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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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아마르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를 뜻한다. 카다피는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하였다.
2. 역사
2.1. 초기
카다피는 1969년 이드리스 1세가 터키 순방을 나간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켜 부패한 왕정을 전복시키고 한순간에 트리폴리타니아에서부터 국민 영웅이 되어 리비아 아랍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카다피는 아랍 사회주의적 정책을 추진했고, 석유 회사들을 전부 국유화시켜 리비아를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또한 이집트, 시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5] 창립을 추진했으나, 약 5년간 간단한 연맹을 유지했음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아 1977년 통합은 무산되었다. 튀니지와 마그레브 국가들과도 연합을 추진했다.
2.2. 자마히리야
어쨌든 오일쇼크를 적극 활용해서 리비아는 세계적으로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던것도 있었기 때문에 1975년 녹색서를 출간하고 1977년에는 리비아에 자미히리야라는 새로운 체제가 선포되어 국가, 국기 등이 바뀌었다. 이는 민족주의, 이슬람주의, 아랍 사회주의 등의 내용이 있었다. 이후 리비아는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와 적대시 했으며, 이들에게 수 차례 테러를 감행했다. 또 친소련 정책을 추진했고,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알-자마히리야 TV를 통한 언론 프로파간다를 시작하였다.
1986년에는 차드와의 분쟁이 생겼다.(리비아-차드 분쟁) 이때 미국과 프랑스같은 국가의 공습을 받았다. 이후 카다피는 북한처럼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핵개발은 소련 해체와 걸프전 이후의 저유가로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리비아의 경제상황이 1990년대에 연 평균 두자릿수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해외로 내보내야할 정도의 침체를 겪었다. 이 시절에도 이웃나라인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는 물론이고 나머지 아프리카 전체보다는 나았지만 침체상태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고 90년대 말부터 리비아의 경제가 다시금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의 트리우마가 남아있어서인지 카다피도 현실주의 노선을 취하게 되었고 2003년에 핵무기 개발 포기선언을 했다. 이후로 리비아는 다시금 폭풍같은 경제성장을 하게끔 되었다. 그런데 2011년에 들어서 아랍의 봄의 물결이 리비아에도 불어닥치고 만다.
2.3. 붕괴
2011년 수도 트리폴리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2월 23일 카다피는 국민을 상대로 내전을 선포했다. 결국 제1차 리비아 내전 당시 NATO가 개입했고, 8월에는 수도 트리폴리가 반군에게 함락되어 시르테로 천도하였으며, 10월에는 시르테까지 합락되어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무너진다. 이후 국가과도위원회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NATO는 제2차 리비아 내전이 발발하여 결국에는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3. 국가로서의 영향
먼저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리비아의 치안을 안정시켰으며 과거 발전이 없던 리비아를 석유 국유화로 크게 발전시켰다. 그래서 리비아가 제3세계 테크를 타 다같이 매우 가난해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