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rowcolor=#ffffff>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DAE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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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561ab><colcolor=#ffffff> 영문명칭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DAESHIN
한문명칭
大韓예수敎長老會(大神)
약칭
예장대신
설립연도
1961년
소속국가
[image] 대한민국
총회장
이상재 목사
표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게 하라 (에베소서 4:3)
위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흥안대로 415, 502호 (평촌동)


1. 개요
2. 특징
3. 역사
4. 교육기관
5. 파생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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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1년에 김치선 목사가 설립한 교단이다. 명칭의 유래는 대한신학(大韓神學)의 줄임말인 대신(大神)이다. 김치선 목사의 대한신학교가 안양대학교로 발전하였다.
2000년대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측과 통합한다는 떡밥이 계속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통합에 찬성하는 대신 측 목사들이 백석으로 건너가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예장대신 소속 목사에게 문의해보니 정치로 비유하면 바른미래당자유한국당의 통합처럼 잡음이 심했다고 한다.
사실 70년대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와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돌기도 했다. 그러나 신학적 포지션이 비슷할 뿐, 학풍과 특징이 판이하기 때문에 통합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1]

2. 특징


대신 총회의 교회선언 참조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수호측
  • 성서무오설[2]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성경을 대단히 중시하는 정통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한다.
  • 장로회의 일원 중 하나이니 장로 정치 체제를 취한다.
  • 기존의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분립 과정[3]과 상관없이 김치선 목사가 창설한 자생 교단이다.
  • 고신에 버금갈 정도로 신학의 보수성이 강하다. 그러나 고신, 합신에 비해 율법적인 보수성은 떨어지는 편이다.[4] 설립과정에서 반WCC 교회연합체인 ICCC의 영향을 받았기에 합동보다도 보수성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 김치선 목사가 별세하면서 1968년 ICCC에서 탈퇴하였다. 하지만 ICCC가 교단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ICCC는 복음주의에 동의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종파들의 교회연합체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아닌 보수 기독교 종파가 다수 소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장대신은 에큐메니컬 진영은 아니지만 ICCC의 영향으로 비개신교 종파와의 신학적 대화가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 교단 이름이 대한신학교에서 나왔듯이 예장대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애국적인 교회이다. 목사들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정치적 관점이 다르지만 대체로 김치선 목사의 영향을 받아서 사회참여적이면서 애국적인 목사가 많다. 그리고 김치선 목사가 김구와 친했기에 보수를 지지하는 목사가 많다. 교단 차원에서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지만 어차피 갑종소득세율로 납부한다. 사실 교단 차원에서도 현재 입장은 모호한 편이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종교인 과세 대신 갑종근로소득세율(일반적인 소득세)로 결의했으나 백석에서 종교인과세에 동의한 채로 복귀한 교회가 과반수를 넘기기 때문에 오히려 전반적으로 종교인 과세를 동의하는 교회가 많다.

3. 역사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군사정부의 박정희김치선 목사가 설립한 남산대한신학교 땅을 강탈해 그 자리에 KBS TV 방송국, 중앙정보부 건물을 지었다. 학교 부지를 강탈당한 김치선 목사는 난감해 하다가 반WCC 성향 단체인 ICCC(국제기독교연합)의 칼 맥킨타이어 총재를 만나 한국에서 성경장로회를 창립한다는 조건으로 용산구에서 신학교 건물을 매입했다. 그렇게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의 전신인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가 창설되었다.
그후 김치선 목사는 외국에서 선교비를 더는 받지 않고 자력으로 대한신학교 중흥의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돈’으로 대한신학교 건물을 세우려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은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 의해 ‘한국인의 힘’으로 설립된 자생 교단이다.
1969년 6월 17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성장)으로 이름을 변경했고 1972년 4월 6~7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1년 집계에 따르면 노회 43개, 교회 2,200개, 목사 2,500명, 성도 300,000명, 대학 3개가 있었다.
2006년 경부터 예장 백석과 통합한다는 떡밥이 계속 투척되었으나 결국 이는 큰 반발을 불렀고 예장 대신이 예장 대신(통합측)[5], 예장 대신(수호측)[6], 예장 대신석수[7]로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2017년 6월 16일 제50회 총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2015가합104232)에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은 "대신 총회 교단이 해산과 타 교단의 통합을 진행하려면 교회 수의를 거친 후 회원 교회 3/4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기에 통합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따라 합병한 교단은 '대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백석 측에 가입한 대신(통합) 측 교회들은 모두 예장 백석대신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예장 백석대신은 구 백석계와 구 대신계의 갈등으로 예장백석으로 환원하였으며 크게 힘을 잃은 대신(통합)측은 예장 대신으로 복귀하거나 예장백석에 융합하고있다. 통합을 주도했던 전광훈 목사는 백석에 소속되어 있다가 이단 옹호 등의 행위로 면직 처분을 당하였으며, 이에 불복하여 대신복원 교단을 세웠다.

4. 교육기관


대신대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에 소속된 학교다. 비슷한 명칭으로 인해 헷갈리지 말자.

5. 파생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석수)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개혁)[8]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복원)[9]

[1] 3개 교단 모두 보수주의 신학이라서 서로 비슷해보이지만 합동은 보수적인 성경해석을, 합신은 목사의 품위를, 대신은 목사의 사회참여를 특히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2]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 크게 가깝다. 유기적 영감설을 지지하며 단순하게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3] 고신과 기장과 통합과 합동과 합신을 비롯한 굵직한 교단들이 신사참배와 성서비평학과 WCC 문제 등으로 서로 떨어져 나온 과정[4] 낙태,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그 외에 다른 율법적인 것들은 상식적인 수준까지 허용한다는 뜻. 다만 목사의 책임은 다른 보수 교단과 비슷한 편이다.[5] 예장백석과 결합을 지지한 교회들.[6] 예장 백석과의 통합 절차가 예장 대신의 교단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통합 절차에 불응하고 기존 대신 교단 잔류를 선택한 교회들.[7] 예장 백석과의 통합 이전에 안양 소재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중심으로 분립하여 나간 교단.[8] 1980년대 대한신학교의 안양 이전 당시 대신 총회장이었던 김세창 목사가 학교를 김영실 장로에게 넘기는 데 반발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교회들과 독립해 나가 세운 군소 교단. 전국에 여러 개의 대한신학교를 세웠으나 현재는 대구와 포항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9] 전광훈이 기존 교단으로부터 제명당한 후 새로 세운 곳이며 그가 담임으로 있는 사랑제일교회가 이쪽의 대표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