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1. 두산 유출사건(1991년)
1.1. 전개
1.2. 결과
1.3. 기타
2. 포스코 유출사건(2008년)
3. 같이 보기


1. 두산 유출사건(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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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의 구미공업단지 안의 두산전자[1]에서 3월 14일4월 22일 두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과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사건.'''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했다.'''
또한 이 사건은 두산그룹의 운명을 결정한 사건이기도 하다.

1.1. 전개


유출된 페놀은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되었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자 취수장에서는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페놀 문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페놀은 염소와 반응할 경우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구광역시의 수돗물은 페놀로 급속히 오염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서 하류의 밀양, 함안 등에서도 검출되었고 급기야 '''부산광역시의 상수원에서도 페놀이 검출되어 낙동강 유역 일대가 페놀로 오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1.2. 결과


이 사건으로 대구광역시를 비롯해 낙동강 주변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두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고,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가 두산소유였고, 동구 방촌동에 상당한 규모의 제조공장이 있었는데다, 크라운맥주의 존재감도 미미했기에 당시 대구 사람들에게 맥주=OB였다. 또 OB맥주외에도 코카콜라를 생산했던 두산음료, 프랑스 다논(현재는 풀무원 계열)과 계약을 맺은 두산종합식품도 존재했었다.
조사 결과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었다. 또한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직책에서 사임하고 당시 허남훈 환경처 장관 등이 경질되었다.

그와 함께 수돗물 불신 풍조가 높아져 "소독약 냄새 나는 수돗물을 끓여 먹느니 깨끗한 물을 사먹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법''' 생수 시장[2]정수기 사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후 대구시가 추진하려 했던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도 무산되는 빌미가 되었다.[3][4] 맥주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OB맥주는 만년 콩라인이었던 크라운맥주의 추격에[5] 1위 자리를 빼앗겼으며, 이는 경영진인 두산그룹 3세 형제들 간의 극심한 갈등 및 어쩔 수 없는 대대적인 사업 개편 및 주력 사업이었던 맥주 사업을 외국계 기업에 매각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로 인하여 1999년 초에 프로야구팀 OB 베어스도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당시 코카-콜라를 생산하던 두산식품은 물론이고, 우성식품[6], 호남식품, 범양식품[7] 또한 피해를 입었다. 우성, 호남, 범양도 코카콜라 생산 벤더였는데 이 때문에 우성식품은 경남지역 소매상에 "두산식품은 서울과 강원 제주에만 코카콜라를 공급한다"는 해명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결국 두산그룹은 OB 맥주를 비롯한 각종 소비재 관련 계열사를 대거 매각하면서 소비재 산업에서 손을 떼고, 2000년대 들어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중공업 분야로 진출해 그룹 전체의 성격을 바꾸게 된다. 즉 이 유출사건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두산그룹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1.3. 기타


개그맨 유재석이 대학개그제에서 이 사건을 풍자한 개그를 한 적 있었지만, 딱히 재미는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백괴사전에서는 이 사건을 모티브 삼아서 대구광역시를 '대구페놀공화국'이라고 부르던 적이 있었으나, 대구과학고등학교 지역드립 사건 이후 지역 비하 명칭을 대대적으로 삭제하면서 없어졌다.
이후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등의 상수도 소독이 염소 소독에서 오존 소독으로 바뀌었다.
사고가 일어난 해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절로 이때 사고가 터지고 나서 한 마디의 공식적 사과도 없었다가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1994년 1월 15일에야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에 의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문이 나왔다고 한다.

2. 포스코 유출사건(2008년)


2008년 3월 1일, 김천시에 위치한 포스코 유화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직원 2명 사망, 14명 중경상의 인적 피해가 발생한다. 3월 2일,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소방용수에 섞인 페놀 등의 유독물질이 인근의 낙동강으로 유입된 것이 확인되어 상수원 취수가 중단되면서 구미, 김천의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
화재 진압 과정에서 유독물질이 흘러든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유출 가능성에 대해 지자체에 통보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수사 결과 포스코 관계자 1명 구속[8], 3명[9] 불구속 입건으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JTBC 뉴스.

3. 같이 보기


  • 플린트시 납 수돗물 사태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10]

[1] 전자제품에 쓰이는 기판을 제작하는 회사로, 현재는 (주)두산 전자BG이다.[2] 생수, 법적 용어로는 '먹는 샘물'은 당시 한국에서 불법이었다. 88서울올림픽 때문에 외국인들 대상으로 잠깐 허용한 적이 있으나,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불법이 되었다. 이는 먹는 샘물 판매 금지가 행복추구권을 위반한다는 헌법소원 심판 결과가 나온 1994년까지 유지되었다.[3] 물론 단순 페놀 유출 사태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고, 대구 일대에 널려있던 염색공단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가장 큰 문제였다.[4] 이 당시 마산역 앞에 붙어있던 현수막이 상당히 직설적이었는데 "은자 똥물에 독까지 타서 줄끼가?" 라고 적어놓았다(...)[5] 크라운맥주가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깨끗한 물 마케팅"을 전폭적으로 전개했고 이는 향후 몇 년간 우위를 점하게 했다. 이 캠페인의 성공으로 나중에는 크라운맥주 사명 자체가 하이트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OB가 다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카스의 출시 이후다.[6] 삼환그룹 계열. 나중에 계열분리 후 '''머거본'''으로 개명.[7] 훗날 코카콜라 본사가 나머지 회사들을 합병했을 때, 인수를 거부하여 1998년에 콜라독립 815라는 독자적인 상품을 판매했다.[8] 반응기 운전 직원, 반응기를 소홀히 관리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9] 공장장, 페놀 관리자, 비상책임자.[10] 해당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