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석

 


'''이호석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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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ccff> '''이름'''
이호석(李昊錫, Lee Hosuk)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6년 6월 25일, 서울특별시
'''학력'''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신목중학교
신목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스포츠지도학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1]
'''신체'''
168cm, 62kg[2]
'''국가대표'''
2005-06~2011-12, 2013-14('''총 8시즌''')
'''가족'''
부모님, 아내, 남동생, 여동생
'''SNS'''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주니어 시절
2.2. 2005-06 시즌
2.3. 2006-07 시즌
2.4. 2007-08 시즌
2.5. 2008-09 시즌
2.6. 2009-10 시즌
2.7. 2010-11 시즌
2.8. 2011-12 시즌
2.9. 2012-13 시즌
2.10. 2013-14 시즌
2.10.1. 국가대표 선발전
2.10.2. 월드컵 시리즈
3. 은퇴
4. 논란
5. 파벌
6.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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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image]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07-08 시즌 월드컵 챔피언'''
'''2009, 2010 세계선수권 2연패'''
동계올림픽에 가장 많이 출전한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3]
대한민국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자, 現 쇼트트랙 코치다. 선수 생활을 굉장히 길게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3-14 시즌 이후로 선수 생활을 접고 코치를 시작했다.
'''다이나믹한 아웃사이드 패스'''로 잘 알려진 스케이터로 역동적인 움직임과 순발력으로 시원하게 아웃코스를 아주 크게 타는 게 특징이다. 아무래도 체구가 작고 가벼운 편이다 보니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택한 방법이 트랙을 아웃코스로 넓게 타며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인데, 이건 이호석의 엄청난 순발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캐나다 단거리 스페셜리스트도 1:1로 붙으면 이호석에게 그냥 추월당하니 이호석의 스피드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이런 식으로 스퍼트를 하게 되면 체력소모가 상당한 편이다.
가끔 앞에 있는 선수가 아웃코스 추월 경로를 견제할 경우엔 마지막에 코스를 인코스로 급격히 변경하면서 인사이드로 파고들어 추월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며 이것은 팬들로부터 일명 '''칼치기'''라고 불리운다. 거의 이호석만의 전용 기술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4]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하면 거의 90% 이상은 추월을 성공한다고 보면 된다. 스케이팅 기술도 굉장히 좋아서 잘 알려진 아웃코스, 인코스 추월에 모두 능하며, 앞에서 설명한 '칼치기'같은 웬만한 선수들은 시도도 못할 움직임을 자주 보여준다.
참고로 이호석이 아웃코스추월을 자주 보여줘서 인코스 추월이 가끔 과소평가 될때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빅토르 안이 자주 보여주는 인코스 추월기술 같이 고난이도 기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몇안되는 선수중 한명이다.[5]
아무래도 '''공격적인 성향의 스케이터'''인지라 안정성이 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6] 이 때문에 주종목이 아닌 500미터에서도 성적이 나쁘진 않은 편이나 이 때는 힘을 더욱 싣어 전속력 질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넘어지는 장면들을 자주 연출했다. 두 번 출전했던 올림픽 무대에서는 500미터에서 결승진출 한 번 못해 본 채 두 번이나 넘어졌다. 토리노에선 준준결승에서, 밴쿠버에서는 준결승에서 넘어졌다. 그리고 소치에서는 계주 예선에서 넘어지면서 온갖 비방의 대상이 되었다.
또 다른 단점이라면 역시 작은 체구 때문에 170센티를 조금 넘는 선수들한테도 몸싸움에서 밀린다는 것과[7] 작은 키 때문에 다리가 짧아 몸은 코너를 먼저 돌고도 골라인 날내밀기 경합에서 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8]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2인자들이 그렇듯 동시대의 안현수에게 가려져 과소평가 받는 비운의 선수다.[9] 더군다나 올림픽에서 유독 임팩트 있는 사건(밴쿠버 1500m, 소치 5000m 계주)에 시달렸고 올림픽 개인전에선 은메달만 3개 땄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서 '''이런저런 근거없는 루머에 희생되어 실력에 비해 상당한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댓글만 보면 저도 저를 욕하겠던데요?"'''[10]
오히려 캐나다,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선 그의 업적을 높히 쳐주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서야 한국 쇼트트랙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정을 받고있는 추세다.
확실한 건 안현수가 2008년 부상으로 이탈한 동안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는 누가 뭐라 해도 성시백이나 이정수도 아닌 단연 이호석이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역대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국적으로 가장 많은 메달을 받은 쇼트트랙 선수''' 중 한 명이다. 전이경, 박승희와 함께 5개의 메달을 땄으며, 상기했듯이 남자선수 중에는 이승훈과 함께 공동 1위다. 물론 금메달은 이승훈이 더 많으며 안현수도 한국 국적으로 딴 메달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딴 4개로, 이호석보다 하나가 적다. 쇼트트랙 선수였지만 이호석보다 아래로 평가되던 이승훈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뒤 2개의 금메달, 3개의 은메달을 수상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과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을 끝마친 후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공식적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한 건 아니었지만 코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선수로서의 활동은 사실상 끝마친 걸로 보였고 2015-16 시즌 2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최근 이호석이 코치하고 있는 박지원김한울[11]이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는데, 둘다 이호석이 구사하던 스케이팅과 흡사해 쇼트트랙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박지원같은 경우에는 김한울보다도 이호석의 스케이팅과 더 비슷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2015-16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좋은 가능성을 보여줘서 큰 기대를 받고있다.[12]

2. 선수 경력



2.1. 주니어 시절


어릴 때부터 쇼트트랙을 타기 시작했고, 그 실력이 중학교때부터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미 당시에는 어린선수들 사이에서는 라이벌 성시백과 더불어 굉장히 유명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3연패를 하면서 또래에서는 세계무대에서도 이호석을 상대할 선수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세계최고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과제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국대에 합류해 사실상 최종 보스로 군림한 안현수를 넘는 것이었다.

2.2. 2005-06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로 선발되었고 당시에는 개인전 출전에 대한 권한은 감독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월드컵에서 잘 해준다면 개인전 출전권 3개를(1500,1000,500) 모두 따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5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재패후 월드컵에서 1500미터 종합 2위, 1000미터 종합 1위를 해내 월드컵 종합 랭킹 2위를 차지했다.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거물급 선수가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2003년부터 3연패에 성공했기 때문에 알만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들 알고있었고 안현수 이외에 한국의 또 다른 에이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목을 받고 있었다.[13]

2.2.1.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1500m 결승
1500미터에서는 안현수와 함께 결승에 진출해 1위로 달리고 있었을 때 마지막 한바퀴에서 안현수가 인코스로 추월해 2위를 유지하면서 골라인을 통과했다. 이후 양보를 한 게 아니냐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는데(아래의 양보드립 참고) 나중에 이게 1000미터에서도 양보를 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양산되어 파벌싸움이 이슈화가 되었을 때 그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10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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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m 결승

1000m 결승
세계는 안현수와 아폴로 안톤 오노의 대결을 주목했으나 사실상 이 경기는 한국 동료끼리의 대결이었다.
이호석은 마지막 3바퀴까지 체력을 아끼며 계속 뒤에 있다가 마지막 2바퀴에서 환상적인 아웃코스패스를 하면서 마지막엔 아폴로 안톤 오노까지 추월했으나, 골라인 경합에서 안현수에게 밀리면서 또 다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케이트 날을 내미는걸 볼 수 있다시피 이 경기에선 양보따윈 없었다. 이호석은 당시 1000미터 랭킹 1위였으니 1500m은 진짜로 안현수에게 양보해줄 생각이었던 것 같고 1000미터에 올인하려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1000미터 경기 후에 안현수에게 양보했다고 한 적은 없으며 그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경기다.
- 500m
준준결승에서 헝가리 선수와 같이 넘어지면서 광탈했으며 다행히 아무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참고로 안현수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 5000m 계주 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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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의 4번째 주자로 나섰다. 아무래도 3번째 주자였던 서호진을 커버해주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고 이호석의 활약이 상당히 중요했던 게 서호진이 안현수가 벌려놓은 격차를 자꾸 줄여놓으니, 이호석의 분발이 없었다면 2번째 주자인 안현수가 상당히 힘들었을 경기였으며 이호석이 없었다면 아무리 안현수여도 금메달까진 힘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도 이호석이 좋은 활약을 해주면서 안현수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안현수가 8바퀴째 때 추월을 시도하지 않고 체력을 마지막 2바퀴에 비축해둘 수 있게 한 템포를 쉴 수 있을 정도였다. 준결승에서는 오세종이 초반에 넘어지면서 위기가 있었지만 17바퀴를 남겨놓았을 때 본인이 다른 선수들을 추월한 끝에 조 2위로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결승에선 3바퀴를 남겨두고 캐나다 선수인 에릭 베다르송석우를 푸싱하는 바람에 위기가 있었지만 마지막에 안현수가 대역전극을 이뤄내 결국 본인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만 안현수의 원맨쇼에 그의 활약은 상당히 가려졌던 경기였다.

2.2.2. 2006 세계선수권



2006 세계선수권 1500m 결승
송석우가 올림픽이 끝난 후 은퇴하고 서호진은 세계선수권에 불참하게 되어, 오세종안현수, 이호석과 함께 개인전에 출전했다. 결과는 안현수 종합 1위, 이호석 종합 2위를 기록했다.

2006 세계선수권 1000m 결승
이번에는 오세종이 결승진출에 실패해 안현수와 1대1로 맞붙게 되었다. 사실 이호석과 안현수가 500미터에서도 경기를 치뤘는데 안현수가 이호석과 충돌하는 바람에 안현수가 실격당했고 본인이 동메달을 땄다. 그래서 포인트가 같았던 상황이었고 둘다 서로를 이겨야 종합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둘 다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면서 미국러스티 스미스를 관광보냈고 마지막 한바퀴를 남길 때 이호석이 안현수를 인코스로 추월하나 했으나 안현수가 자리를 잘 견제하면서 골라인을 통과해 그는 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 세계선수권 3000m S.F 결승
결국 안현수를 이겨야만 세계선수권을 종합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안현수과 이호석이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그리고 모든 불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경기다. 경기 막판에 안현수가 완전히 이호석을 밀어버리는 듯한 모습이 나타났고 이호석이 결국 중심을 잃으면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경기 주심이었던 제임스 휴이시안현수에게 잘못이 있었다고 판단해서 실격을 줬지만, 본인은 넘어져서 5위로 들어와 총점 60점을 받으면서 결국 8점 차이로 안현수가 대회 종합 우승을 했다. 비디오를 보면 안현수가 이호석에게 다가가 사과하는 모습이 나오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때 파벌싸움이 엄청나게 심했던 상황이었다.
이 사건 당시 엄청나게 욕을 먹은[14]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에게 자신의 심경을 하소연했고, 이에 분노한 안기원이 선수들이 귀국하는 공항에서 쇼트트랙 관계자에게 '이호석과 오세종이 짜고 안현수를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화를 냈고 멱살잡이를 한다.(일명 공항쇼 사건) 이에 열받은 이호석의 엄마는 정신줄을 놓고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아래 영상 앞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YTN과 인터뷰 중이던 안현수가 아버지의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론이 이호석과 이호석의 엄마를 비난하는 쪽으로 재형성되었다.
이호석의 엄마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이 안타깝게 은메달을 따고 1위를 차지 못한게 아쉬운 처지인데 같은 팀 1위의 선수 아버지가 저런 말을 하니 열 받아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나간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이 방송을 타게 되면서 우리의 위대하신 빙엿에서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비디오 판독에서 오세종이 이호석에게 추월당한 직 후 이호석을 따라 아웃코스로 추월을 하던 안현수의 위치를 미처 판단하지못하고 서로 어깨를 살짝 부딪히면서 선두권 밖으로 밀려나갔다. 하지만 고의성이 없었으므로 이호석과 오세종, 안현수 모두 잘못이 없다는 판정을 내린다. 그리고 안현수의 아버지는 빙상 경기장 1년 출입 금지 처분을 받는 것[15]으로 마무리 지어졌으나, 이 사건 당시 서로의 부모님[16]에게 좋지 못한 말을 들은 양 선수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최악의 결과만 가져오게 됐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이 대회는(특히 한국) 쇼트트랙팬들에게는 상당히 가치가 있는 대회다. 경기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호석과 안현수는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의 상승세를 이어가 이 세계선수권에서는 더욱더 수준 높은 레이스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세계 투톱이었던 두 선수가 종합 우승 하나만을 바라보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기 때문에 1000미터, 1500미터, (비록 마지막에 충돌이 있었지만)3000미터 슈퍼파이널 모두 명승부로 평가받고 있다.

2.3. 2006-07 시즌


시즌 초기에 파벌싸움이 더 심해졌을 당시에는 서로 경기 도중 충돌하는 경우[17]가 많았다. 안현수와 이호석의 경쟁이 굉장히 더욱 더 치열했고, 월드컵 경기에선 종종 둘의 충돌이 나오기도 했다. 2006-07 시즌에는 부진을 타기 시작해 월드컵에서 1000미터 랭킹 1위를 확보한 것 이외에는 모두 다 날려먹었고, 2007년 3월에 발목부상을 당해 세계선수권에 참가를 하지 못했다. 안현수도 부상으로 모든 월드컵 경기를 제대로 치루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2007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폼을 회복해 2006년처럼 압도적이진 못했지만 세계선수권 5연패에 성공했다.
아무튼 슬럼프에 빠진 그에겐 상황이 그리 좋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한국처럼 세대교체가 빠르고 경쟁이 심한곳에서는 쇼트트랙 선수에게 슬럼프가 온다는건 다른 종목의 선수보다도 상당히 더 위험하다. 심지어 국대동료 선수들조차 이호석의 선수생활이 끝나간다고 생각할 정도였다.[18]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즌 막바지에는 부상으로 2007 세계선수권에 불참했고, 선발전에서 차순위를 기록했던 성시백이 대신 계주 멤버로 출전했다.

2.4. 2007-08 시즌


다행히 재기에 성공해 월드컵에서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안현수가 1000미터에서 1위, 1500미터에서 2위, 반대로 이호석이 1000미터에서 2위, 1500미터에서 1위를 해서 막상막하였으나 이호석이 그나마 500미터에서 88위를 기록해 포인트에서 앞서 종합우승을 한 것. 한 경기에서 안현수가 의도적으로 이호석과 송경택에게 1500미터에서 1,2위를 양보해 1500미터에서 종합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파벌싸움이 조금씩 풀리는 시기였으니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선수들과의 사이가 나아지는 모습이 조금씩 보였으며 이때부터는 오히려 이호석이 정면대결에 포기하고 안현수가 선두에 있으면 제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2위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또는 반대로 바로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월드컵에서 안현수가 아주 가끔 1위를 양보할때가 있었다. 몇번은 송경택과 각각 인사이드, 아웃사이드를 맡아 안현수에게 블록킹 전략을 시도했던 적도 있는데, 물론 안현수는 그런 거 신경쓰지도 않고 아웃사이드로 매번 지나갔다.[19] 그러니 세계랭킹은 1위였으나 임팩트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안현수가 2008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훈련 중에 중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고, 실력으로는 한국 국대의 또다른 에이스라고 봐도 될정도로 손색이 없었던 그가 그 해 강릉에서 열릴 세계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할거라 큰 기대를 받았으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어이없게 홈에서 우승을 내주면서 2위로 마감했다. 사실 당시에는 안현수, 이호석을 제외하고도 송경택, 이승훈, 성시백, 곽윤기등이 대표팀에 있었을 정도로 남자 쇼트트랙 역사상 최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당시 한참 포텐이 터지고 있던 성시백은 5번째 순위로 선발이 되었기때문에 계주경기에만 참가할 수 있었고, 안현수의 부상으로 덕분에 세계선수권 개인전출전 자격을 얻었던 이승훈(4번째 순위)은 2007-08 시즌 월드컵 활약이 나빴던건 아니지만 송경택보다는 아래였다고 평가받았다.
송경택은 실력이 있는 선수였기는 하나, 안현수나 이호석처럼 정말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최상급 선수는 결코 아니었으며, 덕분에 안현수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이호석에겐 가장 큰 경쟁자는 없었던 상황이지만 어떻게 본다면 이호석은 다른 외국선수들을 뒤흔들어줄 '최고의' 파트너를 잃었던 셈이다.
결국 1500미터 2위, 1000미터에서 우승한 결과 500미터 우승과 1000미터 2위를 기록한 오노와 동점이 되면서 3000미터 슈퍼파이널에서 두 사람 중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종합 우승하게 되었다. 실력적으로는 당연히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스퍼트 타이밍이 오노보다 늦어 3위로 들어간 오노 다음으로 통과했다.[20]
더군다나 한국에서 열렸던 대회였는데 종합 우승을 그것도 20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에게 금메달을 뺏은 오노에게 넘겨줘 많은 비난을 받았고, 사람들은 안현수 없이는 안된다며 그는 더욱 더 비교를 받으면서 까였다.

2.5. 2008-09 시즌


그후 성시백이 월드컵 종합 우승을 해내서 그는 2008년에만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에서 종합 준우승만 2번을 달성했다. 더군다나 당시 이정수와 곽윤기가 랭킹 탑 5위권 안으로 들어왔던 상황이었고 저 둘의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2008-09 2차 월드컵
500m 준결승
2008-09 2차 월드컵
1500m 결승


2008-09 3차 월드컵
500m 결승
2008-09 1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21]

2009 세계 팀선수권 5000m 계주 결승[22]
2009 세계선수권에서 1500미터와 1000미터를 우승했고 3000미터에서 2위를 기록해 대활약하면서 당당히 종합 1위로 대회 우승을 했고, 그 덕분에 선발전을 스킵하고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에 자동선발되었다. 그 후 월드컵에서도 맹활약을 했고, 막바지 부상만 아니었어도 2009-10 시즌에 종합 우승을 할 정도로 물이 올라있었던 상태였다.

2.6. 2009-10 시즌



2.6.1. 월드컵 시리즈


2차 월드컵 계주 결승에서 보여준 역전극은 정말 그 밖에는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비록 막바지에 부상을 당해 3차, 4차 월드컵에 불참했지만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로 예상되었다.


2009/10
2차 월드컵
1500m 결승
2009/10
2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23]
다만 이 부상이 본인의 말로는 올림픽에서 변수가 되었다고 한다.

2.6.2.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 1500m

1500m 결승
[image]
결승에서 이정수성시백이 먼저 1, 2위로 자리를 잡을 때 마지막 코너에서 크게 돌면서 인사이드로 이정수를 앞지르려 하다가 성시백과 같이 넘어지면서 본인은 실격당했으며, 성시백은 5위로 들어왔다. 사실 그가 올림픽 전에 이런 움직임으로(일명 '칼치기') 짜릿한 역전 우승을 거둔 적이 꽤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엄청난 판단 미스였다. 특히 덩치를 생각할 때 성시백이 충돌을 피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면 매 경기 반칙과 다름없는 거친 플레이를 한 오노가 비난의 중심에 섰을 게 분명했으나[24], 최종 코너에서 자국 선수를 무리해서 제치려 하는 바람에[25] 오노 동료들이 메달을 따면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었다. 다만 단체전이 아닌 개인 경기에서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에 그의 행동이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나중에 본인이 성시백에게 사과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충격이 컸던 성시백은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가 성시백 선수에게 사과를 하고 성시백도 이호석에게 사과하면서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다.

1000m 결승
그 뒤 1000m에선 2바퀴 남기고 선두로 치고 나와 이제 개인전에서 금메달 따나 싶더니 뒤에서 바짝 따라오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정수가 반바퀴 남기고 인사이드로 추월한 결과 결국 1위로 골인해서 다시 목에 은메달을 걸었다. 토리노에서 1500m, 1000m 은메달 두 개, 밴쿠버에서 남자 1000m 개인에서 은메달을 받아 개인전에선 은메달만 3개를 땄다. 본인은 이정수 선수의 금메달을 축하하긴 했지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 500m
500미터에서는 준결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오노의 결승진출를 돕게 되어 같은 팀원인 곽윤기의 결승진출 실패에 기여를 했다. 그 뒤 파이널B에서 7위를 기록했다.
- 5000m 계주
5000미터에서는 500미터에서 넘어진 것 때문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자신이 항상 맡았던 두번째 주자로도 나오지 않았다. 두번째 주자를 맡아 경기를 뒤집는 에이스 역할을 해줄것으로 기대를 받았으나 세번째 스케이터로 출전했고, 500미터에서 날에 손상이 갔는지 자신의 몸에 무리가 간건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500미터 준결승에서 벌어진 일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타격이 있었던건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5000m 계주 결승
비록 곽윤기가 마지막에 미국의 오노와 중국의 한지아량을 차례대로 제치며 은메달을 따냈지만 사실 곽윤기의 계주 결승에서의 활약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조금 아쉬운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계주에서 가장 중요한 두 선수 이호석과 성시백이 둘다 500미터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경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2.6.3. 2010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하면서 2009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긴 했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그것도 유일한 벽이었던 안현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실패한 건 정말 아쉬울 뿐이다.

5000m 계주 결승[26]

2.7. 2010-11 시즌


2010 세계선수권을 우승한 이후엔 성시백과 함께 조금씩 부진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후 노진규, 등의 신예들이 들어오고는 선배로서, 우승을 노리기보다는 잘 적응하게끔 받쳐주기도했으며, 후배들이 주로 참가하는 1000미터나 1500미터에 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종목이 아닌 500미터나 계주에서 활약하며 시즌을 보냈다.

2.8. 2011-12 시즌



2010-11 4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27]
4차 월드컵 계주에서 역대급 활약을 선보였다.

2.9. 2012-13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나이도 2012년 기준 26살이라 쇼트트랙 선수로 치면 아주 많지는 않은 거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었다. 노진규곽윤기가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고, 실력있는 신예들이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며 경쟁이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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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풍부한 경험 덕에 가장 노련하고 기술적으로도 2014년 현재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 중엔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발탈락전까지만 해도 7시즌 연속 국가대표로 발탁됐으니 실력을 논하자면 입 아픈건 당연지사다. 아무리 까이거나 올림픽에서 개인종목 금메달이 없을지언정 실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스케이터임은 사실이다.

2.10. 2013-14 시즌



2.10.1.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팀 선발전에서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신다운2013 세계선수권을 종합 우승하여 자동 선발됐기 때문에 사실상 6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즉 이호석은 소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고, 월드컵에만 참가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쟁쟁한 후배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선발됐다는 것 자체로도 클래스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이호석을 또 깠다. 애초에 베테랑들이 신예들에게 매번 양보를 해줘야 할거면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규혁은 벌써 몇년전에 은퇴했어야 됐다. 굳이 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이호석을 넘지 못한 젊은 선수들의 잘못이지 이호석의 잘못이 아니다. 이호석은 전성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선발전을 치뤄서 정정당당하게 월드컵 멤버로 선발이 되었고, 신다운의 세계선수권 우승이 아니었다면 노진규가 올림픽에 불참했든 안했든 그대로 계주 멤버로 들어갔을 것이다.

2.10.2. 월드컵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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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년 만에 다시 펼쳐진 둘의 대결
한국 남자 쇼트트랙 팬이라면 모두들 그리워하는 라이벌구도다.
월드컵에선 안현수/빅토르 안과의 맞대결도 쇼트팬들 사이에서 큰 기대를 모으긴 했으나 겨우 500미터에서 딱 한번 레이스를 펼쳤다.[28] 개인전 출전권이 걸려있는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이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올림픽 티켓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개인전 참가자격이 없는 노진규와 올림픽에 못 나가는 이호석이 출전권을 따기 위해 분전했다.
그런데 올림픽을 불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노진규가 불의의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지게 되면서, 차순위인 이호석이 노진규 대신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쇼트트랙 대표팀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이다. 올림픽 전망이 밝지 않은 남자 대표팀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선수들의 파이팅을 끌어올려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일단 개인전 출전권은 없기 때문에 계주에서만 활약할 가능성이 높지만, 신다운과 이한빈이 단거리에 취약하기 때문에 대신 500미터에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있었다.

2.10.3.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그는 사람들의 예상대로 올림픽 5000미터 계주 준결승에서 네번째 주자로 나섰다. 원래 대표팀은 이호석보다는 김윤재를 넣을 생각이었지만, 당시 김윤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대신 베테랑인 이호석을 넣었다.
미국·네덜란드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다가 간신히 선두로 올라섰고 마침 4바퀴가 남은지라 그대로만 유지하면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을 때, 당시 주자였던 이호석이 코너를 돌던 도중 미국 선수가 이호석의 팔을 손으로 쳤는데[29], 속도가 많이 붙은 상태에서 일어난 접촉이라 결국 미끄러졌다.
그러면서 그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왼팔을 뻗자 미국선수가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그 바람에 3위로 밀려났고 후에 순위 변경 없이 그대로 골인, 5000미터 계주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 바람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나 다름없었던 카자흐스탄이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심판진은 미국에게 어드밴스를 받을 자격을 인정해주면서 한국은 12년 만에 올림픽에서 5000미터 계주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한국 중계진은 미국 선수가 팔을 밀어 이호석이 넘어졌으니 한국이 어드밴스를 받아야 한다고 해설했다. 미국 선수가 먼저 이호석의 팔을 쳤으니까 미국 선수에게 잘못이 있다고 본 거 같다. 실제 느린 화면을 보면 미국 선수가 손으로 어깨를 친 것 자체는 고의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가벼운 신체 접촉으로 볼 정도의 수준이었고, 이호석이 왼팔을 내민 거 역시 고의적이진 않았지만 미국 선수가 이 때문에 넘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이 어드밴스를 받긴 했으나 한국이 실격 처리되지는 않았으니, 딱히 미국에 유리한 판정이라기보다는 이호석의 과실이 인정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대한민국이 쇼트트랙 단체 경기에서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12년 만에 일어난 일로, 이호석은 넘어진 바람에도 욕을 먹고 있지만, 과거 안현수/빅토르 안과의 관계에서 나온 루머가 더해져서 나노 단위로 까이고 있는 건 덤이다. 그리고 그 뒤 남자 대표팀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가는 굴욕까지 당했다.
일단 그 후 여자 500미터 결승전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이호석에게 향한 까임의 화살 대부분이 박승희가 넘어지는 원인이 된 영국엘리스 크리스티에게 향하긴 했지만, 2010, 2014 두 번의 올림픽에서 그가 넘어진 게 큰 실책으로 이어졌으니 네티즌에겐 까야 제맛, 영구까임권의 반열에 오르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본문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원래 잘 넘어지기도 하고 파벌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였지만, 한국의 국민들은 대부분 4년에 한 번씩 쇼트트랙을 접하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으니. 특히 위에도 적혀 있는 예전의 어머니의 발언이 다시 회자되면서 빙상연맹과 함께 공적(公敵) 수준으로 까이고 있다.
준결승 다음날인 2월 14일 후배 신다운이 선배 이호석에 대한 지속적인 루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글을 썼다가 오히려 역으로 더 까였다. 다만, 이 때는 이호석을 욕하기 보다 "왜 너가 눈치없이 나서냐?"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3. 은퇴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올림픽 때처럼 네번째 주자로 나섰다. 올림픽에서의 실수 탓인지 초반에는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나갔으나, 경기 후반 레이스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아직 녹슬지 않은 자신의 전매특허 아웃코스 패싱을 보여주면서 네덜란드를 제치고 팀을 2위에서 1위로 끌어올렸다. 물론 계주는 인코스를 잘 점유해야 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이한빈에게 밀어주면서 다시 2위로 내려앉았지만, 마지막 박세영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는 본인 대신 김윤재가 네번째 주자로 나섰으며, 박세영이 빅토르 안, 잭 웰본, 싱키 크네흐트와의 마지막 경합 끝에 계주 은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도 그렇고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유독 김윤재 차례에서 우리나라가 힘을 못 썼기 때문에, 차라리 이호석과 김윤재의 준결승, 결승 출전 순서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시즌을 끝으로 여자부의 맏언니 조해리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했다. 그렇기에 그에겐 이 세계선수권대회 계주에서의 은메달이 의미있게 다가올 듯 싶다. 원래는 올림픽에 나갈 후배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주기 위해 훈련파트너로만 활동하다가 퇴촌후 은퇴를 할 계획이었는데 모두 알다시피 노진규가 대표팀에서 낙마하면서 대타로 출전하게 되었던 거다.
선수생활 내내 시끄러운 일들과 구설수에 오르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커리어뿐만 아니라 실력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났던 선수고 세계 수많은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상당한 존경을 받아왔던 선수며 쇼트트랙 역사에 크게 남을 인물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4. 논란


예전에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안현수 선수를 비방했다고 루머가 돌아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루머는 이호석이 안현수를 송재근 코치와 함께 '성찬'이라고 부르면서 합성사진을 올려서 외모에 대해서 비방했었다는 건데 사실은 합성사진의 주인공은 안현수가 아니라 '김성찬'이라는 쇼트트랙 선수였다. 김성찬과 이호석은 친한 친구 사이로, 장난을 친 것이였다.[30] 이 때 어째서인지 안현수도, 이호석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사건이 더 커졌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 팀킬 사건 직후 쇼트트랙 파벌 논란도 일어났다. 거기다 함께 넘어진 성시백은 2006년 국가대표 탈락으로 메달도 없어서 군대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31] 다른 종목에서 메달을 못 따면 메달 딴 이호석과는 달리 군대에 끌려갈 지도 모르는 실정. 게다가 국군체육부대는 동계 종목에 대해선 취급 안 한다. 이 당시 계주, 성시백의 주력종목인 500m도 남아 있었지만 상황만 놓고 보자면 성시백이 락커룸에서 이호석 멱살잡고 싸움 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때 팀킬 장면이 연출되자 벤쿠버 외국 중계진이 "oh my god!!!"을 외치면서 난리 법석을 떨었다.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팀킬하다가 메달이 두개나 날아간 상황이 지나치게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 개인주의가 강한 북미나 유럽선수들 조차도 같은 국적의 선수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다른나라 선수와의 몸싸움을 차단하면서 도와주지, 굳이 무리해서 추월하려고 들지 않는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팀킬에 대한 의견 정리
- 비난 의견
어차피 메달권 안인데 뭐가 그리 급했나. 금은동이 확정이었는데 굳이 실격처리를 당할 정도의 반칙성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
- 옹호 의견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엄연히 선수 대 선수로서 싸우는 것이다. 선수로써 이왕이면 동메달보다는 은, 더 잘해서 금. 이런 식으로 욕심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메달을 두 개나 날린 점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애초에 같은 나라 선수끼리도 팀전이 아니라 개인전이고 자국 선수들의 충돌이나 넘어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 비난하는 건 억지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서로 짬짜미를 하면, 당연히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이 된다. 나중에 본인의 말로는 첫 번째 바퀴 도는 중 다른 선수와 충돌한 탓에 왼쪽 스케이트 앞날이 망가졌고 성시백과 경합할 때 이 망가진 왼쪽 날이 말을 듣지 않아 충돌하게 된 것으로,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멘트가 실렸다.
"쇼트트랙에선 팀플레이가 없을 수가 없어요. 같이 올라가면 서로 도와주면서 할 수 있으니까요. 호석이는 이미 점수를 따놔서 다른 선수 좀 막아주고 도와준 적이 있는데 누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동료를 위해 희생한 건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기사원문
나중에 이호석은 성시백성시백의 어머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으며, 성시백은 다음에 금메달 받으면 된다고 하고 있고 그 어머니는 이호석 역시 편히 못 잤을 거라며 일단 지나간 건 잊고 다음에 대비하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다행히 이후 올림픽 경기 진행 중 두 선수가 다시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참고로 2007년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이호석에게 막힌 '다른 선수'는 다름아닌 '''이승훈성시백'''다. 한 쪽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가 다시 쇼트트랙으로 돌아왔고, 한 쪽은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이호석의 어머니가 '''"실력 좋은 놈(안현수)이 아웃 쪽으로 추월했어야지, 안현수는 추월 욕심에 미친놈이다."'''라고 언론에다 경솔한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더더욱 이호석의 안티를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흔히 이호석을 깔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 이 양보 드립인데,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안현수보다 낮은 성적으로 은메달을 차지한 이호석이 '자기는 양보를 했는데 안현수는 양보를 안하는가'라고 했다는 것이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이호석은 은메달 2개를 차지했고, 이런 그에게 언론에서는 혹시 양보한 거 아니냐고 물어본다. 올림픽 이후 거의 모든 이호석 인터뷰에는 이 내용이 들어간다.
2006년 2월 13일 연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이호석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했고 자신의 실력대로 탔다고 했다. 이 기사 외에도 수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양보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다.
양보 드립의 근원지는 2006년 3월 24일 서울신문 기사에서 '양보한 측면이 있긴 하다'라는 내용. 그런데 그 전까지 온갖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꿋꿋히 주장하던 선수가 '''유독 한 기자에게만 갑자기 양보한 것을 수긍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나마도 이 기사에서조차 안현수가 들어오는데 충돌이 우려되어 적극적으로 막으려 않았다는 식의 이야기지, "예따, 현수 형 이거나 먹어." 라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가 어떤 식으로 선수의 발언을 해석해버렸을지 모르는 부분. 이 하나의 인터뷰를 제외하곤 2010년에도 이호석은 양보 같은건 한 적 없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이 인터뷰를 본 안현수는 이호석에게 실망을 하고, 힘들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이후 2010년 당시 인터뷰 다 짜르고 현수형이 양보 안했다라는 식의 짤방이 나돌면서 양보드립이 전면에 퍼지게 되었으며, 이는 2014년 현재까지도 그의 주 까임 소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당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호석은 2006년이고 2010년이고 자기는 양보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5. 파벌


2002년까지 쇼트트랙 대표팀을 지배했던 한체대파 전명규 감독은 작전을 잘 만들었는데, 그 작전에는 '에이스 밀어주기'도 포함됐었다. 그래서 1992년과 1994년 김기훈 금메달 만들어주기가 있었다.
이는 전명규-한체대파 코치들이 존재할 때는 계속되었다. 문제는 2002년을 기점으로 한체대VS비한체대가 나뉜 시점[32]에서 비한체대로 하여금 한체대를 밀어주도록 요구한다는 점.
2005년 대표선발전 당시, 여자대표팀의 한체대 출신 박세우 코치는 비한체대인 진선유로 하여금 한체대인 최은경과 강윤미를 밀어주도록 했다. 진선유는 최은경과 강윤미를 밀어주려다 옐로우카드를 받을 뻔했고 이 사건 때문에 후에 남자대표팀(비한체대)로 옮기게 된다. 여기서 박세우 코치는 자신이 지도하고 있던 여자대표팀에게 2005년 11월 월드컵에서 자신의 지도를 거부하고 남자대표팀으로 옮긴 진선유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중국에게 져도 좋다. 넘어져도 좋다. 실격당해도 좋다. 진선유만 무조건 막아라."라고 지시하게 된다. 여기에 박세우 코치의 지시의 회의를 느낀 변천사도 남자대표팀(비한체대파)로 옮기게 된다.
그리하여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파벌이 남자대표팀은 송재근 코치(비한체대) - 이호석, 오세종, 서호진, 송석우(이상 비한체대), 안현수(한체대) / 여자대표팀은 박세우 코치(한체대) - 변천사, 진선유(이상 비한체대), 최은경, 강유미, 전다혜(이상 한체대)였지만, 파벌 때문에 '''한체대파는 모두 여자대표팀'''에서, '''비한체대파는 모두 남자대표팀'''에서 훈련을 했다. [33] 심지어, 남자대표팀이 금메달을 따고 세리머니를 하다가 KBS 이준호 해설위원한테 절을 하는 세리머니를 했는데, 안현수는 뻘쭘하게 있었다.
결국 파벌싸움은 주류가 비주류에게 '''밀어주기'''라는 희생을 강요하는데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한체대가 주류일 땐 비한체대가 밀어주기를 해줬는데(2005년까지), 비한체대가 주류가 되었을 때 한체대쪽이 밀어주기를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 파벌 사이의 논란이 생겼다. 결국 안현수도 이호석도 모두 파벌의 희생양인 것. 게다가 안현수보다 어린 나이의 이호석[34]이 파벌의 중심이 되어 안현수를 왕따시켰다는 말은 더욱 말도 안 된다. 더군다나 이호석은 안현수의 고등학교 직속 후배다.
이호석은 2005년에 대표팀에 합류하고 안현수와 같은 방을 같이 쓰게 됐었는데 이때 안현수가 이호석이 성인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 굉장히 친해졌었다고 한다. 참고로 안현수는 이호석과 같은 신목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며,이호석이 주니어 시절때 자신의 싸이월드 이름이 '리틀안'이었다. 그만큼 안현수를 존경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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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 올림픽에서 5000미터 계주 우승 후 둘의 모습
허나, 안현수와 불화가 있었던건 이호석이 인정한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불화가 시작되었던건 토리노 올림픽 이후부터다. 이호석이 했다고 알려진 "양보드립"[35]때문에 안현수와 그의 가족들이 큰 상처를 받았으며[36], 심지어 한동안 국민들에겐 안현수가 과도한 욕심을 내는 이기적인 선수로 찍히는 일까지 벌어졌다.[37] 2007년에는 더욱 더 심해져 심지어는 둘이 레이스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부딪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둘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만큼 파벌싸움 또한 더 거칠어졌고, 2007년 당시 대부분의 선수가 비한체대라인이어서 합동작전으로 안현수를 방해하기도 했다. 2008년까지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어 가는듯 했으나 점차 나아지며 나중엔 이호석과 안현수가 레이스를 마치고 서로 격려해주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이호석은 인터뷰에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와의 불화는 모두 끝났다고 했고, 지금은 친목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했다고 한다.
2011-1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가 러시아로 가는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500미터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이호석이 안현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기도 했다.[38] 물론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하고 나서는 거의 만난 일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날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호석이 안현수의 아버지인 안기원과 우연히 마주쳤었는데 몇 분 가량 서로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는 훈훈한 장면이 나왔다고 언급했다.[39] 만약 5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안현수 아버지의 입장에선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어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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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찾아보면 2013년 10월 한국에서 치뤄진 월드컵 2차대회가 끝난 후 카페에서 같이 찍은 사진, 심지어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안현수/빅토르 안의 여자친구인 우나리 씨[40]와 함께 쇼트트랙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 등이 찍힌 사진들이 있다. 즉,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2013년 시점에선 옛날 얘기란 소리다.
성시백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었으며, 어릴때부터 같이 쇼트트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시백의 첫 국대시즌 초기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2007-08 시즌 선발전에서 같은 파벌인 송경택의 대표팀 선발을 돕기 위해 1000m 결승에서 고의적으로 성시백과 이승훈을 방해했었기 때문이다. 이호석팬들도 그 수많은 까임꺼리 중에 이 하나만큼은 쉴드를 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성시백과 이승훈 둘다 결국엔 국가대표선발이 되었지만 안현수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선발이 된 상태였고, 이호석과 송경택이 각각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 저 둘은 세계선수권에서는 계주멤버로 밖에는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만약 1000미터에서 이호석의 방해만 없었다면 안현수의 부상으로 개인전 공석이 생겼을때 이승훈 대신 성시백에게 출전권이 갔었을테니 성시백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타까웠을 것이다.[41]
참고로 성시백은 비한체대라인이지만 한체대 선수들과 굉장히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42] 하지만 성시백이 2008년부터는 꾸준히 국대에 선발이 되고부터 선수촌에서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다시 친구 사이를 회복했다고 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1500미터 결승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둘의 사이가 완전 끝날 뻔도 했지만, 고의로 넘어진 게 아니었기에 다행히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가 직접 나서서 잘 마무리가 됐다. 물론 사과를 받아준 성시백도 대인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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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올림픽 5000m 계주 결승 진출 확정 후
파벌싸움과 밴쿠버 올림픽의 사건 때문에 이호석의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졌으나, 사실 알고 보면 언론이 너무 심하게 부풀린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이 루머는 점점 더 커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도중에는 파벌의 중심, 빙엿의 왕, 심지어는 호석 성님, 안톤 호석 등으로 욕한 적이 있었다.

6. 수상 기록


'''대회'''
'''금'''
''''''
''''''
올림픽
<colbgcolor=#ffe970> 1
4
<colbgcolor=#d7995b> 0
세계선수권
9
7
3
세계 팀선수권
3
0
1
아시안 게임
2
0
0
주니어 세계선수권
11
3
3
'''합계'''
'''26'''
'''13'''
'''6'''

올림픽
<colbgcolor=#ffd700> 금메달
2006 토리노
5000m 계주
은메달
2006 토리노
1000m
은메달
2006 토리노
1500m
은메달
2010 밴쿠버
5000m 계주
은메달
2010 밴쿠버
1000m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8 강릉
5000m 계주
금메달
2008 강릉
1000m
금메달
2009 비엔나
종합
금메달
2009 비엔나
1000m
금메달
2009 비엔나
1500m
금메달
2010 소피아
5000m 계주
금메달
2010 소피아
종합
금메달
2010 소피아
1000m
금메달
2010 소피아
3000m S.F
은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종합
은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000m
은메달
2006 미내애폴리스
1500m
은메달
2008 강릉
종합
은메달
2008 강릉
1500m
은메달
2009 비엔나
3000m S.F
은메달
2014 몬트리올
5000m 계주
동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500m
동메달
2010 소피아
1500m
동메달
2012 상하이
5000m 계주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금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금메달
2010 보르미오
단체전
동메달
2008 하얼빈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7 창춘
5000m 계주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0m 계주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2000m 계주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종합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500m
금메달
2003 부다페스트
1500m
금메달
2004 베이징
2000m 계주
금메달
2004 베이징
종합
금메달
2004 베이징
500m
금메달
2004 베이징
1500m
금메달
2005 베오그라드
2000m 계주
금메달
2005 베오그라드
종합
금메달
2005 베오그라드
1500m
은메달
2004 베이징
1000m
은메달
2004 베이징
1500m S.F
은메달
2005 베오그라드
1500m S.F
동메달
2003 부다페스트
1000m
동메달
2005 베오그라드
500m
동메달
2005 베오그라드
1000m
[1] 안현수와 함께 국가대표를 했을땐 막 2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1500m에서도 체력적인 부담감이 없어서 안현수와 함께 둘이 다 해먹다시피 했지만, 이호석이 2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당시 전성기를 맞고있던 성시백과 상당한 지구력을 갖춘 이정수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었다. 그렇지만 선수 시절 내내 탑 클래스의 실력이었고, 일간에 1500m에서 큰 힘을 못쓰는 선수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2] 선수시절[3] 3회 연속 출전으로 남자부에서는 곽윤기, 여자부에선 전이경과 공동 기록이며 전이경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간격이 2년이라 4년 텀으로는 최초다. 여자 대표팀의 심석희김아랑도 동률의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4] 현재는 후배 황대헌도 이와 비슷한 기술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이호석만큼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보여주지 못한다.[5] 이 부문에서 또 자주 거론되는 선수는 곽윤기다.[6] 안현수와의 비교에서 이호석이 가장 처지는 부분이 바로 이 스케이팅 안정성이다. 하지만 스릴감 때문에 이호석의 스케이팅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7] 그래서 그런지 인코스보다 아웃코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8] 올림픽 때 안현수, 성시백, 이정수 등의 선수들과의 막판 1:1 때 날내밀기 경합에서 거의 다 패했다.[9] 반대로 그 안현수를 상대로 맞대결을 펼칠 수 있던 혹은 도전장을 내밀 수 있던 유일한 선수 또한 이호석이었다.[10] 심지어 이 문서가 개설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이호석을 소개하려고 만들어진게 아니라 오로지 이호석을 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파벌의 중심', '콩', '2인자' 드립이 상당히 심했다. 그럼에도 본인을 향한 악의적인 비방과 허위사실유포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간데다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하고 명예롭게 퇴장함으로써 진정한 대인배이자 레전드임을 보여주었다.[11] 신다운 폭행사건의 그 김한울 맞다. 그리고 그 후의 이번엔 순전히 본인 잘못으로 사건을 터뜨려 아무 잘못 없는 이호석이 김한울을 지도하는 코치라는 이유로 욕먹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2] 본인도 이를 알고 있고 이호석의 스케이팅을 롤모델로 삼고있다고 한다. 물론 이호석의 스케이팅을 어느정도 모방하려면 이호석이 주니어 시절부터 보여줬던 과감함이나 아웃코스기술은 아직 개선할 필요가 많다.[13] 참고로 이 시절에는 주니어 때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선수들은 시니어 무대에서도 성공할거라는 걸 당연시했던 때다.[14] SBS에 해당 장면이 방송됐다.[15]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담합설 때문이 아니라 빙상연맹 부회장을 상대로 멱살 잡은 것 때문에 받았다.[16] 아래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안현수와 이호석의 친분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17] 흔히 나도는 2006-07 월드컵 1000미터.[18] 성시백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19] 검증되지 않은 루머다. 2007-08에는 파벌싸움이 사그라들고 선수들과의 불화가 없었을 시기며 송경택이 2위로 달리던 게 이호석을 커버해주려 3위에서 치고 올라오던 안현수를 방해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20] 그리고 3000미터 슈퍼파이널에선 뒤쳐지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코스를 막게 된다.[21] 주자 순서는 이호석-성시백-곽윤기-이정수[22] 주자 순서는 이정수-성시백-곽윤기-이호석[23] 주자 순서는 이정수-이호석-곽윤기-김성일[24] 준결승에서 이정수가 피니시 라인 진출 전에 오노의 몸싸움에 항의하는 모션을 했으며, 결승에서도 상당히 막장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후 27일에 있었던 500m 결승에서도 오노는 비슷한 행동을 했고, 주심이 이에 그를 실격 처리해 성시백은 은메달을 쟁취했다.[25] 심지어 이 때 성시백은 아직 군면제 혜택을 받기 전이었다. 다행히 500m에서 은을 따긴 했다.[26] 주자 순서는 김성일-곽윤기-이호석-이정수[27] 주자 순서는 성시백-이호석-김병준-노진규[28] 그런데 하필이면 이호석이 레이스 도중 넘어졌다.[29] 이호석의 팔이 미국 선수의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가벼운 접촉이었다. 개별 트랙이 없는 쇼트트랙의 특성 상 어느 정도의 신체적 접촉은 허용된다.[30] 안현수를 까려고 외모가 비슷한(구분하기 힘든) 김성찬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애초에 이 시기에 이호석은 주니어 대표팀이었다. [31] 다행히 쇼트트랙 500m, 계주 5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32] 이게 나뉘게 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당시 안현수의 국대선발이다. 전명규가 어린 안현수를 보고 재능이 있다면서 선발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룡이승재가 안현수에 의해 밀렸다. 당시 세계랭킹 2,4위 선수였기에 더욱 반발은 심했다.[33] 변천사, 진선유는 남자대표팀, 안현수는 여자대표팀과 훈련을 했다.[34] 파벌싸움이 극에 달했던 2007년에 22세로 막내뻘이었다.[35] 양보드립 항목을 참고. [36] 정확하게는 안현수-이호석 서로의 오해라고 보는 것이 맞다.[37] 이것은 나중에 알려진 파벌의 실체와 밴쿠버 동계올림픽 사건으로 이호석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38] 결과는 안현수가 날내밀기로 1위, 이호석이 2위였다. 하지만 이호석 같은 경우는 이미 선발이 확정된 상황이었기도 했고, 이호석이 안현수가 한국 선수로서 타는 마지막 레이스인 걸 배려해서인지 날내밀기를 했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날내밀기를 안했다.[39] 물론 사진으로만 나와서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한 건지 검증은 안 됐지만 둘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눈 건 사실이다.[40] 우나리씨는 10년 가까운 안현수의 팬클럽 회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도 이호석과 안현수 사이에 앙금이 남아 있었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현수/빅토르 안을 10년 동안 응원해왔던 우나리씨가 이호석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 리가 없다.[41] 월드컵에서 제한된 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가 된지 첫 시즌만에 세계랭킹 3위에 올랐다.[42] 특히 안현수와 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