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캐릭

 


'''마이클 캐릭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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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웨인 루니
(2014~2017)

'''마이클 캐릭
(2017~2018)
'''

안토니오 발렌시아
(2018~2019)

''' 마이클 캐릭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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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 이름 '''
'''마이클 캐릭'''
'''Michael Carrick'''
''' 출생 '''
1981년 7월 28일 (43세)
영국 잉글랜드 타인위어주 월센드
''' 국적 '''
영국 (잉글랜드 )
''' 신체 '''
189cm[1], 85kg[2]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3] / 은퇴)
축구코치
''' 소속 '''
<colbgcolor=#da020e> ''' 선수 '''
월젠드 보이즈 클럽 (1986~1997 /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97~1999 /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99~2004)
스윈던 타운 FC (1999 / 임대)
버밍엄 시티 FC (2000 / 임대)
토트넘 홋스퍼 FC (2004~200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6~2018)'''
''' 감독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8 / 플레잉코치)[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8~ / 코치)
''' 국가대표 '''
34경기 0골 (잉글랜드 / 2001~2015)
''' 링크 '''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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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
오른발
''' 번호 '''
16번 (클럽, 대표팀)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캐릭에 대한 말말말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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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잉글랜드)축구 선수 출신 코치. 2018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코치를 맡고 있다.
12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며 총 1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맨유의 레전드이다.[5] 현역 시절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 또는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유사시에는 센터백에도 기용 가능한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2. 클럽 경력



2.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북동부 타인웨어 태생의 마이클 캐릭은 일찍이 유년기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월센드 유소년 팀에서 뛸 때부터 여러 팀들로부터 오퍼를 받았는데 정작 캐릭 본인이 응원하던 고향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는 캐릭을 눈여겨보지 않고 있었다. 이때 캐릭을 지켜보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스카우트 데이브 무니와 빌 깁스의 설득으로 캐릭은 런던으로 향해 웨스트햄 유스에 입단하게 된다. 뉴캐슬이 캐릭을 놓친 것은 앨런 시어러의 유스 입단을 거부하고 나중에야 세계 최고액으로 사와야 했던 것에 못지않은 유스 정책의 대실패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웨스트햄에서 프로계약을 맺은 마이클 캐릭은 1999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에서 FA 유스컵 등을 들어올리는 등 성과를 세운다. 참고로 팀은 코번트리 시티를 상대로 9:0의 스코어로 승리한다. 자신 또한 그 경기에서 2골을 넣는다. 이 시즌에서 캐릭은 두번의 임대를 기록했다. 스윈던 타운 FC에서 몇 개월, 버밍엄 시티 FC에서 몇 개월을 임대 선수로 보냈다.
그렇지만 다음 시즌인 2000-01 시즌이 되어 포텐이 터져 풀시즌을 뛰며 크게 활약한다. 캐릭의 진가가 드디어 드러난 것. 이 시즌의 활약으로 당시 팀의 간판 영스타로 전 영국의 주목을 받던 조 콜 못지않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며,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그 시즌 수상자는 스티븐 제라드. 그렇지만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하고... 캐릭은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웨스트 햄은 그 시즌에 강등되었다. 캐릭은 팀에 남기를 결정하고 다음 시즌인 03-04 시즌까지 웨스트햄에서 뛰었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토트넘 홋스퍼 FC로부터 이적 제안이 들어온다. 당연히 캐릭은 수락했고, 다음 시즌부터는 토트넘에서 뛰게 되었다.

2.2. 토트넘 홋스퍼 FC


토트넘에서 뛰는 동안 마이클 캐릭은 팀에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이적 후 다음 시즌에는 새로 영입한 선수, 감독 등의 효과를 톡톡히 봤고 캐릭 또한 그 안에서 점점 명성을 쌓고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로 풀시즌을 소화하면서 토트넘 중원의 핵으로 자리잡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05-06 시즌 지역 라이벌 아스날을 벼랑 끝까지 내몰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할 수 있는 4위 자리를 놓고 시즌 마지막까지 경쟁했었던 것은 그 중심에 마이클 캐릭이 있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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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EPL에서 캐릭의 명성이 높아지자, 2006년 여름,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를 영입한다.[6][7] 입단 후, 캐릭은 로이 킨이 달았던 등번호인 16번을 달게된다.[8]
06-07 시즌 2R 찰튼 전에서 후반 77분 박지성과 교체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서 리그 데뷔전을 가졌으며 3R 왓포드 전에선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 올라 팀의 2:1 승리에 견인했다. 이후 23R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를 도왔다. 이적 당시만 하더라도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은 값을 지불한게 아니냐는 언론[9] 과 팬의 지탄도 있었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묻히게 되었고 시즌 성적은 52경기[10] 6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로이 킨의 후계자를 찾는다고 존 오셰이, 대런 플레처, 앨런 스미스 등을 중원에 기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발목 골절로 시즌 아웃, 플레처는 클로킹 모드로 다크 템플레처 소리를 듣고 있었고, 존 오셰이는 주전으로는 영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던 상황에서 합류한 캐릭은 로이 킨의 후계자로 평가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선수가 수행한 역할은 달랐기 때문에 로이 킨의 후계자란 말은 로이 킨의 전술적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캐릭의 새로운 전술적 역할 수행으로 로이 킨의 이탈에 따른 중원 공백을 메웠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해 보인다. 맨유가 우승레이스에 도전하기엔 중원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시즌 전부터 나왔지만 스콜스의 부상회복, 캐릭의 성공적인 퍼포먼스로 완전히 묻혔다.
이 시즌의 백미는 챔피언스 리그 2차전 로마와의 홈 경기였다. 1차전 1:2 패배로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경기였는데 중거리 슛으로만 2골을 넣어 팀의 선취골과 추가골[11]; 자신의 챔피언스 리그 데뷔골을 넣었고 팀의 7:1 승리를 견인했다. 당시 로마의 키퍼는 도니였는데 브라질 국가대표에도 콜업될 만큼 안정적인 기량을 뽐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경기 전 퍼거슨 감독은 도니가 골문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플레이한다는 걸 알고 선수들에게 많은 수의 직접적인 중거리 슛팅을 요구했고 이는 정확히 적중했다.
07-08 시즌 오언 하그리브스가 영입되자, 캐릭 스스로도 그가 이제 확실한 주전 선수은 아님을 시인하였다. 하지만 하그리브스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많이 뛰지 못했고 맨유의 중원에는 여전히 캐릭이 있었다.[12] 맨유가 리그와 챔스 더블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고, 캐릭은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로 도약하게 되었다.시즌 49경기 2골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첼시와의 커뮤니티 쉴드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승부차기 키커로 나가 두 번 다 성공하며 안정적인 킥력을 과시하였다. [13]. 2시즌 동안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캐릭은 맨유와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08-09 시즌은 플레쳐의 성장과 한때 스스로 부상과 부진에 빠져 자리를 위협받기도 했지만 그의 자리는 언제나 굳건했다. 시즌 성적은 43경기 4골. 24R 에버튼과의 경기에선 인생경기를 펼쳐 스카이 스포츠 평점 10점을 받았다. 아르테타를 완전히 봉쇄했고 전방으로 보내는 패스도 상당히 날카로웠으며 스스로 페널티킥도 만들어 팀의 1:0승리를 이끌었다. 그 다음 경기인 25R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서도 공수양면에서 수준급 플레이를 보여 퍼거슨 감독이 패스 뿐만 아니라 몸싸움 및 수비력도 뛰어난 선수라며 인터뷰를 했다.[14]
맨유는 13R 스토크 시티전 부터 3R[15] 풀럼전까지 14경기 연속 무패 무실점 기록을 이어나갔다. 이 기록에는 물론 반 데 사르와 퍼디난드, 비디치로 이루어진 최고의 수비라인의 공이 크지만, 이들의 앞에서 보호하던 캐릭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했고 훌륭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도 무색할 만큼 챔피언스 리그 결승 바르셀로나와 경기에서는 중원과 수비라인 말그대로 탈탈 털리며 0:2로 패배했다. 후에 인터뷰에서 '그 경기는 우리를 지나치는 것 같았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6]라고 했다.
09-10 시즌 시즌 총 44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2R 번리와 0:1로 패한 경기에선 페널티 킥을 실축해[17] 언론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고 맨체스터 이브닝지는 맨유의 내홍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악담을 했고 리버풀에선 알론소의 대체자로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분데스리가 챔피언 볼프스부르크과의 경기에서 안데르손과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중원을 장악했고 결승골까지 넣으며 팀의 2:1승리를 가져갔다.
12월부터 맨유 수비진이 부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15R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선 4:0으로 무실점 대승을 거두게 된다. 놀랍게도 캐릭 본인은 처음으로 중앙 수비로 출전한 경기라고 한다.[18] 이후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차전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선 퍼거슨의 역대급 선발라인업이 나오게되고 오웬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1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19]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밀리게 되면서 4강진출에 실패했는데 언론에선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터프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를 꼽았다. 하그리브스의 유리몸 기질때문에 캐릭의 파트너로 전투적인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과 캐릭이 좀 더 직접적인 수비를 가져가야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10-11 시즌에는 지난 시즌 부터 시작된 대런 플레처, 안데르손의 비상과 계속해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노장 폴 스콜스때문에 좀 처럼 선발기회를 잡지 못해 주전경쟁이 힘들다고 인터뷰를 했다.[20] 하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에도 맨유와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21] 시즌 성적은 44경기 0골.
'박지성은 어느 잉글랜드 선수와는 다르다. 맨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라고 인터뷰 해 한국 축구팬들에게 사랑을 듬뿍받았다. 예전부터 기사 인터뷰를 통해서 박지성을 자주 칭찬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22]
11-12 시즌에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이탈하자 캐릭은 중미로 내려간 루니와 파트너를 맞추기도 하고 잠시 센터백으로 뛰기도 했다.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 등이 전부 부상이었으니... 말 다했다.
12-13 시즌 사우스햄튼 FC와의 리그 3라운드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복귀했으며 맨유는 3-2 승리를 거둔다. 캐릭은 갈라타사라이와의 챔피언스 리그 32강 1차전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였다. 캐릭은 폴 스콜스대런 플레처 등의 파트너로 나서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쉬는 경기 없이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하여 팀의 간판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이 시즌에는 로빈 반 페르시와 더불어 사실상 팀을 이끌어 나가다시피 했고, 이런 활약상으로 맨유의 20번째 EPL 우승을 이뤄냈으며 시즌 베스트팀과 올해의 선수 후보 6인중에 반 페르시와 함께 포함됐었다.
감독이 바뀐 '''13-14 시즌'''에도 맨유의 답없는 중원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모예스의 무리한 기용으로 인한 폼 저하와 잦은 부상으로 지난 시즌만큼의 폼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그래도 팀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인지라 부상 이후 땡겨쓰기로 인한 조기 부상 복귀는 그의 몸상태를 최악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래도 맨유 선수 중 좋은 활약을 펼쳤고 팀은 7위에 그쳤으나 캐릭의 클래스는 그대로였다.

2.3.1. 14-15 시즌


14-15 시즌을 기대하게 했으나, 프리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발목 부상을 당해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에버튼전 전까지 결장했다. 그리고 리그 8라운드 WBA 원정에 복귀가 유력하다. 캐릭의 폼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WBA전 서브명단에는 포함됐으나, 팀 상황상[23] 투입은 안됐다. 9라운드 첼시전은 쉬었고, 10라운드 맨체스터 더비 때 스몰링이 멍청한 플레이로 퇴장 당하면서(...) 센터백으로 급하게 출전했다. 시티 원정은 팀이 워낙 털렸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홈경기에는 오랜만에 선발 출전해서 장기 부상당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아스날전에서는 주중 A매치에서 당한 부상으로 결장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다행히 선발로 출전했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선보이며 올 시즌 맨유의 '''첫 원정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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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헐시티전에서는 그 동안 삽푸던 반 페르시의 기억을 되살리는 멋진 롱패스를 선보였다.[24] 이 장면 이후 반 페르시가 귀신같이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 외에도 경기 내내 엄청난 볼배급 능력을 선보이며 역시 캐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맨유는 스토크 시티, 사우스햄튼, 리버풀을 차례로 잡아내며 6연승을 달렸는데 이 6연승에는 캐릭의 존재가 항상 있었다. 이후에도 팀의 중원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해주고 있었으나 1월 말에 부상으로 한달 동안 결장하다가 28라운드 뉴캐슬전에 교체로 부상 복귀를 했다.
부상 복귀 이후 첫 선발로 나온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 토트넘전에는 1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팀의 대승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리버풀 원정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여 맨유의 6연승 행진에 공헌했으나 맨시티전 막판 종아리 부상을 당해 교체되었고 그걸로 시즌 아웃되었다. 이후 맨유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으며 캐릭의 공백을 메워줄 역량있는 미드필더와 선수의 부족으로 선발 명단 짜기도 버거워져 까딱 잘못했으면 챔스 진출도 못할 뻔했다.
한국날짜 기준 2015년 3월 21일에 맨유와 1년 재계약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결국 한 시즌만에 챔스권 진입에 성공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챔스권 진입에 성공하면서 부활의 서막을 알리게됐다. 다만 캐릭은 나이로 인한 부상 장기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캐릭의 백업 영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25]

2.3.2. 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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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시즌 개막전인 토트넘전에서도 당연히 선발로 출전했다. 슈나이덜린과 짝을 이뤄 출전했는데 슈나이덜린이 포백보호를 하고 캐릭이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플레이했는데 명불허전 경기력을 보여주고 58분에 슈바인슈타이거와 교체됐다.
하지만 점점 팀이 페이스를 잃어가고 캐릭 본인도 지난 시즌만큼의 활약상에서는 떨어지면서 마침 지난 13-14 시즌을 보는 듯한 잦은 부상으로 인한 전력 이탈이 많아졌는데 난항에 빠진 맨유와 함께 오락가락한 폼이 되가고 있다. 그래도 경기에 출전할 때면 다른 미드필더들보다는 괜찮은 활약이지만 팀의 부진을 혼자서 커버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캐릭 본인이 팀이 지거나 비기고 있을때 경기의 흐름을 바꿀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위치의 선수가 아닌지라 게임 자체가 말려버릴땐 어찌할 방도가 없다. 차라리 공격수라면 몰라도 미드필더에서, 그것도 낮은 위치에서 포백 보호와 경기 조율을 담당하는 캐릭이 지는 경기를 뒤집기란 어렵고 비기는 경기를 우세하게 만들지언정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도 후반기에 많은 기용을 받아 괜찮은 활약을 했고 팀의 최고참 중 한명답게 무너져버릴뻔한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활약해주었다.
시즌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이전마냥 캐릭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팀에서 수준급의 무게감을 지녔다. 큰 기대를 모은 슈바인슈타이거는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고 펠라이니는 아예 다른 롤에 팬들의 신임도 잃은지 오래. 에레라는 기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캐릭과는 다른 롤을 담당한다. 그나마 슈나이덜린만이 캐릭을 대체할 수 있는데 사우스햄튼에서의 모습과 달리 전체적으로 폼이 오락가락했다. 캐릭도 그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였으나 좀 더 경험면에서 앞서기에 후반기에 훨씬 자주 기용되었다.
그리고 반 할 감독이 경질된 이후 재계약에 나선다는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맨유는 캐릭에게 1년 재계약을 제시했다. 무리뉴 감독 또한 부임 이후 캐릭에게 맨유에 남아줄 것을 권유했다. 6월 9일, 캐릭은 맨유와 1년 재계약에 사인하면서 2017년 여름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

2.3.3. 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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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시티와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하여, 무난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 이후 폴 포그바가 영입되고, 중원 조합이 포그바와 펠라이니로 고정되면서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35세의 많은 나이 때문에 무리뉴는 캐릭을 주전으로 쓰이기엔 무리라고 판단하여 팀내 비중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는데, 시즌 초반 이후로 이어진 경기들에서 매우 적은 플레이 시간을 기록하며 벤치 멤버로 전락하나 싶었으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EFL컵을 기점으로 점점 출전 시간이 늘어가더니, 다시 한번 맨유 부동의 주전 멤버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포그바-펠라이니의 더블 볼란치 라인은 상당히 수비적이고 중원에서의 볼 배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개인기량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데에 그치고 공격과 수비가 따로 노는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맨유의 공격력이 반감되고 답답한 경기력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원인이었다.
그래서 11월 아스날전 이후부터 팀의 중원 라인을 역삼각형의 3미들 체제로 확정시키면서 캐릭을 3선의 최후방 수비형 미드필더로 고정시켰는데, 유벤투스에서의 피를로처럼 포그바와 에레라의 뒤를 보면서 후방의 길목을 지키고,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경기를 조율하게 되었다. 이에 수비 부담이 덜해진 포그바의 공격력이 극대화되고, 에레라의 활동량과 압박이 매우 빛을 보면서 중원이 안정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폴 포그바의 완벽한 짝은 마이클 캐릭으로 굳혀진 상태이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맨유 입장에서는 캐릭의 대체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일 듯.
그러나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가 역시 문제였는지 1월 이후부터는 조금씩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리버풀전에서는 상대 압박에 고전하면서 패스 미스가 늘어났다. 또한 4-3-3으로 바꾼 이후에도 고질적인 득점력 저하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무리뉴는 다시 전술을 변형하여 포그바를 3선으로 내리고 에레라를 짝으로 하여 마타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는 2미들의 4-2-3-1로 바꿔버렸다. 시즌 초반과는 달리 에레라의 롤 변화가 정착되었고, 포그바도 수비적인 역할에 적응해가면서 다시 캐릭은 벤치로 내려가게 되었다.
사실 나이도 상당하고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하니 로테이션으로 쓰기에는 더없이 좋아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긴 하다. 언제까지 캐릭에 의존해야하는 전술로는 너무 위험하고 에레라와 포그바 같은 젊은 선수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캐릭같은 노장이 로테이션으로 뒤를 받추는 게 좋은 모습이다.
이후로는 서브에 머물면서 리그와 유로파리그 출전에 전념했고, 계약 만료가 되자 시즌을 마치고 맨유와 1년 재계약을 맺어 2018년까지 팀에 남게 되었다.

2.3.4. 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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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었던 웨인 루니가 친정팀 에버튼으로 복귀하면서 맨유 입단 11년만에 주장의 자리에 올랐다.
카라바오 컵 버튼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출전을 하였고, 래쉬포드의 선취점을 얻는데 큰 도움을 주는 활약으로 4:1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맨유에서 460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캐릭은 심장에 이상을 느껴 정밀 검진 끝에 부정맥 증상을 발견해 심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12월 말 까지도 회복 중으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무리뉴 감독이 마이클 캐릭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코칭스태프로 일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캐릭은 이번 시즌에는 선수로 뛰고 싶다고 밝혔고, 무리뉴 감독도 그가 선수로서 활약하는 것 역시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2018년 1월 5일, 마이클 캐릭이 다시 훈련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1월 20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고, 캐릭이 원한다면 코칭 스태프로도 합류가 가능하다고 무리뉴 감독이 밝혔다.
아스날에서 이적한 알렉시스 산체스의 맨유 데뷔 경기로 기대를 모았던, 2018년 01월 27일 예오빌과 맨유의 2017-18 잉글랜드 FA컵 4라운드(32강) 경기에서 2017년 9월 20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며 맨유의 FA컵 16강 진출에 힘을 보태며 건재함을 알렸다.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 뉴캐슬전에서 66분에 포그바와 교체되며 올시즌 첫 epl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팀은 공격진의 부진으로 득점에 계속 실패했고, 65분에 오히려 실점하며 1대0으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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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의 코치로 돌아온 캡틴'''
맨유의 공식 SNS는 "남은 시즌은 맨유의 주장이자 코치로서 활약할 예정이며 2018/2019시즌부터 조제 모리뉴 감독의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캐릭의 코치 데뷔를 알렸다.
3월 31일 영국 스완지 시티와의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코치로 데뷔했다.
2018년 5월 2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의 2017-18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12년을 활약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한 베테랑 캐릭을 위한 은퇴 헌정 영상이 공개되었다. 8분으로 구성된 이 영상에는 리오 퍼디난드, 웨인 루니, 폴 스콜스, 조니 에반스 등 맨유에서 함께 전성기를 보낸 동료들과 프랭크 램파드, 저메인 제나스, 스티븐 제라드, 저메인 데포 등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뛰었던 동료들도 등장해 마이클 캐릭의 앞으로 있을 코치 인생을 응원했다. 이 날 캐릭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5월 13일 프리미어리그 38라운드 왓포드와의 홈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선발출전하여 맨유와의 고별전을 치루었다. 후반 84분까지 중원에서 활약했으며, 자기 진영에서 완벽한 초장거리 패스로 래시포드의 골에 간접적으로 기여하였다. 교체될 때 OT의 모든 관객과 선수 그리고 코치진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경기는 마커스 래시포드의 결승골로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맨유 통산 464경기 23골 36도움'''
'''Thank You, Michael Carrick'''

3. 국가대표


2001년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인 인연은 토트넘 시절과 맨유로 이적하면서 점차 선발이 많아졌다. 메이저 대회는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유럽 선수권 대회는 출전하지 못했다.
예전부터 캐릭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와 별 인연이 없었는데 당장 동시대의 미드필더만 해도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라는 역대급 미드필더들이 있었고 캐릭 본인의 기량이 그 둘보다 뛰어나다고 하기도 어렵고 리버풀과 첼시의 주장인 두 선수의 스타성에도 못미치다보니 자연스레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되어도 저 둘의 교체로 출전하는 게 대부분이고 친선 경기에나 출전하는 게 전부일 정도... 대표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는데 2016년 현재 국가대표 A매치 출전이 34경기밖에 안되는 게 이 때문이다.[26]
잉글랜드의 난제인 제라드와 램파드를 모두 기용하기 위해 제라드를 측면으로 돌리거나 둘의 약점을 보완하는 3미들을 쓰는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스타일 미드필더인 캐릭보다는 투쟁적이고 피지컬이 좋은 가레스 배리, 스콧 파커가 더 중용받았다. 캐릭은 혼자 4백을 보호할 수 있는 선수라기보다 후방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해주는 딥라인 플레이메이커 에 가까운 선수인데다가 제라드와 램파드가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피지컬 좋고 투쟁적인 박스투박스형의 미드필더가 더 필요한게 사실이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의 2010년 월드컵에서는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고 이후 로이 호지슨 감독으로 바뀐 유로 2012의 경우 램파드와 배리가 부상으로 탈락했지만 이들의 대체자로 전혀 선택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캐릭은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되었다. 클럽에서는 만년 주전에 핵심이지만 국대에서는 그렇지 않기에 더이상 후보로만 뛰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캐릭 입장에서는 당시 영국 최고의 팀인 맨유의 닥주전인데다가 커리어도 훨씬 뛰어남은 물론이고 화려하지 않다는 점 외에는 주전 경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밀릴 이유가 없음에도 주전 기회를 못 받는게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27] 이후 모예스 체제에서의 부상 및 부진으로 2014년 월드컵 잉글랜드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도 탈락했다.
제라드와 램파드가 월드컵 이후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젊은 선수들로 개편되어 중앙의 무게감이 떨어진 잉글랜드는 베테랑인 캐릭을 다시 국가대표로 불러들였다. 캐릭은 잭 윌셔조던 헨더슨, 파비안 델프의 부족한 경험과 노련미를 리드하면서 팀에 차츰 안정감을 실어주었고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28][29]
하지만 본인의 메이저 대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유로 2016 잉글랜드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서는 결국 탈락했는데, 15-16 시즌 꾸준한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고, 부상과 기량의 노쇠화로 인해 선택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호지슨 감독 또한 캐릭 본인에게 명단 발표 전 미리 통보했다고 한다.

4. 지도자 경력



4.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image]
2017-18 시즌 말미부터 예고한 대로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차기 시즌부터는 루이 파리아 수석 코치가 팀을 떠나게 되어 외부 수혈 없이 내부 승격으로 무리뉴 사단을 재구성하게 되면서 무리뉴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18-19 시즌부터 본격적인 코치 생활을 시작 했다.
무리뉴가 경질되고 나서도 맨유에 남아서 20-21시즌이 진행중인 현재까지 솔샤르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활동량이 꽤 많은 편이며 적절한 예측력을 바탕으로 패스의 길목을 차단하는 수비력도 나쁘지 않은 편. 그 뿐 아니라 패스 정확도도 굉장히 높아서 패스가 실패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경기 조율 능력이나 방향 전환 패스, 전진패스는 리그에서 따라올 선수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상대 선수의 압박이나 신체적 접촉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해지는게 오랜 약점. 맨유 초창기 시절부터 이런 약점은 상대 팀의 타겟이기도 했다.[30]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탈압박 능력이 매우 좋아져 턴오버는 거의 볼 수 없다. 부스케츠처럼 간결한 페인팅이나 터치 한 번으로 압박을 벗겨내는 것이 일품.
토트넘 시절과 맨유 입단 후 초기에는 말년의 캐릭만 봤던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공격 가담도 많이 하는 박스투박스 스타일에 가까운 선수였다. 미드필더들이 으레 그러하듯 나이가 들면서 기동력이 떨어짐에 따라 점차 후방으로 이동해 말년에는 완전히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05/06 시즌 키노게이트 사건으로 로이 킨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났고, 폴 스콜스는 시력 저하로 인해 뛰기 힘들어지게 되자 맨유의 중원은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비어버린 중원을 메꾸기 위해 당시엔 아직 애송이였던 플레쳐나, 존 오셔같은 선수들을 기용하기도 하고 '''라이언 긱스'''와 앨런 스미스의 포지션을 변경해 보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 상황에서 영입된 캐릭은 적절한 볼배급을 통해 중원에 안정화를 가져왔다. 암흑기에 돌입하기 직전의 상황[31]이었던 맨유는 캐릭의 영입으로 중원을 안정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캐릭 영입의 가치는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스쿼드 안정화는 캐릭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었는데, 캐릭이 담당한 스쿼드의 밸런스 조정을 고려조차 하지않거나, 고려하더라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캐릭의 저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캐릭의 커리어 동안 퍼거슨의 맨유는 4-4-2를 기본 포맷으로 하고 백 4 위에 위치한 6명, 즉 투 톱 공격수와 양쪽 윙어, 그리고 중원의 미드필더 두 명 등 선수 6명의 구성 변화를 통해서 전술적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두 명의 공격수들은 물론이고 윙어들도 서로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지만 박지성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들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로 채워져있었다. 미드필더 중에서도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할만한 선수는 없었으며, 중원 파트너로 기용되었던 스콜스나 클레벌리, 안데르손은 빈말로도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기는 힘든 선수들이었다. 자연히 퍼거슨의 맨유는 늘 공격적인 색깔로 경기에 임했으며 수비적인 팀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32] 이렇게 팀의 무게중심이 전방에 위치해있는 와중에도 맨유는 실점이 많은 팀이 아니었다. 퍼디난드와 비디치로 대표되는 세계 최정상급 수비진의 공로가 당연히 컸지만 중원에서 상대의 흐름을 끊고 공간을 점유하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맞추는데 큰 기여를 한 캐릭의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캐릭이 맨유에서 4-4-2의 미드필더로 뛰고 있을 때 다른 강력한 팀들은 4-3-3의 3미들 구성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맨유의 중원은 당대에도 헐겁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으며, 맨유는 스콜스가 노쇠한 이후 중원을 보강해야한다는 얘기를 매 시즌 들어왔다. 실제로 리그에서 램파드-에시엔-마케렐레의 3미들을 구성했던 무리뉴의 첼시를 만나거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사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의 3미들을 구성했던 FC 바르셀로나와 만날 때에 중원에서 압도당해 경기를 내주는 경우도 발생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원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를 선수 개개인의 수준이 문제점이라고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캐릭이 위의 선수들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4-4-2가 4-3-3 포메이션을 상대할 때 중원이 밀리는 것은 인원 수 배치에 따라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단순히 캐릭이 문제라 중원이 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
피를로, 알론소 등 다른 레지스타와 비교할 때에도 그가 2미들 체제에서 뛰었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피를로는 밀란 시절에는 셰도르프, 가투소 등 수비능력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미드필더를 구성해서 수비 부담이 덜어진 상태에서 뛰는 경우가 많았으며, 알론소 역시 리버풀 시절에는 마스체라노, 레알 시절에는 케디라와 함께 뛰는 등 수비력이 뛰어난 미드필드 파트너가 있어 부담이 많이 덜어진 상태에서 본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반면 캐릭은 맨유에서의 커리어 내내 그의 미드필더 파트너로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선수가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그가 중원 파트너를 위해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아야 했다. 팀적으로 창조성이나 직접적으로 공격에 관여할 것을 요구받지 않았던 자리였기 때문에 임팩트 있는 모습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뿐 필요하다면 전방으로 한 번에 찔러주는 로빙 패스로 공격 작업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장면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후방에서 연결해주는 패스의 질이 매우 좋아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은 캐릭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입단 초기부터 말년까지 맨유 미드필더진의 핵심이었으며 캐릭이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는 경기력 자체가 확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치고 전진패스의 비율이 매우 높은 선수이다. 굉장히 공격적이면서 정확도 높은, 후방에서의 낮게 깔리는 전진패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수비수에게 백패스를 하기보다 공간이 나면 무조건 앞으로 패스를 해서 팀이 공격작업을 하는 데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패스를 많이 성공시켰다.
프티와 아르데타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선수라는 평가가 서술되어 있었다. 아마도 캐릭에게 프티처럼 원 볼란치를 맡아서 소화해 낼 정도의 수비능력은 없지만 4백을 보호하며 흐름을 끊는 능력이 있고, 3선에서 찔러주는 공간패스는 캐릭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점, 아르테타처럼 숏패스의 선택지나 포지셔닝에 있어서도 캐릭이 다른 잉글랜드 선수들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을 서술한 것 같다. 다만, 아르테타와 캐릭의 다른 점이 있다면 스패니쉬답게 숏 패스를 통한 빌드업에 있어서 아르테타가 살짝 우위를 가지고 있다면, 공격적인 로빙 스루 패스에 있어서는 캐릭이 꽤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이 둘의 플레이 스타일에 큰 차이는 없다. 실제로 12/13시즌 이 둘이 패스 부분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아르테타가 아주 근소하게 앞설뿐이지 대부분 동일하다.
정리하자면 뛰어난 클래스를 보유한 훌륭한 미드필더이며 어떤 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지만,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득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전술의 중심에 서는 등 임팩트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선수 중 최고라고 하기도 애매하다보니[33] 이룬 업적에 비해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2012-1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 2012-1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로상: 2018

7. 캐릭에 대한 말말말


'''캐릭의 플레이를 볼 때 마다 내 모습이 연상 된다.''' - 사비 알론소 #

'''캐릭은 유나이티드 밸런스를 잡아주고 수비적으로도 플레이 할 수있다. 그는 패스, 좋은 슈팅능력을 가지고 완벽한 선수이다.''' - 차비 에르난데스 #

'''그는 함께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수 많은 볼을 제공하고 수비 걱정 없이 공격할 수 있도록 힘을 실을 수 있는 선수다. 그는 언제나 적절한 자리를 지켰고 그 덕분에 내 플레이가 빛날 수 있었다. 그는 지금껏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의 가장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 폴 스콜스 #

'''캐릭은 멋진 트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재능이 가장 뛰어난 선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는 팀의 핵심 선수다.''' - 네마냐 비디치 #

'''마이클 캐릭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맨유는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 브라이언 롭슨 #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 - 저메인 데포 #

'''맨유의 안드레아 피를로.''' - 오언 하그리브스 #

'''캐릭에게는 육감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공이 어디로 갈지를 알고 있다. 패스의 범위도 넓고, 골을 넣는 능력 또한 충분하다.''' - 필 존스 #

'''캐릭은 훌륭한 축구 지능의 소유자다. 그는 너무 과소평가 받는다. 캐릭과 함께 경기를 하면 그가 팀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 - 마이클 오언 #

'''부스케츠의 수비력과 피를로, 스콜스의 경기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 등 두 스타일을 섞어 놓은 듯하다.''' - 게리 네빌 #

'''그는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캐릭은 샤비 알론소세르지오 부스케츠 수준의 선수다.''' - 펩 과르디올라 #

'''내 철학을 운동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선수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팀에 많은 경험을 불어넣을 수 있다.''' - 루이 판 할 #

'''캐릭의 실력과 커리어에 정말 존경을 표한다. 그를 영입하지 못한 것이 정말로 후회될 정도다. 캐릭은 항상 활약과 공헌에 비해 저평가 받는 것 같다.''' - 아르센 벵거 #

'''캐릭은 맨유의 숨은 공신이다. 그는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이 뛰어나며 수비라인 바로 앞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는 선수다. 이러한 역할은 팬들이 쉽게 알아주지 못하지만, 그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선수임이 틀림없다.''' - 알렉스 퍼거슨 #

'''캐릭은 그저 단순한 선수가 아니고, 경기를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다.''' - 주제 무리뉴 #


8. 여담


  • 인상이 날카로운 편이라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1] 맨발 신장 189cm, 마지막 사진 참고, Transfermarkt[2] 프로필 체중 74kg는 유소년 당시 키가 180cm였을때 체중이다. 맨유 홈페이지가 프로필 업데이트를 안하다보니 20년이넘게 유소넌 시절 프로필을 그대로 사용한것이다.[3]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4] 2017-18 시즌 스완지 시티와의 EPL 32라운드에 플레잉 코치로 데뷔, 이후 2017-18 시즌 최종전까지 팀의 주장과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다.[5] 박지성도 뛰었던 2000년대 중후반 퍼거슨 시절 맨유의 2차 전성기(06-07~12-13 시즌)를 이끈 선수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17-18 시즌) 맨유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다.[6] 참고로 현재까지 캐릭의 이적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언론들은 17m 파운드로 추정했으며 이는 팀 역사상 5번째로 높은 이적료이다. 영입 당시 이적 시장 자체가 A급 이상 선수를 지르는데 30m 유로 이상 지르면 엄청난 거금을 쓰는 거라는 평가를 받던 시대라 17m 파운드는 거품이 껴도 너무 낀거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300억 정도면 현재의 손흥민보다 훨씬 싼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당시는 지금에서부터 10년도 더 전인데다가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던 셰브첸코가 560억 정도였으니 300억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하는 미드필더를 사오기에는 비싼 편이기는 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조던 핸더슨을 거의 900~1000억에 사오는 수준.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이적료 17m 파운드로 10여년 동안 기용했으니 혜자딜이었다.[7] 2018년 출간된 캐릭의 자서전에서 캐릭의 이적료가 18m 파운드라고 본인에 의해 밝혀졌다.[8] 이것은 캐릭이 세계적인 미드필더가 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9] ‘가디언’은 캐릭의 효율성은 30%(3/10)로 예상'[10] 그중 선발로는 48경기를 출장했다.[11] 결승골은 앨런 스미스의 골[12] 다만 맨유의 중원은 사실상 다 로테이션이었기 때문에 캐릭이 전 경기에 출장하는 정도는 아니었다.[13] 사실 반 데 사르의 세이브와 존 테리의 실축에 묻힌 감이 있다.[14] 기사[15] 경기 연기로 인해 24R와 25R 사이에 치뤄진 경기이다.[16] "The game just seemed to pass us by and we were unable to do anything about it.''[17] 이후 페널티 킥은 루니가 담당하게 되었다.[18] 기사[19] 보기[20] 기사[21] 기사[22] 기사[23] 발리고 있어서(...) 공격수투입이 불가피했다.[24] 반 페르시가 월드컵 이후로 귀신같이 폼이 떨어졌다가 헐시티전 비슷한 상황에서의 헤딩 이후 골을 넣자 스페인전 헤딩 이후 기억을 잃었다가 헐시티전 헤딩 이후 기억이 돌아왔다는 드립이 통했다.[25] 에레라가 좋은 활약을 펼쳤긴해도, 캐릭의 롤과는 차이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26] 정작 램파드 제라드라는 미드필더진을 보유하고도 뻥글랜드라고 불린 영국은...[27] 두 팀의 주장이고 인기있는 두 선수지만 부상도 있고 애초에 서로 합이 잘 안맞는다면 캐릭, 스콜스, 배리, 파커 등 다양한 미드필더들을 기용해 조합을 찾아볼 법도 한데 계속해서 제라드와 램파드의 동시기용만을 고집했다.[28] 애초에 재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는 선수다. 다양한 조합을 꺼내보지도 않고 램파드와 제라드만 고집하면서 피해를 입은 선수다.[29] 스콜스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실력으로 놓고보면 제라드와 램파드에게 하등 밀릴게 없이 오히려 스램제라고 불리고, 램제보다 더 위라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대표에서 중용받지 못하자 일찍 은퇴했다. 안 통하면 다른 방법을 찾는것도 해결책인데도 불구하고 제라드와 램파드의 동시기용을 고집했으니...[30] 사실 이런 약점은 캐릭과 같은 수비형 볼배급 선수, 흔히 레지스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 부르는 일부 선수들의 약점이다. 피를로 또한 2선에서의 압박을 이기기 힘들어 3선 수비로 내려왔고 피를로에 대한 압박은 그의 부진을 이끌어내기 좋은 전략이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박지성이 전담마크 한 것이 그 예시이다. 이 방면에서 이름 날리는 알론소 역시 이러한 약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상대의 압박에 무너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31] 당시 맨유는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에 밀려 3년 동안 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우승 경쟁조차도 하지 못했다. 챔피언스 리그는 10여년 만에 조별리그에 탈락했으며, 팀의 레전드이자 주장이었던 로이 킨의 키노게이트가 터지고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 '''반 니스텔루이'''는 퍼거슨과의 불화로 떠나버리는 등 내, 외적으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32] 애초에 퍼거슨이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했기에 스쿼드를 이렇게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33] 피를로나 알론소와 비교하면 명확하다. 피를로는 커리어 내내 소속 팀에서 전술적인 에이스가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었고, 알론소는 팀의 에이스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 수 있지만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중원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퍼거슨의 맨유는 캐릭이 전술의 중심에 있는 팀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으며, 그가 선수진 구성상 대체 불가능한 선수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대표팀 활약상에서도 저들보다 떨어진다. 캐릭의 커리어 내내 잉글랜드 대표팀 중원의 핵심은 램파드와 제라드였다. 남은 미드필더 한 자리에는 그들을 보좌하는 역할로 수비에 좀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파이팅 넘치는 미드필더 스콧 파커, 가레스 배리가 주로 기용되었고, 캐릭은 대표팀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실바, 파브레가스 등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이 즐비했던 스페인 국가대표 미드필더진을 비집고 들어가 한 축을 차지한 알론소나 아예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중원의 핵으로 자리잡았던 피를로에 비해서 아쉬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