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스 암스트롱
1. 소개
미국의 前 사이클 선수. 고환암 수술 이후 처절한 재활을 거쳐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하며 인간 승리의 대명사격 존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존경을 받았던 선수로, 한국에서는 암본좌라는 애칭으로 불러졌다. 스스로의 암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암환자들에 대한 지원 및 암 예방과 치료 연구를 후원하는 리브스트롱 재단을 설립했다. 상징색은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노란색 리브스트롱 암밴드는 자덕들에게 인기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야말로 화려한 기록과 수상 실적에 세계적인 인기까지 누린 사이클 계의 전설이었으나 '''도핑으로 그 동안의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 하지만 잘나갈 때에 제의를 받아 우버에 투자한 덕분에 억만장자가 되었으니, 인생은 죽을 때까지는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 인물이기도 하다.
2. 어린 시절
유소년 시절에는 철인 3종 선수였는데, 암 걸리기 전 사진에서의 몸은 가히 마크 카벤디쉬 뺨치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특히 우람한 어깨는 수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역, 퇴역 올라운더, 클라이머 류 선수 가운데에서는 체격이 건장한 편이다.
본인의 자서전인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It's not about the bike.)》 그런데 이 제목이 현실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전성기까지의 내용이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물론 본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책을 보다 보면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사랑, 암 투병기, TDF로 복귀를 거치며 하나의 인격이 만들어져 가는 내용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자덕이 아니더라도 꽤 읽을만 하다. 청소년기까지는 어머니가, 장가가고 나서는 부인 킥이 랜스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될 만큼 어머니와 킥의 랜스에 대한 사랑과 그에 답하는 랜스를 볼 수 있다.[1]
자서전이다 보니 주인공 보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젊었을 적 랜스는 아마 캐망나니 비스므리 했었던 듯. 이는 가정 사정도 한 몫을 했을 듯 하지만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킥도. 여기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심히 공감을 가는 말을 했는데,
난 구기 운동 못해서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했다.
3. 선수 시절
3.1. 고환암 발병
암이 발견됐을때는 이미 말기로서 뇌와 폐까지 퍼져있었을 정도였고, 고환암 자체가 희귀한지라 생환자가 드물어 담당의사가 "솔직히 살 수 있을지도 자신하기 힘들고, 산다고 해도 다시 자전거를 타실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 입니다."라고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참고로 자식이 세명 이상이 있다. 도핑을 한 것은 아니고[2] 항암치료를 개시하기 전 정자를 냉동보관한 것이다.[3] 자못 이 사람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 승리와 더불어 현대의학의 힘은 놀랍다는 것.
다만 고환을 적출했지만 하나만 적출했기 때문에 고자가 된 것은 아니다.
3.2. 레전드가 되다
잘 나가던 때엔 농담으로 '그의 자전거에는 프레임 안에 시멘트를 넣는다. 시멘트를 넣지 않는다면 그가 날아서 달까지 가기 때문이라고.'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전성기 그의 클라이밍 하이라이트를 보면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맛볼 수 있다. 복귀 후 2009 시즌 투르 드 프랑스 스테이지 16에서도 녹슬지 않은 클라이밍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에디 메르크스와 비교해서 본좌 논란이 좀 있는 선수인데 에디 메르크스가 한 시즌에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아 에스파냐를 정복했던 것에 반해 랜스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만 노리고 조졌다. 각 대회의 간격이 한달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자덕이라면 본좌 부분은 의심없이 에디 메르크스의 손을 들어준다.
3.3. 은퇴 후 복귀
은퇴를 했었지만 2009년에 현역으로 복귀, 콘타도르가 있던 팀 아스타나로 복귀했다. 3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지만 뚜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3위라는 기록을 세워서 아직 명성이 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9년 뚜르 드 프랑스 1위는 같은 팀이었던 알베르토 콘타도르.[4]
투르 드 프랑스는 래디오섁 팀으로 출전한 2010년이 마지막이다. 개인 우승은 없으나, 팀 우승으로 포디엄에 올라 은퇴 경기 체면은 세웠다. 2011년 라디오섁 팀으로 호주에서 열리는 투어 다운 언더를 마지막으로 공식 은퇴선언을 한 상태(2011년 2월 16일 현재)지만 2009년도 일도 있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잘 없었다.
3.4. 진짜 은퇴
은퇴 후 심심함을 달랠 길 없어 트위터로 번개를 때렸더니 1,200명이 번개에 참석하는 위엄을 떨쳐 번짱계의 본좌임을 인증했다...
4. 도핑
은퇴 이후 2012년 7월 경부터 시즌 도핑 의혹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이나 자전거 동호인들은 그 사실을 믿기 힘들어 했으나 2012년 8월 24일 본인이 도핑을 인정함으로서 이제까지 그가 쌓아온 커리어는 박살이 났다.(영문 기사) 1998년 이후, 그러니까 암 투병 이후 기록들이 모두 박탈되면서 투르 7관왕 타이틀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획득한 동메달까지 박탈당했다.
- USADA(UNITED STATES ANTI-DOPING AGENCY)의 US Postal팀 조사결과
관련 전문을 볼 수 있다. 물론 영어다.
- 좀 어색하지만 동일 문서의 구글번역문(pdf 문서도 그럭저럭 번역해 준다)
- 상기 문서 관련 목차 번역과 간단(?)한 사건 개요
- 랜스 암스트롱 영구제명에 대한 미국 반도핑 기구의 근거문서 목차
ESPN이 최근 랜스 암스트롱과 함께 도핑의 고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여기에서 랜스는 애초에 고환암이 도핑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며 그 동안의 긴 의혹을 인정했다.
모든 게 밝혀지고 나서 재조명받는 것이, 랜스의 전성기 시절부터 유럽 쪽에서 심심찮게 들리던 그에 대한 악평이다. 랜스의 칭송 일색이던 미국과 달리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사이클 레이싱계에선 오래 전부터 이미 랜스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특히 UCI 등 관련 업계 인사들을 매수하고 언론에 압력을 넣는 등, 부패의 정도가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도핑 사실이 터졌을 때 미국 언론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것에 반해, 유럽 사이클링계는 "당연히 도핑도 했을 줄 알았다"는 정도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 대비되었다.
5. 몰락
2015년에는 약쟁이라는 오명에 더해 음주운전+뺑소니+거짓말의 3종 세트를 동시에 터트렸다. 술먹고 여자친구를 태우고 SUV를 몰다가 세워져 있는 자동차 2대를 들이박고는 그대로 뺑소니친 것. 그걸로도 모자라 여자친구가 운전했다고 덮어씌웠다.(#)
2016년 8월에는 '''"루이지!"'''라는 글을 올리며 도핑 의혹을 받던 파비앙 칸첼라라를 저격했다. 그러나 칸첼라라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루이지는 칸첼라라가 아닌 네덜란드의 사이클 선수였다. 무고한 선수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자행한 셈이라 당시 트위터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이후 이 트윗을 삭제했다.[6]
또한 보험사인 SCA 프로모션은 우승시 랜스 암스트롱에게 75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해서 돈을 받았는데, 도핑결과가 나온 뒤에 소송을 걸어 저 돈과 소송비용을 합쳐 1000만 달러를 돌려주라는 조정판결이 내려졌다.(#)
특히 큰 문제는 그가 소속된 US Postal(미국우정공사)로부터 받은 후원금 3000만 달러다. 미 정부는 이 돈을 포함해 최대 1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암스트롱에게 소송을 걸었다. 상대가 미 정부인 만큼 승소하기가 쉽지 않으며 랜스 암스트롱은 만약 이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파산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2018년 4월 19일에 500만 달러라는 크게 감액된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6. 반전
잘나갈 때 우버에 1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때 우버의 가치는 약 370만 달러였다. 우버의 IPO가 임박한 시점에서 우버의 가치는 1200억불까지 호가되고 있으니, 암스트롱의 지분은 우버의 1/37의 가치로 중간에 변동상황이 없었다면 최대 32억 달러까지로 평가되고 있다. 암스트롱 개인은 대략 2천만 달러 정도 벌었을 거라고.
7. 기타
- 오늘의 일진을 표현하는데 박찬호를 언급한 적이 있다. 랜스 암스트롱은 텍사스 출신이니, 텍사스 출신들에게 박찬호의 존재는...
- 벤 스틸러 주연의 영화 《피구의 제왕》에서 주인공이 게임을 포기하려는 순간 우연히 만나서 자기가 고환암을 극복했음을 말하며 용기를 주어 경기에 참가하게 한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이뭐병같은 조언이다.
- 기록이 모두 말소된 후,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건지 아니면 소일거리를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 정비사가 된 모양이다. 약간 야윈 얼굴로 셀프디스를 포함한 펑크튜브 교체 강의를 하는데 과거 그의 팬이었던 자덕들은 심정이 복잡해졌다고 한다.
- 랜스 암스트롱의 도핑 여부에 대해 13년간 조사했던 데이비드 월시 스포츠 선임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챔피언 프로그램(원제: The Program)이 2015년 9월에 개봉했다. 국내에선 한달 늦춰진 2015년 10월 개봉했다. 영화는 데이비드 월시 기자가 펴낸 책인 Seven Deadly Sins: My Pursuit of Lance Armstrong에 기반해 제작한다고 한다.
- 랜스 암스트롱의 현역 시절 그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선수는 아무도 없었으나, 2인자라고 불리던 선수는 있었다. 독일의 싸이클스타 얀 울리히다. 독일의 국가대표인 그는 항상 랜스 암스트롱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엄청난 노력을 들였지만 항상 그를 뛰어넘은 일이 없어 만년 2인자라 불렸다. 그리고 2012년에 이 인간도 도핑이 걸려서 올림픽 메달을 싸그리 박탈당한다. 사실 얀과 암스트롱은 대회중 암스트롱이 넘어지자 얀이 일으켜주는[7]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약쟁이들의 동업자 정신이었다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다. 2015년에는 tv쇼 M16에서 이 2등 약쟁이를 도핑사실은 싹 빼고 불행한 2인자로 포장한 촌극이 있었다.
- 암스트롱의 도핑을 설계하고 주도한 이는 일명 페라리 박사(Dr. Ferrari)로 불린 이탈리아의 스포츠 전문의 미켈 페라리(Michele Ferrari)이다. 사이클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거물급 전문의였으며, 에디 메르크스의 아들인 악셀 메르크스(Axel Merckx)와 마리오 치폴리니 역시 페라리와 함께 일한 바 있다. [8] 도핑 스캔들이 발발함에 따라 2012년 UCI에서 영구제명되었으며, 이듬해인 2013년 암스트롱이 "페라리 박사로부터 PED를 처방받은 사실이 있다."고 자백함에 따라 도핑 혐의가 사실상 확정되었다.
- 내 친구 아서에는 랜스 암스트롱이 출연해 주인공들에게 교훈을 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도핑이 걸린 이후 이 에피소드는 흑역사 취급당하면서 아예 방송금지 판정까지 받았다.
- 소다 마사히토의 사이클링 관련 작품인 스피드 도둑에서 종종 언급되는 선수이다. 만화가 나올 당시에는 존경받는 선수여서 작가가 직접 암스트롱의 얼굴 그림까지 그려 넣었을 정도. 도핑 사실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만약 스피드 도둑이 재판된다면 수정될지도 모른다.
- 2017년 개봉한 다큐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에서 주인공 이윤혁은 희귀암 투병중 재발 등 시한부 판정을 받자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존경으로 투르 드 프랑스 대회를 따라가는 번외 참가를 강행하고 나름 유의미한 형식을 통해 완주해낸다[9] . 2009년 예전 촬영된 영화이기에 주인공은 도핑 확정 상황을 모른다. 주인공은 랜스의 책을 들고 다니며 랜스와 만나 대화도 나누었으며, 투르 드 프랑스 행사장에서 라이딩 중인 랜스를 따라 달리며 리멤버 미라고 물으며 짧은 대화를 한다. 영화 제작진들은[10] 후일 인터뷰에서 윤혁이 도핑내막을 알았어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8. 관련 문서
[1] 하지만 킥과 자서전 내고 몇 년 지나지 않은 2003년 이혼.[2] 아내인 킥 암스트롱이 했다. 배란촉진제와 호르몬제 등 인공수정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는 주로 여자 쪽에서 하는데, 이유는 정자 쪽은 대략 손으로 어떻게 처리가 되지만(이 경우는 랜스는 냉동보존된 것을 사용), 난소는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기 때문. 인공수정을 위한 처방을 실제 따라 해보면 여자 쪽은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3] 자서전을 보면 이 이야기가 나온다.[4] 콘타도르는 2010년에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했으나 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되어 2010년 이후 모든 수상기록이 박탈되고 2년간 출전자격 정지를 당했다. 다만 2010년 이전 2007, 2009년 우승자 자격은 유지되었다.[5]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역사적으로 많으나, 랜스가 현재까지 유독 가혹한 취급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선수들은 최소한 동료에게 도핑을 강요하거나 내부고발자에게 보복을 가하진 않았기 때문.[6] 칸첼라라는 이때 이후로 암스트롱과는 학을 뗐으며, 현재까지도 SNS 맞팔이나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다.[7] 정확히는 사이클을 암스트롱이 일어설 때까지 멈춘 것이다.[8] 이들 모두에게 도핑 설계를 해준 것은 아니다. 당장 마리오 치폴리니같은 인물들만 봐도 도핑 논란에서 상당히 자유롭다.[9] 귀국 후 예상대로 간경화 등 암말기 합병증으로 사망.[10] 투르 드 프랑스 코스를 따르는 7주간 윤혁과 동거동락했으니 서로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