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의 10계

 

Knox's Ten Commandments.
1. 개요
2. 항목
2.1. 1계: 범인의 생각
2.2. 2계: 초자연적인 수단
2.3. 3계: 탈출로
2.4. 4계: 설명이 필요한 수단
2.5. 5계: 중국인
2.6. 6계: 우연과 직감
2.7. 7계: 탐정과 범인
2.8. 8계: 쓸모없는 증거
2.9. 9계: 탐정들의 파트너
2.10. 10계: 또 다른 범인
3. 평가


1. 개요


추리 소설 작가 로널드 녹스(Ronald Arbuthnott Knox, 1888-1957)[1]가 발표한 법칙. 반 다인의 20칙과 함께 1928년에 '미스터리를 쓸 때 지켜야하는 사항', 즉 '미스터리의 기본 규칙'으로서 발표되었다. '녹스의 10계'란 말 그대로 로널드 녹스가 적어둔 10개의 기본 규칙을 말한다.

2. 항목



2.1. 1계: 범인의 생각


#1. The criminal must be someone mentioned in the early part of the story, but must not be anyone whose thoughts the reader has been allowed to follow.

#1. 범인은 이야기 초반에 언급된 인물이되, 독자에게 생각이 드러난 인물이어선 안 된다.

이야기 초반에 언급된 인물이여야 한다는 건 독자가 한창 추리하고 있는데, 이야기 끝날 무렵 처음보는 인물이 튀어나와 "사실 내가 범인이오"하는 황당한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어느 정도의 복선이 존재해야 한다.
생각이 드러난 인물이어선 안 된다는 것은 서술 트릭을 금한다는 뜻이다.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통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속으로 하는 독백에서도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누락하고 있는 것은 독자를 속이려고 등장인물이 사기를 치는 것과 같다고 보는 논리다.
하지만 현대에는 서술 트릭클리셰 파괴가 성행하면서 1계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2.2. 2계: 초자연적인 수단


#2. All supernatural or preternatural agencies are ruled out as a matter of course.

#2. 초자연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수단은 당연히 안 된다.

이걸 어기는 순간 해당 작품은 추리 미스테리가 아니라 판타지로 변모한다. 10계 제정 당시 추리물이랍시고 나왔던 상당수의 작품들이 '사실 범인이 마법사 or 주술사라 그걸 사용해서 범행을 저지른 거다.'는 설정을 남발해서 들어간 조항. 예를들어 흑집사의 경우 창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명확히 알리바이가 있었으나, 알고보니 사신과 공모해서 마법으로 공간전이를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복선도 없이 밝혀진다.
현대에 이 법칙을 부순 작품으로는 역전재판 시리즈가 있다. 다만 이 작품 역시 영매에 대해 한계를 정해두었고, 그 영매 자체가 독자의 추리를 교란시키는데 쓰인 적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추리물로서의 성격을 지키고 있다. 가면라이더 W은 탐정이 등장하면서도 초자연적인 요소 등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어차피 액션 장르이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데스노트'''는 작품 기본 전제부터 이 계명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초자연적 범행수단을 사용하고 있다.[2] 그러나 작품 시작부터 이것이 제시되었고, 엄격한 이용 룰이 존재하며 추적하는 측이 철저히 현실논리에 입각한 추리로 대적하기에 추리물로서의 퀄리티와 참신성을 모두 잡은 케이스.

2.3. 3계: 탈출로


#3. Not more than one secret room or passage is allowable.

#3. 사용할 수 있는 비밀의 방이나 비밀 통로는 2개 이상이어선 안 된다.

괴도가 등장해서 물건을 훔쳐가는 작품이라면 모를까, 밀실 살인 트릭 등에서 비밀 통로 등을 쓰지 말라는 의미다.
'사실 비밀통로가 있어서 범인이 그걸로 나간 거다.'라는 유형의 반전은 작중인물들이 밀실을 풀기 위해 하던 추리를 모조리 쓸모 없는 행위로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들어갔다.
현대 작품 중 이 법칙을 어긴 작품으로는 아야츠지 유키토관 시리즈를 들 수 있다.
[3]

2.4. 4계: 설명이 필요한 수단


#4. No hitherto undiscovered poisons may be used, nor any appliance which will need a long scientific explanation at the end.

#4.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독이나, 마지막에 과학적 설명을 길게 늘어놓아야 하는 장치는 사용해선 안 된다.

현재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트릭을 '현실에 없는 과학 장치'를 통해 실현된 거라고 설명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의 산물을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니까 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원칙을 무시한 작품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악마의 발이 있다. 다만 코난 도일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었는지[4] 문제의 '독초'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집중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명탐정 코난, 더 나아가면 적외선 굴절기, 소아온에서 데스 건이 살인에 사용한 마스터키가 있다. 특히 명탐정 코난의 경우 갈수록 와이어나 기타 도구를 사용한 흉기 은폐 트릭이 넘쳐나는 바람에 관련 문서에서도 엄청나게 비판이 쏟아질 정도다.

2.5. 5계: 중국인


#5. No Chinaman must figure in the story.

#5. 중국인을 등장시키면 절대 안 된다.

2번과 상통하는 내용으로, 여기서 말하는 '중국인'이란 단순히 중국 국적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점쟁이나 잡기단, 마술사 같은 이를 가리킨다. 이는 당시 서양에서 동양인(중국인)은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거나, 동양의 신비로운 힘을 가진 '일종의 마법사같은 인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 2계와 비슷한 규칙인 것 같은데 왜 별도로 분류되었나면 이 중국인은 용과 같은 허구의 존재도 아니며, 정말로 그 당시 이민자들은 몸에 바늘을 찌르거나 각종 허브를 끓인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등의 서구적 상식으로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정말 효과가 있는 문화 및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대 서구권 문화계에선 중국인은 그 존재 만으로도 ‘딱히 공상적 설명할 필요도 없고 과학적 기믹도 불필요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취급을 받았다. 그 결과 해결 불가능한 사건을 제시하고서는 신비로운 중국인이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거나, 사건 자체가 중국인의 마술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는 등의 전개가 잦았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해서 위에 언급한 2계와 4계의 허점을 동시에 찌르는 존재이자 당대 독자들의 문화적 선입견과 보편적 환상에 의존했기에 정통 추리극에선 나오는 순간 와장창 플롯을 깨먹게 된다.
드루리 레인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X의 비극에서도 피해자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엇갈려 꼬자 "중국놈이 숨어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라며 농담같은 대사가 살짝 나온다.

2.6. 6계: 우연과 직감


#6. No accident must ever help the detective, nor must he ever have an unaccountable intuition which proves to be right.

#6. 탐정을 도와주는 우연이나 추론의 증거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을 사용해선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독자가 고생하여 범인을 찾게 하였다가 이것이 잘 안 되니까, 아무튼 내 손 안에 모든 단서가 있었다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 건 독자를 놀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장난이다. 최근에는 꽤 보이는 10계중 하나. 주인공의 추리가 막혔을 때, 주변인이 지나가는 말로 농담이나 장난을 치는데, 이게 범인으로 이어지는 힌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위에 설명된 2계 및 5계와 어느정도 맥락을 함께 한다. 갑자기 해명이 이루어지는데 해명의 근거가 '''근거 없는''' 직감이라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없다.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암호 또는 약호가 해당된다. 다르게 말하면 맥거핀이 있다.

2.7. 7계: 탐정과 범인


#7. The detective must not himself commit the crime.

#7. 탐정 본인이 범인이서는 안 된다.

1계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탐정이 화자라면 자연스레 서술 트릭을 통해 스토리가 구성됨으로 당연히 안 되고, 제3자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탐정은 독자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인물임으로 탐정을 범인으로 설정하는 건 그 신뢰를 배신하는 거라고 여긴다. 당시 작품에서의 탐정은 절대적인 선역 & 주역로서의 지위가 보장받았기에 탄생하였다.
반 다인의 20칙에 따른다면 사건의 범인이 탐정을 비롯한 수사당국의 인물이거나 범죄 단체의 구성원 등 전문 범죄자인 경우 녹스의 10계 중 7계를 어긴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사당국의 인물이 범죄 단체의 구성원과 협력 관계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척 하면서 누군가에게 누명을 덮어씌운다는 결말로 나온다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에는 1계와 마찬가지로 안티히어로, 다크 히어로클리셰를 파괴하는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탐정'이라거나 '탐정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짓은 악당'이 많이 있다. 데스노트는 주인공 콤비가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서로 대결하는 구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탐정이 협잡꾼을 겸업하는 악인이거나, 아니면 엑스트라마냥 살해당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입체적인 작품이 나오면서 탐정의 위상이 많이 내려간지라 요즘은 그다지 잘 지켜지지 않는다.
현대에 이 법칙을 어긴 작품으로는 단간론파 시리즈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는 주인공과 함께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이 진범인 경우가 있다.

2.8. 8계: 쓸모없는 증거


#8. The detective must not light on any clues which are not instantly produced for the inspection of the reader.

#8. 탐정은 독자의 판단을 위해 즉시 드러나지 않은 증거에 집중해선 안 된다.

독자와의 페어플레이를 강조한 지적이다. 맥거핀에 대한 경계라고도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드라마 등 시즌제의 형태를 지닌 경우라거나, 섣불리 결말을 낼 수 없는 후속작의 홍보를 위해 미해결된 떡밥을 뿌리는 경우는 예외로 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띤 작품들은 그 떡밥이 발효되는 시점, 즉 '떡밥을 제대로 회수했는지''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2.9. 9계: 탐정들의 파트너


#9. The stupid friend of the detective, the Watson, must not conceal any thoughts which pass through his mind; his intelligence must be slightly, but very slightly, below that of the average reader.

#9. 왓슨처럼 탐정의 멍청한 친구는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을 속여선 안 된다. 그의 지능은 일반적인 독자보다 약간, 아주 약간 부족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탐정들의 파트너에 관한 지적이다. 원문에도 언급된 왓슨의 경우 바보같은 추리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독자들이 처음 할 만한 생각'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홈즈는 이에 대해 '그건 나도 생각했었지만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며 체계적으로 반론한다.[5] 즉, 이것은 의도적인 파트너의 폄하가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틀렸으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는게 어떨까? 라고 독자에게 주는 힌트인 것이다.


2.10. 10계: 또 다른 범인


#10. Twin brothers, and doubles generally, must not appear unless we have been duly prepared for them.

#10. 독자에게 충분히 암시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쌍둥이 혹은 대역을 등장시켜선 안 된다.

사악한 쌍둥이 등 '사실은 이 사람과 닮은 다른 인물이 범인이었다' 등의 문제를 거론한 것. 추리는 트릭과 범인을 밝혀내는 것인데, 쌍둥이나 대역은 그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트릭을 밝혀냈지만 '아, 진범은 쌍둥이 동생입니다'라거나, 대역이 알리바이를 만들어 추리선상에서 벗어나는건 추리라는 오락물에서의 속임수나 마찬가지다.
다만 어디까지나 임시와 복선도 없이 쌍둥이가 갑툭튀하는게 문제지, 그림자 살인이나 루팡 3세 PART 5 17화처럼 암시와 복선이 충분히 있다면 문제는 없다. 그래서 쌍둥이는 종종 보이는 10계중에 하나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 덕분에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물에서 쌍둥이가 등장하면 둘중 하나는 범인이거나 사건의 중요인물인 것은 거의 필수요소급. 일본의 니시무라 교타로의 장편소설 <살인의 쌍곡선> 에서는 쌍둥이를 초장부터 이용한다고 명시하며 충격적인 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중에 쌍둥이를 이용한 트릭이 있다. 그것도 맨 마지막 순간에나 밝혔다. 명탐정 코난에서도 몇 번인가 써먹었다.

3. 평가


현대 추리 소설들은 물론이고 명작으로 평가받는 고전 추리 소설들도 녹스 10계를 완전히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이 법칙들은 하나같이 다 독자의 추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10계는 독자와 작가의 페어플레이를 위함이며 작품의 완성도와 작가가 오만해지지 않기 위한 장치이다.''' 완전히 지킬 필요는 없더라도 녹스의 10계가 공상적이거나, 미지의 존재를 단서로 두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추리 소설은 독자의 추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집필할 필요는 있다. 추리물이라는 장르의 구분 기준 중에서 '''독자가 직접 읽으며 함께 추리해보는 작품'''이라는 요소 또한 명백하게 들어있기 때문. 필수는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은 이 10계를 꾸준히 지키는 편이다. 가끔 우연히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밀어서 끼웠다는 식의 우연을 바탕으로 트릭을 알아내서 6계를 위반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이나 소재들이고, 독자에게는 트릭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또한 작품 외적으로는 지면상의 문제로 인한 과정 생략)에 가까워서 딱히 6계를 위반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추리할 수 있는 복선과 힌트 자체는 이미 독자에게 보여준 상태이고, 우연의 발상은 어디까지나 김전일이 전개상 사건의 트릭을 깨닫게 된 계기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1] 추리소설가인 동시에 성직자이며 신학자였다. 성공회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본인도 사제가 되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다.[2]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훤히 알고 시작하기에 추리물이란 인상이 약하나, 엄연히 범인을 논리적으로 추적하여 체포하는 방법을 다룬 형사 콜롬보 스타일의 도치형 추리물이다.[3] 이걸 느슨하게 어긴 작품으로는 단간론파 시리즈가 있다. 등장하는 한 사건의 경우, 살인이 일어난 장소의 비밀 통로는 하나지만 이를 사용할 수 없음을 알러준 뒤에 추리가 진행되나 사실은 해당 비밀통로가 범행에 이용되었음이 뒤늦게 밝혀지며 반전을 준다.[4] 해당 소설은 1917년에, 그러니까 10계보다 먼저 출판되었다. [5] 물론 작가도 사람이거니와 고증 문제가 얽혀 있기에, 홈즈(와 작중 탐정)의 추리가 항상 100%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홈즈 시리즈에서도 '그걸 생각 못했네' 식으로 홈즈의 추리가 틀리는 단편이 몇 개 있다. 오히려 이것이 홈즈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요인 중 하나라니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