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보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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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침공하고 세운 보호령이다.
2. 역사
덴마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을 지키면서 독일의 점령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하기 위해서 덴마크 북부의 올보르 공항 점령이 필요했다고 판단하였고, 1940년 4월 9일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를 침공했다.[2] 덴마크는 본국의 군사력으론 독일군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기에 독일의 요구 조건을 수용했고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덴마크가 독일에 의해 점령된 이후, '제국(독일)에 의한 보호'를 선언했다.
덴마크는 공식적으로 독일과 전쟁에 돌입한 적이 없어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덴마크 침공을 막아주기 위한 군 병력 진격'이라는 명분을 들어 덴마크를 침공했고 독일의 다른 점령지나 괴뢰국과는 다르게 꽤 자주적이었다.[3] 물론 어디까지나 외교적 명분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침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덴마크 국왕과 정부가 이것을 인정해 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덴마크는 공식적으로 침공당하지도, 항복한 적도 없어서 괴뢰국이라고 보기는 애매했다. 그래도 덴마크 보호령은 여러 방면으로 독일과 협력했다.
추축국에 가입하진 않았으나, 추축국 가담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방공 협정에도 가입하여 사실상 추축국이나 다름없었다. 독일의 적국인 소련, 중국[4] 과 단교하였으며, 무장친위대 안에 6,000명 정도의 덴마크인 부대인 덴마크 자유 군단도 구성하였다. 대서양 방벽 요새의 덴마크 부분에 대한 건설을 허용했고, 덴마크 국립 은행은 거의 이자를 받지 않고 나치 독일에 대출을 해 주었다. 이것 외에도 독일에 여러 상품을 제공했다. 역대 세 총리였던 토르발드 스타우닝, 빌헬름 불, 에리크 스카베니우스는 나치 독일과의 협력 정책을 고수하였다.[5]
1943년 나치 독일 정부는 덴마크를 독일군의 감시 하에 놓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으며, 덴마크 의회는 이것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독일은 덴마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덴마크 정부를 해산시켜 덴마크를 직접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1943년까지는 덴마크인들은 독일에 대한 저항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크리스티안 10세가 매일 코펜하겐 시내를 말을 타고 돌아다닌다든지, 유대인을 보호하는 등의 소극적인 저항은 지속했다) 계엄령 이후에는 저항하기 시작했다. 1945년 독일의 몇 남지 않은 점령지가 바로 덴마크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자, 나치 독일은 덴마크 근처 플렌스부르크에서 플렌스부르크 정부를 구성하였다. 나치 독일이 항복하자 덴마크는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