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웨이
1. 개요
중국의 축구 선수.
체격과 파워를 겸비한 유망한 수비수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었다. 그 키로 '''100미터를 10.7초만에 주파'''할 만큼 뛰어난 피지컬로 중국에서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 기대에 걸맞게 2000년 U-19 아시아 선수권 3위, 다음해 FIFA U-20 월드컵의 16강 진출을 이끌며 중국 청소년 대표 - 올림픽대표에 있어 전술축으로 여겨져 오죽하면 수비수인데도 공격시 두웨이의 세트 플레이 가담이 주요 공격 루트로 취급되었을 정도. 당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노리던 두웨이의 중국 대표팀을 중국에서는 초백금세대로 부를 정도로 기대감이 상당했다. 뭐...예선에서 광탈했지만.[3]
하지만 13억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이 선수가 유명해진 건 다름아닌 너무나도 전설적인 셀틱에서의 '''대 활약''' 때문이다. 셀틱으로 이적할 때도 상하이 선화의 구단주가 '''쓸데없는 짓'''이라며 두웨이를 팀 훈련에 참가시키려고 했지만 두웨이는 '''셀틱은 세계적인 팀이고 난 그곳에서 내 축구 인생을 다시 시작하겠다. 나는 큰 물로 간다'''라며 구단주의 설득을 뒤로 한 채 셀틱으로 향했다.
셀틱 입단 전 그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출국 전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해외 진출에 대해 오만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외에 무수한 명언 어록들을 남겼는데,
이런 강력한 자신감을 피력하며 그는 셀틱 FC로 진출하게 되었다. 박지성과 이영표에 대한 건방진 멘트를 하지 않고 실력, 하다못해 잠재력만이라도 받쳐줬다면 진취적인 젊은이의 표본으로 높이 살 만한 멋진 자세이지만...
2. 셀틱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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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웨이의 데뷔전은 3부 리그 클라이드와의 FA컵 경기였다. 전설적인 선수 '''로이 킨'''이 맨유를 떠나 뛰는 첫 경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꽤나 집중되던 상황이었다. 또한 상대팀이 3부 리그 팀이기 때문에 팬들은 셀틱이 문제없이 대승을 거둘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수준은 EPL 팀과 비교해도 안 밀리는 셀틱과 레인저스를 제외하면 대략 잉글랜드 3부 리그와 가깝다는 것이 중평이며 실제 선수 이적도 이러한 위상 하에서 대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참고하자. 즉 스코틀랜드 하부 리그는 그 위상이나 구단의 면면 등을 볼 때 아마추어 리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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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경기는 '''이 짤방 하나로 모든 것이 요약된다'''.[6]
두웨이와 로이킨의 셀틱 데뷔전 경기에서 두웨이의 플레이는 정말 환장할 경기력이였다. 요약하자면 출전한 전반 45분 동안 '''3번의 헛발, 7번의 삽질, PK 헌납'''.
전설이 된 그 경기
그 외에 상대편 공격수가 뒤에서 달려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경합을 시도해보았으나 피지컬에서 밀려 나가떨어지고 오히려 옆에서 커버하려 달려오던 같은 팀 수비수를 몸으로 막지를 않나, 8번의 맞대결에서 7번을 발려 주었으며, 전반 중반 중앙에서 힐 패스가 들어왔을 때 '''감각적인 플레이로 상대편 공격수에게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하단에 링크된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두웨이의 삽질 플레이가 계속되자 상대 '''3부 리그 공격수''' 톰 브라이튼이 두웨이를 호구로 보고 그의 발에다 대놓고 스로인을 한 다음 그 공을 뺏으려고 하였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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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리거 톰 브라이튼에게 무참히 관광당하는 두웨이.
3. 그 후
결국 후반이 시작됨과 동시에 교체되었으며, 셀틱은 두웨이의 맹활약에 힘입어 3부 리그의 클라이드에 1-2로 참패하고 말았다. '''한 번의 용병술 실수로 디펜딩 챔피언이 대회 3라운드에서 3부 리그 팀에게 패배'''하는 셀틱 역사에 남을 치욕적인 기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셀틱의 고든 스트라칸 감독은 2005/6시즌 7월 챔피언스 리그 예선 2차전에서 슬로바키아의 '아르트메디아 브라티슬라바'에 원정경기 0-5로 패했을 때 보다 더 실망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르트메디아는 비록 약체리그 소속팀이 일지언정 2004-05 슬로바키아 수페르리가 우승팀이자 슈퍼컵 우승팀으로 챔피언스 리그 예선까지 나가서 셀틱을 제치고 32강까지 올라갔던 팀이다. 셀틱은 안방에서 아르트메디아를 4:0으로 이기며 설욕은 했지만 골득실로 밀려 탈락했다. 아르트메디아는 32강까지 올라가서 3위로 밀려났지만 2위인 글라스고 레인저스에게 아쉬운 승점 1점차로 밀려날 정도로 선전했다. 1위는 인터 밀란, 4위 조 꼴지는 바로 2003-04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FC 포르투였으니 아르트메디아가 만만치 않았다. 즉 3부 리그팀과 차원이 달랐던 팀이다.
두웨이는 셀틱 역사상 출전 45분만에 방출이라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을 만든 뒤 15일만에 고국으로 리턴했다. 현재는 허베이 화샤 싱푸의 주전 수비수로 뛰고 있으며 놀랍게도 2010 동아시아 대회에서 3:0으로 한국이 충격적으로 패배했을 때 '''중국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피지컬로 한국 공격수들을 그라운드 위에서 지웠으며,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8] 중국에서는 아직도 스타 플레이어로 활동중이다.
놀랍게도 기자가 두웨이를 안다.
그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셀틱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영상. 유투브 제목도 Chinese Legendary Football Player - Du Wei(...) 유튜브 리플 중의 압권이 "얘는 중국에서 온 개그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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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일 청혼에 성공.
4. 두웨이의 라이벌
5. 관련 문서
[1] 사실 딱 한 경기(...), 그마저도 45분밖에 뛰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참조.[2]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중국 국가 대표팀 주장.[3] 당시 중국 올림픽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국가 차원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특수부대급 훈련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최대 라이벌으로 지목했던 한국과의 2경기에서 0-1, 0-2로 완패하고 약체인 말레이시아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는 등 졸전 끝에 떨어졌다.[4] 2000 U-19 아시아 선수권 대회 때의 일이다. 당시 한국팀에는 박지성 외에도 이천수 최태욱 조재진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과 이라크에게 밀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하자 거스 히딩크감독 선임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5] 둘 다 1982년생으로 동갑이며 신체 조건도 비슷하다. 물론 카카는 호날두와 메시가 10년 동안 발롱도르를 양분하기 전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로 비교가 실례되는 클래스의 선수.[6] 로이 킨이 맨유를 떠날 때 몇몇 동료 맨유 선수들의 수준이 너무 실망스럽다는 인터뷰를 하며 셀틱으로 왔는데, 맨유 선수들 수준에 실망한 로이 킨 눈에 두웨이는 대체 뭘로 보였겠나(...).[7] 참고로 스로인을 던지고 제3자의 터치 없이 자신이 받게 되면 반칙이다. 아마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두웨이에게 준 다음, 뺏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8] 동아시아 대회는 1진이 아닌 2진 또는 3진이 나가기는 한다지만 이 때는 남아공 월드컵이 눈앞이고 적지 않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K리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당시 출전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실험이 목적이었는지 몰라도 포메이션이 개막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