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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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의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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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비스마르크에게 격침당하지 않았을 경우 예정되었던 1942년의 개장공사[1] 가 시행된 것을 가상한 이미지.
2번째 이미지 출처?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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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종: 순양전함
- 전장: 262.3m
- 전폭: 31.8m
- 흘수선: 9.8m
- 만재 배수량: 47,430톤
- 기관출력: 144,000 마력(=107,00Kw)
- 추진체계: 브라운-커티스 4축 기어 증기 터빈/예로우 수냉식 보일러 24기
- 최고속도: 31노트(1920년)>28노트(1941년)
- 항속거리: 20노트(=시속 37Km)의 속력으로 5,332해리(=9,870Km)
- 승무원: 1,433명(1920)>1,325명(1941)
- 전투체계: 279형 대공 레이더/284형 사격통제 레이더
- 무장
- 특수장비: 1931~1932년까지 함미 캐터펄트 1기
2. 개요
'''HMS Hood (51)'''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초기까지 영국 해군이 운용했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의 초도함이자 유일하게 건조된 함선으로, 해군의 휴일 기간 동안 '''무적의 후드'''(The Mighty Hood)라고 불리며 영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군함이었다. 조약의 한계를 넘는 괴물이 분명함에도 특별히 예외로 인정된 군함이기도 하다.[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마켄젠급 순양전함[3] 에 대항하기 위하여 계획 및 건조된 신예함으로, 1859년 진수된 전열함 HMS Hood와 1891년 진수된 프리드레드노트(전노급)인 로열 소버린급 HMS Hood와 마찬가지로 새뮤얼 후드 제독의 이름을 따서 '후드'로 명명되었다. 이 함명의 휘장은 닻을 쥐고 있는 까마귀.
1916년 4월 7일에 계약이 체결되어 그해 9월 1일부터 건조되었고, 1918년 8월 22일에 진수, 1920년 5월 15일에 취역했다.[4] 후드는 건조중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받아들여서 설계되었고, 이 때문에 전투함교나 측면장갑에 약 300mm 두께의 장갑판을 둘렀다. 사실상 순양전함이라기보다는 고속전함에 가까운 함이지만 아무래도 건조중에 설계를 변경한 탓에 여전히 실제 방어구조는 순양전함의 방어구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특히 갑판 장갑판의 두께는 19mm ~ 76mm에 불과했고, 영국 해군도 이 점을 보완하고자 개량을 서둘렀으나 하필이면 그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방어력은 개선되지 못했고, 결국 머피의 법칙의 예시가 되었다. 하지만 탄약고 윗부분 메인덱은 이미 2인치(51mm)에서 3인치(76mm)로 강화된 상태였고, 1919년 7월의 제안되었으나 실행되지 않은 추가 강화안에서도 주요 방호부위보다 훨씬 얇은 5~6인치 정도로만 제시되기 때문에... 이 개장이 진행되었더라도 비스마르크에게 당한 최후를 바꾸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5]
원래 후드는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으로서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받아들인 신예 순양전함 자매의 일원으로 리나운이나 커리지어스[6] 를 대체했어야... 했는데 그놈의 유보트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후속함 계획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군축 조약으로 순양전함이 6척이나 갈려나가면서, 남은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과 리펄스까지 달랑 셋 중에서 영국의 최신예, 최강, 최후의 순양전함이 되었다.
그러나 후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일본의 야마토급 전함이 건조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7] 16인치 주포를 탑재한 전함보다 화력에선 약해도 전반적인 성능에서 이들을 능가하는 함으로 평가받으며 영국 해군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은 22노트도 안나오는 저속함이고, 넬슨급은 워싱턴 조약의 제약을 받아 속도와 성능에 문제가 많았으며,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도 26노트여서 후드보다 5노트가 느리다. 그 어떤 군함보다도 빠르고 충분히 강력한 15인치 주포를 지니며, 방어력도 여타 전함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라면[8] 그 가치는 충분한 셈이었다.
취역 직후부터 영국 해군 대서양 함대의 기함을 맡아 여러번 출동했으나,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이 군축으로 전함 보유를 제한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최후의 순양전함으로 남게 되었다.
3. 특징
후드의 특징 중 하나라면 폭에 비해서 매우 긴 함체라고 할 수 있다. 야마토급 전함과 비교해도 길이면에서 몇 미터 차이가 안나는데, 이는 두말할 것없이 속도를 위한 것으로, 고출력 증기기관과 보일러를 일렬로 배열하고 수중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샤프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방어력은 좀 소홀해졌는데, 직사 포격을 대비한다면 평균 300mm의 장갑판은 괜찮아보이지만 갑판장갑은 최고 두께가 76mm다.
주포인 BL Mk.I 42구경장 15인치 함포는 360도 선회가 가능한 포탑에 장착되며, 포탑당 할당된 120발의 870Kg짜리 포탄을 최대 27.6K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다.
부무장으로는 당시 영국 해군이 널리 쓰던 5.5인치 포로서, 포탑 하나당 200발이 할당되었다. 37Kg짜리 포탄을 약 16K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지만, 1940년의 개장공사에서 모두 철거되고 Mk.V와 함께 Mk.XVI(16)4인치 대공포로 교체된다. 이 포는 부앙각을 -10도에서 80도까지 잡을 수 있었고, 16Kg짜리 포탄을 초당 810m로 12,000m까지 쏘아올릴 수 있었으나, 유효사거리는 짧은 편이었다.
그밖에도 폼폼 포나 신형 어뢰 추가 등, 전간기의 개수로 무장을 증설하였다. 하지만 다른 영국의 구형전함과는 달리 단 1척만 존재하며, 영국의 어떤 군함도 후드가 부재중에 해당 역할을 떠맡을 수가 없어서[9]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전함처럼 동력부를 교환하는 등 대개수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나중에는 기관부의 노후화로 인해 후드의 최고속력은 31노트에서 28노트로 떨어졌다. 심지어 이것도 겨우 되살린거지 최대로 떨어졌을때는 무려 25~6노트까지 떨어졌었다. 그리고 대개수 상태가 되어야만 방어력을 제대로 조정하도록 함체 구조를 바꿀 것인데, 그럴 수가 없으니 방어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4. 실전과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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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함께 비스마르크를 공격한 후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이 쏜 8인치 탄을 맞아서 작은 화재가 발생하면서 비스마르크에게 절호의 사격목표가 되었다. 이로 인해 곧 관측탑에 직격을 받았고, 그 직후 비스마르크의 포탄이 후드의 선회 기동시 드러난 흘수선 밑의 취약지점[10] 을 뚫고 들어가 탄약고에 명중하며 유폭[11][12] , 후드는 순식간에 단 3명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폭침당한다. 원래는 생존자가 더 살아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저체온증으로 대부분 죽고[13] 살아남은 3명의 생존자들도 침몰한지 2시간뒤에 구축함 일렉트라에 의해 구조되었다.[14]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비스마르크에게 공격당하느라 생존자를 구조할 여유가 없었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도 공격하느라 생존자를 구조할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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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1 테드 브릭스(Ted Briggs).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1973년까지 해군에 복무하였고 한국전쟁과 제2차 중동전쟁에도 참전하였다. 2008년에 사망했다.
생존자 2 로버트 틸번(Robert Tilburn).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1952년까지 해군에 복무했다. 후일 HMS 후드 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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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3 윌리엄 존 던다스. 당시 해군사관후보생이었다. 후드 협회에 따르면 생전에 후드 침몰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5년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다음날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그 큰 군함이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더니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순양전함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난 것이다. 더불어 동행한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A, Y 포탑이 말썽을 일으켜 제대로 된 사격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함교 부근에 명중탄을 맞아 함장은 무사했지만 지휘부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사망 13명와 부상 9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여 대영제국 굴욕의 산 증인이 됐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이라 불리우던 후드가 비스마르크의 킬카운트로 전락하고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비보를 접한 영국 해군은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져 있다가...
'''충격이 모두 분노로 바뀌자 전함과 순양함은 물론, 구축함과 잠수함, 심지어 항공모함까지 대서양의 가용 가능한 모든 영국 군함들이 비스마르크 하나를 잡으려고 몰려들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후드의 허망한 최후는 영국 해군의 소극적 공격도 한 몫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 전초전 때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을 먼저 발견하고 선제 공격을 할 수 있었음에도 전력 공격을 하지 않는 소극적 공격을 하다보니 탈출을 우선시하는 것을 거부한 비스마르크 승무원들이 반격할 틈을 만들어줘서 침몰을 자초했다는 내용이다.
5. 기타
킹 조지 5세급 전함과는 달리 무척 허망하다면 허망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라고 불렸을 정도로 미려한 외형 때문에 팬들이 꽤 있다.(조약을 뛰어넘는 함선인데도 이 때문에 보유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사실 외형은 취향을 타기 때문에 당대에는 호평이었지만 지금은 구닥다리 티 난다고 별로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많고[15] , 특히나 개장한 청사진의 모습은 영국의 캐슬형 함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오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인기는 여전하여 영국에는 'HMS 후드 협회'라 하여 후드를 연구하는 동호회까지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비스마르크에게 일격에 폭침당한 극적인 최후의 영향도 꽤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비스마르크 역시 후드를 원턴킬 했다 하여 주가가 올라간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생존 승조원 테드 브릭스의 유언에 따라 2015년 후드의 종이 바닷속의 잔해 인근에서 회수되었다.
또한 별 상관없는 말이겠지만 후드가 비스마르크와 조우할 당시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후드와 발맞추는데도 기관이 터질 정도로 달려야 했을 만큼 후드가 빠른 편이다. 물론 원래 속력이 32노트라 빠른편이긴 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노후화돼서 26노트 수준까지 떨어졌던걸 30노트 수준까지 어떻게 살려낸 상태라 원래 상태보다 느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전함들이 고속화되어 30노트 전후의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후드의 속력은 더 이상 특출한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6. 미디어에 등장
- 디스커버리 채널의 세계의 톱10 군함편에서 10위를 차지하였다. 위협성과 혁신성은 중간, 운용기간은 최상의 평가를 받았지만 화력에선 낮음 방어력은 최하의 평가를 받았다.
- 네이비필드에서도 역사가 증명해주셨는지 영국 전함 육성 유저들은 69레벨의 후드를 두고 70레벨의 넬슨을 기본 육성으로 하고 있다. 후드는 정찰기 운용이 가능하나 넬슨은 정찰기 운용이 불가능하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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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비필드2에서 영국 8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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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오브 워쉽에서 영국 7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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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al Front-Line에서 개장을 받은 후드가 등장한다. 강력한 성능이지만, 정신나간 가격(2500골드)을 자랑한다.개장 이전의 후드는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에 존재.
- Naval Creed:Warships에서 영국 순양전함 트리 4티어 1차 함선으로 등장한다.
- 함선 의인화 게임 전함소녀와 강철소녀, 벽람항로에서 등장한다. 전함소녀와 강철소녀에선 도감 1번함으로 등장하는데, 전함소녀는 대영제국 식민지 시찰[17] 당시 기함이었던 후드의 삶을 본딴 황실순시 스킬로 함대의 속력을 올려줘서 거의 이벤트 필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취급이 좋으며, 벽람항로에서는 SSR 등급 전함으로 등장한다. 벽람항로 튜토리얼에서는 PoW와 함께 비스마르크와 싸우다 격침당한 전투를 재현한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선 개변된 역사 때문에 비스마르크와 맞붙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결국 일본 함대와의 결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1] 잘 보면 킹 조지 5세급 전함#s-2과 함교 및 부포가 유사하다.[2] 사실 후드도 그냥 예외로 인정된 것은 아니라서 일본이 전함 무츠를 살리기 위해 연합군에게 배 4척을 줘야 했던 것처럼 영국도 후드를 살리기 위해 기념함으로 남길 수 있었던 드레드노트까지 포함해, 구식 전함을 10척이나 넘게 갈아야 했다.[3] 그러나 패전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지못미.[4] 후드를 진수시킨 사람은 새뮤얼 후드 제독의 현손 호러스 후드 제독의 부인이었다. 호러스 후드 제독은 유틀란트 해전에서 기함 인빈시블의 탄약고 유폭으로 전사했는데 순양전함 후드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 기묘한 운명.[5] 당장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11.1인치(280mm) 주포가 3만 야드(대략 27킬로)에서 현측 관통력이 200밀리가 넘게 나오는데,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의 거리는 훨씬 가까웠고, 샤른호르스트급보다는 더 강한 주포가 날아들었다.[6] 글로리어스, 퓨리어스와 함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그리고 남은 함포는 뱅가드에 달린다.[7] 야마토와 길이로는 '''0.7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8] 가령, 후드 주요 방호 부위의 약 300밀리 장갑이라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주포에서 18킬로까지 면역이다. 게다가 함의 덩치 덕분에 설령 뚤렸다고 해도 최후처럼 탄약고를 맞지 읺는한 침몰하는데까지의 시간도 길었을 것 이다.[9] 그래서 리나운이 후드를 땜빵칠 수 있을 만큼은 강력해지기 위해 1936년에서 39년까지 대개장을 받는다. 그 다음 차례였던 후드와 리펄스는 2차 대전으로 인해 개장받지 못했다. 리나운이 리펄스보다 먼저 받은 이유는, 리나운이 왕실 순방에 동원되던 전함이라서 KGV나 후드만큼이나 격이 높은 주력함이었기 때문.[10] 상식적으로 흘수선 밑부분으로의 명중탄은 보통 설계의 큰 고려대상이 아니어서 비스마르크의 럭키샷(?)은 후드 내부의 7인치 장갑판이 보호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교묘히 관통했다 [11] 목격자들에 따르면 마스트 부분에서 유폭이 일어났다. 탄약고 위치로 볼때 15인치 포탄이 아닌 4인치 부포탄들의 유폭에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12] 고작 4인치 포탄들의 유폭때문에 전함이 침몰한게 말이되냐고 생각하는 위키러들을 위해 덧붙이면, 4인치는 구경상으로 100mm에 가까운 탄이다. 현용 구축함들의 주포인 5인치 함포보다 딱 1인치 적은 함포인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쏘는것이 주 임무인 부포의 특성상 대량의 부포탄들이 탄약고에 적재되어있다. 거기에 해당 탄약고의 위치는 함체의 중앙이면서 동시에 후미의 3번포탑의 탄약고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해당 탄약고가 유폭하게되면 함체 중앙에 유폭이 일어나는 셈이고, 거기에 유폭으로인해 바로 옆의 주포탄약고도 같이 휘말려 유폭이 될 수 도 있었던것이다.[13] 승조원인 테드 브릭스의 증언에 따르면 폭침을 당하고 두동강이나서 침몰할때까지 홀랜드 제독과 랄프 커 후드함 함장은 브릿지를 지키고 있었다고한다.[14] 후드가 침몰한뒤 3명의 생존자들은 각자 물에 뜨는 부유물에 하나씩 올라가서 서로 잡고 버텼다고 한다.[15] 월드 오브 워쉽 컨트리뷰터인 Yuro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배 중간의 비어있는 공간에 대해, 미국은 대공포를, 독일은 캐터펄트를, 일본은 포탑을 올렸을 건데 영국은 비워놨다며 깠다.[16] 역사 속 해전이나 게임 속 해전이나 공통적인 것은 상대의 위치 파악이 우선이다.[17] (The Empire cru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