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플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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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 선수. 2021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코치를 맡고 있다.
맨유에 이른 나이에 입단하여 17세부터 1군 무대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본래 오른쪽 미드필더였다. 패싱력 하나는 뛰어나서 이른 나이부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총애를 받았으며, 구단의 대표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떠났을때 퍼거슨 감독이 '''"우리에겐 플레처가 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장점이던 패싱력도 떨어지는 등 너무나 더딘 발전때문에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존재감은 제로였고[1] 그럼에도 꾸준히 출장을 보장받아 '퍼거슨의 양아들' 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허나 그 뒤 06-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겨 강한 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 준수한 수비력, 폭발적이진 않아도 평균 이상은 해주는 득점력과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전술 이해도로 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06-0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AS 로마전 홈 경기에서 7:1 대승을 이끌었던 Best활약상은 백미. 당시 프란체스코 토티를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클로드 마케렐레의 이름을 딴 플레렐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로이 킨이 떠난후 중원에서의 압박부재로 앨런 스미스를 수미로 돌리는 고육지책까지 썼던 맨유는 플레처의 성장과 캐릭의 영입으로 그 공백을 메울수 있었다.[2]
2. 클럽 경력
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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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처는 스코틀랜드에서 유소년 축구를 하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스카우트되었다. 당시 나이가 11살. 1999-00 시즌 마지막 38R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가지나 싶었으나 프리미어 리그 규칙에 [3] 따라 플레처의 데뷔가 연기되었다. 유소년 팀과 리저브 팀에서 뛰면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1999-00 시즌 맨체스터 시니어 컵[4] 우승에 견인했다. 2001년 2월 정식 프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발이 부러지는 등 부상에 시달렸으나 2002-03 시즌부터 2군팀 주전으로 출전했고 이후 1군으로 콜업되면서 챔스 조별 리그 바젤 전에서 베컴과 교체하면서 첫 성인경기 데뷔전을 가졌다.
'''03-04 시즌'''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 기회를 얻었으나 들쭉날쭉한 경기력과 잦은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많았다 그럼에도 시즌 35경기에 출전하면서 출장기회를 늘려갔고 밀월과의 FA 컵 결승전에도 선발 출장하여 3-0 승리에 견인했다.
'''04-05 시즌''' 21R 미들즈브로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넣었다. 총 성적은 시즌 30경기 3골. 호날두와 같이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 문제 때문에 언론으로 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알렉스 퍼거슨은 어린 선수들을 축으로 역동적인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무한 신임을 주었다.
'''05-06 시즌''' 총 41경기에 출전에 1골을 기록했는데 그 한 골이 생명연장 골. 11R 미들즈브로전에서 다크템플레쳐로 활동해 팬들과 로이 킨의 원성을 샀는데 바로 다음 라운드는 12R 첼시전에서 말도 안되는 헤딩 결승골을 기록하며 한동안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그리고 그 첼시전 승리는 첼시의 리그 40경기 무패 행을 끝내는 승리였다.
로이 킨이 키노게이트 사건이후 팀을 떠나고 알렉스 퍼거슨은 한동안 로이 킨의 후계자를 찾는다고 플레처, 앨런 스미스, 존 오셰이, 급기야 퍼디난드까지 전진배치 시켰지만 이렇다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앨런 스미스가 국가대표팀 콜업도 내팽겨치고 포지션적응 훈련을 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리세의 살인적인 슈팅으로 시즌 아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오셰이가 대신하게 되지만 미드필더진의 핵심인 스콜스마저 시즌아웃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중앙미드필더에서 뛰는 경기가 많아졌다. 다만 중후반기에는 긱스와 오셰이가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서 완전히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 했다.
'''06-07 시즌''' 40경기 출전해 3골을 득점했다. 하지만 선발로선 26경기, 리그에선 1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스콜스의 복귀, 캐릭의 영입으로 포지션 경쟁자가 과해졌다. 하지만 이전 시즌보다 안정적인 플레이로 스쿼드에 깊이를 더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8강 로마전에선 토티를 봉쇄하며 플레쳐의 클로킹이 풀렸다고 많은 맨유 팬들이 환호했다.
'''07-08 시즌'''에 안데르손과 오언 하그리브스, 마이클 캐릭과의 주전 경쟁으로 인해 선발출장이 줄어들어 클럽 내에서의 위기설이 나돈 적이 있었다. 훗날 플레처는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당시 맨유를 떠날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도 그런것이 시즌 22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리그 선발 출장은 5회에 그쳤다. 골은 FA 컵 아스날전에서 기록한 2골이 전부이다. 팀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끝내 출전하지 못했다.
'''08-09 시즌''' 하그리브스가 장기 부상으로 아웃되고, 안데르손은 기복이 심하며, 캐릭은 기동성이 떨어져 플레처의 선발 출장이 많아졌고 본인도 중미로서의 재능이 개화하여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FA 컵 4라운드에서의 아스날전에서 헤딩으로 두 골을 기록하는 등 다득점을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 골을 넣어주는 해결사 기질마저 가지고 있음을 어필하기도 했다. 시즌 42경기 4골을 기록했다.
아스날과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파브레가스에게 파울을 범하며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 챔스 결승에 뛰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중원에서 압도당하며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2-0으로 털린 맨유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최고의 박투박 미드필더 중 한명으로 거론 될 만큼 기량이 올랐기에 아쉬움은 배가 됐다. 그만큼 팀에서 중요한 위치에 섰음을 알 수 있는 대목. 인터 밀란 감독이었던 무리뉴감독 또한 플레처의 부재가 사비와 이니에스타에겐 희소식이라고 인터뷰를 했다.[5]
'''09-10 시즌''' 팀은 첼시에 밀려 리그 우승을 놓쳤지만 선수로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시즌이다. 그 중 백미는 6R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경기와 챔피언스 리그 8강 AC 밀란전.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선 미드필더 구역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고 세트피트 상황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 2골을 기록했다. AC 밀란전 같은 경우는 한국팬들에겐 박지성이 피를로를 지운 경기로만 알고있겠지만 플레처도 사이드 미드필더로 출전해 중원에 힘을 더하며 상대 풀백들과 호나우지뉴를 봉쇄하고 2차전에선 골까지 넣으며 언론에서 극찬을 받았다.
시즌 총 성적은 41경기 5골. 리그의 활약에 힘입어 PFA 올해의 팀으로 선정되었다.[6]
'''10-11 시즌''' 중반에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인하여 경기장에서 볼 수 없었는데 시즌 막판에 복귀 하였으나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인해 몸무게가 크게 줄어 경기 소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결장했다.
'''11-12 시즌''' 에는 주전으로 안데르손, 클레벌리와 호흡을 맞추며 출전했다. 하지만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6-1 대패의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인은 교체로 들어와 한 골을 기록했다. 맨시티와의 경기 이후에도 종종 경기에 나오다가 어느 순간 또 다시 보이질 않았는데...그 원인은 지난 시즌 막판 그를 괴롭혔던 바이러스성 장염. 게다가 그 바이러스성 장염이라는게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아주 괴랄한(...)질병이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 질병인데다가 놔두면 대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결국 플레처도 시즌 아웃이 확정되는 분위기라 맨유의 걱정은 더더욱 깊어졌다.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선수 생활이 어렵다는 뉴스기사가 떴다. 게다가 퍼거슨 감독 역시 플레쳐가 대장염을 이겨내더라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7]
'''12-13 시즌''' 챔스 25인 명단에 포함되고[8] 꾸준히 교체 명단에는 포함되고 있지만 , 리그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을 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캐피털 원 컵에서 뉴캐슬을 상대로 선발 출전한 적은 있다. 플레쳐의 기량이 예전만큼 회복된다면 맨유의 중원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수 있겠지만 과연 1년 가까이 쉰 그가 예전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
13R QPR과의 리그 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로 출전하여 웨인 루니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득점하여 팀의 3-1 승리의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올드 트래포드 은퇴 연설에서 플레처의 빠른 회복과 복귀를 기원했다.
'''13-14 시즌''' 16R 3-0으로 이긴 아스톤 빌라 전에서 라이언 긱스와 교체하여 많은 박수를 받으며 출전했는데 거의 1년 만의 경기였다. 이후 로테이션 멤버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 18경기 출전했다. 그런데 1년동안 축구도 못하고 회복에만 전념해온 선수가 클레버리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니 맨유팬들은 복장이 터질 수 밖에.
'''14-15 시즌''' 반할에 의해 부주장으로 임명되긴 했지만 프리 시즌에 비해 리그에선 아쉬운 폼을 보여주고있다. 플레처도 패싱이 좋은 선수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량이 제일 장점인 선수인데, 2년을 쉬다보니 체력이 너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기본적인 트래핑조차도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QPR전 에레라, 블린트가 돌아온 이후부터는 벤치 멤버. 웨스트 햄전에서는 간만에 교체로 출전해서 굳히기 카드로 활약하였다. 아무래도 궤양성 대장염의 여파로 오랫동안 쉬면서 체력이 떨어져서 전만큼의 왕성한 활동량을 못보여주고 탈압박, 패싱이 죽은것이 이유인지 부주장이지만 여전히 벤치워머 신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까지도 경기 종료 직전 굳히기 카드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그리고 한국시간 12월 20일 기준으로 캐릭에게 부주장 자리를 내줬다.
2.2.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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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마지막 날 웨스트 브롬으로 자유이적했다. 리그 15경기에 출전에 1골을 기록했고 팀은 리그 13위를 기록했다. 24R 번리와의 경기에선 주장 완장을 달고 선발 출전했지만 팀은 2-2로 비겼다.
'''15-16 시즌''' 리그 전 경기, 시즌 42경기를 출전하며 철강왕 인증을 했고 시즌 3골을 넣었고 미드필더 진영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은 리그 14위를 기록했다. 조니 에반스의 영입을 위해 매일 전화를 했다고 한다.
'''16-17 시즌''' 또한 리그 전 경기, 시즌 40경기 2골을 기록하며 인간 승리를 보여주었다. 팀은 전보다 4단계나 올라 리그 10위를 기록했다. 12R 번리와의 홈경기에선 축구 도사같은 플레이를 더해 득점을 하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어 14-15 시즌처럼 번리를 4대떡 관광을 보내버렸다. 24R 스토크 시티와의 홈 경기에선 리그 300번째 경기를 달성하며 알렉스 퍼거슨은 '환상적인 프로, 환상적인 인간'이라며 축하했다. 기동성은 전성기보단 당연히 떨어지지만 경기를 읽는 눈이라던지 패스는 여전히 유효해 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독인 토니 풀리스가 잉글랜드 정통 뻥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팀의 라인이 내려앉아도 플레처의 장점인 좌우로 크게 패스로 벌려줄 수 있는 선수가 전술상 필요하다. 플레처가 떠난 마당에선 가레스 배리가 대신할 듯 하다.
2.3. 스토크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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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자유계약으로 스토크 시티행을 확정지었다, 기븐이 은퇴하면서 24번을 물려받았다. 오피셜이 뜨고 마이클 캐릭 자선 경기에 얼굴을 비췄다.
2.3.1. 2017-18 시즌
나이는 속일수 없는지 패스 미스가 자주 나오나, 작년 웰런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워주고 있다. 웰런은 자주 뒤로 볼을 돌렸으나, 플레처는 반대로 발군의 전개 능력을 보여준다. 조우마-플레처-샤키리가 시즌 초반 스토크의 주 패스 줄기이다. 가끔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데 아직까지는 실적이 없다.
2R 아스날전에선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준 상태에서 내려 앉은 경기 양상이었다. 볼 전개는 상당히 불안했으나 중원에서 볼 탈취 능력이 돋보였다. 양팀 합쳐서 최다 태클 성공을 기록했다. 팀은 헤세의 골에 힘입어 1-0 승리.
3R 친정팀 WBA전에는 조 앨런과 호흡을 맞추며 발군의 패스 실력과 볼 포제션으로 상대팀을 점유율로 7:3으로 눌렀다. 조 앨런이 아기자기하게 짧은 패스로 볼을 전개시키는 스타일이라면 대런 플레처는 정확한 긴 패스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조 앨런은 한번의 다이렉트 패스 없이 경기를 마쳤고 플레처는 11번의 시도 중 10번을 성공하며 시즌 초반 주마와 같이 후방 빌드업을 책임지고 있다. 경기는 아쉽게 1-1 무승부.
마크 휴즈 감독체제에서는 주전 멤버로 고정되며 중용받았으나, 마크 휴즈 경질 후 선임된 폴 램버트 감독 체제에서는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37R 팀이 강등이 확정 되었다. 다음시즌에도 스토크 시티에 남을진 미지수였지만, 남게 되었다.
2.3.2. 2018-19 시즌
5월 2일,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면서 시즌 종료 후에 스토크 시티를 떠나게 되었다.
2.4. 현역 은퇴
팀을 구하지 못한 채 2019년 여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3년에 국대에 처음으로 선발되어,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최연소로 주장에 발탁된 적이 있었다.
나라가 나라인지라 명성에 비해 유명 대회에 나가질 못하는 중. 거기다가 더 안타까운건 스코틀랜드는 항상 진출할락말락 하다가 한 끗 차이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아예 가능성이 없으면 희망이라도 접지...
4. 지도자 경력
4.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9년 현역에서 은퇴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부터 이미 구단과 이야기가 오간 모양. 그러나 이야기가 오고가는 과정 중에 솔샤르가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팀 스태프가 재편되었고 이 과정에서 플레처의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결국 구단에서는 코치 대신 앰버서더를 제안했으나 플레처 본인은 지도자직을 원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2020년 10월 일단 맨유 16세 이하 유소년팀 코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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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런 플레처가 1군 코칭 스태프로 합류하게 됐음을 발표했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은 플레처의 코치 합류에 대해 “대런은 맨유의 DNA가 있는 사람이며, 맨유 선수가 되기 위해 어떤 것을 가져야 하는 지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위닝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헌신과 열정까지 겸비한 플레처는 우리 코치진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라며 반기는 말을 덧붙였다
5. 플레이 스타일
엄청난 활동량으로 경기장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살림꾼 역할을 도맡아 하였다. 플레처는 팀에게 꼭 필요한 유형이었는데, 개인의 퍼포먼스는 평범해 보이더라도 팀 전체적인 전력은 상승시켜주는 선수였다.
호날두, 나니처럼 온더볼이 좋은 드리블러들이나 루니, 반 페르시, 테베스, 사하같은 공격진, 스콜스, 캐릭같은 패스가 좋은 미들진과 공격력이 상당히 좋은 네빌, 에브라 등 좋은 자원이 많았던 맨유에서 이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던 선수였다.
플레처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의 원활한 공격전개를 방해하고, 투지있는 수비로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포백라인을 보호해주고 공격때도 박스에 침투하거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패스공간을 창출해주는 등 여러모로 팀에 보탬이 되어주는 플레이를 했었다.[9] 특히 시즌을 거듭하며 패싱력도 어느정도 갖췄었다.[10]
원래 측면자원이었던 플레쳐는 어느정도의 전진성, 킥력을 가지고 있었고 측면에서 볼을 잡으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기도 하였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9~2015)
- 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FA컵: 2003-04
- 풋볼 리그 컵: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03 ,2007, 2008,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7-08
- FIFA 클럽 월드컵: 2008
6.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2009-10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저브팀 올해의 선수: 2002-03
- 웨스트 브롬 위치 알비온 올해의 선수: 2015-16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 2010
7. 여담
- 2007년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들의 아빠이다.
- 한국내에서 세레모니 브레이커라는 별칭이 있다. 골을 넣은 선수에게로 제일 먼저 달려가 껴안아준다. 세레모니를 못할 정도로 꽉, 애정을 담아... 하여튼, 팀원에 대한 애정도가 높아 보여 보기 좋다. 추노가 유행할 당시 국내팬들에겐 플대길이라 불렸다. 박지성의 언급에 의하면 플레처가 세레모니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골 넣고 흥분한 상태여서인지 크게 신경 안 쓴 듯.
- 대한민국 축구 선수 구자철이 롤모델로 꼽았으며, "플레처의 플레이를 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항상 필요한 곳에 있어요. 시종일관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고, 지칠 줄 모르고 뛰는 체력과 팀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플레이 등이 최고인 것 같아요.” 라고 평했다. #
[1] 이 때 생긴 별명이 다크 템플레처(...)[2] 하그리브스와 안데르손도 있지만 하그리브스는 부상으로 경기장에서 안보인지 1년 6개월이 넘었고 안데르손은 기복 때문에 자주 출장하지 못했다.[3] 유소년 선수가 상위 레벨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4]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클럽 팀들간 대회. 맨유, 맨시, 볼튼, 버리, 올드햄, 스톡포드가 있다.[5] 링크[6] 이때 팀 동료로는 루니, 에브라가 선정되었고 플레처 파트너론 파브레가스가 뽑혔다.[7] http://www1.skysports.com/football/news/11095/7867333/Fergie-to-be-patient-with-Fletch[8] 기사[9] 박지성과 포지션은 다르지만 이러한 역할은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리오 퍼디난드는 '플레처에 맞먹는 체력 소유자는 박지성 정도일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10] 캐릭, 스콜스 등 패스 자체가 장점인 선수들이 파트너였는데 이들의 빌드업 부담을 덜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