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

 


1. 제원
2. 개발
3. 활동, 독일 해군의 불침함
4. 최후
5. 동형함 목록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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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
선행함
몰트케급 순양전함
후계함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배수량
24,988t(기준)
28,550t(만재)
전장
200.6m
전폭
28.5m
흘수선
9.29m
터빈
4축 추진, 파슨스 터빈
출력
66,002 킬로와트
속도
26.5 노트
항속거리
14노트로 4,200해리
승무원
1,068명
주포
28 cm SK L/50 2연장 주포탑 5기 (총 10문)
부포
15 cm SK L/45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8.8 cm SK L/45 단장 부포곽 12기 (총 12문)
장갑
측면장갑: 100~300mm
포탑정면: 250mm,
장갑함교: 최대 350mm,
갑판장갑 최대 80mm

2.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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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S Seydlitz Großer Kreuzer
독일에서 영국이 순양전함을 건조한 것을 보고 만든 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과 이를 개량한 몰트케급 순양전함을 건조했지만, 순양전함 설계에는 많은 이견이 분분했다.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은 순양전함은 정찰과 적 순양함과의 교전이 역할이라고 보았고, 황제 빌헬름 2세와 해군부는 적 주력함과의 교전 또한 순양전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빌헬름 2세와 해군부의 의견대로 신형 순양전함을 건조하기로 했다. 적 주력함과의 교전을 위해 충분한 장갑과 무장을 설계에 요구했고 이전에 건조한 몰트케급을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 자이틀리츠급이다. 1911년 건조되기 시작하고 1913년에 취역하게 된다. 이전에 건조한 몰트케급과 마찬가지로 포탑이 중앙부에 일직선으로 배치되어있지 않지만 중앙에 있는 두 포탑간의 각도의 거리를 조절해서 현측으로 전포문 일제사격이 가능하게 했다.[1] 함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대왕시기의 프로이센의 기병대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라이헤어[2] 폰 자이틀리츠(Friedrich Wilhelm von Seydlitz: 1721~1773)에서 따왔다.
참고로 본 문서 제목은 이전에는 자이들리츠라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 독일어의 표기법상 자이틀리츠가 정확하다. Sey + Dlitz가 아니라 Seyd + Litz인 것.

3. 활동, 독일 해군의 불침함


독일 제국 해군의 최고의 수훈함 중 하나, 대미지 컨트롤의 모범.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유틀란트 해전을 보고 대미지 컨트롤의 중요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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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취역한 신형 순양전함인 자이틀리츠는 제1 정찰함대소속으로 들어갔고 제1 정찰함대 사령관인 프란츠 폰 히퍼 소장의 기함이 된다. 개전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면 영국 서부해안가를 포격하며 영국 해군을 도발했다.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때 조석의 문제로 제때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고 이미 초계함대의 지휘관인 레베레히트 마스[3] 소장이 기함 쾰른과 함께 전사하고 후퇴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때 대양함대 사령관인 잉겐올 제독이 히퍼 제독에게 제1 정찰함대는 아군 어뢰정과 순양함을 호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제1 정찰함대는 겨우 아군함정과 조우해 항구로 귀환한다. 이때 자이틀리츠는 따라오는 영국 해군의 경순양함, HMS 아리아드네를 발견, 격침시킨다. 이후에도 꾸준히 영국에 대한 도발을 하며 1차 야모스 포격의 성공으로 분노한 영국 해군이 도거 뱅크 일때의 방어를 강화하자 이 함대의 일부를 유인해 격파한다는 계획에 따라 출격한다. 그렇게 도거 뱅크 해전이 발생, 영국의 순양전함 함대의 사령관인 비티제독의 함대가 포문을 열었고 기함인 자이틀리츠는 적 기함 HMS 라이온의 포격을 맞고 탄약고가 유폭(!!!)했으나 승무원들이 빠르게 탄약고에 바닷물을 뿌려서[4]더이상의 유폭을 막는데 성공, 반대로 HMS 라이온에 명중타를 내어 라이온의 보일러에 해수가 들어가게 해 고장낸 뒤 장갑순양함 블뤼허가 영국함대의 표적이 되는 동안 무사히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탄약고에 불이 붙었다고 하면 사실상 군함에서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중 다섯손가락안에 들어갈 때이다.[5] 대표적인 사례로 1941년 진주만 공습 당시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애리조나(BB-39)는 아카기소류에서 이함한 D3A 발과 B5N 케이트의 500kg 폭탄이 탄약고에 명중해 1512명 중 335명만이 살아났다. 후소급 전함후소레이테 만 해전의 수리가오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의 어뢰로 인해 탄약고에 화재가 발생하고 유폭해 단 1명만이 겨우 살았고 야마시로콜로라도급 웨스트버지니아(BB-48)의 SHS(진주만 공습 이후의 개수로 운용 가능)탄이 탄약고에 명중, 유폭해 전원 사망했다. 나가토급 전함 무츠도 1943년 탄약고 유폭으로 폭침해 엄청난 피해가 났다. 리토리오급 로마 역시도 독일군의 프리츠 X 공격이 탄약고에 명중해 굉침되고 전원 사망했다. 그외에도 유명한 사례가 여러가지 있지만, 언제든지 터질지 모르는 곳에 가서 유폭을 저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으로 충분히 훈련된 수병들과 넘치는 사기의 덕분으로 자이들리츠의 생사를 가르게된 셈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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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자이틀리츠와 순양전함들이 러시아 해군을 압박하기 위해 발트해로 갔다가 리가 만 해전에서 독일이 전술적 패배를 겪고 철수한 뒤 독일은 꾸준히 영국 해군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함대의 일부만 유인해서 격파할려고 하고 영국은 독일 대양함대를 괴멸시키길 원했다.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가 신형인 데르플링거급 순양전함들이 포함되고 영국해군을 유인하기 위해 1916년, 출격하게 된다. 다만 이미 영국해군은 독일군의 암호를 전부 해독할 수 있었고 낚인척 하며 대양함대를 이끌러내기 위해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도 출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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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에서 자이틀리츠가 전투하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
유틀란트 해전때는 히퍼 제독이 신형함인 뤼초(Lützow)로 기함을 바꾼 상황이었지만 자이틀리츠의 상징성은 대단했다. 도거 뱅크 해전을 통해 탄약고 유폭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많은 훈련과 준비가 되어있었고 이것이 자이틀리츠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히퍼의 정찰함대가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발견, 교전에 들어갔고 자이틀리츠는 영국 순양전함 HMS 퀸 메리에게 사격을 가했다. 그 와중에 퀸 메리에게 2발의 유효타를 허용해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빠르게 진압하고 데르플링거와 함께 퀸 메리에게 일제사격을 했고 퀸 메리는 탄약고 유폭으로 폭침한다. 다만 이와중에 어뢰에 맞아 침수하기 시작했다.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가 만신창이가 되자 영국의 신형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전장에 도착했고 자이틀리츠는 HMS 버럼[8][9]과 HMS 밸리언트[10][11], 영국 최고 수훈함 HMS 워스파이트[12]의 15인치급 포격을 6번 맞고 '''또''' 탄약고가 유폭했지만 숙련된 승무원들의 대응으로 겨우 살아남고 항구로 돌아가는데 성공한다. 이때 물이 너무 차서 자이틀리츠가 항구로 들어오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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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둘겨 맞고 힘겹게 귀항하는 자이틀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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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도착한뒤의 자이틀리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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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틀리츠가 전투중 맞은 어뢰 탓에 생긴 구멍. 엄청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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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15인치에 맞아 손상된 주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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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로 파손된 자이틀리츠의 주포

4. 최후


이후 독일 제국 해군의 활동이 없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면서 독일 해군이 해산되고 함정들이 영국의 스캐퍼 플로항으로 이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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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있는 것이 자이틀리츠이다. 뒤에 따라오는 순서대로 SMS 몰트케, SMS 힌덴부르크, SMS 데어플링어, SMS 폰 데어 탄)
독일 해군의 로이터 제독은 독일군의 자존심인 독일 해군과 해군 함정을 인도하길 싫어했고 미리 계획한 대로 자침명령을 내렸고 독일 해군의 상징과 같았던 불침함 자이틀리츠가 제일 먼저 자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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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침한 자이틀리츠)

5. 동형함 목록


자이틀리츠급은 SMS 자이틀리츠 한척만 계획되어 있어서 동형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 1번함 자이틀리츠: 1913년 5월 22일 취역, 1919년 6월 21일, 스캐퍼 플로에서 자침

[1] 이러한 방식의 포탑 배치를 앙 애슐론(en echelon)이라고 부른다.[2] Freiherr, 남작이라는 뜻[3] Leberecht Maaß(1863~1914), 우리에게 익숙한1936A형 구축함중 1번함 Z1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 함대 컬렉션에서 나오는 해외함인 Z1(함대 컬렉션)도 마찬가지.[4] 이 때 활약한 수병 중 하나가 빌헬름 하이트캄프. 1936년형 구축함 중 5번함 Z21의 이름은 여기서 왔다.[5] 그외 용골이 부러짐, 전복, 너무 큰 화재, 과도한 침수가 있다.[6] 역설적으로 이렇게 숙련되고 사기 넘치던 수병들이 훗날 킬 군항의 반란에 앞장서서 참가한다. 대전 말기 독일제국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엿볼수 있는 부분.[7] 1913-2000, 러시아 출신. 캐나다로 1951년 망명 후 목수와 사진 작가 일을 하다가 사망[8] 독이 단단히 오른 나치 독일이 1941년 11월 25일에 한스 디트리히 프라이헤르 폰 티센하우젠[7]이라는 용자가 이끄는 U-331의 뇌격으로 이 배를 격침시키고 화재로 인한 탄약고 유폭으로 굉침, 862명이 사망했다.[9] 어뢰를 말라야와 워스파이트는 버텨냈는데 얘는 버텨내질 못했다. 이는 당시 시대 상황과 관련이 깊었다. 네임쉽 퀸 엘리자베스, 워스파이트, 밸리언트, 말라야는 1920년대 말에 대개장을 했으나 이 배는 1930년대에 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1933년 나치 독일에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고 전운이 감돌면서 계획은 수포가 된다. 그 위협 때문에 전함을 다 뜯어 개장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얘는 후드와 함께 15인치 함포를 장비한 1급 전력이기 때문에 대공화기 증강, 캐터펄트 설치(다른 QE급들은 대개장 후 다 받는다)같은 것만 받고 어뢰 벌지 증설을 받지 못해 격침된 것이다.[10] 1930년대 개장 당시 부포를 제거하지 못했던 다른 QE급과는 달리 이 배는 양용포탑 개수를 받는다. 이 배는 '''QE급의 비전투손실 피해 전담함'''으로 1940년에는 이탈리아 수병의 기뢰 공격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착저하고 1944년에 태평양 함대에 보내졌으나 여기서 수리 중 도크가 무너지는 바람애 또 피해를 입는다.[11] 개장 순서는 워스파이트-QE, 밸리언트순이다. 그로 인해 맨 처음 개장받은 워스파이트는 부포가 남아있지만 두 번째로 개장받은 밸리언트와 QE는 양용포가 달렸다.[12] 조타기 고장으로 인해 독일 순양전함과 뒤늦게 온 대양함대에게 좀 두들겨 맞는다.(다만 15인치급 대응방어를 생각하고 설계한 전함이라 큰 피해는 없었다.)[13] 주포탑의 주포와 포탑천정이 탈착되어 있는건 위의 사진처럼 함수갑판이 거의 수면과 비슷할정도로 침수되어 항구에 들어올수가 없어 함수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포와 포탑천정을 탈거함으로써 간신히 함수가 수면위로 어느정도 올라와서 입항해 사진처럼 부두에 정박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