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선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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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네이선 존스 (Nathan Jones)
'''국적'''
오스트레일리아 [image]
'''생년월일'''
1969년 8월 21일
'''신체'''
208cm[1], 142kg[2]
'''직업'''
전과자, 전 스트롱맨, 전 프로레슬러 , 전 격투기 선수, 현 영화배우
'''가족'''
아내 폰 트란(2017년 결혼)
아들 조지 존스(2015년생)
1. 소개
2. 생애
2.1. 초기
2.2. 스트롱맨 시절(1995~1996)
2.3. PRIDE 출전
2.4. 프로레슬러 첫 데뷔
2.4.1. WWA (2002)
2.4.2. Zero-One (2002)
2.4.3. WWE (2003)
2.5. 그 후
3. 여담


1. 소개


과거 전과자 출신의 전 스트롱맨, 전 종합격투기 선수, 전 WWE 프로레슬러, 현재는 액션 영화 악당역으로 톡톡히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다.

2. 생애



2.1. 초기


1969년 8월21일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골드코스트 출신의 고아였다.
태어날때부터 골격이 장대하였는데 10살 때 이미 키가 185cm에 달했을 만큼 거구였고, 거기에 성격도 무척 다혈질에 폭력적이어서 10살 때부터 또래 아이들의 상습적 폭행과 금품갈취부터 시작해서 소년갱이 되어 도둑질과 소매치기와 날치기 등의 강도를 저지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1985년~1987년 2년동안 무장강도 행위를 무려 8차례나 저지르고 다니다가 1987년, 18세의 나이로 현행범으로 검거되었고, 무려 16년형을 선고 받았다. 교도소 수감 후에도 죄수들과도 잦은 폭행사건등의 트러블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탈옥까지 몇차례 시도하려고 하여 늘 독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3]
그러나 교도소 내의 교화 프로그램, 카운셀링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한 태도로 복역하여 가석방 심사에 통과해 9년의 감형을 받고 총 7년의 실형을 살았다.[4]

2.2. 스트롱맨 시절(1995~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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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5세의 나이로 석방되기전인 1993년에 교도소에서 죄수들의 갱생 프로그램중에 파워 리프팅을 접하게 되었는데, 2미터가 넘는 체구에 운동신경까지 매우 뛰어난데다가 120kg대의 악력을 자랑할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력의 소유자라서 이 방면으로 금새 소질을 보였으며 교도소 내의 파워 리프팅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이에 갱생프로그램을 담당하던 교도관이 그의 잠재력을 보고 전문적인 스트롱맨이 되보라며 출소 후 찾아갈 체육관을 소개해주었고 신인 스트롱맨 대회격인 '캘린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전문 스트롱맨 훈련소에서 당시 유명한 스트롱맨인 게리 테일러에게 훈련을 받으며 1995년 오스트레일리아 스트롱맨 챔피온쉽에서 우승을 하게되는데, 호주에서 가장 힘이 센 사나이, '메가맨'이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떨치면서 본격적인 세계 대회에 도전하게 된다.
첫번째 세계대회인 월드 머슬파워 클래식에서 5위를 기록하긴 했으나, 아직 어린나이에도 수많은 강자들을 긴장케하였으며 1995년 월드 스트렝스 챔피온쉽에서 우승을 한뒤, 드디어 첫 '월드 스트롱기스트맨 챔피온쉽'[6] 대회에 도전하게된다.
종목별 포인트를 착실히 쌓으며 랭크에 진입하던 중 '매그너스 사무엘슨'[7]과 팔씨름 대결 종목에서 패배하여 그만 상완골의 나선형 골절 부상을 입게된다.
1996년 부상회복후 월드 스트롱맨 챌린지에서 우승하며 다시한번 1996년 월드 스트롱기스트맨 챔피온쉽에 도전하지만, 또다시 부상으로 인하여 예선탈락을 하게되고 스트롱맨 경력은 이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2.3. PRIDE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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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97년 프라이드 FC 첫번째 대회에 참가해 60대 스모 요코즈나 출신으로 당시 프로레슬러로 활동중이었던 키타오 코지와 종합격투기룰로 대결을 했지만 코지에게 1라운드 2분 14초 만에 키락에 의한 서브미션 패배를 당했다.셔독 자료[8]


2.4. 프로레슬러 첫 데뷔



2.4.1. WWA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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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출전 이후에 르네 립킨스라는 대부호의 보디가드로 일하다가 톰 하워드[9][10]에게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그는 첫 출범한 WWA의 PPV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데뷔했고 제프 제럿과 스캇 스타이너, 스캇 홀, 케빈 내쉬, 렉스 루거같은 당당한 톱스타들과 대립했고 2002년 4월7일 스타이너에게 승리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온에 등극하나, 5일만에 다시 뺏기고 만다.

2.4.2. Zero-One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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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A 퇴사후, 2002년 6월에는 톰 하워드의 제안으로 일본의 Zero-1에서 '존 하이든라히'와 태그팀으로 등장하여 NWA 인터컨티넨탈 태그팀 챔피온이 된다. 이때 프레데터[11], 루써 레인즈, 톰 하워드와 함께 활동하면서 인기가 꽤 물이 오르던 찰나, 그를 눈여겨보던 WWE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다. 그는 딱히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톰 하워드는 좋은 기회라며 적극 추천해주었다.[12]

2.4.3. WW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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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가 넘는 거구, 거기다가 근육질, 포스가 철철 넘치는 이 빅맨을 빈스 맥마흔이 가만히 냅둘리가 없었다는듯 서둘러 계약을 채결했지만, 그의 범죄경력때문에 비자가 제때 나오지 못하여 데뷔가 늦어지는 등 우여곡절이 먼저 발생하였다.
2002년 말에 다크매치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일본식 프로레슬링에 익숙한 그에게 WWE의 엔터테인먼트적 성향의 레슬링은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해 안습한 반응을 얻어 다시한번 2003년 초에 벨로시티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이며 빌 디못[13]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뤄 승리했지만 역시나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이에 언더테이커가 각본 상 훈련시키는 제자 기믹으로 활동하게 하였으나 그와중에 부상을 입고 OVW로 내려가서 다시 수련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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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스테이블인 팀 레스너의 멤버로 재복귀하였으나 레스너의 카리스마가 워낙 드셌던 시절인데다, 거기에 그다지 나아지지않은 연기력이 그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았다.
이 당시 본인 못잖은 2미터가 넘는 거구인 맷 모건과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으나, 맷 모건 또한 당시에 브록 레스너와 빅 쇼, 존 시나, 커트 앵글 이 세명에 대한 집중 푸쉬탓에 큰 주목받지 못했던 탓인지 이 둘의 태그팀도 주목받지 못하였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자진 방출(퇴사요청)을 선택했다.[14][15]
그를 그만두게 만든 이유는 프로레슬링을 하느라 전세계를 돌아다닌다고 근 십여년간 가보지 못한 고향인 오스트레일리아에 투어를 하던 도중,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향수병이 생겨 휴가를 요청했는데, 당시 존스는 풀타임 계약의 레슬러였고 알다시피 WWE 풀타임 레슬러들은 기본 200일이상을 미국의 전주를 돌아다니며 투어를 해야하고, 탑컨텐더가 되면 월드 투어까지 할 경우 1년에 300일 가까이를 오로지 회사에서만 생활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향수병이 크게 도진 그에게 그런 풀타임 레슬러의 삶은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었다.

2.5.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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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조금씩 할리우드 영화에서 조, 단역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트로이에서 인상깊은 악역 을 연기, 2005년에는 토니 쟈 주연의 '똠양꿍'[16]에 조연으로 출연, 무인 곽원갑 출연 등 TV 광고, 드라마, 각종 영화 등에 본격적으로 배역이 늘기 시작하면서 맡기 시작해나갔고, 월드 시리즈 레슬링이란 단체에서 3경기를 소화해낸뒤 공식적으로 레슬러로써 은퇴를 발표했다.
2008년경에 TNA와 계약이 성사될뻔 했으나, 하필 그때 태국에서 영화 '솜땀'을 촬영하다가 시멘트 트럭에 팔꿈치를 다쳐 본의아니게 전치 12주판정을 받고 취소되었다. 레슬러로써 복귀하려고 한건 아니고 트레이닝 매니저로써였다고 한다.
현재 고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면서 미국, 태국, 인도를 오가며 액션영화에서 다양한 악당역을 맡아 여러 감독들 눈에 많이 띄어 캐스팅되고 있다. 주로 저예산 영화 위주로 출연하기에 드웨인 존슨이나 데이브 바티스타 만큼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각본을 받으면 캐릭터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연습하고 공부하는, 제법 배우로써의 직접정신이 투철하다. 그에 보답받은듯, 2015년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임모탄 조의 둘째 아들인 릭투스역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3. 여담


  • 톰 하워드와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둘은 동갑내기임에도 친구이지만 톰이 프로레슬링 스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존스는 톰에게 먼저 레슬링을 배운건 아니고 '마이크 벨'[17]에게 레슬링을 먼저 배웠으나, 마이크 벨 이 인간이 워낙 인성도 개차반이고 약물중독자여서 존스에게 강습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갔다. 톰 하워드는 이런 마이크 벨과 WWF 시절에 어느정도 인연이 있었고, 마이크가 존스를 상대로 사기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나랑 같이 일본에서 레슬링 하자'며 데려간 것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레슬링을 할 수 있게 가르치고 비자가 나오도록 힘써온 인물이 톰 하워드이고, 톰은 존스를 포함한 실베스터 터케이, 루써 레인즈, 존 하이든라히 이 네명과 영원한 우정을 지금껏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헌데 루써 레인즈 & 존 하이든라히와는 처음부터 좋았던건 아니고 기술시범을 핑계로 레인즈와 하이든라히가 존스를 상대로 똥군기와 엿먹이기를 시전하다 빡친 존스가 둘을 자신의 완력과 싸움실력을 이용해 깨강정으로 만든게 첫 인연이었다.(...)
  • 전 WWE 프로레슬러였던 섀넌 무어가 말하길 '단언컨데 프로레슬러 중에서는 순수하게 힘만으로는 네이선 존스를 이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섀넌 무어도 한때 업계에서 알아주는 빅맨 전용 자버로써 빅맨들의 잡질에 천부적인 접수능력으로 붕붕 날아다니며 어지간한 빅맨들하고는 다 대결해봤는데, 자신이 기술 접수가 필요없을 정도로 힘이 셌던 선수는 마크 헨리 이후 존스가 처음이였다고. [18]
  • WWE시절에 각본상이 아니라 실제로 언더테이커가 제자로 양성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때 빈스 맥마흔도 전폭적인 지지를 하며 제대로 훈련시켜 사이코 시드와 비슷한 컨셉의 레슬러로 만들어보려 했지만 결과는...
  • 프로복서인 제프 페네치에게 복싱을 배운적이 있는데, 이때 나이가 마흔을 넘었을때 인데도 상위 랭커의 프로복서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극찬한 적 있다.
  • WWE에서 썩 큰 활약없이 그만뒀지만, 2007년 WWE 필름이 만든 스티브 오스틴 주연의 '컨댐드'에 오스틴의 상대역으로 나와 박진감 있는 격투액션을 선보였다. 영화촬영을 하며 오스틴과도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낼만큼 친한사이가 되었고, 오스틴의 팟캐스트 에피소드에도 출현하여 오스틴과 친분을 과시했다. 현재도 WWE와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는걸로 보아 후일 단발성 이벤트에도 출연할 수 있으리라 본다.
  • 싸움 실력이 굉장하다고 알려져 있다. 열살 때도 건장한 성인남자들과 싸워 이긴적도 있으며[19], 16살때 이미 보고 로드의 거상(The Colossus of Boggo Road)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질 정도로 퀸즐랜드에서도 알아주는 스트리트 파이터였다. 일본에서도 톰 하워드가 그를 한명의 프로레슬러로 키우려고 적잖게 애를 많이 먹었는데, 과거에 태그팀 파트너였었고 지금은 절친인 존 하이든라히와 루써 레인즈 이 두사람도 프로레슬링을 배우기전인 새내기였던 존스에게 군기 좀 잡으려고 기술 시범을 보여주려다 호되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20][21] 감정조절이 안 돼서 힘조절을 못해 배려심없는 존스를 혼내주려던 일본 고참 프로레슬러들이 폴리스맨을 자처하고 덤볐지만 그의 하이킥에 되려 넉다운된 적이 있었다.[22] 이는 WWE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OVW 센터에서 기술 훈련을 받을때도 감정을 조절못해 동료 레슬러들을 숱하게 때려눕힌적이 있다. 그중 한번은 상대 수련생과 합을 맞추는중에 시비가 붙었는데 킥복싱 기술에 능했던 존스가 상대 수련생의 허벅지를 잇달아 풀스윙으로 로킥을 날려대자 상대 수련생이 외마디 비명을 질르며 겁에 질려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 그럼에도 상대 수련생을 더패주려던 존스를 정식 로스터 십수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저지해서야 상황이 끝났을 정도. 상술했듯 이미 10살때 건장한 성인남자들을 싸움으로 제압할 정도였던데다 16세에 이미 퀸즐랜드에서 알아주는 스트리트 파이터였던만큼 사실상 하쿠 이상급 현피강자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최소한 하쿠랑 맞먹는 강자임은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신입레슬러는 무조건 군기잡고 보던 하드코어 할리나 JBL도 존스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23]
  • 애초 체급부터가 깡패라서 체급이 맞는 상대 찾기가 힘들다. 키가 208cm인데 농구선수로서도 국내 최장신인 서장훈보다 더 크며, 체중은 스트롱맨 시절 170kg에 육박했으며, 줄어들었다고 해도 140kg가 넘는다.(...) 종합격투기 UFC에서 헤비급이 -120kg인데, UFC 헤비급에도 출전이 불가할 정도로 덩치 자체가 흉기다. 게다가 저 체중이 단순히 비계덩어리 돼지가 아닌데다 그렇다고 근육돼지도 아니고, 몸을 보면 알겠지만 헤라클레스 근육질 체형으로 140kg가 넘기 때문에 저런 체격으로 싸움 못하는게 미스테리다.(...) UFC 헤비급 파이터들도 일단 싸움실력을 떠나서 덩치만으로 일반인들과의 싸움에선 한수 먹고 들어가는데, 존스는 UFC 헤비급 파이터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슈퍼헤비급 덩치인지라 일반인들 중에서 저런 덩치를 감당할 인물들은 없다. 만약 일반인이 존스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는 일반인이 아니라 격투의 고수로서 당장 격투기 진출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 이미 키와 체중 만으로 덩치 자체가 흉기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바로 저 근육질 체형이다. 근육은 파워와 스피드를 상징하기에 격투기 전문가들은 계체량때 상체만을 보고도 전투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알리스타 오브레임과 비토 벨포트의 약물 적발 전과 후의 계체량 사진을 보면 차이가 한 눈에 보인다. 체중이 똑같다고 다가 아닌 것이다. 비토 벨포트, 근육 어디 갔나?…TRT '비포 앤드 애프터' 기사를 참고하자. 오브레임이나 벨포트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근육이 쩍쩍 갈라진 '몸짱'이었으나, 약물 적발 후에는 근육이 풀어지고 지방이 끼며 '없어보이는' 몸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몸짱' 시절에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한방으로 위협적이었으나 근육이 풀어지자 느려지고 약해졌다. 즉, 싸움은 단순히 격투기술만 가지고 하는게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존스는 체중 자체도 어마무시하지만 저 상체 근육부터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헌데 오브레임같은 전문 프로격투가들도 훈련 열심히 받아도 저런 헤라클레스의 체형을 약물 없이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UFC에서 약물 단속 강화 이후 헤비급에서는 이전의 조각같은 몸매를 자랑하던 파이터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아저씨 몸매(...)가 많아졌는데, 존스가 활약하던 전성기 시절은 워낙 격투기 시장이든 프로레슬링 시장이든 약물 규제가 느슨하던 시절인지라 존스의 몸을 보고 약물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약물 없이 훈련 만으로 저런 '몸짱' 체형을 만들었다면 신이 내린 타고난 헤라클레스라고 봐야 한다. 사실 존스가 이미 열살때부터 탈인간급 신체능력을 가졌던만큼 존스의 경우는 정말로 약물없이 저런 체형을 만든것일 확률도 높다.
  • 2014년 저예산 호러 슬래셔 영화 '찰리의 농장'에 스턴트 배우로 출연한 'Fawn Tran'이라는 태국계 여성과 결혼하여 2015년 8월 7일 아들 조지 존스를 득남했다. 아들 조지는 엄마를 좀 많이 닮긴했지만 체구는 아버지인 존스를 그대로 닮아 2020년 고작 5살인데도 체구가 웬만한 초등학교 중고학년급이다.
  • 자국의 연예가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악역과 패배하는 역할을 맡는게 되려 즐겁다고 했다. 이유는 진짜로 싸우면 어차피 내가 다 이길테니까 라고...물론 농담으로 한 얘기다. 하지만 농담이 아닌게 함정.(...)
  • 영화 트로이 촬영때 브래드 피트에게 연기 조언을 받고 그의 열혈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때 좋아하는 배우는 언제나 브래드 피트를 빼먹지 않고 언급한다. 브래드 피트 역시 그에게 좋은 배우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며 인터뷰에 언급한적 있다.
  • 스트롱맨이나 프로레슬러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괴력의 소유자이다. 2012년경 'Dymatize'[24] 유명 보충제 회사의 태국본사 홍보 부스에서 단발성 이벤트로 데드리프트를 선보였는데 맨손에 초크만 묻히고 280kg의 바벨을 크게 용쓰지않고 들어올려 여유롭게 버티는 괴력을 선보였다. 현재는 스트롱맨이나 레슬러시절때처럼 스테로이드를 하지 않음에도 그가 선천적으로 얼마나 괴력을 가진 소유자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애초에 10살때 이미 성인남성들을 싸움으로 이긴것부터가 이미 탈인간급이었다. 2018년 기준 현재도 저 괴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영화촬영이 있든 없든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턴트 훈련, 무술 수련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1] 현재 배우로써 실제 인증한 키는 208cm. 프로레슬러 시절엔 최대 7피트(약 213cm)로 소개됨[2] 현재 배우로써 활동중인 평균체중. 최고 많이나가던 스트롱맨 시절엔 169kg까지 나갔다.[3] 문을 부수고 교도관을 폭행하기까지 했으며, 이는 지역신문에도 보도된 적 있다.[4] 사실 미성년자라는 어드밴티지가 가장 컸다고 보면 된다.[5] 1996년 '월드 스트롱맨 챌린지'. 상대는 당시 아이슬란드의 강자 '마그누스 베르 마그누손'으로, 2016 월드 스트롱기스트맨 2위에 등극한 '하퍼 줄리어스 비요른슨의 스승이다.[6] 전 세계 스트롱맨들의 '월드컵', 미식축구로는 슈퍼볼 격의 대회. ESPN이 직접 중계를 하는만큼 규모도 어마어마하며 대회상금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3위권안에만 들면 상금도 상금이지만 광고 제의와 엄청난 스폰서쉽이 제공되어 순수하게 운동만 하면서 거액연봉자가 된다.[7] 스웨덴 출신의 스트롱맨인데 팔씨름 선수와 160kg대의 악력으로 더 정평이 나있는 유럽의 강자. 1998년 월드 스트롱기스트맨 우승자[8] 이 경기가 종합격투기 데뷔전이었던 네이선 존스와 달리 키타오 코지는 이 경기가 종합격투기 3전째였다.(키타오는 프라이드에 참가하기 2년 전인 1996년에 일본에서 열린 제1회 유니버설 발리투도 파이팅 대회와 같은 해에 열린 UFC 9에 참가한 바 있다. 다만 유니버설 발리투도 대회에선 1라운드 5분 49초만에 팔꿈치 공격에 의해 패배, UFC에서는 1라운드 40초 만에 TKO 패배를 당해 이 경기 전까지 승리를 거둔 적은 없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네이선 존스와 붙은 키타오 코지는 스모 선수 시절에 요코즈나까지 오르긴 했지만 우승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굉장히 저평가되는 요코즈나였으며, 역대 요코즈나 중에 가장 인기없는 요코즈나로도 유명했다. 스모계에서 은퇴한 후에는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는데(무려 텐류 겐이치로와 함께 WWF 레슬매니아 VII에서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여기서도 협회와 선수들과 트러블들도 많았고 관중들에게 야유도 많이 받았었다. 1998년에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은퇴한 후 다시 스모 지도자로 복귀했지만 2013년부터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19년 2월 10일 만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관련 일본 언론 기사[9] 국내에는 최홍만에게 니킥맞고 TKO된 프로레슬러 정도밖에 안알려졌지만,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강력한 외국인 용병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테크닉이 매우 좋아서 현역으로 뛰면서도 UPW소속 코치로 활동했다. 이 시절에 리즈 시절의 존 시나와 사모아 조도 지도한적이 있다. 잭 블랙 주연의 '나초 리브레'라는 레슬링 영화에서 잭 블랙을 가르치기도 했다. 2006년 현역에서 은퇴후 여전히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후학양성을 하고있다.[10] 격투기 선수로도 활약했으나 입식타격은 최홍만에게 1패, 종합격투기는 8전 0승 전패로 격투가로써는 전혀 가능성이 없었다. 오죽하면 복서 출신인 버터빈에게 서브미션으로 무려 2패를 당했을 정도이니 말 다한셈.[11] 과거 90년대 NCAA 전미 아마추어 레슬링 헤비급 4회 챔피온을 지냈으며, NCAA 헤비급 복싱 챔피온 5회의 저력을 자랑하는 무투파 레슬러이다. 커트 앵글과도 대학 레슬링에서 맡붙은 적이 있다. K-1 2003 다이너마이트에서 마우리시오 다 실바를 TKO로 잡아낸 저력이 있고, K-1 다이너마이트에서 급하게 오퍼를 받고 전혀 훈련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레미 본야스키와 입식 타격으로 대결한적 있는데 193cm의 레미 본야스키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출중한 파워로 고전케 만들었다. K-1 2006년 라스베가스에서 당시 상승세를 타며 압도적인 파워와 맷집을 선보인 최홍만과 정면승부를 펼친 괴수대전으로 한국팬들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2005년 K-1히어로스에서 최무배를 전혀 죽지않은 레슬링 실력과 탈인간급 괴력으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쳐 3-0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외 WWE에서도 잠깐 활동한 적이 있다. 세계에서 힘이 가장 센 레슬러로 열손가락안에 드는 인물.[12] 톰 하워드는 지금의 WWE인 WWF에서도 레슬링 트레이너로 근무한적 있고 지금도 많은 레슬러들을 훈련시켜 WWE에도 내보낸다.[13] 당시 OVW 트레이너를 맡기도한 레슬러. 훗날 수련생을 상대로 상습적인 구타, 학대, 폭언등 똥군기 사건으로 인해 트레이너 자리에서 해고되고 WWE를 떠나고 만다.[14] 존스가 방출되면서 그가 존 하이든라히와 루써 레인즈를 추천하여 WWE가 영입 했으나, 역시 그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방출 당했다. 하이든라히는 그래도 2기 리전 오브 둠 결성으로 다시 인지도를 쌓나 싶었지만 카트리나로 인해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퇴사했다.[15] 그의 마지막 경기는 고향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뤘으며, 당시 한국, 싱가폴, 오스트레일리아 투어때였다.[16] 국내명 '옹박: 두번째 미션'[17] 2008년, 둘째 동생인 크리스 벨이 제작하고 감독한 비거 스트롱거 패스터라는 제목의 스테로이드 남용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본인으로 직접 출연했다. 고등학교때만 해도 촉망받던 풋볼선수였으나 대학 장학금을 노리려고 스테로이드를 몰래 복용하다 적발되어 선수협회에 제명당하고 프로레슬러가 되었으나, 스테로이드만 한다고 통하는 세계가 아니었기에 프로레슬러로써의 커리어도 실패. 그나마 가르치는데는 제법 소질이 있어서 레슬링 트레이너를 하면서 인디단체를 돌며 시합하며 근근히 벌어먹고 살았다. 그러나 헛된 꿈에 대한 포기를 아직 버리지못해 결국 약물중독자가 되어 재활시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몰래 약물을 흡입하다 2008년 12월 겨울,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안타까운 사실 두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둘째인 크리스 벨이 영화를 개봉한 그해에 사망하였는데 사망하기 두달전에 그의 노력에 ROH가 관심을 보여 트레이너로 영입을 제안하려 했다는것이었고, 두번째로는 그의 두 동생중 둘째 크리스 벨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걸 결국 거부하고 영화제작자로써의 커리어에 입지를 굳혀나갔고, 막내인 마크 벨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지만 파워리프터로써 비교적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파워리프팅 선수 양성기관을 설립하고 리프팅 장비를 개발하는 운동장비 발명가로 특허권을 취득하여 성공한 삶을 살고있다. 유독 마이크 벨 혼자만 스테로이드 복용에 운동커리어는 다 거쳤음에도 모조리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18]브록 레스너데이브 바티스타등의 중량급 선수들은 케인을 더 쳐준다고 한다. 사실 케인 역시도 213cm의 키에 147kg라는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가진 괴물인지라.[19] 10살때 키가 무려 185였다. 태어날때부터 완력도 남달랐고 이때부터 뒷골목에서 금품갈취와 구타를 일삼는 불량배짓도 하고 다녔으니 평범한 성인남자 한둘은 손쉽게 제압했을만하다.[20] 이런 그를 뜯어말린게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케이였고, 그의 이러한 성격을 캐릭터화 하여 한명의 레슬러로 키운게 톰 하워드였다.[21] 존 하이든라히는 레슬러가 되기전 풋볼선수였던만큼 완력이 상당할만한 인물이며 특히 루써 레인즈는 10대때 뉴욕의 악명높은 우범지대인 헬스키친에서 갱단 멤버였고 경찰폭행죄로 5년간 교도소 생활을 했을만큼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상당한 현피강자중 한명이다. 이런 루써 레인즈가 네이선 존스한테 존 하이든라히와 함께 둘이서 쌍으로 얻어맞을정도면 네이선 존스가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수있다.[22] 실제 PPV도중 일어난 사태이기도 해서 더 문제였다.[23] 존스가 현피강자인것도 있긴 하지만, 뭣보다 사내 최고참 언더테이커가 제자로 키워보려고 데리고 다녔기때문에 건드리지 못하는게 당연하다.[24] 브록 레스너가 스폰받는 보충식품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