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1. 제원
2. 개발
3. 활동
4. 최후
5. 동형함 목록
6. 관련 문서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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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선행함
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
후계함
마켄젠급 순양전함
배수량
26,600t(기준)
31,200t(만재)
전장
210.4m
전폭
29m
흘수선
9.20m
보일러
석탄보일러 14기, 증유보일러 8기
터빈
marine-type 터빈 2기
출력
62,000마력(46,336 kw)
속도
26.5 노트
항속거리
14노트로 5,600해리
3번함 힌덴부르크: 14노트로 6,100해리
승무원
1,112명
주포
12인치(30.5 cm) SK L/50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부포
15 cm SK L/45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8.8 cm SK L/45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어뢰
1번함 데르플링거: 50cm 수중발사관 4기 (총 4문)
2번함 뤼초, 3번함 힌덴부르크: 60cm 수중발사관 4기 (총 4문)
장갑
측면장갑: 100~300mm
포탑정면: 270mm
장갑함교: 300mm
갑판장갑: 최대 80mm

2.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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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fflinger-Klasse Großer Kreuzer ''''
1912년,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이 2차 모로코 위기를 근거로 독일 제국 의회에게 해군 증축을 위한 추가지원금을 요청했고 4차 함대법이 통과되었다. 함대법으로 독일은 3척의 드레드노트전함과 2척의 경순양함, 15,000명의 수병과 장교를 증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인해 건조된 3척의 드레드노트전함이 바로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이다. 데어플링어급은 이전 순양전함과 다르게 30,5cm포를 장착했는데, 티르피츠제독은 기존 주포로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해군부가 독일 군함의 주력 함포가 11인치급(28cm)으로 유지할 경우 영국의 신형 전함의 12인치(305mm)에 달하는 장갑을 관통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12인치급으로 강화해 설계되었고 건조기법을 바꾸어서 배수량을 줄였다. 또한 기함으로 사용될 것을 고려하여 어뢰방어벽을 설치했다. 설계가 완료되고 독일의 빌헬름 2세영국 해군과의 수적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2~3년안에 완공 될 것을 요청했다. 1912년, 준공되기 시작했으며(3번함 힌덴부르크는 기존설계를 소폭 변형해서 1913년에 준공되기 시작했다.) 1914년부터 취역했다. 함급의 이름은 30년 전쟁당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의 장군인 게오르크 폰 데어플링어(Georg von Derfflinger: 1606~1695)에서 따왔다.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은 독일이 드레드노트 전함을 건조하며 쌓인 노하우를 잘 적용해서 기존 독일이 보유하고 있는 순양전함과 다르게 앙 애슐론(en echelon) 방식이 아닌 모든 포탑이 선체 중앙에 배치되었으며, 적층식 구조를 적용했다. 비록 화력이 영국 순양전함에 비해 열세이지만, 튼튼한 장갑과 적절한 장갑배치의 조합으로 영국 순양전함과 비교해서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1]

3.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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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에서 활약하는 뤼초를 그린 그림
데어플링어(Derfflinger)는 주력 순양전함으로 제 1 정찰함대에 속해 다른 순양전함 폰 데어 탄, 몰트케, 자이들리츠와 장갑순양함 블뤼허[2] 함께 활동해서 영국 서부 해안가를 포격했고 이 활동을 하는 독일 해군을 추격한 영국해군과 조우한 도거 뱅크 해전에서 영국 순양전함 HMS 라이온에게 대파당해 수리하게 되었다. 이후 뤼초(Lützow)가 함대에 들어오게 된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해안가 포격을 시도하며 영국 해군을 도발했고 1916년, 프란츠 폰 히퍼 제독이 뤼초우를 기함으로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의 비티제독의 순양전함 함대와 교전해서 적 기함 HMS 라이온을 뤼초가 대파시키고 HMS 퀸 메리를 자이들리츠와 데르플링거가 공동으로 폭침시키고 2시간 뒤 뤼초가 HMS 인빈시블을 굉침시켜 전공을 세웠다.[3] 이때 영국 순양전함전대와의 신호미스로 뒤쳐졌던 제5전함전대의 고속전함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이 전투에 합류하였고 이들과의 교전에서 데어플링어는 3발, 반쯤 만신창이가 뤼초는 4발을 맞았다. 이미 뤼초는 24번의 유효타를 맞아서 함체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결국 귀항중 기함 뤼초는 피해가 너무 커서 아군 구축함의 뇌격으로 자침하고 데어플링어는 물이 가득 찬 채로 겨우 항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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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이후 항구에 귀환한 데어플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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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플링어의 피해 규모를 보는 독일 수병

4. 최후


이후 3번함 힌덴부르크(Hindenburg)가 취역했지만 더이상 독일 해군은 활동을 하지 않고 그대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다.[4] 전후 영국이 독일 주력함을 스캐퍼 플로(Scapa Flow)로 이동시키자 독일해군의 로이터 제독이 자침명령을 내렸고 데어플링어와 힌덴부르크가 자이들리츠의 뒤를 따라 자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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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침하는 데어플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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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침해서 연돌만 보이는 힌덴부르크

5. 동형함 목록


1번함 데어플링어(Derfflinger)
취역: 1914년 9월 1일
최후: 1919년 6월 21일 자침
2번함 뤼초(Lützow)[5]
취역: 1915년 8월 8일
최후: 1916년 6월 1일 유틀란트 해전이후 자침
3번함 힌덴부르크(Hindenburg)[6]
취역: 1917년 5월 10일
최후 : 1919년 6월 21일 자침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은 독일 순양전함 설계의 최종역으로 이후 설계한 순양전함의 기본이 되었다. 실제 12인치급 이상의 화력을 내기 위해 3번함 힌덴부르크의 설계를 기반으로 14인치급인 35cm SK L/45 연장포로 교체하고 최고속도를 28노트까지 끌어올린 마켄젠급 순양전함과 15인치급인 38cm SK L/45 연장포로 교체한 에르자츠 요르크급 순양전함이 존재한다. 마켄젠급은 1915년에 건조되기 시작해서 1917년 진수식까지 했으나 종전까지 완공되지 못하고 독일의 패전으로 1922년 스크랩된다. 마켄젠급의 건조 소식에 영국해군이 대항마로 건조한 것이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이고 잘 알다시피 종전으로 한척만 완성된 것이 그 유명한 HMS 후드이다. 에르자츠 요르크급은 1916년 건조 시작했지만 마찬가지로 종전으로 중단되고 스크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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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켄젠급의 대략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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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성되었지만 종전 이후 스크랩을 기다리는 마켄젠급 3번함 프린츠 아이텔 프리드리히와 바이에른급 전함 4번함 뷔르템베르크.

6. 관련 문서



[1] 영국의 경우 앙 애슐론 방식의 폐지와 적층식 구조의 도입은 독일보다 빨랐지만 중앙부 포탑의 영향은 HMS 타이거까지 남아 있었고 이는 리나운급 순양전함,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에 가서야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HMS 타이거에서 상부구조물 사에이 있던 포탑은 더 뒤로 이동했지만 해당 포탑의 명칭은 여전히 중앙 포탑을 가리키는 Q 포탑이었고 Y 포탑과 거리도 상당히 멀리 있었다. 실제로 어드미럴급과 타이거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실하게 보인다. 리나운급은 포탑이 3개 밖에 없어서 애매하지만 리나운급의 기반인 리벤지급 전함의 A, B, X, Y 포탑에서 X 포탑을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2] 원래 순양전함 괴벤이 있어야하나 오스만 제국으로 경순양함 브레슬라우와 함께 인도되어서 장갑순양함이 대신 들어왔다.[3] 이와중에 데어플링어는 피해가 적었는데 전투가 혼전이었고 정확한 명령을 전달하기 어려운 탓에 각 함에게 목표를 제대로 지정하지 못해서 데어플링어가 공격당하지 않은 것이다.[4] 계획대로면 35cm주포를 장착한 마켄젠급 순양전함이 정찰함대에 배속될 계획이었다.[5] 이 함의 이름은 나폴레옹 전쟁시기의 프로이센의 장군인 루트비히 아돌프 빌헬름 프라이헤어 폰 뤼초(Ludwig Adolf Wilhelm von Lützow: 1782~1834)에서 따왔다. 참고로 이 이름은 나중에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에 각각 이어진다.[6] 이 함의 이름은 무려 아직 살아있었던 독일 제국의 명장인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Ludwig Hans Anton von Beneckendorff und von Hindenburg)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