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서울)
1. 소개
남산공원 소개
서울특별시에 있는 산.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있다. 높이는 해발 262 m. 남산의 한자표기는 南山. 그 뜻은 앞산을 뜻하는 것으로 유래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앞에 남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다.[1]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木覓山)''', 인경산(引慶山)이 있다. 아무튼 남산은 옛 한성부의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남산에 올라가 보면 송신타워인 남산서울타워(舊 서울타워)가 있으며 팔각정, 남산 봉화대 등 몇몇 볼거리가 있다. 그 외엔 그다지 볼 것도 없고 뭐. 일단 정상에 올라가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건 맞는다. 그러나 서울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서울타워에서 보는 광경과 남산 봉화대에서 보는 광경 둘 다 다르다(봉화대에선 경복궁과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야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매일 오후 3시부터 사물놀이, 무예시범 등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공연이 열린다. 개화시기에는 야외식물원 또는 산책로를 따라 꽃구경하기에도 좋은 곳인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엄연히 산이지만 험한 코스가 없고 야간에는 가로등이 곳곳에서 밝혀주기에 24시간 아무런 제재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뉴스(특히 YTN)에서 서울의 대기상태를 보여줄 때 단골로 선정되는 장소다. 산 위의 탑 같은 게 보이면 십중팔구 여기라고 보면 된다. 서울의 중심이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쉽게 눈에 띄는 데다가, 여기서 주변을 찍어도 시가지의 모습이 잘 담기기 때문. 또한, 추석, 설날, 대보름 등 명절에도 방송국에서 심심찮게 다녀간다. [2]
서울 토박이는 남산이 대한민국에서 서울에만 있는 걸로 아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언급된 대로 남산이란 한자 지명이 '남쪽의 산'이라는 흔한 뜻이기 때문에 남산으로 불리는 산은 한둘이 아니다. 서울 밖의 유명한 남산으로는 경주의 남산이 있다.
N서울타워 인근을 제외한 공원 전체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3] 에는 중부공원녹지사업소(02-3783-5900)로 연락하자.
2. 역사
역사가 굉장히 파란만장한 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재위 4년(1395년) 음력 12월 29일 백악을 진국백(鎭國伯)으로,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일반인이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태조실록 태조 4년 12월 29일 기사 왕의 등 뒤에 있는 북악산은 백작으로 대우한 반면 왕이 남면(南面)하는 남산은 왕과 동격으로 대우했다.
원래 남산의 북면 일대는 조선시대 때 도성을 수비하는 군대가 무예를 닦던 '무예장'[4] 이 있던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이 예장 터에 성을 지어 '왜성대(倭城臺)' 또는 '왜장대(倭將臺)'라고 불렸다. 구한말 시기부터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왜성대 일대에 통감부 건물[5] 과 통감 관저(구 주한일본공사관)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거주지를 이루어 살았다.
왜성대에 사는 일본인들은 광무 2년(1898) 오늘날 리라아트고 자리에 경성신사(京城神社)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남산대신궁'이라는 오만불손한 명칭이었으나 191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경성신사'라고 개칭했다. 1929년에는 경성신사가 서쪽으로 약간 이전해서 숭의여대 터에 자리를 잡았다.
경성신사는 조선신궁 창건 이전까지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 신사들을 대표하는 역할도 하였다. 경성신사의 동쪽 근처, 오늘날 사회복지시설 남산원 근처에는 노기 마레스케를 모시는 조그만 신사도 세웠는데, 경성신사의 부속시설로 취급받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현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분수대 위치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장난이 아니게 컸다. 이 탓에 남산의 자연은 큰 훼손을 당하고 만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곳'의 대표가 바로 이곳이다. 심지어 남산 꼭대기에 소재했던 국사당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제사를 뜻하는 사(祀)자를 스승 사(師) 자로 바꿔 무학대사 사당으로 축소한 채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신궁은 없어졌지만 훼손당한 산의 공터를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남산 식물원, 백범공원 등 시설이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일본을 극복한단 뜻으로 조선신궁 터에 국회의사당을 세우려고 했으나 1960년 4.19 혁명으로 백지화되었다. 조선신궁과 그 터의 변천에 대해서는 조선신궁 항목 참조.
1961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었다. 이후 남산 외인아파트[6] , 숭의초/숭의여중/숭의여고/숭의여대[7] , 남산아파트,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거의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갔고, 이에 따라 경관 파괴라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갖추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1995년 안기부 이전과 1996년 안기부 별관건물 철거, 그리고 필동에 있었던 수도방위사령부를 이전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등 남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3. 남산에 가는 방법
- 걸어가는 방법: 남산 코스를 이용하면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남산의 계단 코스는 필히 가볼 것. TV에서 많이 나왔다. 무한도전 등 많은 대중매체에 소개되었던 장소이다. 심지어 일본 예능인 성우여행사에 어서오세요를 통해 일본 성우 노지마 켄지와 히로하시 료가 그걸 체험했다. [8]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을 지나 올라가는 계단길[9] 이 가장 붐비지만, 그 외에도 북측계단길[10] 과 남측계단길[11] 도 가볼만 하다.
- 버스 이용: 노란색 순환버스인 서울 02, 04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남산정상으로 향하는 보행로 입구(대표적으로 백범공원, 남산도서관, 국립극장, 하얏트호텔)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버스는 국립극장 방향에서만 일방통행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다른 지점에서 버스를 타려다 못찾고 문의하는 외국인이 가끔 있는 편. 소월로 인근에서 방향을 못 잡겠거든 어떻게든 남산도서관 앞 정류장으로 가서 02번 버스를 타면 노선을 거의 한바퀴 돌아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면 편의점이 있는 정류장에서 정차하며 여기서 5분 정도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야 정상에 도달한다. 현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남산에 올라가는 방법 중 가장 오래되고 정석인 루트이다. 특히, 02번 자체가 남산 노선을 10년 넘게 유지중이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다. [12] 이외에도 402번, 405번을 타고 남산도서관에서, 420번을 타고 국립극장에서 02번과 04번으로 환승할 수도 있으니 참고요망.
- 지하철+버스 이용: 충무로역이 가깝다고 알려져 있으나[13] 그 외에 명동역이나 동대입구역, 회현역 정도. 서울역에서도 힐튼호텔 뒤편으로 가면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회현역에서도 남대문시장을 지나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심하면 신당역, 청구역, 약수역까지 간다. 내린 후 위 버스 부분의 순환버스 02번, 04번을 타면 된다. 보통 동대입구역 앞 순환버스 전용 정류소에서 02번, 04번을 타거나, 충무로역에서 02번을 타는 경우가 정석이다.
- 케이블카 이용: 남산 케이블카는 엄청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름 명물 중에 명물로써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타볼 만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 참고로 명동역 4번출구나 회현역 1번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남산3호터널 근처에는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남산오르미가 있다.
- 자전거 이용: 서울에 사는 자덕들이라면 반드시 올라간다. 1.9km의 짧은 코스로 경사도도 평균 6.6%, 가장 경사진 곳이 10% 가량이니 초보자 연습용으로 추천. 다만 서울시 측은 자전거 이용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무수한 민원과 사고 때문에 자전거 이용자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 주된 민원 사유는 자전거의 인도 침범과 역주행, 과속. 인도 침범은 남산 좁은 도로에서 관광버스를 보면 비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쳐도 일방통행 구간에서 잠시 돌아가는게 귀찮다고 역주행(남산 전망대→국립극장 방향)을 하다가, 과속은 내리막(전망대→남산도서관 방향)에서 제한속도(시속 20km/h) 이상으로 다니다가 패인 곳이나 물이 고인 곳, 요상한 과속방지턱[14] 때문에 버스/보행자와 사고가 잦았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여름에 남산 내리막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환자가 발생하자 서울시 측에서 한동안 자전거 통행을 일절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자전거 단체들의 계속된 요청에 2014년 3월 1일부로 자전거 통행이 재개됐다. 단, 자전거 이용 등반 시 회현역 방향이 아닌 충무로, 동대입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방통행이기 때문. 내려올 때는 회현역 방향으로 내려 오면 된다.
- 자가용 이용: 안된다. 남산은 2005년 5월 1일 부터 환경보호 명목으로 일반 개인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오직 관광버스와 업무용 차량[15] 만 통과 가능. 2012년까지는 외국인에 한해 택시차량이 통과 가능했으나 바가지가 성행하여 금지되었다. 그래서 이젠 얄짤없다. 예외로 국가유공자와 장애인의 경우 중증 장애인이면 가능하다. 경증 장애인은 불가. 동대입구에서 가는 길은 국립극장 주차장이 공사로 인해 폐쇄되었기 때문에 꼭 차량을 끌고 와야 한다면 용산동2가 행정복지센터, 남산도서관, 남산케이블카, 남산야외식물원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자.
4. 남산의 명소
4.1. 남산서울타워
남산 최대의 명소이자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로.
4.2. 맹세의 열쇠철망
남산에 올라가고도 솔로 내지 마법사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풍경인 바로 커플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의미를 담아 철망에 매단 '''자물쇠가 빽빽히 박혀있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냐면 더이상 자물쇠를 끼워둘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게다가 주요 방문자들도 주로 가족이거나 연인들이다.(...) 그나마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행이지만 솔로로 가면 답답 그 자체인 곳이다. 또한 잘 보면 가려져서 잘 안보이지만 몇년~10년전 자물쇠는 녹슬어서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녹슬어가는 자물쇠 위에 계속해서 쌓여가자 케이블카 근처에 2차 분지가 생겼다.
어느 정도 공간이 차면 자물쇠를 싹 잘라 폐기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건 와전된 것이고, 실제로는 서울시가 주기적으로 자물쇠를 수거하고 있다. 주말 저녁 등에 단 한 번이라도 가본 위키러라면 알겠지만 남산에 몰려들어 자물쇠를 거는 인원수는 하루에도 수천명 단위여서 당연히 주기적으로 수거하지 않았으면 이미 10년 전, 드라마로 인기를 끈 이후 몇 달 정도만에 자물쇠를 달 공간따윈 전혀 없었을 것이다.
4.3. 남산도서관
남산도서관은 원래 '경성부립도서관' 을 옮겨온 것으로 상당히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건물 자체도 1964년에 완공했으니 이쯤 되면 등록문화재 수준. 남산공원이 근처에 있다. 많은 이용객이 이용하고 있다.
4.4.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남산도서관 뒤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다. 해당 항목으로.
4.5.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백범공원 방면 남산공원 산책로 입구 직전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온다. 남산자락에서 N서울타워 빼고는 이만한 높이의 건물이 없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눈에 띈다. 1970년에 세워진 건물로 원래는 어린이회관이었지만 건물 안팎의 여러 사정에 의해 어린이회관으로 실제 활용된 역사는 5년이 채 못된다. 이후 소공동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이 이곳으로 와서 자리잡았다가 1988년에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사들여 1989년부터 서울특별시과학교육원이 입주했으나 1999년에 과학교육원이 신문로에 있던 교육연구원에 합쳐져 통합 청사가 되었다.
4.6.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교육연구정보원 맞은 편. 과거 남산분수대가 있던 자리였는데 발굴작업으로 폐쇄되어 있다가 야외전시관으로 2020년 11월 개장했다.
4.7. 주한독일문화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독일문화원(괴테인스티투트)의 서울 지부이자, 주한독일문화원의 하위 분원들을 총괄하는 본원이다.[16] 독일어를 공부하거나 독일 관련 자료를 찾고자 할 때 유용하다. 남산도서관과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4.8. 남산과학관
정확한 명칭은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 남산분관'''이지만 흔히 남산과학관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남산공원 근처에 있는 과학교육 체험 전시관으로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보연구원 건물의 일부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각종 과학 체험 시설들이 있으며, 지하1층에는 플라네타리움이 있다. 과학 체험 시설은 대체로 낡은 편이지만 그래도 쓸만하며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기초적인 과학 원리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입장료는 무료.
사실 이 건물은 원래 서울 어린이회관으로 1970년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회관'''으로 개관돼 한동안 어린이회관으로 쓰여졌다. 그러다 어린이회관의 공간이 너무 좁다는 의견이 많아 어린이회관의 운영 주체인 육영재단이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새 회관을 지어서 이사를 갔고 그 자리에 국립중앙도서관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1988년 국립중앙도서관이 현재의 서초동 부지로 이사를 간 이후부터 시교육청의 교육정보연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4.9. 구 통감관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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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 공사관으로 세워져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통감 관저로 바뀌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맺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한일합방 이후 통감 관저는 총독관저로 바뀌다가 1939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새 총독관저가 생기자 남산 총독관저는 일제의 통치를 자랑하고자 시정(일제 통치) 30주년을 맞이해 '시정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1940년 11월 22일에 나온 매일신보에서도 이 건물을 설명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옛 통감관저 건물에는 국립중앙박물관(당시 국립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당시 국립민족박물관)이 들어섰으나, 한국전쟁 이후 국립박물관이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 1954년에 덕수궁 석조전 건물로 옮길 때까지 1년 6개월가량을 사용했고, 이후 연합참모본부가 들어섰다가 1960년 전후로 헐렸다고 추측된다.2층에는 17점의 사군자폭(四君子幅)이 걸려 있다. 이것을 보아가던 기자는 우뚝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는 방 안에 나섰다. 이 방은 합병조인실(合倂調印室). 이 방이 바로 30년 전 일한합병의 도장을 찍던 그 한순간을 가졌던 방인 것이다. 오늘의 조선을 낳아놓던 역사적 산실(産室)이요, 이 강산 백의인에게 새길을 밝혀준 봉화대(烽火臺)도 되었던 것이다. 여섯 칸 남짓한 방 안에 거울을 좌우로 이토공(伊藤公)으로부터 미나미 총독에 이르기까지 8대 통감 총독들의 흉상이 놓여 있고 중앙의 테블- 그 위에는 벼룻집과 ‘잉크 스탠드’가 있고 좌우로 네 개의 의자와 한 개의 소파가 놓여 있다. ‘자, 이것으로서 완전히 우리는 한 형제요 한 임군을 섬기며 나아갈 길을 연 것이요’ 하며 ‘허허허…’ 하고 소리를 높여 웃는 옛 어른들의 환영이 눈앞에 움직이는 것 같다.
이것이 구 통감관저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정부는 시내 중구 예장동에 있는 ‘연합참모본부 건물’을 개수 내지 증축해서 국무총리 관저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동 건물은 신관과 구관으로 되어 있는바 한일합병조약 체결 당시 합병조인을 하였던 구관은 건물이 낡았기 때문에 허물어 버리고 신관만을 개수 또는 증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960년 9월 22일 동아일보 기사)
당초 정부는 1960년에 통감관저를 국무총리 관저로 쓰려고 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터져 중앙정보부가 생긴 이후 이 일대는 완전히 막히게 되었고, 구 통감관저 건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혔다.
근현대문화재 전문가 이순우가 각종 자료를 뒤지며 3년간 추적하고 고증한 끝에 2006년에야 거의 망각에 빠진 통감관저 터를 찾아냈다. 게다가 통감관저 앞에 잔디밭에 묻힌 하야시 곤스케 동상 받침대 판석 3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상’(男爵林權助君像)이라는 명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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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관저 앞에 있던 하야시 곤스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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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 파묻힌 하야시 곤스케 동상 표지석.
통감관저 터 발견 이후 2006년 이순우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경술국치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고자 노력했지만, 서울시와 중구청의 비협조로 중단되었다가 2010년에야 표지석이 세워졌다. 2016년 8월 29일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터를 건립했다.
4.10. 구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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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 있었다. 세기문화사라는 위장명칭으로도 불렸으나 '남산'이 당시 정보기관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였으며,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시대가 있었다.[17] 이로 인해 은어로 '남산에 간다'란 말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을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두 발로 걸어나올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18] 이후 국가안전기획부가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중정-안기부 건물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구 안기부장 공관은 '문학의 집 서울'로, 안기부 체육관은 '남산창작센터'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안기부의 면회소 역할을 한 주자파출소는 현재 철거되었다.
남산 르네상스 사업으로 철거하고 공원화할 계획이라는데...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쓰자는 의견이 좀 나오는 편이다.
참고로 유스호스텔은 중정-안기부 본관이고 그 외에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와 TBS 교통방송 사옥, 서울시청 별관, 대한적십자사 사옥도 중정-안기부 건물이었다.
과거 안기부가 남산에 있던 시절의 건물들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 등지의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함.)
- 서울유스호스텔 - 구 안기부 본관[19]
- 안기부 제1별관(대공/도청/감청담당) - 1996년 폭파 철거.
- tbs 교통방송 사옥 - 구 안기부 수사담당 건물. 2016년 철거.
- 서울종합방재센터 - 구 안기부 제6별관(일명 '안기부 지하벙커'). 조사실/유치장으로 사용함.
-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 구 안기부 제6국(학원사찰 담당. 2016년 철거).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이 고문을 당했던 곳이다.
- 서울소방방재본부 - 구 안기부 행정담당 건물.
- 서울특별시청 남산별관 - 구 안기부 제5별관(수사 담당. 철거 검토 중). 시설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24시간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고...
- 산림문학관 - 구 안기부 경호원 숙소.
- 문학의 집 서울 - 구 안기부장 공관.
- 남산창작센터 - 구 안기부 체육관.
- 대한적십자사 사옥 - 구 안기부 행정/감청담당 건물.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 서울중부경찰서 주자파출소 - 사실상 안기부의 면회실 노릇을 했던 곳. 현재 철거.
- 서울중부경찰서 - 안기부가 담당한 시국사건, 공안사건의 용의자들을 잡아두던 곳이다. 중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시국사건 용의자들이 안기부로 이송되었다.
- 세종호텔, 아스트리아호텔 - 안기부 요원들이 주로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던 곳이다.
- 중앙정보부 주변 모텔들 - 안기부 요원들이 주로 비밀수사를 했을 곳으로 추정된다.
4.11. 석호정
국궁장이다. 위치는 국립극장방면 입구에서 우측 둘레길로 10분 정도. 공원 외부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인지도는 낮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서울사람이라도 일년에 한두번 케이블카 또는 버스타고 타고 N서울타워 올라가는 정도니..
2018년 9월에는 인근에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 조성되어 석호정에서 마치고 발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4.12. 백범공원
백범 김구선생의 호를 따서 명명한 넓고 한적한 공원. 백범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에 걸맞게 김구 선생의 동상을 비롯해[20] 김유신 장군 동상과[21]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다. 근처에서 이만한 공원을 찾기도 힘든데, 위치가 애매한지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대개 한산하다. 공원 내에 옛 서울성벽이 남아있는게 특징. 힐튼호텔 방향이나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찍기도 좋다. 작정하고 걷는다면 N서울타워에서 산책로를 따라 걷고, 백범공원을 지나 언덕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서울로7017을 통해 서울역까지 도보여행을 할 수 수 있다.
4.13. 와룡묘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 '남산도 식후경(구 목멱산방)'(코로나19로 2020년에 폐업하였다.)에서 5~10 분 정도 산책로를 더 들어가면 나온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도록 지어져서 그런지 한겨울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주로 폐쇄되어 있다.
4.14. 용암 배드민턴장
소월로에 위치. 야외식물원에서 남산도서관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가끔 차를 몰고 와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4.15. 야외식물원
공원관리인들이 연못이나 각종 식물들을 잘 가꿔서 산책하기 좋다. 남산공원 내에서 가을단풍을 즐기기에도 가장 좋은 곳. 정상부근을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놀러오는 장소. 하얏트호텔이 바로 앞이라 그런지 강아지 산책이나 운동 나온 외국인들도 자주 보이는 편. 운이 나쁘다면 외국인들로 구성된 운동 모임을 마주칠 수 있는데 거의 PT체조 수준으로 소리질러가며 뛰어다닌다. 파티장 같은 요란한 음악소리는 덤.
과거엔 이 자리에 외인아파트 2동이 서 있었다. 1994년 11월 김영삼 정권은 이 외인아파트를 폭파하여 철거했으며, 거주민들에겐 목동에 아파트를 지어 이주하도록 했다.
4.16. 유아숲 체험장
어린이들을 위해 이것저것 체험할 수 있게 꾸며놓은 체험장. 야외식물원을 지나다 보면 나온다.
4.17. 고유 소나무림 탐방로
야외식물원 방면 등산로에서 인접한 곳에 위치한 짧은 코스. 일광욕을 위한 썬베드도 비치되어 있다.
4.18. 소나무힐링숲
2017년 6월부터 개방된 곳으로 북측구역에 위치해있다. 사전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한적하게 걸어갈 수 있는 소나무길이며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을 조성해 놓았다.
4.19. 게이트볼장
해방촌 오거리(버스정류장으로 말하자면 '보성여중고')에서 올라가면 나온다. 별다른 시설이랄 만한 게 없고 아주 간혹가다가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을 치는 편이라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보다는 이곳을 지나 둘레길[22] 이 시작되기 때문에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여름 저녁에는 에어로빅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4.20. 전망대
N서울타워 부근을 제외하면 높은 위치[23] 의 전망대가 두군데 있다. 하나는 '남산공원 중간 전망대'라고도 불리우며, 버스를 타고 왔던 도로를 10~20분 정도 거슬러 내려가면 나온다. 이곳에서는 용산구 일대, 한강 건너편과 N서울타워가 보인다. 의자가 있고, 조용하고 시야가 넓어 천천히 느긋하게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뉴스에서 서울의 대기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방송사에서 단골로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말한 도로를 3분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체육시설이 보이는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로 가면 등산코스의 전망대답게 생긴 곳이 나온다.[24] N서울타워 인근을 제외하면 전망대 중 가장 높은 위치다. 아래로 목멱산 성벽도 보이고, 멀리로는 서울의 북쪽을 조망할 수 있다.
북서쪽에서 N서울타워로 접근하는 계단길 중간에는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전망대도 있다.
4.21. 남산산악회, 남산체육회
위에서 언급된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지역 중 가장 으슥한 곳에 있다. 남산체육회에서는 간단한 운동기구들을 이용 가능하다. 외지인들은 거의 안찾는 곳이었지만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방영되기도 하였다.
4.22. 삼순이계단
남산공원 북쪽 둘레의 길인 소파로 서쪽 부분에 있는 계단으로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정보원(옛 어린이회관)의 옆에 있다. 소파로와 남산 자락을 이어주던 그저 평범한 돌계단이었지만 지난 2005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 계단이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5.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남산에 서식 중인 소나무들을 보자면 애국가 2절에 나오듯 철갑을 두른 듯 튼실해보이는 모양새가 아니다. 철갑을 두른 소나무는 진송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볼 수 없다.
원래 남산에 있던 진송(토종소나무)들은 구한말 땔감용으로 벌목되었고 일제강점기 초기인 1920년 즈음부터 일본인들이 아카시아 나무(당시 일본인들은 아까시나무라고 불렀다)들을 대신 심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경을 위한 산갈나무도 아카시아 나무와 같이 투입되는 바람에 진송은 사실상 멸종하고 말았다. 이 아카시아 나무와 산갈나무도 1990년 즈음부턴 외국에서 들어온 재선충으로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
다만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이 서울의 남산인지 아니면 항목 처음에 나오는 그냥 동네 앞산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작사가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작사가의 의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요새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CG로 수난(?)을 많이 겪는다고. 즉, 소나무 재선충의 북상장면을 보여주면서 빨갛게 변한 남산을 보여준다던지, 21세기 중후반의 서울의 평균기온이 크게 올라 남산에 소나무 대신 야자수나 종려나무로 덮여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국선녀벌레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였다.
6. 남산왕돈까스
1977년부터 남산케이블카 근처에 왕돈까스 집이 생겼으며, 프랜차이즈돈까스로 현재 9개가 운영되고 있다. 분식집에서 파는 여느 돈까스의 원형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남산돈까스 문서로.
7. 기타
각종 새들과 다람쥐, 청설모, 개구리, 도롱뇽, 고양이, 족제비, 뱀[25] 등이 서식하며 야생에서는 보기 힘든 호저가 가끔 목격되기도 한다. 야외식물원에는 호저 발견시 신고해달라는 현수막이 한때 붙어있기도 했다.
남산공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산서울타워와 그 주변을 보러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버스나 케이블카로 정상근처까지 가기 때문에 나머지 지역에서는 주말이나 특별한 날(설날, 추석, 연말연시)이 아닌 이상 크게 붐비지 않는다. 서울의 다른 산들처럼 줄지어 오르는 모습 같은 건 거의 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자전거 행렬이 자주 눈에 띈다. 다만, 명절 때에는 걸어오르내리는 관광객이 급증하며, 버스나 케이블카도 초만원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단풍이 아주 늦다. 11월 중순부터 1~2주 정도가 절정기.
군데군데 자그마한 체육시설이 있다.
산림공원임에도 겨울을 제외하면 직원들이 꽃을 가꾸는 모습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그리고, 산책로나 생태환경 조성을 위한 공사가 2017년에도 몇 건 있었다.
옛 한양성벽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 몇군데 있는데 야간에는 조명을 비춰 은은한 분위기가 있다.
약수터가 몇군데 있는데 음용부적합인 곳도 있고, 많이 이용하는 편은 아니다.[26]
국립극장 방면에서 시작하여 산 정상에 있는 정류장을 지나 남산도서관 방향으로 소월로에 진입하는 도로가 일방통행으로 깔려있으며 제한속도는 20km/h. 물론 걸어서 오르는 사람을 위한 보행로도 같이 있다. 일반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므로 버스, 허가차량, 자전거 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남산도서관 방면 내리막길에는 사고예방을 위해 속도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버스는 대부분 서행운전을 하며 제한속도를 넘기지 않지만,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들은...
2017년 초까지만 해도 정상에는 중국 단체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줄을 섰지만 사드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겪고 나서부터는 일시적으로 방문객이 눈에 뜨게 줄기도 했다. 2020년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방문자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2020년에는 길고양이를 위한 집이 곳곳에 설치되어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주로 북측순환로 인근에서 자주 보인다.
2020년 12월에 남산을 오르는 02번, 04번 버스가 모두 전기버스로 교체되었다.
[1] 물론 사대문 주변 10리도 성저십리라 하여 한성부 소속이었지만 당시엔 임야와 논밭지대였다.[2] 아나운서 뒤로 정자 같은 게 보이면 남산 팔각정일 확률이 높다.[3] 주로 공원을 훼손하거나 불편을 주는 행위 발견시[4] '예장골'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되었다.[5] 1926년부터 총독부가 경복궁에 신축되면서 과학관으로 쓰였다.[6] 쉽게 말하면 외국인 거주자 전용 아파트이다.[7] 이중 숭의여중과 숭의여고는 2003년에 동작구 대방동으로 이전하였다.[8] 다른 팀이었던 모리타 마사카즈와 카네다 토모코는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하게 올라갔다.[9] 백범광장 건너편의 일명 '삼순이 계단'에서부터 시작. 서울성벽을 따라 올라가며 서울타워광장까지 이어짐.[10] 국립극장 상단 장충체육회 인근에서 시작. 서울타워 버스종점까지 이어짐. 주로 등산복장을 한 중장년층이 많이 지나간다.[11] 소월로 해방촌 건너편에서 시작하며 중턱까지 이어짐. 조용한 숲길에 계단이 길게 이어져 분위기 있는 사진찍기에 좋다.[12] 이로 인하여 남산행 버스 전체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버스요금표와 남산 정류소의 기타 안내문을 북부운수가 별도로 제작하여 붙였다.[13] 대한극장 옆길인 필동로를 통해 올라가면 된다.[14] 과속방지턱을 네모 돌큐빅을 쌓아 만들었다.[15] 공무원, 경찰, 소방, 군용차, 입점업체 등등.[16] 주한독일문화원은 서울 본원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분원이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17] 이와 비슷한 용례로는 여러 창작물들에서 CIA를 뜻하는 은어로 CIA본부가 위치한 '랭글리'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18] 같은 말로는 "서빙고 호텔", "빙고 호텔" 에 간다는 말도 쓰였는데 악명 높던 보안사(지금의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서빙고 대공분실을 뜻하는 말이다. 국민들이 남산, 서빙고, 남영동이라는 서울의 세 지명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시절이 있었다.[19] 고문으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밤에 건물 내부가 으스스하고 괜히 오싹하다는 경험담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그 유명한 안기부 본관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학생들임에도 밤에 혼자있기 괜히 무섭다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20] 김구 주석의 서거 20주기이자 임시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은 1969년 세워졌다. 당시 대만 총통이었던 장제스가 보낸 문구도 새겨져 있다.[21] 원래 이 동상은 세종대로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태평로에 있던 선열 동상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김유신 장군 동상을 이 곳에 옮기게 됐다. 현재 장충동 남산2호터널 입구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도 원래 세종대로에 있었는데 김유신 장군 동상의 바로 뒤에 있었다고 전해진다.[22] 경사길은 거의 없지만 남산에서 드물게 등산하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구간이다. 가볍게 N서울타워 가려다가 길을 잘못들은 사람들은 이 길로 갔다가 개고생을 하기도 한다.[23] 산책로를 따라 더 내려가면 전망대가 몇군데 더 있긴 한데 고도는 많이 낮다.[24] 국립극장 방향에서도 계단길로 올라올 수 있는데, 약 650계단 정도 되며 이후에도 N서울타워 방향으로 언덕길이 제법 이어지기 때문에 평소에 운동을 전혀 안하는 사람은 제법 힘들 수 있다. 경치를 감상하고 있으면 아래에서 헉헉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25] 뱀 주의 안내문이 곳곳에 있지만 뱀의 출현빈도는 상당히 낮다. 특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거의 출몰하지 않는다.[26] 후암약수터, 용암천약수터, 수복천약수터, 남산약수터, 필동약수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