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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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Bakshi
1938 ~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국 애니메이터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성인 취향의 소재를 주로 다룬 감독. 유대계 미국인으로, 하이파 출신이다.[1] 태어난 이듬해 가족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도 깊이 배어 있다.[2] 한편 애니메이션 속의 성적인 묘사로 인해 미국 내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감독이다. 이 때문에 심슨 가족을 앞서간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6년 테리 툰즈의 보조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업계에 데뷔해 1967 스파이더맨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 1968년에는 박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였다. 1972년에는 로버트 크럼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자신의 대표작이자 미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X 등급을 받은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를 제작하여 업계에서 유명세를 알리기 시작했다.[3]
이후로도 완전성인등급이 찍혀 버린 애니메이션인 《헤비 트래픽》(Heavy Traffic),[4] 빈민가에서 갱단으로 커 가는 흑인들을 그려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쿤스킨》(Coonskin,1975)[5] 등을 제작했는데,[6]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을 비롯한 영화의 내용을 두고 논란이 빚어져 파라마운트가 맡을 예정이던 배급을 취소하였고, 원래 1976년 개봉 예정이던 헤이! 굿 룩킨!의 개봉이 몇 년간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2년간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Wizards), 《불과 얼음》(Fire and Ice)(놀랍게도 이 애니도 국내에 비디오로 나왔다... 물론 삭제질),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7] 을 제작 & 감독했고,[8] 미국의 음악사를 그려낸 《아메리칸 팝》(American Pop)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흥행에서 재미를 못 본데다 어른의 사정까지 겹치면서 1983년부터 일시적으로 몇년간 은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쪽(한국에서도 방영된 《마이티 마우스》같은 애니에도 참여했었다)을 통해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9]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킴 베이싱어와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삼아 실사와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섞은 《쿨 월드》(1992)를 제작하나, 이 작품도 흥행에선 실패하고 만다. 이미 비슷한 기법으로 대성공을 거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나온 지 4년후에 나온 작품인데다, 내용 자체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흥행이나 평으로나 흑역사가 돼버린 영화.
그래도 티비용 애니메이션으론 1990년대 후기까지도 현역으로 작업했으며 80년대 중반에 처음 박시를 만나 어시스턴트격으로 잠시 일한 애니메이터론 존 크릭팔루시가 있다.[10] 미국 내에선 디즈니와 실사 영화 사이를 이은 인물이란 식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듯. 2015년엔 침묵을 깨고 단편 'last days of coney island'를 만들었으며, 2016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다.
구체적인 생애는 위키피디아 문서를 참조. 활용한 공식에 대해선 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Creator/RalphBakshi를 참조할 것.
Ralph Bakshi
1938 ~
1. 개요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
2. 상세
미국 애니메이터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성인 취향의 소재를 주로 다룬 감독. 유대계 미국인으로, 하이파 출신이다.[1] 태어난 이듬해 가족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도 깊이 배어 있다.[2] 한편 애니메이션 속의 성적인 묘사로 인해 미국 내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감독이다. 이 때문에 심슨 가족을 앞서간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6년 테리 툰즈의 보조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업계에 데뷔해 1967 스파이더맨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 1968년에는 박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였다. 1972년에는 로버트 크럼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자신의 대표작이자 미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X 등급을 받은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를 제작하여 업계에서 유명세를 알리기 시작했다.[3]
이후로도 완전성인등급이 찍혀 버린 애니메이션인 《헤비 트래픽》(Heavy Traffic),[4] 빈민가에서 갱단으로 커 가는 흑인들을 그려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쿤스킨》(Coonskin,1975)[5] 등을 제작했는데,[6]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을 비롯한 영화의 내용을 두고 논란이 빚어져 파라마운트가 맡을 예정이던 배급을 취소하였고, 원래 1976년 개봉 예정이던 헤이! 굿 룩킨!의 개봉이 몇 년간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2년간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Wizards), 《불과 얼음》(Fire and Ice)(놀랍게도 이 애니도 국내에 비디오로 나왔다... 물론 삭제질),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7] 을 제작 & 감독했고,[8] 미국의 음악사를 그려낸 《아메리칸 팝》(American Pop)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흥행에서 재미를 못 본데다 어른의 사정까지 겹치면서 1983년부터 일시적으로 몇년간 은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쪽(한국에서도 방영된 《마이티 마우스》같은 애니에도 참여했었다)을 통해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9]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킴 베이싱어와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삼아 실사와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섞은 《쿨 월드》(1992)를 제작하나, 이 작품도 흥행에선 실패하고 만다. 이미 비슷한 기법으로 대성공을 거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나온 지 4년후에 나온 작품인데다, 내용 자체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흥행이나 평으로나 흑역사가 돼버린 영화.
그래도 티비용 애니메이션으론 1990년대 후기까지도 현역으로 작업했으며 80년대 중반에 처음 박시를 만나 어시스턴트격으로 잠시 일한 애니메이터론 존 크릭팔루시가 있다.[10] 미국 내에선 디즈니와 실사 영화 사이를 이은 인물이란 식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듯. 2015년엔 침묵을 깨고 단편 'last days of coney island'를 만들었으며, 2016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다.
구체적인 생애는 위키피디아 문서를 참조. 활용한 공식에 대해선 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Creator/RalphBakshi를 참조할 것.
3. 작품 목록
3.1. 영화
- 프리츠 더 캣 (1972)
- 헤비 트레픽 (1973)
- 쿤스킨 (1975)
- 마법사 (1977)
- 반지의 제왕 (1978)
- 아메리칸 팝 (1981)
- 헤이 굿 룩킨 (1982)[11]
- 불과 얼음 (1983)
- 쿨 월드 (1992)[12]
3.2. TV 애니메이션
- 스파이더맨(1968년판)
- 마이티 마우스(1987년판)
4. 관련 문서
[1] 참고로 박시 가문은 크림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튀르크어를 사용하던 크름차크라는 독특한 유대 민족 종교 공동체 출신이다. 문제는 이 공동체가 안그래도 적백내전과 홀로도모르로 고통받는 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구성원 '''75%가 몰살당해''' 사라진 것. 그의 반골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셈이다. 크름차크 유대인에 대한 정보는 카라임 유대인이나 테오도로 공국 문서 참조 바람.[2] 1947년 워싱턴 DC로 전 가족이 이사했으며, 이후 겪은 일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쿤스킨에서 인종차별을 비꼬아 내게 된다.[3] 첫 작과 후속작 (단 이 후속작은 박시가 관여하지 않았다)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원작자인 로버트 크럼은 이 애니를 무척 싫어했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소송을 건 데다 고양이 프리츠 완결을 영화화로 거만해진 프리츠가 나대다가 여친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끝내버렸다. 이후 박시랑 작업한 애니메이터에게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려고 협박했을 정도. 박시도 대놓고 '잘 만들었는데 왜 존경해주지 않는 거냐'며 '크럼은 좋은 작가지만, 존경할 가치도 없는 포주'라 디스하는 등 지금도 둘 사이는 험악하다.[4] 1990년대 후반에 국내에서도 비디오로 나왔는데 표지가 무슨 일본 야애니처럼 도배하여 나왔다![5] 1989년에 국내에서 비디오가 나왔으나 (삼부비디오)삭제와 같이 비속어들은 예의바르게 걸러냈다.[6] [image] 쿤스킨을 봐도 루니 툰에 대한 풍자를 볼 수 있다. 캐릭터(벅스 버니를 흑인으로 만든 검은 토끼 래빗 브라더도 그렇지만 저 배경을 보시라. 눈에 익숙하다면....) [image] 루니 툰 배경화면을 그대로 썼다고 할 정도로 같다.[7] 박시 자신은 반지의 제왕 전체를 애니메이션화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 개의 탑까지의 내용을 담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 실패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과 비디오로 나왔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에서 DVD로 냈으나 역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왕의 귀환은 1980년 줄리 바스와 아서 랜킨 주니어 공동 감독으로 티브이 애니로 만들어진다.[8] 불과 얼음을 비롯해 일부 작품에서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사실 1930년대에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먼저 쓴 적이 있다.[9] 여기서 박시가 감독한 마이티 마우스(1987년판)은 향후 현대기 미국 TV 애니메이션들의 제작 &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10] 그와의 인연 때문인지 2003년 제작된 렌과 스팀피 성인판의 한 에피소드의 조연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11] 1975년 완성되어 1976년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박시의 영화 쿤스킨에 대한 논란의 여파로 개봉이 연기되었다.[12] 박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