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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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로
1.1. 클래식 스페셜리스트
1.1.1. 파비앙 칸첼라라
1.1.2. 마리오 치폴리니
1.1.3. 마크 캐번디시
1.1.4. 피터 사간
1.2. 클라이머
1.2.1. 김팔용
1.2.2. 나이로 퀸타나
1.2.3. 마르코 판타니
1.3. 올라운더
1.3.1. 강지용
동호인 출신 자전거 선수
본명은 강지용이지만 본명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다들 꼬꼬마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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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진성 자덕이(앞에 있는 앤디 말고 뒤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앤디를 쫒아가는 사람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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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변했다.
1988년 2월 19일생으로 2006년 중고 로드바이크를 그냥 통학용으로 구입했는데, 그 자전거의 원 주인이 국대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면의 또다른 나를 발견한 것인지 그 길로 본격 자덕질을 시작(…). 첨 자전거를 탈 때 남산을 끌바 전설로 시작해서 남산 산악왕 대회에서 산악왕을 쎄우더니[2] 2007년에는 서울랠리에 출전하여 결국 로드뽕을 맞고야 만다.
2008, 2009년 TDK에서 개인종합 4위를 기록했으며[3] 군대 갔다온 뒤 복귀한 2011년에는 팀 와츠의 소속으로 3위로, 2012년에는 TDK를 개인종합우승, 스프린트, 신인상을 혼자서 쳐묵쳐묵하는 것도 모자라 산악까지 넘보다가[4] 결국에는 프로 투어팀[5] 에 후보선수로까지 올라가서 일류급 선수들과 뛰고 있다.
강지용의 놀라운 점은,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 본격 출전한 2008년 경부터로 스포츠 선수로서는 매우 늦게 시작을 한 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국내 대회에서 강자로 떠오를 정도의 실력향상이다.[6]
팀 와츠 소속으로 -- 활동 중이며, 현재는 코레일사이클단 소속으로오리카 그린엣지에서 스따지에르[7] 로 테스트 받는 중.
현재는 소식이 뜸한데, 일단 들리는 소식으로는 자전거 선수 활동은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 두었다고 하는데, 소문으로는 국내 팀에서 동호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텃세'가 좀 있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지. 하지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가장 큰 문제에 희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여러가지 친목질이 정말로 심하기 때문.
아무튼, 현재는 다시 동호인으로서 지인들과 같이 라이딩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자덕연예인 인명사전 강지용편에 간략한 프로필(?)이 나와있다.
- 아직도 자갤을 잊지않고 찾아오며 꾸준히 눈팅도 하는 듯.
- 오리카 그린에지팀의 로 등용시험격인 투어 오브 알버타(Tour of Alberta)[8] 에서 초반 낙차에 휩쓸려 팔과 다리에 넓게 쓸리는 상처를 입었으나[9] 강력한 멘탈과 근성으로 91위를 기록.(오리카 그린엣지에 나와있는 경가결과는 여기 참조)
- 강지용의 블로그. 프로필에 보면 취미가 포풍 사이클링이다. 범상치 않다.
- 강지용의 공식 팬 페이스북.
1.3.2.
1.3.3. 미겔 인두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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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의 싸이클리스트로 '''최초로 투르 드 프랑스 5연패에 성공한 인물'''이며 8명뿐인 그랑투르 더블 달성자 중 한 명.[10] 특히 에디 메르크스나 자크 앙크틸의 경우 금지약물 복용 기록이 있는 반면 인두라인은 단 한 차례도 양성반응을 보이지 않아 많은 자덕들은 인두라인을 실질적 본좌로 보기도 한다.
1991, 1992, 1993, 1994, 1995 '''투르 드 프랑스''', 1992, 1993 지로 디 이탈리아 우승자.
188cm의 장신과 온화한 성격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전설적인 선수로 베르나르 이노의 뒤를 이은 투르 드 프랑스 본좌 라인의 계승자 중 한 명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지만 특히 타임 트라이얼에서 매우 강했던 선수로 타임 트라이얼만으로 2위와 4분 가까이 차이를 벌였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신체적 스펙 면에서는 역대 최고로 뽑을 수 있는 선수로 188cm의 장신과 보통의 2배 가까이 큰 심장, 압도적인 폐활량을 자랑했다.
동시에 매우 온화했던 선수로 한 번은 아마추어 경기에서 관중이 다른 선수에게 던진 병이 그의 머리에 상처를 냈는데 인두라인은 그것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무덤덤하고 감정기복이 없는 스타일이기도 한데,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사실상 확정지은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농장 상태를 물어본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를 발굴했던 에차베리 감독은 인두라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아는 한 인두라인 같은 선수는 에디 메르크스밖에 없다. 그러나 메르크스는 로봇 같은 사람이었고 그의 힘은 다른 선수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줬다. 반면 미겔은 군주였다. 그는 관대했고 경쟁자를 존경했다.”
1.3.4. 브래들리 위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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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Bradley Marc Wiggins, CBE
영국인 최초의 뚜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자. 그랜드 투어를 노리는 올라운더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선수로 출발하여 많은 노력 끝에 TDF의 정상을 차지한, 사이클링 역사에서도 독특한 경력의 선수 중 하나다.
1980년 벨기에 겐트에서 호주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2살 때부터 런던에서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축구를 하며 아스널의 팬이었던 위긴스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크리스 보드먼의 우승 이야기를 통해 사이클링에 관심을 가지고 12살 때 처음 트랙 레이스에 입문하게 된다. 이때부터 재능을 선보였던 위긴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영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단체 추발 동메달을 따게 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프로로 전향해서 주로 프랑스 국적의 팀에서 뛰었지만 2008년까지 그의 주종목은 트랙 추발과 투어 경기의 프로롤그&TT 레이스였다.
2012년 뚜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우승을 하였고 같은 해 올림픽에서 도로독주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추발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 때는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서 동료들과 관객들을 빵 터뜨리는 장난을 친 적이 있다.
2015년 6월 7일, 기존 아워 레코드 보유자인 알렉스 다우셋의 기록인 52.937km에서 1.589km나 앞선 '''54.526km''' 라는 넘사벽급 기록을 세우면서 현 아워 레코드 보유자가 되었다. 원래 위긴스의 목표는 55.250km였으나 당일 영국의 높은 기압으로 인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상이기때문에 가볍게 밟는 것 같지만 당시 아워 레코드에 사용된 바이크의 기어비는 58x14. 2020년 기준 빅터 캄페나르츠가 55.089의 신기록을 세우면서 전 아워 레코드 보유자가 되었다.
참고로 아워 레코드는 한 시간 동안 주행한 거리를 측정하는 기록이므로 54.526km라는 기록이 나오기 위해선 평속이 54.526km라는 말이 된다.... 1마력은 745.7W이다. 사이클 선수 중에서 FTP(자전거계에서 파워 테스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선수나 라이더의 기량을 측정할수있는 가장 좋은 지표이다. 일반적으로 45분 동안 꾸준히 낼수있는 평균적인 파워를 의미한다.) 745.7W에 도달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FTP 745.7W가 가능하면 그 사람은 투르 드 프랑스 코스를 팀원의 도움없이 제패가 가능하다. 현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크리스 프룸도 20~40분 평균 유지파워는 419W이다.
자신의 이름을 뜬 팀 위긴스를 설립했다. UCI-Continental Level의 팀이라 뚜르나 지로 등에서는 안 뛰는 것 같고 간간히 트랙 시합이나 중규모 도로 경주에 나온다. 영국의 재능 있는 사이클리스트를 찾아 양성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1.3.5. 알베르토 콘타도르
1.3.6. 얀 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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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Ullrich. 1973년생 독일 출신.
랜스 암스트롱이 TDF에서 7번 연속 우승할 때 3번 2등했던 선수로 유명하다. TDF에서만 5번 2등을 해서 콩라인으로 알려져있지만 1997년에 이미 TDF에서 우승한 선수다. 벨타에서도 1999년 우승했었고 2000년 올림픽에서 로드 경기 금메달, 타임트라이얼 경기 은메달을 따냈다.
비슷한 시기 인기 선수였던 랜스 암스트롱,마크로 판타니의 화려한 댄싱과는 달리 오르막에서도 낮은 자세로 안장에서 엉덩이를 거의 떼지않고 달렸다. 그러면서도 산악구간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줬으나 라이벌이 너무 강해서... 타임트라이얼에 특히 강했지만 산악 스테이지에서도 간간히 우승을 따내는 만능형 올라운더였다.
약점이 없는 선수로 2005년 랜스 암스트롱 은퇴후 포스트 암스트롱으로 기대받았다. 그러나 2006년 지로에서 도핑 스캔들에 휘말린 후 본인은 도핑 부정했으나 본인의 혈액팩이 발견되면서 여차저차 그대로 은퇴하였다. 2012년 도핑이 더 밝혀지면서 올림픽에서 받았던 매달도 취소되었다.
은퇴 후 행적이 심하게 나쁜데 알콜중독, 마약중독, 음주운전, 매춘부 폭행, 이웃집 침입 폭행 등 사건을 일으켜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다.
1.3.7. 앤디 슐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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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Shleck. 룩셈부르크 출신의 사이클리스트. 올라운더라기보다는 클라이머에 가까운 선수로, 몸매도 호리호리하고 얼굴도 준수하여 인기도 매우 많다. 5살 위의 형 프랭크 슐렉과 더불어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선수. 아버지도 투르 드 프랑스 참전 경력이 있는 프로 사이클리스트로, 자전거 가족이라 할 수 있다.
2008시즌 투르에서는 우승자 카를로스 사스트레를 보좌하여 사스트레와 팀의 동반 우승에 기여하였고, 본인도 25세 이하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화이트 져지를 획득하였다.
2009시즌에는 삭소뱅크 팀의 에이스로 투르에 출전하였다. 클라이밍 실력이 원체 뛰어나고 TT에서도 그럭저럭 먹어주는 훌륭한 기량의 소유자에, 형 프랭크를 비롯한 소속팀의 서포트진도 강력한, 말 그대로 우승후보였으나...클라이밍은 비슷하고, TT에서는 그를 월등히 앞서는 알베르토 콘타도르라는 먼치킨에 밀려 2009, 2010시즌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준우승에 그쳤다.
2010시즌에서는 이런저런 트러블로 콘타도르가 고전하는 틈을 타 투르 중 후반까지 옐로 저지를 수성하고 있었으나 스테이지 15에서 콘타도르와의 업힐 클라이밍 대결 도중 체인이 빠지는 통한의 실책으로 콘타도르에게 옐로 저지를 내어주었고, 이후 콘타도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불과 '''39초'''[11] 차이로 2연준을 달성, 3년 연속 화이트 져지에 만족해야 했다.[12]
2010시즌 종료 후 형인 프랭크 슐렉, TT괴물 파비안 칸첼라라 등 기존 삭소뱅크 팀의 주요 멤버와 함께 새로 창단된 팀 레오파드-트렉 팀으로 이적이 결정, 2011년부터는 트렉의 자전거를 탄다. 그의 빈 자리에 라이벌 알베르트 콘타도르가 오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약물 파동으로 투르 이후 사실상 시즌을 일찍 마친 콘타도르와 2011년 투르에서도 치열한 타이틀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밝아온 2011년 투르.. 콘타도르가 부진하고 토마스 뵈클러라는 깜짝 스타가 옐로 저지를 수성하는 가운데 슐렉 형제는 중후반까지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코스 탓, 다른 선수 탓이나 하는 슐핑계, 슐렉 '''자매'''...로 전락하는가 했으나 스테이지 18, 투르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장장 60km 어택으로 다른 GC 경쟁자들을 털어내고, 스테이지 19에서 마침내 옐로 저지를 입수! 하였으나 스테이지 20의 개인 타임트라이얼에서 카델 에반스에게 2분 30초 이상 처절하게 발리며 '''3연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아 콩라인...
2012시즌에는 소속팀 레오파드와 닛산-래디오쉑의 합병으로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 자전거는 트렉 마돈을 유지하는 듯.
2014시즌에는 뚜르에 형 프랭크 슐렉을 지원하기 위해서 트렉-팩토리 팀원으로 출전하였다. 그러나 스테이지 3의 피니시 직전에서 크게 낙차하였다. 무릎을 크게 다쳐 경기를 포기하고 이후 팀과의 재계약도 성사되지 않으면서 여러 불안한 전망이 나왔다. 그러던 결국, 2014년 10월 9일 트렉-팩토리 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뚜르에서의 낙차로 인해 무릎 연골이 완전히 파열되어 장거리를 탈 수 없게 되었다고한다. 본인 왈, '내가 은퇴를 결정한 것이 아닌, 내 무릎이 은퇴를 결정하였다'고. 비록 선수 생활은 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해 은퇴한 옌스처럼 자전거 업계에서 계속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참고로 겁쟁이 페달에서 하코네 학원의 2년생 스프린터 이즈미다가 자신의 양쪽 가슴 근육에 각각 앤디, 프랑크 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바로 이 쉴렉 형제로부터 딴 이름이다.
1.3.8. 에디 메르크스
1.3.9. 옌스 복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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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s Voigt
독일 출신.[13] 옌스 보이트라고도 부를 수 있다. 사실 그의 이름의 발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서,[14] 직접 본인에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묻는 인터뷰 영상까지 존재한다....내가 어택한다고 해도, 승리할 확률은 잘 쳐줘야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어택을 나가지 않는다면, 승리할 확률은 0%다. 0%보다는 10%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인 게 아닌가?
2017년 강원도 삼척시에서 열린 트렉 어라운드 삼척에 참가한 본인이 말하길, 옌스 보이트가 아니라 옌스 복트에 가깝다고 했다.
'''근성''' 그 자체. 사이클계의 '''멘탈갑'''. 71년생으로 2013년 현재 뚜르 드 프랑스 참가선수 중 최고령이며 랜스 암스트롱과 동갑이다. 언제나 유쾌하고 솔직담백한 모습, 싸이클링과 팬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펠로톤의 최고 인기인 중 한 명.
1997년 프로에 데뷔하여 2013년이 그의 프로 17번째 시즌이며, 비얀 리스가 이끄는 CSC->Saxobank 팀의 주력 멤버로 카를로스 사스트레의 2008년 투르 우승 및 슐렉 형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고, 2011 시즌에는 슐렉 형제와 함께 신생팀 래디오섁-레오파드-트렉으로 이적. 17년간 그랑 투르의 스테이지 우승 3회를 포함하여 숱한 레이스 우승 경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2007-2009년에 걸쳐 크리테리움 인터내셔널을 3연패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어지간한 동년배 라이더들이 하나 둘 은퇴하는 와중에도 펠로톤의 산신령으로 후배들의 무한한 존경과 팬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프로싸이클링계의 아이콘.
...뿐이라면 여기에 특별히 항목이 생길 이유로는 부족했겠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 커리어가 무진장 화려하거나 역대급 임팩트가 있었거나 한 건 아니다.
그가 팬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그의 '''미칠듯한 공격성향'''. 위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기회만 주어지면 무조건 펠로톤을 뛰쳐나가 외로운 브레이크어웨이에 나선다. 사실 그가 말한 10%의 가능성도 많이 높게 잡은 것이고, 펠로톤이 브레이크어웨이를 잡지 못해 브레이크어웨이가 승리할 확률은 사실 1~5%. 그러나 어느 스포츠나 비슷해서, 팬들은 공격적이고 화끈한 선수에게 열광하기 마련이다. 레이스 내내 팀 동료들의 보호 아래 펠로톤에 묻혀 있다가 마지막 500M의 스프린트 승부에 나서는 스프린터나, 업힐 피니쉬 한정으로만 공격성향을 보여주는 클라이머/GC라이더 들에게서 볼 수 없는 브레이크어웨이의 화끈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옌스 보이트.
실낱같은 가능성만을 보고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브레이크어웨이에 외로이 도전, 무시무시한 펠로톤의 추격을 뿌리치고 간발의 차이로 스테이지 우승을 거머쥐는 승부사의 모습에 싸이클링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17년 동안 브레이크어웨이 한우물을 파시고, 게다가 이 브레이크어웨이로만 통산 70승 이상을 거두셨고 올해도 거두고 계신 옌스 선생... 자덕들은 그저 하악하악
게다가 옌스 성님은 언제나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따듯한 남자시기까지 하다. 옌스와 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오르막도, TT도 제법 하는 등 올라운드 성향이 강하지만, GC에 도전하기에는 종합적인 능력치 총합이 부족하고, 클라이머나 TT전문으로 나서기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당하기 어려운, 한마디로 어정쩡한 포지션에 있다. 이런 선수들은 간간히 주어지는 브레이크어웨이 기회를 성공시키는 것 말고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기 어렵고, 팀 내에서는 주로 GC에 도전하는 진짜 올라운더들을 보호하며 타팀의 어택을 견제하는 역할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도움 선수(domestique)인데, 옌스는 이 분야에서도 특유의 열정과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헌신으로 펠로톤와 팬들의 압도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연속된 낙차사고와 자전거가 완파했지만 팀카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체이싱 레전드로 유명한 2009년 투르에서는 알프스의 다운힐에서 낙차로 뇌진탕과 안와골절로 리타이어, 모두가 은퇴를 예상했으나 2010년 시즌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복귀. 2010년 투르에선 중립차량의 자전거를 빌리기까지하는 악조건도 이겨냈다.) 완주하여 다시 팀을 위해 달리는 엄청난 근성!에 그에 대한 평가는 좋을 수 밖에 없다. 원데이 레이스 뿐 아니라 그랑 투르에서도 투르 스테이지 2승, 지로 1승으로 제 몫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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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본인이 타는 자전거 탑튜브에 Shut up legs (다리야, 닥쳐!) [15] 라는 문구가 사진에 찍히며 더욱 더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2013년경부터 슬슬 은퇴 이야기가 있기도 했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2014년 초반부터 은퇴시기가 관심거리가 됐었다. 그래도 TDF에는 출전하여 여전한 공격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16] 그리고 USA 프로챌린지를 마지막 프로투어로 은퇴. 이 대회에서도 역시 공격적인 라이딩으로 옌스 어디 안간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 프로투어에서의 모습
2014년 9월, 은퇴하며 마지막으로 도전한 아워 레코드[17] 에서, UCI룰에 따른 기존의 공식 기록이었던 49.7km의 기록을 경신하여 51.115km를 기록해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한다. 기록을 세울 당시의 평균 파워는 430 와트를 뛰어넘은 수치였다고.
- 그는 무려 여섯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 팬들은 이런 옌스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런 것도 만들었다. 옌스 보이트에 관한 진실
- 2013년 현재 소속팀인 라디오색 레오파드 트랙(Radioshack Reopard Trek)팀에는 2013년 뷰엘타 아 에스빠나(Vuelta a España)에서 스테이지 10까지 우승과 산악왕을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 호너(Chris Horner, 1971년 10월 23일생)와 함께 팀의 평균연령을 정신없이 올려주시고 계시다. 무서운 건 둘 다 그나이에 현역, 거기다가 한명은 GC로 뛰고 있다는 거.
1.3.10. 카델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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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의 싸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 밑에서 만년 2인자였던 얀 울리히[18] 의 뒤를 잇는, 포스트 랜스 세대의 콩라인 으로 유명'''했던''' 선수.
태어나자 마자 코가 부러지고 8살 때 말에게 머리를 채여서 반신불수가 될 뻔 한 순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원래 MTB 선수 출신으로 월드 챔피언쉽과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는 등 상당한 실력을 보였었고, 2001년도부터는 유럽에서 로드레이스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5년 Davitamon-Lotto team의 일원으로 처음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여 GC라이더[19] 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07년, 2008년도 두차례나 종합 순위 2위를 차지하는 등 강력한 우승후보로 이름을 드높였지만 언제나 마지막 2%가 부족한 퍼포먼스+지독스럽게 없는 운[20] +도움이 안되는 팀 덕에 '''무관의 제왕''', 콩라인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이어나가던 정말로 전형적인 '''2인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09년 TDF에서 30위라는 부진한 성적과 싸이클리스트로서도 적지 않은 나이 덕분에 이제는 투르에서 종합우승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그해 월드 챔피언쉽에서 월드 챔프가 되어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다만 유명한 월드 챔피언 져지의 저주[21] 때문인지는 몰라도 10년도 TDF에서 중간에 리타이어 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반전시키면서 2011년도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극적으로 종합 우승을 하면서 마이요 존느를 입었다! 2011년도 TDF 초반 팀 타임트라이얼에서 2위를 하고 스테이지4에서 스테이지 우승을 하는 등 투르 초반의 분위기를 잡은데다 조지 힌캐피라는[22] 걸출한 팀원을 중심으로 한 팀의 도움,[23] 그리고 과거 2% 부족했던 퍼포먼스의 모습을 떨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스테이지 18, 19에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옐로저지를 획득한 앤디 슐렉과의 마지막 승부처[24] 였던 스테이지 20의 개인 타임 트라이얼. 에반스는 1위를 기록한 HTC 하이로드의 토니 마틴[25] 과 겨우 7초차로 2위에 올랐다. 에반스는 초능력으로밖에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던 알베르토 콘타도르를 1분 이상의 차이를 벌리며 제껴버렸고, 무엇보다도 그와 1분 차이로 종합순위 1위였던 슐렉을 2분 30초 가까이 따돌리면서 종합우승을 결정지었다. '''콩라인 대탈선'''의 극적인 현장.
그의 TDF 종합 우승은 투르의 역사에 몇가지 진기록을 남겼는데 '''1.남반구에서 최초로 나온 투르 종합 우승자(당연히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TDF 종합 우승자이기도 하고) 2.투르 역사상 최고령 종합 우승자'''가 그것이다.
원래 전문 클라이머가 아닌데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 표정을 보면 정말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실제로 콘타도르, 바쏘, 사스트레 등 클라이밍 초고수들한테 고비마다 처절하게 발려온 것이 에반스 경력의 대부분이기도 했고...게다가 댄싱도 뭔가 흐느적흐느적한 것이...파워 넘치는 (전성기의) 암스트롱, 가볍고 경쾌한 콘타도르와는 비교가 많이 되지만, 역시 육체는 단명이나 근성은 영원한 것. 그의 콩라인 탈출에 박수를 보내자. 압도적인 피지컬과 천부적 재능을 지닌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꾸준하고 엄격한 자기관리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
하지만 2014년 첫 경기인 Tour Down Under에서 1초차이로 종합우승 '''2위'''를 차지했다.
1.3.11. 크리스 프룸
2. 트랙
2.1. 엄복동
2.2. 이민혜
2.3. 조호성
3. MTB
4. BMX
5. 관련 문서
[1] The Epoch Timesf 기사 Andy Schleck Wins Tour de France Stage 18; Voeckler Keeps Yellow; Contador Cracks 2011년 TDF Stage 18. 2011년 TDF 개최지를 따라 투어링을 했었다. 상세한 내용은 강지용의 블로그 참조.[2] 2012.3.25 제6회 남산 산악왕 대회 기록 0:05.02.[3] TDK는 컨티넨탈급 경기로 국제대회임과 동시에 아마추어가 대거 참가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경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외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참가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비록 스테이지가 적지만 아마추어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사이클링팀의 평속인 42~44km/h와 큰 차이가 없는 40km/h 정도로 장난 아니다.[4] 투르 드 코리아와 만난 자전거 마니아 '강지용'[5] TDF같은 전 세계급 경기를 뛰는 프로 사이클링팀[6] 강지용의 자전거 구입에서부터 2013년 현재까지의 간략한 내용은 바이크메거진의 인터뷰 기사인 엘리트 라이더로 다시 시작한 강지용를 참조.[7] Stagairie 견습생. 후보쯤 된다. 참고로 구성은 선수는 여자팀 정식 선수로 뛰고 있는 중. 남자팀에는 일본의 벳푸 후미유키도 있는 걸로 봐서 동양권 선수가 매우 드문 프로 사이클링팀 중 은근 동양권 선수를 좋아하는 것 같다.[8] 앨버타에서 열린 1회 경기였지만, 시마노 아르고스, 벨킨, BMC, 케넌데일, 가민, 오르카 그린엣지의 프로투어팀, 프로 컨티넨탈팀, 컨티넨탈팀이 경기를 펼친 나름 국제경기. 피터사간도 참가했다. 홍보성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9] Tour of Alberta 2013 - Stage 1 2분 15초 이후. 3분 5초부터는 상처 입은 모습이 나오니 혐 주의.[10] 투르 드 프랑스 5회 우승자는 자크 앙게티, 에디 메르크스, 베르나르 이노, 미겔 인두라인이며 5연승은 인두라인이 유일. 잘 알려져 있듯 '''랜스 암스트롱의 7연패 기록은 약물 스캔들로 인해 말소되었다'''. 그랑투르 더블 달성자는 파우스토 코피, 자크 앙게티, 에디 메르크스, 베르나르 이노, 조반니 바타그린, 미겔 인두라인, 마르코 판타니, 알베르토 콘타도르.[11] 역대 투르 사상 5번째로 적은 1-2위 격차[12] 그러나 이후 콘타도르가 약물 검사에 걸린 것이 확인되면서 우승자 신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13] 통일 이전 동독 출신이다. 얀 울리히, 안드레아스 클뢰덴, 토니 마틴, 안드레 그라이펠 등 펠로톤을 주름잡았던/주름잡고 있는 독일 출신 싸이클리스트들은 대개 동독 출신자들이 많다.[14] 심지어 이 문서에서도 복트와 보이트가 혼용되어 있다.[15] 수십~수백키로를 40~50키로의 속도로 달리면 제 아무리 프로라도 피곤하고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문구. 아드레날린이 뚝뚝 흐르는 문구라서 남자 자덕들이 더욱 더 열광하는듯. [16] 심지어 마지막 샹젤리제 스테이지에서도 변함없이 어택을 걸었다.[17] 1시간 내내 트랙을 달린 거리를 재는 기록경쟁. 도로경기와 달리 주행시간 내내 최대출력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매우 힘들다[18] 랜스보다 앞서 1997년 24세의 나이로 TDF우승경력이 있긴하며 현재까지 유일한 독일인 우승자[19] General Classification, 즉 스테이지 레이스의 종합 순위를 노리는 선수를 일컫는 용어. 통상 올라운더들의 몫이다.[20] 2010년도 TDF에서는 옐로저지를 입자마자 낙차 부상으로 팔이 부러져 리타이어 했다.[21] 사이클계의 유명한 징크스 중 하나로 그해의 월드 챔피언은 당 시즌에 이상하게 부진한 성적을 보인다는 징크스. 11년에 챔피언 져지를 입고 달리던 토르 후숍이 좋은 성적을 거둬서 없어지나 싶었더니 TT챔피언 칸첼라라가 몰락했다...[22] 본인도 빼어난 올라운더이며, 과거 랜스 암스트롱의 7회 우승을 보좌한 슈퍼 도메스티크(도움 선수). 2011년 현재 펠로톤의 최고참이기도 하다.[23] 그러나 까놓고 말해 이번에도 발목을 안 잡았다 뿐, 팀의 서포트는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선두그룹에서 떨어지거나, 경쟁 선수들이 어택을 치거나 할 때마다 에반스 혼자 '''타임트라이얼'''이라도 하듯 추격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을 정도...물론 팀TT에서 저 정도 성적을 낸 것만 해도 큰 도움이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일궈낸 우승이라 더욱 감동적.[24] 2회 준우승자까리의 대결이었다.[25] 칸첼라라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칸첼라라의 뒤를 잇는 최강의 TT 전문선수이자, 2012년 현재 월드챔피언이다! GC와는 거리가 있는 토니 마틴이 직전 스테이지까지의 산악구간 동안 후위에서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에반스의 승리나 다름없는 결과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