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규

 

'''노진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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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이름'''
노진규(盧珍圭, Noh Jinkyu)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92년 7월 20일, 서울특별시
'''사망'''
2016년 4월 3일(향년 23세)
'''학력'''
과천초등학교
역삼중학교
경기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500m
'''소속'''
강원도청
'''신체'''
178cm, 65kg
'''종교'''
불교
'''가족'''
누나 노선영
'''국가대표'''
2010-11~2013-14(총 4시즌)
'''SNS'''

1. 소개
2. 선수 경력
2.1. 2010-11 시즌
2.2. 2011-12 시즌
2.3. 2012-13 시즌
2.4. 2013-14 시즌
2.4.2. 월드컵 시리즈
2.4.2.1. 부상
3. 투병과 사망
4.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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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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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규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지구력을 가진 대한민국 선수들 중에서도 체력이 최상급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쇼트트랙 체력 끝판왕이다.''' 1500, 3000m에서 자주 우승하는 편이다. 특히 1500m에 엄청나게 강한데 아예 초반부터 일찌감치 선두로 치고 나가 그대로 1위로 레이스를 마치거나 트랙 세바퀴를 아웃코스로 돌고 끝에는 기어코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하는 장면도 많이 연출해낸다.

2012-13 2차 월드컵 1500m 결승[1]
노진규가 초반부터 레이스를 이끌어가는 패턴의 경기들을 보면 다른 선수들이 노진규를 추월하려는 시도조차 못 해보고 레이스가 끝나버리는 경기들이 있는데, 이는 노진규가 초반부터 맨 앞에서 경기 중후반 쯤에 나와야 할 스퍼트를 지속적으로 내 다른 선수들의 체력을 일찌감치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운동신경과 스케이팅 기술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하다보니 높은 강도의 체력 훈련을 통해 지금의 엄청난 지구력을 얻어 다른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는 케이스다.[2]
사실 노진규 정도의 체력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힘들다고 알려진 한국 쇼트트랙 스파르타식 체력훈련 이상의 체력 훈련을 해내왔다는 이야기이다. 몇 코치들이 언급하기로는 노진규의 성실한 훈련 자세가 이를 가능케했다고 한다. 많은 쇼트트랙 팬들도 노진규의 체력만큼은 안현수의 전성기때와 동급이거나, 아니 그 이상으로 평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체력을 갖췄다.
여담으로 2011-12 시즌에 이정수가 징계가 풀리고 곽윤기와 함께 대표팀에 복귀했었는데, 최근 2015년 2월 인터뷰에서 이정수가 밝힌 바로는 당시 대표팀 에이스였던 노진규에게 맞춰져 있던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는게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비록 징계를 받고 1년 가까이 운동을 쉬었던 이정수의 지구력이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체력이 강점인 이정수가 노진규의 훈련량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니 노진규의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성시백처럼 신체조건이 좋아 체구가 큰 외국선수들을 상대로도 몸싸움이나 자리싸움에서 잘 밀리지 않고[3], 강한 지구력을 바탕으로한 힘도 굉장히 좋은편이다. 장거리에서 보여주는 아웃코스 패스의 스피드와 안정성도 좋은 편. 그러나 기술과 유연성 면에서 약점이 있고, 레이스 운영과 자리잡기 센스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순발력이 워낙 약해 500m나 계주처럼 지속적으로 스퍼트를 요하고, 아웃코스보단 인코스로 제치는게 유리한 종목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다.[4] 1000m도 초반부터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면 고전하기도 했다.[5] 이런 점에서 이정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정수는 체력 괴물 노진규보다는 지구력이 약간 약한 대신, 순발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 뿐더러 노진규보다 레이스 스타일이 좀 더 유연하다. 무엇보다도 경기 흐름을 읽는 눈에서는 이정수가 많이 앞서는 편이다.[6]
이정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서로에게 자주 비교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쇼트트랙 팬들 사이에서는 2009-10 시즌 이정수 VS 2012-13 시즌 노진규는 상당한 떡밥이다. 참고로 이정수가 최고의 폼으로 가장 맞붙고 싶은 상대는 빅토르 안이나 곽윤기도 아닌 노진규라고 밝힌 바 있다.[7]
여담으로 노진규의 누나인 노선영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였다. 노진규는 누나가 스케이트를 타러 갈 때 따라다니다가 쇼트트랙에 입문했다고 한다.[8]

2. 선수 경력



2.1. 2010-11 시즌


2010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우승하고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만 어린 나이에 경험이 부족해 국제대회에서 잘 해낼 수 있겠나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2010-11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노장들을 상대로 고전하며[9] 아직 성인무대에서 한국 대표팀의 신흥에이스로는 기량이 너무 낮다라는 비평을 받았으나,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1500m와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해내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1 세계선수권에서 500m를 제외한 모든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 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며 포텐을 제대로 터뜨린다.

2.2. 2011-12 시즌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하며 상승세를 이어갔고 자신의 첫 월드컵 종합우승을 달성했다. 2012 세계선수권에선 대회 2연패에 도전, 2011-12 시즌부터 징계가 풀려 국대로 돌아온 곽윤기와 그야말로 접전을 벌이다 3000미터에서 1위를 내줘 종합 준우승을 기록했다.
계속해서 무서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신예 에이스라서 한국에선 그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자기관리만 잘해준다면 빅토르 안을 잇는 한국의 차세대 쇼트트랙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여담으로 노진규의 롤모델은 자신의 한체대 선배인 안현수/빅토르 안인데, 심지어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도 '포스트 안현수'다.[10]

2010-11 4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

2010-11 5차 월드컵 1000m 결승

2011-12 4차 월드컵 1500m 결승

2.3. 2012-13 시즌


전 시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놓쳐 다음 시즌 국가대표 자동선발에는 실패했지만 정작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해 별 문제없이 선발에 성공했고 당시 국내에서는 곽윤기이외엔 큰 경쟁자가 없다는걸 증명했다.[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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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때는 1500미터에서는 4차 월드컵 은메달을 제외하고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500미터는 거의 참가를 안했고, 했어도 준결승도 못 올라보고 탈락한다. 1000미터에서는 여전히 순발력과 경기운영능력의 부족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2013 세계선수권에서 나왔다. 1500미터는 결승까지 순탄하게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스케이트 날에 문제가 생기며 아웃 코스 추월에 실패해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500미터에서 준결승까지 올라오는 저력을 보여주지만 준결승에서 중국의 량웬하오, 러시아의 빅토르 안에 이어 3위로 들어오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노진규의 500미터 성적을 생각한다면 큰 수확이었다. 1000미터 준결승에서는 샤를 아믈랭빅토르 안의 견제에도 2위로 골라인을 통과해내 결승 진출을 하나 싶었지만 네덜란드 선수와의 충돌로 실격판정을 받았다. 계주 결승에서도 한국이 실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노메달로 마쳤다.

2.4. 2013-14 시즌



2.4.1.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


선발전에 3위를 기록해 대표팀승선에는 성공했으나, 신다운이 세계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기에 노진규에게는 개인종목 출전권이 주어지지 않고, 계주에만 참가가 가능하다. 1500미터에선 거의 언터쳐블한 선수이기때문에 굉장히 아쉬울 따름. 단 선발전 순위 1~3위를 기록한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 중 한명이 양보를 해준다면 1500미터 이벤트에서 경기할 수 있다. 참고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곽윤기가 이정수 대신 500미터에 참가했다.
곽윤기는 선발순위의 가장 마지막 순위였기 때문에 계주에만 참가가 가능했지만, 단거리에 약한 이정수가 그에게 500미터를 양보해줬다. 문제는 1500미터는 모든 한국선수들이 다 잘타는 종목이라는 것이다. 노진규가 현재 1500미터 세계 최강자임은 사실이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이 항상 강했던 종목인데다가 신다운, 이한빈#s-1, 박세영 모두 가장 메달가능성이 높은 1500미터를 양보해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또 다른 문제는 곽윤기와 이정수의 짬짜미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진 이후 한국 쇼트트랙의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하였고,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저 셋중 한명이 노진규에게 1500미터 출전권을 양보한다한들 언론에서 '코치의 외압', '또 다른 짬짜미?'하며 의혹이 터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4.2.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에서 1500미터를 우승했으나, 샤를 아믈랭과의 약간의 충돌로 어깨를 부상당해 2차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우려하던 대로 개인전 출전권을 가지고 있는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은 부진과 국제경험부족[13]으로 1, 2차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죽을 쒔고, 올림픽 티켓이 걸린 3차 월드컵에서 저 세 명이 극심한 부진을 하자, 급기야 4차월드컵에선 이제는 한물간 이호석과 어깨부상이 다 낫지도 않은 노진규가 투입되어 티켓을 1장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분투를 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쇼트팬들 사이에선, 1500m만큼은 노진규가 꼭 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2.4.2.1. 부상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중 왼쪽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14] 으로 올림픽에 불참하게 되었다. 빙상연맹에서는 노진규를 대신할 선수를 경기심판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상임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곽윤기에 이어 노진규마저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상 이제 팬들은 남자부는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의 대체 선수로 월드컵에서 올림픽 티켓을 따내는데 일조했던 이호석이나 부상당하기 전까지 세계 1인자나 다름없었던 곽윤기가 뽑히지 않을까 예상되고 있다. 허나 이호석을 대표팀에 포함시키는건 선발전에서 5위를 했었기 때문에 문제가 딱히 될 게 없지만, 5위권 밖에 있는 선수들 중 한 명을 뽑는 건 가뜩이나 빙상연맹의 이미지가 파벌 싸움, 짬짜미 사건 등으로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더더욱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15] 이호석이 아니라면 6위 김병준, 7위 이정수, 8위 곽윤기 이 셋 중 한 명이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정수는 선발전 탈락 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16]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차순위였던 이호석이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대신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3. 투병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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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드컵 1차 대회 직후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실시한 검사[17]에서, 6cm 가량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나마 올림픽 출전에는 이상없다는 병원 측의 진단에 따라, 수술을 올림픽 이후로 미뤘는데, 올림픽에 나가려고 진통제까지 달고 다니면서 훈련하다가 골절이 생기는 바람에, 올림픽에 나가지도 못했다.[18][19]
그새 종양은 13cm까지 자랐다. 팔꿈치가 골절된 것은 이 종양 때문에 뼈가 약해진 탓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종양이 커지고 뼈가 부러진 것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대한 문제이다. 종양 제거 수술을 할 때 '''왼쪽 견갑골 전부'''를 끄집어냈다. 견갑골이 아예 없으면 팔을 어깨 위로 드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왼팔은 쇼트트랙에서 코너를 돌 때 땅을 짚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견갑골 적출이 노진규의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태였다.
이후 문제는 선수생명이 아닌 생명이 위협받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수술 이전 건국대병원 검사에서는 양성종양[20]만 발견되었고, 수술대에서도 처음에 언뜻 보았을 때는 거대세포종만 보였는데, 종양 안쪽으로 파고들자 악성종양인 골육종이 드러났다. 골육종은 암 중에서도 예후가 불량하다. 쉽게 말해서 골육종은 뼈암이다. 대표적으로 야구선수 이두환이 같은 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수술 이후 2월 초순부터 6~8개월 간 통원으로 항암 치료에 들어간다고 한다. 노진규 선수의 경우 몸 속 종양을 다 긁어냈고 전이도 없지만 악성 종양의 특성 상 항암제를 맞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항암제 부작용으로 구토를 한다고 한다.[21]
폐전이 또한 발견되어 2차례 전이 부위에 대한 수술도 받았다.
발병 시점으로부터 약 1년 정도가 지난 2015년 1월 14일, 노진규의 근황에 대한 실로 오랜만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일단 체내의 종양은 다 제거가 된 상태이지만 수술한 시점에서 5년, 즉 현 시점에서 앞으로 4년은 더 재발이 없어야만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팔과 어깨의 기능이 많이 손상되었고, 투병 생활로 인해 체중도 선수 시절보다 10kg 이상 불어났다.
골육종 발병 이후 노진규의 근황 사진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2015년 4월부터는 노진규 선수 본인이 SNS를 통해 최근의 자기 사진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 예전보다 약간은 토실토실해졌지만 건강을 많이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항암 치료로 다 빠졌던 머리카락도 서서히 자라고 있고, 중학교 교생실습을 나갈 정도로 일상 생활에는 이제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한동안 소식이 거의 없던 와중 최근 종양이 다시 악화되어 2016년 4월 3일 오후 8시[22]에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때가 향년 23세였다. 노진규가 병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빙상 관계자 전원이 비탄에 잠겼고, SNS로 추모글이 이어졌다.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하고, 올림픽에 나가려는 꿈도 간절했건만, 24세 생일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노진규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생전 마지막 글들이 2월 28일에 남겨져 있었는데, 2016년 3월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겠다 밝혔지만 그 당찬 포부를 이루지 못한 채 2016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쇼트트랙 팬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의 누나인 노선영 선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삽질로 한 때 올림픽 출전이 힘들어졌었으나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파동으로 다행히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고, 2월 12일 남동생을 위해 아름다운 레이스를 펼쳤다.
2018년 4월 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전명규가 그의 죽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항암 치료를 빨리 시킬 수 있었음에도 당장의 성적을 위해 강제로 경기에 출전시켜 치료를 미루게 압박한 것이라는 노진규 어머니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이에 대해 전명규 부회장은 어떠한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23]

4. 수상 기록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1 셰필드
종합
금메달
2011 셰필드
1000m
금메달
2011 셰필드
1500m
금메달
2011 셰필드
3000m S.F
금메달
2012 상하이
1500m
은메달
2012 상하이
종합
은메달
2012 상하이
1000m
은메달
2012 상하이
3000m S.F
동메달
2012 상하이
5000m 계주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11 바르샤바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0m 계주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1500m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13 트렌티노
1000m
금메달
2013 트렌티노
1500m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 타이베이
종합
금메달
2010 타이베이
1000m
금메달
2010 타이베이
1500m
[1] 마지막 한바퀴 반을 남겨놓고 7위로 달리던 노진규 선수가 아웃코스로 모든 선수를 다 제치고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압도적인 1위로 들어온 이 경기는 아마도 무한히 회자될 레전드 경기일 것이다.[2] 본인이 언급한 내용이다.[3] 자리를 내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노진규가 인코스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도 아웃코스로 크게 도는 습관이 있어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4] 시니어 데뷔 초기에는 계주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2012-13 시즌 이후로는 계주 2번 주자도 맡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더군다나 체력이 워낙 좋아서 계주에서는 마지막까지 지치지를 않아 다른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 노진규가 시니어 국가대표로 처음 활약하기 시작한 2010-11시즌까지만 해도 아직 1000미터가 지금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종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노진규의 1000미터 성적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 후 부터는 500미터를 두 번 타듯이 빠르게 레이스를 진행시키는게 트렌드가 되어 체력뿐만 아니라 스피드와 무엇보다도 경기 운영능력이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다.[6] 그런데 2014-15 시즌에 국가대표로 복귀한 이정수는 예전의 장점들은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부진하고 있다.[7] 맞대결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3-14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500미터에서 1위를 다퉜는데 당시까지 건강상 문제가 없었던 노진규가 승리했다. 이정수는 2위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골라인 코앞에서 미끄러지며 박세영에게 2위를 내주고 3위로 통과했다.[8] 그런데 노선영 선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삽질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이 무산되었다가 출전 명단에서 일부 러시아 선수들이 빠지며 극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9] 세계랭킹 4위이었으며 그나마 이호석성시백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선전한 편이었다.[10] 이런 별명은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한적도 있다.[11] 김윤재 2위, 신다운이 3위를했고, 곽윤기는 2012에선 우승자이기 때문에 자동선발이 됐다.[12] 안 좋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은 김성일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 모두가 금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지만, 최근 와서는 노진규와 곽윤기 이외엔 큰 기대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때는 안현수이호석 정도가 두드러지는 기량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둘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외국에서도 이들 기량에 근접하는 선수조차 없었다. 최근에는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밴쿠버 때보다도 훨씬 더 향상되어 노진규나 곽윤기도 올림픽 메달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13] 신다운은 국가대표생활을 한 지 한 2년 정도 됐으니 해당이 안된다.[14] 쇼트트랙 선수에게는 특히나 치명적인데, 코너를 돌 때 왼손으로 균형을 잡기 때문에 왼쪽 팔 부상은 참고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다.[15] 당장 파벌 싸움의 시작이 차순위에도 못 들었던 빅토르 안을 대표팀으로 꽂아넣은 것 부터였다.[16] 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17] 2014년 2월 초 원자력병원에서도 건국대학교병원 마크가 있는 팔걸이를 하고 있었다.[18] 저 암으로 인해 군대는 면제 처리되었다.[19] 정확히 말하면 예술체육요원 복무 중 질병으로 소집해제 된 것으로,이미 군 면제를 받지 않았다면 2011년 예술체육요원 편입된 상태이다.[20] 정확하게는 거대 세포종인데, 95%가 양성으로 분류된다.[21] 2014년 5월 쯤에는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었다.[22]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이 날은 시즌 마지막 경기인 2차 국가대표 선발전의 마지막 날이었으며 선수들은 시합이 끝난 후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23] 실제로 당시 남자 쇼트트랙을 오랫동안 본 사람이라면 남자 대표팀이 비상 사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전 출전 권한이 있던 3명의 선수가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올림픽 무대의 개인전 출전권을 거의 모두 날려버릴 위기에 있었다. 이 때문에 전명규는 노진규의 병이 심각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 상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채 무리하게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월드컵에 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