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쇼트트랙)

 

'''이정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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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이름'''
이정수(李政洙, Lee Jungsu)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9년 11월 30일(34세), 서울특별시
'''학력'''
선곡초등학교 (졸업)
석관중학교 (졸업)
광문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체육교육과/학사)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image]
스피드 스케이팅[image][1]
'''주종목'''
1000m, 1500m
'''소속'''
스포츠토토빙상단
'''신체'''
173cm, 60kg
'''국가대표'''
2008-09~2009-10, 2011/12,
2014-15~2016-17[2](총 6시즌)
'''가족'''
부모님, 누나, 배우자, 아들
'''SNS'''

1. 소개
2. 특징
3. 선수 경력
3.1. 어린 시절
3.2. 주니어 시절
3.3. 2008-09 시즌
3.4. 2009-10 시즌
3.4.1. 월드컵 시리즈
3.4.2.1. 논란
3.4.2.2. 파벌
3.4.3. 동계체전
3.5. 2011-12 시즌
3.5.1. 국내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3.5.2. 월드컵 시리즈
3.6. 2011-12 시즌
3.7. 2012-13 시즌
3.8. 2013-14 시즌
3.9. 2014-15 시즌
3.9.1. 국가대표 선발전
3.9.2. 월드컵 시리즈
3.10. 2015-16 시즌
3.10.1. 국가대표 선발전
3.10.2. 월드컵 시리즈
3.11. 2016-17 시즌
3.12. 2017-18 시즌
3.12.1. 국가대표 선발전
3.12.2. KBS 쇼트트랙 해설위원
4. 수상 기록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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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쇼트트랙 선수이다.

2. 특징


강한 힘[3]과 수준급의 지구력을 내세우며 가볍게 쭉쭉 밀며 타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스케이팅이 특징이다. 코너링도 수준급이라 코너를 돌면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려내는 테크닉도 탁월하다. 하지만 한때 대한민국의 에이스이자 선배들인 안현수, 이호석처럼 추월 능력을 포함한 스케이팅 기술이 좋은 선수는 결코 아니고, 스피드도 장거리 종목에서 내는 스피드로는 충분한 편이지만 스퍼트를 빠르게 해야 하는 종목일수록 순발력의 약점 탓[4]에 에이스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계주에서 의외로 활약하지 못하고, 특히 500m는 괜찮은 스타트 능력[5][6]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약한 편. 허나 레이스의 흐름과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읽는 시야가 탁월해서 체력 이외의 확실한 주무기가 없이도 다른 실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특히 밴쿠버 올림픽 1500m, 1000m에서 이정수의 센스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500m 결승에서 성시백오노가 1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일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선두로 치고 나왔으며 1000m에선 이호석이 뚫은 아웃코스를 이용해 손쉽게 다른 세선수들을 추월하고 마지막 반 바퀴를 남기고 이호석이 인코스를 미처 견제하지 않은 틈을 타 추월한 후 1위로 결승선에 도달하기도 했다. [7]
이정수의 최대 장점은 지구력으로[8] 체력적으로 강한 한국선수들 사이에서도 우월한 체력을 자랑했었다.[9] 실제로 2009-2010 4차 월드컵에선 1500m 준결승, 결승 경기에서 중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 오노샤를 아믈랭을 상대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1위로 레이스를 마칠 정도이다. 이정수 본인도 앞쪽에서 레이스를 운영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후반에 치고나가는 선수들의 (빅토르 안을 예로 들며) 재능이 부럽다고도 밝혔다.

3. 선수 경력



3.1.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이정수의 누나 이지아(피겨 스케이팅)와 이정수의 트레이닝을 위해 매달 훈련비로만 200만 원씩 써야 했다고 한다. 허나 이지아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전 문제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인라인 스케이트와 웨이크보딩으로 전향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이정수는 누나의 희생에 자극을 받아 쇼트트랙 연습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3.2. 주니어 시절


대표팀으로 선발되는 대부분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중학생 때 두각[10]을 나타내는 데 반해 이정수는 고등학생 때 두각을 보였다고 한다.[11] 200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거뒀고 2007 주니어 세계선수권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2년 연속 종합 2위로 대회를 마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나갔다.

3.3. 2008-09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기록해 첫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이호석성시백이란 쟁쟁한 선배들과 동갑이지만 시니어무대 경험이 1년정도 빠르고 선발전에서 1위를 기록할정도로 좋은 폼을 보여주는 곽윤기가 있는 가운데서도 1500미터에서 세계랭킹 2위, 1000미터에서 3위를 기록, 세계 종합랭킹 4위에 올라서며 빠르게 성장해 나갔고, 특히 1500미터에선 당시 최강자들이었던 이호석이나 성시백도 이정수를 경계해야할정도로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 무시무시한건 저 셋보다 제한된 출전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첫 시즌만에 저런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3.4. 2009-10 시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행이 걸려 있는 대표선발전에서 성시백에 이어 2위에 올라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다.[12] 그리고 본 시즌부터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월드컵에서 1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뚜렷한 활약을 해나가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며 두 종목에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했으며 월드컵에서도 종합 챔피언에 오르면서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반면 500미터에는 단 한종목도 출전하지 않았으며 곽윤기가 항상 대신 출전했다. 물론 모두들 이정수가 500미터에 약한 걸 알기에 당시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자세한 건 파벌논란 부분 참조.

3.4.1. 월드컵 시리즈





09-10 2차 월드컵 1500m 결승
09-10 2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13]
09-10 4차 월드컵 1500m 결승

3.4.2.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정수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폼은 실로 대단하기는 했지만, 당시까지는 한국선수들이 캐나다, 미국, 중국 선수들을 이기는건 당연시 여겨지는 때여서 월드컵에서 (1500미터에서 특히) 아폴로 안톤 오노샤를 아믈랭을 터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시 실력적으로는 실질적인 탑2였던 이호석성시백이 잔부상으로 월드컵 중반부터 삐끄덕거리거나 불참했기 때문에 이정수가 손쉽게 월드컵을 우승했다고 보는 분위기에다 올림픽에서는 이호석과 성시백이 금메달을 두고 경쟁할거라 예상됐고, 이정수에 대해선 크게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반면 북미 언론에서는 월드컵 세계랭킹 1위, 그것도 1500미터와 1000미터 두 종목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걸 봐서 올림픽에서 크게 일을 낼 선수로 예상했다.
- 1500m
1500미터에서 순조롭게 예선과 준결승을 통과했으며 결승에서 이호석, 성시백 그리고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를 만났다. 물론 이호석과 성시백 둘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 둘의 금메달 경쟁대결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1500m 결승
경기가 후반에 다가가면서 성시백과 오노가 몸싸움을 벌이다 둘 다 속도가 줄은걸 틈타 1위로 올라서게 되었고, 마지막 코너를 돌때 크게 돌며 인코스를 노리던 성시백과 경합하게 될줄 알았으나 이호석이 그걸 빈틈이 생겼다 판단해서 추월을 시도하는 바람에 성시백과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14] 아폴로 안톤 오노J.R. 셀스키가 어부지리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다행히 그는 접촉없이 1위로 골라인을 통과해 벤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원래는 금메달을 따면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으나 선배들이 쓰러진 걸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하지 못했다.
- 1000m
1000m에서도 상승세를 타면서 예선과 준준결승을 무리없이 통과했으나 준결승에서 번번히 추월을 실패하면서 결승진출에 큰 위기를 맞았다. 더군다나 이호석은 경기 후반에 시원한 인코스 추월을 성공하여 1위로 뛰어오른 반면 본인은 탈락이 확실해 보였는데, J.R. 셀스키와 캐나다선수 아믈랭이 마지막 경기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15]

1000m 결승
1000m에서는 이호석, 캐나다의 아믈랭 형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맞붙게 되었다. 그가 1000m에서 1500m만큼 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해 금메달은 이호석, 이정수는 메달권에 들거나 4위에 머물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결승이 시작되고는 준결승때와는 다르게 이정수가 이호석을 따라가는 전략을 택했다. 경기중반 오노가 아믈랭 형제를 흔들자 이호석이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고 이호석이 나감과 동시에 이정수가 이호석을 따라 아웃코스 추월을 했다. 그리고 추월을 성공하고 나서도 체력이 아직 많이 남아돌던 이정수가 상승세를 몰아 이호석에게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켰고 마지막 경합까지 선두를 지켜내 2관왕에 성공했다. 은메달을 딴 이호석 선수는 동료를 축하하면서도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한 아쉬운 표정을 보여줬다.
- 5000m 계주
준결승에는 4순위였던 김성일이 대신 출전했고 이정수는 결승에 4번째 주자로 출전했다. 원래 계주에 강한 선수는 아니지만 이호석, 성시백, 곽윤기가 500m 후유증[16] 때문인지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딱히 별로 한것은 없는 이정수가 가장 문제없이 준수하게 탔다. 이정수는 500m와 5000m 계주 준결승에 불참해 체력과 컨디션이 모두 회복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세명에 비하면 훨씬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 뒤 곽윤기가 원맨쇼를 선보인 덕분에 4위에서 2위로 뛰어올라 팀에 은메달을 안겼고, 이로써 그는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냈고 1500m 준결승과 1000m 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까지 작성하는 등 상당히 성공적인 올림픽을 보냈다.[17]

5000m 계주 결승[18]

3.4.2.1. 논란

밴쿠버에서 2관왕을 했으나 실력적으로는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안현수 - 이호석으로 이어지는 슈퍼 에이스 계보를 잇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스케이팅 스킬을 구사한다는 안현수와 이호석과는 달리, 평균 수준의 아웃코스 패스와 별볼일 없는 인코스 패스 능력의 이정수는 가장 결정적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이 둘의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더군다나 팬들 사이에서도 실력으로는 같은 나이의 곽윤기나 쇼트트랙 불운의 아이콘 성시백을 이정수보다 더 높게 쳐준다.
벤쿠버 올림픽에서 운이 따랐다는 평가도 많았다. 특히 1000m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이호석의 도움를 많이 받았는데, 1000m 준결승에서는 앞에 있는 J.R. 셀스키프랑수아 아믈랭을 상대로 몇 차례나 아웃코스로 추월을 시도하고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호석이 단 한번의 인코스 추월로 1위에 오르면서 두 선수의 경합이 유발되지 않았다면 결승에도 못 올라갈 뻔했다. 결승전에서도 이호석이 아웃코스로 추월 경로를 뚫어주며 준결승보다 훨씬 편안하게 추월할 수 있었고 마지막 한바퀴에서 이호석이 1500m 팀킬의 후유증으로 그렇게 쉽게 인코스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역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올림픽 2관왕의 위업은 절대로 낮게 볼 수 없는 것이고, 올림픽 직전 시즌의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해 종합 세계 랭킹 1위[19]에 올랐던걸 감안한다면 이정수에 대한 지나친 저평가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덕분에 이정수의 대한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 지기도했다.

3.4.2.2. 파벌

'''한창 주가를 올리던 이정수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흑역사이자 시니어 무대 진출 2년 만에 그의 커리어를 내리막길로 인도한 가장 큰 원인.'''
2010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인해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다. 하지만 25일, 안현수의 부친이 사실 부상이 아니라 파벌 싸움 탓에 이정수가 나오지 못한 거라 말해 문제가 되었고, 4월 8일 이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까발려질 수밖에 없었던 게 성시백이 부상 때문에 5000미터 결승에 불참하자 메달을 포기하지 않는한에는 이정수가 대신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엔 파벌에 따른 담합의 유무보다는 이정수도 담합으로 인한 이득을 봤는지 유무가 더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전재목 코치는 곽윤기가 선발전에서 이정수를 도와주는 대신 이정수가 개인종목 하나[20]를 곽윤기에게 양보하기로 했었는데 올림픽에서 그러지 못하고 대신 세계선수권에서 그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정수는 이런 사실을 부정했지만 조사위원회는 조사한 결과 곽윤기의 주장이 옳다고 봤으며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정수와 곽윤기에게 3년간 자격정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3년 자격정지는 대외적으로 너무한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고 자체 내에서도 너무하다는 의견에 자격정지를 받은 본인들도 항의를 하여 6개월 자격정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6개월 정지 적용 시점이 2010년 7월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3.4.3. 동계체전


2011년 1월 징계 해제 후 92회 동계체전에서 출전한 모든 종목(500m, 15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3.5. 2011-12 시즌



3.5.1. 국내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4위로 국가대표 복귀에 성공했다. 그러나 개인전 출전권은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노진규를 제외한 선발전 1-2위까지만 주어지는 것이라, 종목 선택권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은 없었다.

3.5.2. 월드컵 시리즈


그러나 2011년 10월에 열린 월드컵 2차 500m 결승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월드컵 3차와 4차에는 차순위인 서이라가 대신 출전했으며[21] 2012년 2월에 열릴 월드컵 5차부터 복귀 예정이었다.
여담으로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던 선수는 노진규였는데, 운동을 쉬다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이정수가 당시 노진규에게 맞춰져있던 대표팀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는데 버거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비록 불완전한 체력이었지만, 지구력이 강점이 이정수가 힘들어 할 정도면 노진규의 지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볼 수 있다. 이정수는 훈련이 몸에 무리가 간게 500m 결승전에서 발목부상을 당하게 된 원인이라고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짬짜미' 사건을 마무리 지은 후 곽윤기와 사이를 회복했고, 소치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해내 명예회복을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기량이 많이 쇠퇴해져 2011-12 시즌에는 크게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곽윤기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탔고 거기에다 신예 노진규, 신다운까지 가세해 이정수 입장에선 경쟁이 더욱더 힘들어졌다. 2012-13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이호석과 함께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컨디션을 끌어올려 올림픽을 위한 대표선발전에서 발탁만 된다면 소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국제대회에서 이탈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국제 레벨에서 타던 감각도 떨어져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2009년 이후로 무섭게 성장하던 선수였지만 파벌 싸움과 중부상 때문에 성장이 느려졌다. 짬짜미가 언론에 까발려진건 당연히 좋은거지만 덕분에 자기 성장에 걸림돌을 만든셈이다. 곽윤기보다도 포텐 늦게 터진 선수지만, 위에 이미 서술되었듯이 2009-10 시즌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밴쿠버 올림픽에선 이정수에게 운이 좀 따라줬던건 있으나 충분히 이호석, 성시백 이후 곽윤기와 함께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이끌 선수중 하나였다. 출전정지로 못 뛰게 되며 감각을 잃기 시작했고, 심지어 허리부상까지 당하게 되어 훈련을 하지못하고 재활에만 집중해야했다.

3.6. 2011-12 시즌


선발전에서 턱걸이로 국가대표 승선에 성공은 했지만, 이에 따라 개인전 출전권이 주어지지 않아 자신의 주종목인 1500m를 뛸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주종목이 아닌 500m에 출전하게 됐는데 월드컵 초반에 발목부상[22]을 당해버려 슬럼프가 지속되고 있다.

3.7. 2012-13 시즌


2012년에는 이호석과 함께 국내대회에 참가하며 활약했다. 2013년 4월 올림픽 대표팀에 재승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다. 전국대회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발될 거라 예상하였다.

3.8. 2013-14 시즌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러 불운이 잇따르며 선발에 탈락했다. 선발전이 끝난 이후 대체로 이정수의 재능이 안타깝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자신의 2번째 올림픽의 꿈을 져버릴 수 없었는지 소치 대회를 앞두고 스피드 스케이팅 도전을 선언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 중엔 쇼트트랙을 연습 겸용으로 하던 선수들이나 쇼트트랙에서 롱트랙으로 전향한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에서 장거리 롱트랙으로 전향해 5,000미터 은메달, 10,000미터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이 있다. 올림픽 2관왕이라는 업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종목은 1500m와 5000m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최근 1500미터 훈련에서 기록한 시간대가 지난 2012년 국대 선발전으로 치면 2위에 해당되는 기록으로 알려져 국대 선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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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5000m에서 6위를 기록하며 진출권을 따지 못했고 다음날에 치뤄진 1500m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며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긴 했으나 2위 안에 들어야만 대표팀 승선이 가능한지라 최종적으로 결국 선발전에서 탈락되었다. 이승훈의 성공사례를 보고 스피드 스케이팅을 너무 쉽게 봤다며 질타도 많이 받았다.
결국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물 건너가 버리고 만 셈인데 일단 평창 올림픽 때는 만 29살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환경이나 빠른 세대교체 때문에 베테랑들이 살아남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잘해낸다면 샤를 아믈랭이나 아폴로 안톤 오노처럼 롱런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도전을 실패한 후 다시 쇼트트랙으로 돌아왔다. 우선 국대에 다시 선발되어 월드컵과 세선에서 조금씩 기량을 회복해 나가는 게 관건이다. 쇼트트랙 복귀 이후 치르는 첫 대회였던 전국 종별 쇼트트랙 대회에서는 3000m 슈퍼파이널에서만 1위에 올랐다. 체력은 여전하지만 과거보다 떨어진 스피드나 쇼트트랙 감각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3.9. 2014-15 시즌



3.9.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인 타임레이스를 순조롭게 통과한 후 2차 선발전에서 1500m 3위로 13점을 획득, 종합 8위를 기록해 턱걸이로 3차 선발전에 합류하게 되었다. 과거보다 인코스 추월 능력이 상당히 보완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정작 본인의 최대 장점이었던 체력적인 우월함은 과거보다 많이 감퇴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3차 선발전에서의 성적 여부에 따라서 3년 만에 국제무대로 복귀할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
9월 29일 열린 최종 선발전에서 1500m 1위, 1000m 2위, 3000m 슈퍼파이널에서 1위(+ 9바퀴 점수 5포인트 획득)으로 종합 94점으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2차 선발전을 8위로 턱걸이 진출했지만 3차 선발전에서의 대선전으로 최종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려, 3년만에 국가대표 복귀를 확정지었다! 단순히 복귀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닌, 최종 선발전에서 종합 1위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이정수의 전성기 기량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드디어 키울 수 있게 되었다.

3.9.2. 월드컵 시리즈


2014-15 시즌 첫 대회인 1차 월드컵 1500m에서 신다운과 함께 결승에 진출, 3위로 골인하며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3시즌만에 치른 국제대회 복귀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향후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가져볼만 하게 되었다.
2차 월드컵에서는 1500m 대신 500m와 1000m에 출전했는데 500m는 광탈했지만 원래부터 단거리에서 너무 취약했던 선수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1000m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준결승 진출도 못해보고 탈락했다는 것. 이미 언급되었듯이 지구력이 예전보다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이정수가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지만 1000m나 특히 1500m에서 꾸준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강인한 체력 덕분이었으나 현재 체력이 받혀주질 않으니 예전처럼 스피드가 긴 시간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기 감각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는것. 소극적인 경기 운영도 이정수가 예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한 몫하고 있다.
3차 월드컵에서는 주종목인 1500m에 다시 출전했으나 준결승에서 신다운, 그리고 J.R. 셀스키의 부재를 틈타 미국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존 헨리 크루거에 밀려 파이널 B에 진출했다. 그런데 파이널 B에서 레이스 후반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아웃코스 패스로 시원하게 다른선수들을 제친 후 1위로 경기를 마쳐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레이스를 펼쳤다.
2015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 3장 중 2장이 국가대표 선발전 1, 2위인 박세영, 서이라로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나머지 1장을 놓고 4명의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까지는 중장거리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신다운에게 많이 뒤쳐져 있다. 곽윤기도 500m에서 상당히 선전하며 이정수보다 한 발 앞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개인전 출전권을 위해서는 남은 3번의 월드컵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뤄야만 하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도 1500m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준결승전 마지막 바퀴에서 추월에 성공하며 2위로 결승에 진출하는 듯 했지만, 중국 선수를 밀친 것이 반칙으로 판정되어 실격되었지만 3000m에서는 레이스 극초반에 한바퀴를 앞서나가는 전략이 성공하며 여유있는 레이스로 금메달을 따냈다. 다른 선수들보다 한 바퀴를 더 탄 뒤, 같이 출전한 신다운곽윤기가 추월하면 이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수가 트랙을 휘저으며 뒤에 있는 선수들의 추월을 막아버리는 작전으로 한국인 금/은/동 싹쓸이에 공헌한 것은 덤. 레이스 막판에 다시 한 번 맨 앞에서 레이스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연출할 정도로 이정수 특유의 우월한 지구력을 오랫만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5차 월드컵에서 또 한번 결승 진출에 실패해 B파이널에서 1위를 하는걸로 만족해야했다. 6차 월드컵에서 조차 결승진출에 실패하며 B파이널에 진출했고 3위로 결승선 통과했다.
월드컵 시리즈 종료 후 그의 대한 총평은 다음과 같다.
1. 현재 쇼트트랙 트렌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2. 자신의 강점을 단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3. 자신감이 부족하다.
현재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선수들이 서이라, 박세영 그리고 신다운[23]으로 확정된 상태에서 계주에 출전할 선수 두명이 결정이 돼야 하는데, 곽윤기가 계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은 물론 올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한 공석은 이정수나 한승수 둘 중 한명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개인전 성적이나 랭킹은 이정수가 더 높지만, 계주에서의 활약은 한승수가 더 낫다는 평가가 있고, 저 남은 자리 하나가 계주멤버이기 때문에 이정수가 원래도 계주에서 약하다는걸 감안하면 한승수가 뽑힐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곽윤기가 경미한 부상을 입게되어 이정수, 한승수 둘다 상관없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게 됐다.
최근 인터뷰에서 빅토르 안과 붙어보고 싶냐는 질문에 안현수보다는 노진규와의 제대로된 맞대결을 해보고 싶다 밝혔다. 2012년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노진규에게 밀렸던게 약간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걸로 보인다. 반면 곽윤기랑은 어렸을때부터 너무 많이 겨뤄봐서 질렸다고 한다.

3.10. 2015-16 시즌



3.10.1. 국가대표 선발전


3차 선발전에서 심하게 부진하며 최하위를 기록. 대표팀 재승선에 실패한다. 하지만 2차까지는 선발에 성공 되었으므로 예비 멤버로 훈련하였다. 한편 곽윤기도 선발전에서 부진했지만 노련함을 발휘하여 최종 5위로 선발에 성공했다.
그런데 신다운이 출장징계를 받아, 김한울이 대표팀에 들어오고, 이번에는 김한울이 출장징계를 받게되어 차순위인 이정수가 3,4차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 현재 곽윤기박지원 이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거나 대표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신다운이 없는 지금 이정수에게 부활의 기회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마지막 순위에 있기때문에 출장이 제한되고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아 세계선수권에 참가가 가능하더라도 계주에만 출전이 가능하다.

3.10.2. 월드컵 시리즈


3차 월드컵에서 1000미터와 500미터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1000미터를 그것도 예선에서 광탈하면서 대차게 까이는중. 전성기때와 현재 1000미터가 운영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기도 했고[24] 원래 1000미터에서 아주 강한 선수가 아니라 더 고전한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준결승 진출도 못해보고 탈락한건 꽤나 충격적인 결과다. 현재 폼으로는 주종목 1500미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많았다. 6차 월드컵에 곽윤기와 함께 1500미터 2차 레이스 결승에 진출했고, 이스라엘의 블라디슬라프 비카노프가 경기 초반에 한바퀴를 잡는 전략에 성공하면서 1위를 굳힌 가운데, 곽윤기와 함께 여러명의 타국 선수들을 상대로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해내며 3위로 골인해 월드컵 첫 개인전 메달을 목에 걸었다.[25]

3.11. 2016-17 시즌


지난 시즌 곽윤기에 이은 돌아온 '베테랑 에이스' 2탄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데 성공한 1500m 스페셜리스트'''

3.11.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에서 21점을 획득해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엄청나게 선전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반면 2015/2016 월드컵 종합 우승자 곽윤기는 8점을 획득하는데 그쳐 6위에 머물렀다. 2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최종 3위로 선발 되었다! 직관평에 의하면 1-2차전 모두 몸이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고 한다. 10월에 치룬 3차 선발전에서도 신다운에 이어 2위를 기록해 1~3차 선발전 '''종합 1위'''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 및 2017년 동계 아시안게임 1000m, 1500m 종목 출전권을 획득했다. 오랜만에 턱걸이가 아닌 상위권으로 대표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쇼트트랙 커뮤니티에서도 이번 시즌 이정수의 부활을 은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3.11.2.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에서 1500m에 출전하였다. 준결승에서는 중반부터 1-2위로 순위를 유지하며 결승진출이 유력해보였으나, 뒤에 따라오던 선수들이 연달아 추월을 시도했고, 인코스 추월까지 허용하여 점점순위가 내려갔다. 마지막에 아웃코스추월을 시도했으나 이미 경기 후반이라 다른선수들도 속도를 내던상황이었고, 스피드가 그리 빠른편이 아닌 이정수에게 선두탈환은 힘들어보였다. 마지막에 공간이 나오자 아웃코스로 앞에 있던 선수들을 추월하기는 했으나 아쉽게 3위로 골인해 파이널 B로 갔다.
파이널 B에서는 마지막 바퀴까지 거의 체력을 비축하다시피 경기를했고 막판에 시원한 아웃코스패스를 해내며 선두였던 프랑수아 아믈랭을 라인 코앞에서 역전시켜 1위를 기록했다. 준결승때도 이렇게 과감하게 탔어야 했다는게 중론이다.
마지막날에는 1000m 준준결승에서 앞에서 달리던 사뮈엘 지라르, 샤를 아믈랭, 티보 포코네 3명의 선수들 사이로 깔끔하게 추월해내는 명장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1000m 준결승에서 치고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작전실패로 결승진출은 무산된다.
5000m 계주결승에 출전해서 다른 한국 선수가 넘어지며 그대로 메달없이 경기를 마치나 했는데,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이 꽈당을 시전해 준 덕분에 어부지리로 3위를 기록하며 동메달을 가져갔다.
2차 월드컵에서 1차 1500미터에서는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메달을 따는데는 실패했지만, 2차 1500미터 결승에서 2위를 하며 드디어 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이 결승경기에서 1위를 기록한 싱키 크네흐트노진규의 1500미터 세계신기록을 갱신해 많은 한국 쇼트트랙 팬들이 안타까워 했다.
3차 월드컵 1500미터 결승에서 드디어 오랜시간 끝에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26] 결승에 싱키 크네흐트,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신다운 등의 장거리 강자들과 준수한 실력을 갖춘 존-헨리 크루거가 모인 가운데 1위로 골인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특히 선두로 달리던 싱키 크네흐트가 속도를 계속 올리며 거리를 넓히려 했으나, 이정수가 뒤에 바짝 따라붙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두바퀴를 남기고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선두로 올라섰고 그대로 선두를 유지해 결승지점을 통과했다. 지난 경기들과는 달리 더 적극적인 모습이었고, 후반 뒤집기가 아니라 선두권에서 자리를 잡고 경쟁상대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빈틈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다.

4차 월드컵에서도 15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에도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라 할 수 있는 싱키 크네흐트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며 바짝 따라붙었고, 크네흐트가 아웃코스 추월을 할때 같이 따라 나가다가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인코스 추월로 1위에 오른 후 그대로 결승지점에 골인했다. 3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경기보다도 더 훨씬 자신감있고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게 대다수 평이다.
이정수의 개인 인터뷰에 따르면 09-10시즌 때보다도 더 기량이 높아진 느낌이라고 한다.
아시안 게임 출전으로 인해 5,6차를 결장했지만 최종 랭킹 6위로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 한국 남자 선수중에 가장 좋은 성적이다.

3.11.3.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1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각각 동-3위[27]-은메달을 따냈다. 이정수가 처음으로 출전한 아시안 게임이긴 하지만, 사실 이정수는 올림픽 메달로 군면제가 되었기 때문에 딱히 금메달을 따야 할 동기부여가 없으므로 그의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라는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는 대회였다. 그렇다보니 군면제를 받지 못한 후배들(신다운, 박세영, 서이라)을 위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28] 그리고 주장으로써 한창 하락세였던 대표팀을 잘 이끌어준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3.11.4. 2017 세계선수권


주종목인 1500m는 준결승 초반 앞 선수의 스케이트날에 오른발 바깥쪽 날이 부딪혀 넘어지면서 허무하게 마무리 지었다. 개인전을 치루는 삼인방중 가장 메달권이 유력해 보였던 선수라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가장 취약한 500m도 준준결승에서 탈락했다. 1000m에서는 준결승에서 탈락하여 파이널 B에 진출했고 3위를 기록하며 끝마쳤다.
결국 포인트 부족으로 슈퍼파이널 진출도 무산되었다. 지난 시즌 곽윤기와 비슷하게 월드컵에서는 기량을 회복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아쉬운 결과를 냈다.

3.12. 2017-18 시즌



3.12.1. 국가대표 선발전


2차 선발전까지는 통과했지만 1차에서 부진하여 포인트 획득이 너무 적었고 결국 최종 탈락하였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를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한 이후로 두번째이다.
소치 올림픽이 걸려있던 2013-14 시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선발에 재도전하였고 5000미터[29]와 1500미터 종목을 노렸지만 두 종목에서 모두 탈락하여 이정수의 올림픽 참가는 이렇게 다시 한번 무산이 되었다. 은퇴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밝혔으며, 그렇게 되면 쇼트트랙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2018년 1월 1일부터 송경택이 코치로 있는 스포츠토토빙상단 쇼트트랙팀에 입단한다. 또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원한다고 밝혔다.

3.12.2. KBS 쇼트트랙 해설위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진선유와 함께 KBS 쇼트트랙 해설위원을 맡게 되었다. KBS는 둘이 합쳐 5관왕 해설가 라는 드립을 밀고 있다. 가즈아, 빵셔틀 등 인터넷 유행어 드립을 날리거나, 오른발이 아프면 왼발로 타라, 여보세요 등등 제갈성렬을 잇는 드립욕심 충만한 해설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2월 20일 여자 계주 3000m 결승전 중계 중 대한민국 팀이 선두로 들어온 후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고 있을 때 "금메달 가즈아아아!"[30]라고 소리쳤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2010 밴쿠버
1000m
금메달
2010 밴쿠버
1500m
은메달
2010 밴쿠버
5000m 계주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 소피아
5000m 계주
동메달
2012 상하이
5000m 계주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동메달
2010 보르미오
단체전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7 삿포로
5000m 계주
동메달
2017 삿포로
1500m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6 미에르쿠레아치우크
종합
은메달
2007 믈라다 볼레슬라프
종합
은메달
2008 볼차노
종합

5. 기타


  • 고글을 끼면 인상이 평상시 어리버리한 인상과는 많이 달라진다.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멤버 중 고글을 끼면 가장 멋이 나는 멤버로 쇼트트랙 팬들에게 거론된 적이 있다.
  • 엄청난 소두#s-2다. 단독샷을 찍으면 장신으로 오해받을 정도다.
  • 평발이라고 한다. 하지만 쇼트트랙에서는 오히려 평발이 얼음을 미는데 훨씬 더 적합하기 때문에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된다.
[1] 2013-14 시즌, 2017-18 시즌 쇼트트랙 선발전을 실패한 후 올림픽 참가를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에 총 두번 도전하였지만, 결과는 두 번 모두 탈락하였다.[2] 2015-16시즌엔 마지막 3차 선발전에서 탈락했지만 김한울이 징계로 인해 3,4차 월드컵에 불참하게 되어 차순위인 이정수가 빈자리를 매꿨다.[3] 쇼트트랙 선수 치고 허벅지가 얇은 편이라 힘이 약할 것이라고 오해받는데 오히려 밴쿠버 올림픽 전에 국가대표 선수들을 테스트한 결과 다리 근육 1kg당 낼 수 있는 힘이 국대 선수들 중 최고를 기록했다.[4] 최근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노진규가 이와 비슷하다.[5] 날렵한 이미지의 곽윤기나 순발력을 지닌 이호석보다도 스타팅이 더 좋았다. 1위는 단연 500미터 스페셜리스트 성시백이다.[6] 스타트 기술이 좋은편임에도 초반가속이 너무 떨어진다.[7] 사실 이호석이 그 전 1500m 경기에서 성시백을 넘어뜨린 플레이로 국내 여론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 직후인지라 몸싸움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8] 밴쿠버 올림픽 때만 해도 국대 멤버들 중에 체력이 가장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체력으로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오해받다가 진정한 체력괴물 노진규의 등장으로 어쩌다 보니 그의 기술적인 면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9] 밴쿠버 올림픽시즌때 폐활량 측정에서도 5140㏄로 이호석(4050㏄)과 성시백(4280㏄)을 훨씬 앞섰다.[10] 예를 들면 빅토르 안, 이호석, 성시백 등이 포함된다.[11] 무릎팍도사에서 이승훈이 얘기했다.[12] 당시 이호석이 2009년 세계선수권을 종합우승해 자동선발이 되어서, 개인전은 선발전 2위까지만 주어졌고, 4위까지 올림픽에 계주멤버로 참가 할 수 있었다.[13] 주자 순서는 이정수-이호석-곽윤기-김성일[14] 다만 단체전이 아닌 개인 경기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최고 기록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스포츠에서 당연한 것이기에 3등으로 질주하던 이호석이 동메달보다 은메달을 위해 성시백을 추월하려 시도한 것이 잘못된 것인가라는 의견도 있다. 허나 이 때는 성시백 선수가 군대 미필이었고 할리우드 액션으로 메달을 가져간 오노의 동료들이 메달을 가져가는 바람에 많은 비난이 있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서로 사과를 해서 별다른 마찰 없이 마무리되었다.[15] 정확히 말하자면 아믈랭이 셀스키와 접촉을 하자 셀스키가 미는 바람에 아믈랭이 넘어졌는데 이 때 셀스키가 실격처리되었고 프랑수아 아믈랭이 어드밴스로 결승에 갔다. 정확히 보자면 오히려 실격을 아믈랭이 받아야 하는데 참고로 뒤에서 추월을 시도하는 선수가 아웃코스에서 과도하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들어오면 밀쳐내거나 쓰러뜨릴 수 있으며 이 경우 추월을 시도하는 선수가 반칙이고, 쓰러뜨리는 선수는 정당방위로 취급되기 때문이다.[16] 이호석이 또 넘어지는 바람에 곽윤기는 결승진출 무산, 성시백은 1000m에서 0.006초 차이로 샤를 아믈랭에게 결승 진출을 내줬고 500m에선 다 왔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겨우겨우 3위로 들어왔으며 나중에 오노의 실격으로 은메달을 받았다.[17] 그 뒤 1000m 올림픽 신기록은 샤를 아믈랭이 갈아치웠고, 1500m 올림픽 신기록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임효준이 갈아치웠으며 당시 이정수 본인이 해설을 맡고 있었다.[18] 주자 순서는 성시백-곽윤기-이호석-이정수[19] 09-10시즌 월드컵 종합 챔피언[20] 물론 500미터를 양보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건 한국선수들의 주종목인 1000미터를 뜻했던것이었다.[21] 이정수 다음 순위인 5위는 안현수였으나 그의 러시아 귀화 때문에 6위인 서이라가 기회를 얻었다.[22] 복숭아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23] 아직 완전히 확정된건 아니지만 올시즌 성적과 기량만으로는 출전은 물론 개인전 출전도 확정이다.[24] 더 빠르게 진행된다.[25] 페이스북으로 전이경변천사에게 축하를 받기도 했다.[26]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땄을때는 무려 11-12시즌 5차 월드컵 1500미터 금메달이다. 14-15시즌 3000미터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시범종목에 가까워서 큰 의미는 없다.[27] 아시안게임의 한 국가 금은동 싹쓸이 방지법에 따라 3위를 기록했으나 동메달을 받지는 못했다.[28] 물론 박세영같은 경우는 혼자 해냈다고 봐도 되는 케이스다. 서이라는 1000m 준결승에서 탈락위기를 이정수가 한티안위를 잘 견제해줘 결승진출을 할 수 있었다. [29] 참고로 해당 종목에는 쇼트트랙과 유사한 방식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권도 같이 걸려있다.[30] 심지어 즈를 z발음으로 아주 정확하게 발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