조차 아내를 옥경이라고 불러서 태진아도 옥경이로 부르다가 결혼하면서야 겨우 진짜 이름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어감상 옥형이보다도 옥경이가 더 자연스러워서 옥경이로 불렀다고 하여 태진아도 처가식구들처럼 결혼 후에도 그렇게 부른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도 그렇게 작사한 것. 여담으로, 혈액형은 이루가 AB형인 걸로 봐서 정황상 A형 또는 AB형임을 짐작할 수 있다.[8] 동반자를 '주님은 나의 동반자'라고 개사를 해서 복음을 전파하기까지 할 정도로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또한 2000년 가요대상에서 "먼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드리고요."라고 한 적도 있고, 그 외 각종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잘 언급한다. 원래 태진아의 집안은 철저한 불교 집안으로, 태진아 본인도 크리스천인 아내의 권유에도 꿋꿋이 불자 생활을 하였으나, 미국에서 살던 중이던 1983년개종하였다고 한다.[9] 현대건설 조성근 사장의 아내가 태진아를 만날 때마다 용돈조로 몇 백씩 줬다고 한다.[10] 옥형을 잘못 발음하거나 사투리가 섞이거나하면 옥경으로 들릴수 있긴하다.[11] 하지만 얼마 뒤 멤버 박성준이 여자친구를 폭행하는 바람에 팀이 와해되었다는데, 박성준 본인은 이 건이 사실이 아니라고 나중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에서 해명했다.[12] 조용필의 대전 블루스가 대표적이다.[13] 조용필허공#s-8이 대표적이다.[14]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이 대표적이다.[15] 윙크의 부끄부끄가 대표적이다.[16] 김연자아모르 파티가 대표적이다.[17] 원곡자는 남미웅이며, 그 뒤 조경수와 임주리가 리메이크했다. 참고로 1995년 12월부터 1996년 7월까지 가요톱텐 순위권에 있었다.[18] 트로트임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뮤직뱅크 기준으로 26위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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