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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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나라의 인물이자 정나라의 사도. 부친은 단엄(段嚴). 작위는 양원현공(襄垣縣公)이나 후에 진국공(陳國公)으로 봉해졌다. 성은 단(段), 이름은 달(達). 왕충을 따라 사도까지 올랐으나 정나라가 멸망하자 끝내 피살되었다.
2. 외모
커서는 키가 8척(196cm)[1]
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수서 단달 열전 中
수서에 따르면 단달의 신장이 무려 '''8척(196cm)'''이나 되었고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북사 왕세충(왕충) 열전에도 표기되어 있는 기록이다. 단달의 실제 신장이 8척이나 되었을 지는 불분명 하지만 그 만큼 장신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커서 신장이 8자(8척)에 수염이 멋졌고 활쏘기를 잘했다.
북사 왕세적 열전 中
3. 생애
3.1. 초기 생애
단달은 북주 옹주 무위군(武威郡) 고장현(姑臧縣)에서 단엄(段嚴)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단엄은 북주의 삭주자사(朔州刺史)[2] 를 지냈다. 단달은 이후 3살 때 양원현공(襄垣縣公)의 작위를 이었다. 커서는 키가 8척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3.2. 문제의 눈에 들다
이 때문에 문제는 단달을 눈에 여겼고 이후 문제가 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문제는 단달을 불러 대도독(大都督)에 임명해 친위병(親信兵)을 이끌게 했고 단달을 아껴 늘 곁에 두었다.이후 문제는 장안을 수도로 정하고 수(隋)를 건국했다. 문제가 황제에 오르자 문제는 단달을 좌직재(左直齋)에 임명했다. 그 후에 단달은 빠르게 승진해 여러 관직을 거치며 거기장군(車騎將軍) 겸 진왕참군(晉王參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고지혜(高智惠)와 이적(李積)이 난을 일으키자 단달은 군사 1만을 이끌고 방주(方州)와 저주(滁州)를 공격해 평정했다. 이에 문제는 단달에게 비단 1000필을 하사하고 의동(儀同)으로 승진시켰다. 또한 단달은 이후에 선주(宣州)에서 왕문진(汪文進)을 격파해 개부(開府)가 더해졌다. 인수 초년, 단달은 태자자위부솔(太子左衞副率)에 임명되었다.
3.3. 기효덕과 장금칭의 난
문제가 죽고 양제가 수의 황제에 오르자 단달은 자신이 왕으로 있을 때 보좌한 신하였기 때문에 양제는 그를 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에 임명했다. 이후 토욕혼을 정벌할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승진했다. 양제가 요동을 정벌할 때 백성들은 노역으로 힘들어 했는데 이 때문에 평원(平原) 사람 기효덕(祁孝德)과 청하(清河) 사람 장금칭이 사람들을 모아 도적이 되어 성읍을 공격했다. 군현에서는 이들의 위세가 강해 이들을 막을 수 없었는데 양제는 단달에게 기효덕과 장금칭을 토벌하게 했다. 양선회(楊善會)가 계책을 올렸는데 단달은 이를 무시했고 단달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여러번 참패를 당해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기효덕과 장금칭을 포함한 여러 도적들은 단달을 ‘단할미’라며 조롱했다. 단달은 기효덕과 장금칭에게 패한 뒤 자신에게 계책을 올렸던 양선회의 계책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양선회와 같이 계책을 논의했고 적과 대치하자 양선회의 조언대로 계책을 써 기효덕과 장금칭을 격파했다. 허나 이후 공적인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3.4. 당신은 나약하고 담력이 적습니다
이듬해, 양제는 요동정벌에 나서면서 단달에게는 탁군(涿郡)의 수비를 맡겼다. 이후 단달은 다시 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에 다시 임명되었다. 고양군(高陽郡)에서 위도아(魏刀兒)가 10만에 달하는 무리를 이끌고 역산비(歷山飛)로 자처해 연(燕)과 조(趙)를 약탈했다. 단달은 탁군통수(涿郡通守) 곽현(郭絢)을 이끌고 위도아를 공격해 격파했다. 위도아의 무리가 너무 많아 도적들과 관군 사이에서 엄청 치열한 전투가 벌여 졌다고 한다. 단달은 승리할 수 있는 기민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군사들의 대오를 유지하며 성을 굳게 지켰다. 군사들을 정비하고 식량을 저장했지만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단달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약하고 담력이 적습니다.
수서 단달 열전 中
3.5. 양제가 붕어하다
616년, 양제는 강도궁(江都宮)으로 행차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단달과 태부경(太府卿) 원문도(元文都)에게 동도(東都)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이밀이 낙구(洛口)를 근거지로 삼고 군사들을 지휘해 동도의 성 아래까지 침략했다. 단달은 감문랑장(監門郎將) 방옥(龐玉), 무아랑장(武牙郎將) 곽거(霍舉)와 성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막았다. 단달은 공을 많이 세워 자효위대장군(左驍衞大將軍)에 임명되었다. 왕충이 패하고 이밀은 다시 북망(北芒)을 차지하고 상춘문(上春門)으로 돌아왔다. 단달은 판좌승(判左丞) 곽문의(郭文懿)와 상서(尚書) 위진(韋津)과 출병해 이밀을 막았다. 그러나 단달은 적의 세력이 강한 것을 확인하고 진을 치지도 않고 달아났고 이밀은 기세를 타고 단달의 군사들을 공격해 단달의 병사들을 크게 무찔렀고 단달과 곽문의는 달아났으나 위진은 결국 군진에서 죽었다. 이로서 이밀의 군대는 날마다 기세가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양제가 붕어해 버린다.
3.6. 권력을 잡다
양제가 붕어하고 단달은 전에 같이 동도를 수비했던 원문도와 함께 월왕(越王) 양동을 군주로 추대하고 자신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겸 납언(納言)이 되었고 진국공(陳國公)에 봉해졌다. 그러나 얼마 뒤 노초가 원문도에게 권하니
원문도는 노초의 말이 그렇다고 여기고 거사를 준비했는데 이것을 단달이 왕충에게 알렸다.[3] 당시 조당에 있던 왕충은 두려워 말을 타고 성으로 돌아가 단달과 함께 모반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고 원문도가 여러 버누왕충을 불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후 저녁에 단달은 왕충을 따라 반란을 일으켜 동태양문을 함락하고 끝내 원문도는 무릎을 꿇었다. 양동은 왕충에게 원문도를 넘겼고 원문도는 끝내 사형 당하고 원문도의 아들도 해를 당했다. 왕충은 이 사건으로 단달에게 크게 감격해 그를 매우 각별히 대했다. 왕충이 이밀을 무찌른 이후 단달은 여러 신하들과 양동에게 찾아가 왕충에게 아홉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왕세충(왕충)은 밖에서 작전하는 군대의 일개 장수일 뿐입니다. 본시 도성에 남아 지키는 무리가 아닌데 어찌 우리 일에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낙구에서 당한 패배는 그 죄로 치면 죽여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만 방치하게 날뛰며 정사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장래에 국가의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수서 원문도 열전 中
3.7. 최후
얼마 후 단달은 이번에는 양동에게 찾아가 재위를 왕충에게 양위 할 것을 종용했다. 이로서 수가 멸망했고 왕충은 정을 건국하고 연호를 개명(開明)이라 했다. 단달은 이 공으로 정의 사도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 왕충이 몰락하면서 동도가 평정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단달은 피살 되었으며 처와 아들은 관노가 되었다.
4. 평가
천지간에 모습을 가진 동물 중에 인간이 가장 영물이라고 말하는 짓은 짐승과 달리 부자지간의 도리를 알고 군신간의 예의 범절을 알게 때문이다. 전적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중시할 것은 삼강(三綱)에 있고, 상대를 섬길 때에는 한결 같아야 한다.”고 했다. 즉, 군신과 부자의 이치는 같은 것이다. 부친이 부친 같지 않으면 안 되고, 아들이 아들 같지 않으면 안되고, 군주가 군주 같지 않으면 안 되고 신하도 신하 같지 않으면 안 되는 갓이다. 그래서 군주는 하늘과 같으니 하늘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대신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나라가 위험에 청했을 때는 임명 받아 충성과 절개를 다해 신하 된 사람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절개를 바꾸어 구차하게 삶을 도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인 들은 그들이 남긴 자취를 듣고 강대한 마음을 품는다. 천년이 지나도 이러한 사람을 신하로 심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어서도 사람들이 애통하게 여기며 전대 선현들에게 추앙받는 이유다. 누구는 군주에게 예물을 올려 신하가 되고, 누구는 자신의 이름을 서류에 기록하고, 누구는 대대로 경대부의 높은 자리에 있고, 누구는 핵심 측근으로 중임을 받아 조정을 나가서 일하고, 누구는 조정에서 기밀을 다루는 일을 하고, 누구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조고 처럼 교활한 행위를 거침없이 하고, 대대로 막강한 권세를 가졌음에도 왕망처럼 반역을 일으켰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짓이니, 개와 돼지라도 이런 사람들의 살을 먹지 않을 것이다. 사직을 더럽히고 궁전을 오염시켰어도 이들의 죄악을 만천하에 드러내 처형하고, 관을 열어 시신을 불태워 권력을 찬탈하고 군주를 시해한 죄상을 공개적으로 성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사악한 짓을 저지른 신하들을 벌할 수는 있어도 후인들에게 경계로 삼게 하기에는 부족하다. 옛날 공자가 춘추를 짓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 공자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얻고자 한 명성을 얻을 수 없게 만들었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덮고 싶어도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의 죄명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그들의 일을 본편의 앞에 두어서 후에 군자들이 본편의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夫肖形天地,人稱最靈,以其知父子之道,識君臣之義,異夫禽獸者也。傳曰:「人生在三,事之如一。」然則君臣父子,其道不殊,父不可以不父,子不可以不子,君不可以不君,臣不可以不臣。故曰君猶天也,天可讎乎!是以有罪歸刑,見危授命,竭忠貞以立節,不臨難而苟免。故聞其風者,懷夫慷慨,千載之後,莫不願以為臣。此其所以生榮死哀,取貴前哲者矣。至於委質策名,代卿世祿,出受心膂之寄,入參帷幄之謀,身處機衡,肆趙高之姦宄,世荷權寵,行王莽之桀逆,生靈之所讎疾,犬豕不食其餘。雖薦社污宮,彰必誅之釁,斵棺焚骨,明篡殺之咎,可以懲夫既往,未足深誡將來。昔孔子修春秋,而亂臣賊子知懼,抑使之求名不得,欲蓋而彰者也。今故正其罪名,以冠於篇首,庶後之君子見作者之意焉。
수서 우문화급등전 中
위와 같이 월왕 양동을 폐위하는 데 협력하고 왕충을 따라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에 평가가 당연히 나쁠 수 밖에 없다. 수서의 저자 위징은 이를 진나라의 간신 조고와 비교하며 조고 보다 심하다며 혹평을 했다. 반대로 왕충과 단달을 몰아 내려던 원문도는 위징에게 호평을 받았다.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이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먼저 황제가 되려고 사람들을 이끌고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앞장서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서 본말을 뒤집고 사대부들의 체면을 모조리 깎아 내렸다. 이들 중에 누구는 직접 도적들의 수령이 되었고, 누구는 직접 군주를 시해했다. 그 죄악이 사슴을 말이라고 한 조고 보다 더 심했다. 일은 춘추시기 군주를 시해한 선례보다 다 지나쳤다. 그들의 행위는 천지가 용서할 수 없고 사람과 신의 공분을 자아냈다. 그래서 이러한 추한 무리는 한 명씩 살육되어 당시 충직한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었고 장래에도 후인들을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서 우문화급등전 평 中
위징은 단달을 우문화급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충과 함께 묶어 이들의 악행이 심하다는 것을 여러 인물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다만 열전 초반 부에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는 기록과 위징의 평가에 언급되지 않은 점[4] , 중국 최고의 명군이자 성군인 수문제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 수양제 밑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점을 보면 그는 간사한 인물 이었지 절때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달은 양제가 사망하고 월왕 양동을 옹립 하면서 권신 원문도를 제거하고 왕충을 따르며 수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이 점에서 단달을 옹호 하기는 힘들 것 이다.
5. 수서 단달전 번역본
단달은 무위 고장 사람이다. 부친 단엄은 북제에서 삭주자사를 지냈다. 단달은 북주에서 3세 때 양원현공 작위를 이었다. 커서는 키가 8척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고조는 승상이 되자 그를 대도독의 신분으로 친위병을 이끌도록 했고, 늘 곁에 두었다. 고조가 제위에 오르자, 단달은 좌직재가 되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거기장군 겸 진왕참군으로 승진했다. 고지혜와 이적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단달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방(方)과 저(滁) 두 주를 공격해 평정했다. 이에 황제는 그에게 비단 1000필을 하사하고 의동으로 승진시켰다. 또 선주에서 왕문진을 물리쳐 개부가 더해졌고, 노비 50명과 비단 400필을 받았다. 인수 초년, 태자자위부솔(太子左衞副率)에 임명되었다.
대업 초년, 양제는 단달이 자신이 왕으로 있을 때 보좌한 신하여서 그를 좌익위장군에 임명했다. 토욕혼을 정벌할 때 관직이 금자광록대부로 승진했다. 양제가 요동을 정벌할 때 백성들은 노역으로 힘들어 했다. 평원 사람 기효덕과 청하 사람 장금칭 등이 사람들을 모아 도적이 되어 성읍을 공격하자 군현에서는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황제는 단달에게 이들을 공격토록 했으나 장금칭 등에게 여러 번 패해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도적들이 그를 무시하며 단할미라고 조롱했다. 후에 유령 양선회의 계책을 써서 다시 도적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었다. 도성으로 돌아와 공적인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이듬해, 양제는 요동 정벌에 나서면서 단달에게 탁군을 지키게 했다. 얼마 후 또다시 좌익위장군에 임명했다. 고양의 위도아가 무리 10여만 명을 이끌고 역산비로 자처하여 연과 조 땅을 약탈했다. 단달은 탁군통수 곽현을 이끌고 위도아를 공격해 물리쳤다. 당시 도적들이 아주 많아져 관군은 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단달은 승리할 수 있는 기민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군사들의 대오를 유지하며 성을 굳게 지켰다. 군사들을 정비하고 식량을 저장했지만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나약하고 담력이 적다고 말했다.
대업 12년, 양제는 강도궁으로 행차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단달과 태부경 원문도에게 동도를 지킬 것을 명했다. 이밀이 낙구를 근거지로 삼고 군사들을 지휘해 동도의 성 아래까지 침략해 왔다. 단달과 감문랑장 방옥, 무아랑장 곽거가 성안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가 막았다. 단달은 많은 공을 세워 좌효위대장군으로 승진했다. 왕충이 패하자, 이밀은 다시 북망을 차지하고 상춘문으로 왔다. 단달은 판좌승 곽문의, 상서 위진과 출병해 그를 막았다. 단달은 적의 세력이 강한 것을 보고 진을 치지도 않고 달아났다. 이밀이 기세를 타고 공격해 단달의 군사들을 크게 물리쳤다. 위진은 군진에서 죽었다. 이로서 적의 기세가 날로 강해졌다.
양제가 강도에서 붕어하자 단달은 원문도 등과 월왕 양동을 군주로 추대하고, 개부의동삼사 겸 납언에 임명되고 진국공에 봉해졌다. 원문도 등이 왕충을 죽이려고 모의하자, 단달은 이 사실을 몰래 왕충에게 알리고 그와 내응하기로 했다. 일이 드러나자 월왕 양동은 원문도를 잡아 왕충에게 넘겼다. 왕충은 이 일로 단달에게 매우 감격해 그를 각별하게 대했다. 왕충이 이밀을 무찔렀다. 단달 등은 월왕 양동에게 왕충에게 아홉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을 권했다. 얼마 후 또 양동에게 재위를 왕충에게 양위 할 것을 종용했다. 왕충은 황제가 되자 단달을 사도에 임명했다. 동도가 평정되자 피살되었다. 처와 아이들도 관노가 되었다.
5.1. 원문
段達,武威姑臧人也。父嚴,周朔州刺史。達在周,年始三歲,襲爵襄垣縣公。及長,身長八尺,美鬚髯,便弓馬。
高祖為丞相,以大都督領親信兵,常置左右。及踐阼,為左直齋,累遷車騎將軍,兼晉王參軍。高智惠、李積等之作亂也,達率眾一萬,擊定方、滁二州,賜縑千段,遷進儀同。又破汪文進等於宣州,加開府,賜奴婢五十口,緜絹四千段。仁壽初,太子左衞副率。
大業初,以蕃邸之舊,拜左翊衞將軍。征吐谷渾,進位金紫光祿大夫。帝征遼東,百姓苦役,平原祁孝德、清河張金稱等並聚眾為羣盜,攻陷城邑,郡縣不能禦。帝令達擊之,數為金稱等所挫,亡失甚多。諸賊輕之,號為段姥。後用鄃令楊善會之計,更與賊戰,方致剋捷。還京師,以公事坐免。
明年,帝征遼東,以達留守涿郡。俄復拜左翊衞將軍。高陽魏刀兒聚眾十餘萬,自號歷山飛,寇掠燕、趙。達率涿郡通守郭絢擊敗之。于時盜賊既多,官軍惡戰,達不能因機決勝,唯持重自守,頓兵饋糧,多無剋獲,時皆謂之為怯愞。
十二年,帝幸江都宮,詔達與太府卿元文都留守東都。李密據洛口,縱兵侵掠城下,達與監門郎將龐玉、武牙郎將霍舉率內兵出禦之。頗有功,遷左驍衞大將軍。王充之敗也,密復進據北芒,來至上春門,達與判左丞郭文懿、尚書韋津出兵拒之。達見賊盛,不陣而走,為密所乘,軍大潰,津沒於陣。由是賊勢日盛。
及帝崩於江都,達與元文都等推越王侗為主,署開府儀同三司,兼納言,封陳國公。元文都等謀誅王充也,達陰告充,為之內應。及事發,越王侗執文都於充,充甚德於達,特見崇重。既破李密,達等勸越王加充九錫備物,尋諷令禪讓。充僭尊號,以達為司徒。及東都平,坐誅,妻子籍沒。
6. 연의
《설당연의(說唐演義)》에서는 왕세충의 휘하의 원수로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의 주무기인 방천화극(方天畵戟)에 능하다고 나온다. 이후 적군과 싸우러 나갔으나 몇 합 버티지 못하고 전사한다.
7. 가족관계
- 부 : 삭주자사(朔州刺史) 단엄(段嚴)/(? ~ ?)
- 모 : 성명 미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