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니메이션

 



'''American Animation'''
1. 설명
3. 역사
3.1. 태동기(Silent age)[1]
3.1.1. 플라이셔 형제
3.2. 황금기(Golden age)[2]
3.3. 세계대전기(World War II age)[3]
3.4. 텔레비전기(Television age)[4]
3.5. 현대기(Modern age)[5]
3.5.2. 돈 블루스
4. 분류
4.1. 매체
4.1.1. TV 애니메이션
4.1.2. 극장 애니메이션
4.2. 제작
4.2.1. 플래시 애니메이션
4.2.2. 3D 애니메이션
4.2.3. 셀(2D) 애니메이션
4.2.4.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5. 장르
5.1. 아동용, 전연령층
5.4. 시트콤
5.6. 성인 애니메이션
6. 기법 및 연출
7. 특징
7.1. 아동용의 폭력, 선정적 요소 제한
7.2. 시즌제 구성
9. 여담
10. 관련 행사
10.1. 시상식
10.2. 동인 행사
11. 관련 기관
12. 관련 문서


1. 설명


미국 애니메이션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위주로 시작했다. 미키 마우스, 도날드 덕, 구피 같은 캐릭터들과 관련 산업의 파급 효과를 겪은 뒤에 일찌감치 상업성에 눈을 떴고,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다. 그렇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놀림받기도 했지만 온가족이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낸 점으로 미국 애니메이션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6]
미국에서는 이미 수십여 년 간 애니메이션 문화가 꽃피었기 때문에 베이스가 튼튼하여 스튜디오 차원에서 다양한 기술개발이 적용된 애니메이션도 제작된다. 대표적으로 80년대 초에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여 트론과 같은 실사 영화들에서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는 장면들을 본 존 라세터 등으로 말미암아 픽사에서 CG를 활용한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제작하고 크게 흥행하며 본격적으로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 제작사였던 디즈니도 2000년에 《다이너소어》를 시작으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는 아예 픽사를 합병하여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더불어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 디즈니는 더 이상 2D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7]
일본 애니메이션이 영상은 정적인 대신 캐릭터대사 위주로 밀어붙인 반면, 미국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대사보다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고 그만큼 프레임 수도 많다. 간단한 예로 일본쪽 캐릭터들이 열심히 자세하게 눈과 머리카락을 그리는 대신에 말할 때 입은 그저 벙긋벙긋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미국 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는 대사를 선녹음한 뒤에 입 모양을 대사 발음에 정확히 맞춰 그려내는 프리스코어링이 많다. 얼핏 보기에는 일본쪽이 더 화려해 보일 수도 있으나, 제작비는 후자가 훨씬 더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이건 방송환경이나 인구수의 요인도 어느정도 감안해야 하는데, 미국은 세계 방송시장 1위를 차지하는 나라라서 자국에서 거두는 수입이 기본적으로 엄청나고 거기에 더해서 같은 언어를 쓰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아일랜드와의 합작을 통해서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데다가 거기에 더해서 수출역량도 엄청난지라 이를 통해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장치가 충분한 만큼 일본은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발전이 다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라고 제작비 문제에 아예 쪼들리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에 손가락을 4개씩만 그리는 등의 편법을 쓰기는 했다.

2. 목록




3. 역사


미국 애니메이션은 수십 년간 연출 변화, 제작기술 발전, 업계 규모 성장, 대중의 시선 변동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해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영어 위키백과에선 미국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크게 5가지로 구분해 기록하고 있다.

3.1. 태동기(Silent age)[8]


1906년 제작된 '웃긴 얼굴의 유머 단계(Humorous Phases of Funny Faces)'는 훗날 미국 애니메이션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제작자인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턴은 최초의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평가받는다. 그보다 2년 뒤인 1908년 에밀 콜이 제작한 '판타스마거리(Fantasmagorie)'는 수작업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무렵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을 실험하는 경향이 속속 미국에서 나타났으며, 윈저 매케이가 제작한 리틀 네모(1911년), 공룡 거티(1914년)는 실사 장면에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시초격 작품으로 플라이셔 스튜디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915년 존 랜돌프 브레이 & 엘 허드는 셀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을 완성해내, 이 기법이 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10년대 말기 ~ 1920년대 중기의 미국 애니메이션에선 신문에 연재된 코믹 스트립 그림체에 주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종종 대사가 표기된 타이틀 카드를 삽입하거나(펠릭스 더 캣), 말풍선으로 나오는 대사와(오스왈드 래빗), 캐릭터의 의성어가 표기되는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었다.
1921년 맥스 플라이셔 & 데이브 플라이셔가 설립한 플라이셔 스튜디오는 광대 코코(koko the clown), 잉크웰(inkwell) 시리즈 등을 제작해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을 맡았고, 이미 1923년부터 독립 스튜디오로 앨리스 시리즈를 제작하던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희망하던 유니버설 픽쳐스와 계약해 오스왈드 래빗 시리즈 작업에 들어갔다. 허나 캐릭터 판권 문제로 시리즈 제작을 할수 없게 되자, 디즈니는 1928년 어브 아이웍스랑 첫 미키 마우스 단편인 〈미친 비행기〉(plane crazy)를 제작, 공개했다.
처음에 이 단편은 대중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몇달 뒤 상영된 〈증기선 윌리〉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월트 디즈니는 신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주목받게 되고, 공개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무성 영화 매체완 다르게 보다 활용 면이 넓은 유성 영화 매체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출발점을 끊었다.

3.1.1. 플라이셔 형제


대중적인 인지도에선 월트 디즈니에 확연히 밀리지만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이들을(맥스 플라이셔[9] & 데이브 플라이셔) 빼놓고 설명할 순 없다. 1910년대 말기가 애니메이션 제작의 출발점이며, 윈저 매케이가 이미 시도한 결합 기법을 실사의 인물, 물체들과 캐릭터가 자연스레 소통하는 구조로 발전시켰다. 대부분 애니메이션 단편들의 배경은 현대상을 띄지만, 내적으론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는 몽환적인 전개로 이탈하는 스토리 연출을 주로 활용하였다. 이런 점들이 겹쳐 애니메이션 내부의 형상, 물체들과 캐릭터가 불규칙적으로 뒤섞이는 애니메이션(Deranged Animation)의 탄생으로 거듭나며, 1920년대부턴 기본적인 카툰형 캐릭터에 팔다리, 몸체가 부자연스러워지는 유연성을 결합하고 캐릭터가 다른 물체나 캐릭터로 변형하는 초현실주의적 디자인, 개그 동작을 연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920년대 중반엔 미국 애니메이션 최초의 유성 영화인 Song Car-Tunes 시리즈를 제작하여 음성에 맞춘 가사의 내용을 안내하는 바운싱 볼(bouncing ball) 기술을 삽입하는 시도들도 이어졌다.
1930년대 초중기는 캡 캘러웨이, 루이 암스트롱 등의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나오는 실사 뮤직 비디오의 삽입과 종종 섹드립 유머가 연출되는 베티 붑처럼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대표 캐릭터는 다른 스튜디오보다 상대적으로 인간 캐릭터의 비중이 높았다. 1934년 헤이즈 오피스의 영화 제작 규정(헤이즈 코드) 개정으로 베티 붑의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을 변경하는 악재를 겪고, 업계의 경쟁자로 떠오른 월트 디즈니[10]를 의식하여 걸리버 여행기, 컬러 클래식 등의 애니메이션 장편 및 단편들을 제작하며 건재히 활동하다, 몇년 전부터 시작된 형제 간의 대립과 1941년 'mister bug goes to town'이 실적에서 참패를 거둔 이후 이듬해(1942년) 스튜디오가 파라마운트 픽처스에 인수되면서 페이머스 스튜디오로 개명당하고 타 회사 카툰 스튜디오와 동일한 퀄리티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은 그들의 작품이 전세계적인 영향력으로도 후발 주자인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들에 상당히 밀려나 소외당하고 외면받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뒤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로 로토스코핑을 랄프 박시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했었고, 존 크릭팔루시는 인터뷰에서 플라이셔 단편의 캐릭터 신체 동작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배트맨 TAS[11]의 애니메이션 연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등 현대기의 애니메이션 마니아들과 애니메이터들한테 재조명받았다. 196~70년대 언더그라운드 코믹스를 그리던 로버트 크럼 등의 일부 미국 만화가들과 데즈카 오사무의 초창기 작품들,[12] 컵헤드, Bendy and the Ink Machine에서도 플라이셔 스튜디오 단편에 대한 오마주가 드러나 있다.

3.1.2. 월트 디즈니


미국 애니메이션에 리얼리즘의 대두와 장편 영화로써의 애니메이션을 자리매김시킨 디즈니 스튜디오의 설립자이자 가장 큰 변화를 끼친 제작자로써 초창기 미국 애니메이션의 메이저 애니메이터진 중 하나인 디즈니 계열[13][14] 애니메이터진을 형성한 간접적 요인을 제공하였다. 캐릭터의 음성과 배경 음악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을 대중화시킨 공로와 함께, 디즈니의 리얼리즘 애니메이션은 극초기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작품 제작과 미야자키 하야오를 포함한 일본의 초기 애니메이터들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던 극초기와 달리 1930년대부턴 대부분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주로 내세우고 감독들에게 간섭한 점 때문에 일부 애니메이터들이 독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사(UPA)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본인의 말년과, 그 이후인 현재에도 월트 디즈니의 인지도는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3.2. 황금기(Golden age)[15]


미국에서 TV가 드물던 황금기 초기,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대중의 인기 매체인 영화를 겨냥해 극장에서 상영할 10분 미만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다. 1930년대엔 실리 심포니 & 메리 멜로디즈 & 베티 붑 등의 대중가요, 가음악을 덧입히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단편 제작이 활발했으나 40년대부터 대폭 감소했고, 같은 시기 루니 툰 & 딱따구리(애니메이션) & 톰과 제리 & 미키 마우스 등의 사회풍자, 대중문화 요소를 삽입한 작품들이 많은 인지도를 얻었다.[16]
애니메이터들보단 제작사의 이름과 제작자들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가하는등 인지도 면에서 유리한 환경이긴 했어도 UPA, 워너 브라더스의 '터미트 테라스'를 포함한 일부 애니메이터들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과 코미디 연출을 발휘해나갔다.[17]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과 특수 효과가 점진적으로 상향, 발전한 시점과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음성을 맡는 유명한 성우들(멜 블랭크, 준 퍼레이 등)이 데뷔하고, 배경 음악이 본격적으로 삽입된 시점도 황금기이다.[18] 단편 카툰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도 1930년대 초 워너 브라더스, MGM, 테리툰즈, 컬럼비아 픽쳐스 등이 추가로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다사 애니메이션 경쟁 체제에 접어든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미키 마우스 단편 & 실리 심포니 단편의 병행 제작과 더불어 1930년대 초부터 3색 테크니컬러로 제작하기 시작했고[19] 1937년 제작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바탕으로 디즈니 스튜디오는 업계 외부의 유명세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환타지아가 흥행에 실패하며 파산 위기까지 직면했지만 2차 대전 선전용 애니메이션 제작과 덤보의 대흥행으로 벗어나올 수 있었다.[20] 1920년대 초부터 단편 카툰을 만들던 플라이셔 스튜디오는 베티 붑, 뽀빠이의 대흥행으로 한때 디즈니 스튜디오의 경쟁사였을 만큼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는 1934년부터 개정된 헤이즈 코드의 영향과, 1937년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들이 벌인 파업, 1941년 개봉한 'mister bug goes to town'[21]의 흥행 실패 등의 여러 사건사고가 겹치며 이듬해(1942년) 파라마운트에 인수당해 페이머스 스튜디오(famous studio)로 개명당하는 등 이전만큼의 위세를 발휘하지 못한다.
워너 브라더스가 1930년, 1931년 각각 공개한 루니 툰과 메리 멜로디스(merry melodies)는 스타 시스템 캐릭터, 대중음악, 할리우드 스타 등을 삽입했고 극초기 단편들은 디즈니 단편의 영향이 짙었다. 1933년 하먼-아이징 콤비의 이직으로 인해 캐릭터 체제가 대폭 변경된지 2년 뒤(1935년) 내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터미트 테라스'에 근무한 텍스 에이버리 & 척 존스 & 밥 크렘펫 등의 디렉터들은 애니메이션 제작과 더불어 활발한 의견 교류와 작업 현장을 필름으로 촬영하기도 했다.[22] 이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내부와 당시 업계에 많은 변화를 남기며, 활동 40년이 지난 1975년엔 이를 다룬 TV 다큐멘터리 The Boys from Termite Terrace가 제작되기도 했다.[23]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UA)는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터인 어브 아이웍스가 감독한 개구리 플립을 선두로 1930년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며, 1934년부턴 휴 하먼과 루돌프 아이징이 감독한 bosko & happy harmonies 시리즈가 제작됐으나 뚜렷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후 1940년에 처음 개봉된 톰과 제리로 인해 업계 내외에 보다 많은 인지도를 얻고, 애니메이션 추격물의 양산화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파라마운트 판결로 인해 영화사들이 독점적으로 영화관 운영과 배급업을 겸엽(& 겸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의 예약 보증이 상실되어 관련된 투자가 감소하는 등 인식이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했고, 1950년대 초부턴 텔레비전 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는등 미국 영화계, 영화 중심적이던 애니메이션 업계엔 큰 위기가 감지되었다. 판결 년도상 미국에서 TV 애니메이션이 양성화된 시기는 아니었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 차츰 확산된 TV 애니메이션의 대중적 인기로 인해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예전만큼의 위상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193~40년대에 비해 애니메이션에서 점차 캐릭터 디자인이 간소화되고 배경이 균일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3.2.1. 텍스 에이버리


30년대 중반부터 에이버리는 워너브라더스와 MGM에서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애니메이션에 여태껏 시도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개성적이고 과장된 코미디 연출, 개그 슬랩스틱을 시도해 애니 업계에 막대한 변동을 일으켰다. 척 존스나 밥 크렘펫 등의 같이 '터미트 테라스'에서 교류한 워너 브라더스 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전의 평면적이고 뮤지컬 중심적이던 미국 애니메이션이 변화하는 전환점을 마련해냈다. 30년대 말기엔 목표물을 노리지만 실패하는 사냥꾼 VS 사냥꾼을 온갖 방법으로 골탕먹이는 동물 캐릭터 구조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이전의 단순한 구조에서 보다 발전시켜 이후 애니메이션의 추격물 발전에 상당한 여파를 남겼다.
캐릭터가 움직일 때의 동작 연출은 비상식적으로 속력이 빨라지거나 과장되게 연출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개그 슬랩스틱을 표현할 때 해당 씬들의 동화 프레임이 무척 자연스러워지는 점이 특징으로, MGM에서 제작한 단편들에 보다 두드러지게 연출된다. 또한 나레이터가 해설하면서 캐릭터에게 나레이터가 말장난이나 농담을 건네고 중간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연출되는 단편들도 있으며, 아무런 옷가지를 걸치지 않고 털이 옷이나 다름없는 동물 캐릭터들을 메인으로 내세운 점에서 보듯이 이전까지 존재했던 애니메이션 속의 공식들을 과감하게 뒤집기도 했다. 에이버리가 시도한 애니메이션 연출들은 현대기의 미국 애니메이션들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지만, tv 애니메이션 작업에 뒤늦은 시기로 참여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난 점과 사후에 뒤늦게 대중적으로 재평가된 점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3.2.2. 척 존스


척의 초기 작품들은 디즈니 단편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40년대 중반부터 일부 단편에서 캐릭터의 행동에 숨겨진 내부의 욕망과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작품에서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동시기의 많은 애니들이 대중의 호응에 주력하기 위해 캐릭터 간의 경쟁 구도나 그에 따른 서로 주고받는 슬랩스틱을 위주하던 경향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그 속에서 캐릭터가 활동하는 본질적인 의미와 담겨있는 의지, 그에 맞춰 행동하는 생활상을 표현해내려 실험하고 연구한 것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그를 뒷받침하는 요소들론 캐릭터의 얼굴 감정이 비교적 섬세하지만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과 절묘히 부합한 표정이나 비웃는 상황 속의 미묘한 표정 등의 보다 다면적인 연출도 활용했다.
척의 작품에서 독보적인 점은 대부분 애니메이션 단편의 캐릭터들은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배우 대 배우의 행동을 모방하는 연기자에 맞춰 활약하는 전개가 많지만, 척의 작품에서의 캐릭터들은 사회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실제 사람들의 행동과 대사, 서로 다르지 않은 특성에 어우러진 전개를 맞춰가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존재 자체에 대한 예술성과 의의를 부여하려 시도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외적으로 평범하고 활발한 디자인에 대비되어 내적으로 동정받지 못하는 속사정(결함)이 담긴 캐릭터 디자인의[24] 빈도가 높아 이들이 주역인 작품들에선 그에 맞춘 분위기가 도드라지며, 개별적 공식을 덧입힌 추격물들을 여럿 제작[25]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식 비틀기와 만들기에 있어 극단적인 설정 단순화[26]가 일부 캐릭터에 나타난 점들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개별적인 성향을 지닌 캐릭터들의 비중이 당시 극장가에서 메이저 영화사들이 제작한 대표급 인기 애니들 중에선 상당히 뚜렷한 편이다.

3.2.3. UPA


1941년 환타지아의 흥행 참패에 따른 디즈니의 애니메이터 해고로 인해 촉발된 파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중 일부가 1943년 UPA를 설립하였고, 1948년부턴 UPA가 제작한 작품들의 배급을 콜럼비아 픽처스가 맡게 된다. 주로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를 제작했으며, 1952년 당시 존 허브레이의 정치 성향을 이유로 매카시즘 의혹에 휩싸이자 자진사퇴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후로도 여러 문제점에 직면해 1960년대 이후론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지하고 유통사로 전환하였다.
UPA의 주요 멤버인 존 허브레이를 비롯한 몇몇 애니메이터들은 디즈니의 리얼리즘적 애니메이션 제작에 쓰이는 시간 & 노동력 & 예산이 높은 문제점과 애니메이션이 현실처럼 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되는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였으며, 애니메이션 프레임 수를 기존의 24프레임에서 12프레임으로 낮추고 애니메이션의 배경 색상 단색화[27], 캐릭터의 양식화(단선화), 심플한 배경 구조 등을 활용해 디즈니와 반대되는 미니멀리즘의 예술적 실현을 이뤄내고자 주력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기법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동시기의 미국 애니계에 큰 영향을 미쳐 1953년 디즈니는 Melody & Toot, Whistle, Plunk and Boom에서 UPA식 연출을 써먹기도 했고, 이후 미국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도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였다. 하지만 초창기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예술적 실현이 아닌 제작 비용 절감이 주요 목적이었고, 척 존스는 이러한 추세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훗날 인터뷰에서 '편집된 라디오'(illustrated radio)라 부르며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3.3. 세계대전기(World War II age)[28]


일본군1941년 12월 7일, 갑작스레 태평양의 미국군 기지를 공습하는 사건이 발생해 소식이 미국 본토로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은 911 테러에 못지 않은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얼마 안 되어 미국 군대가 태평양 전선과 유럽 전선에 파견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영화사들은 반추축국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였다.
내외적인 사정이 좋지 않았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미국 정부의 의뢰를 수용해 총통각하의 낯짝, 죽음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death), 치킨 리틀(chicken little) 등의 많은 선전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여 호평을 얻어냈다. 페이머스 스튜디오(파라마운트 픽처스)나 워너브라더스도 뽀빠이, 루니 툰이나 스나푸 이등병 시리즈(private snafu) 등의 해외 미국군 병영 보급용 선전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내며 당시 미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한편으로 청량제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냉전 초기인 1940년대 말기 ~ 1950년대 초기에도 make mine freedom, Going Places, Why Play Leap Frog?, Meet King Joe, Albert in Blunderland, Inside Cackle Corners, Fresh Laid Plans 등의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들이 일부 제작됐었다. 참고 자료

3.4. 텔레비전기(Television age)[29]


1950년대는 텔레비전이 미국 전역에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시기였다.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도 1950년대 초부턴 디즈니랜드, 미키 마우스 클럽 등의 TV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포함해 기존의 애니메이션 중심 노선에서 변화를 시작해,[30] 할리우드의 일부 영화사들(워너 브라더스, MGM)은 TV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드높아진 60년대 초반부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폐쇄하고 외부 스튜디오에 아웃소싱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기기도 했다. 일부 업계 관련자나 메이저 애니메이터들이 별도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설립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1950년 방영한 crusader rabbit을 기점으로 단편 분량의 tv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면서 미국 tv 애니메이션의 개막을 알렸고, 1957년 설립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이 제작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젯슨 가족, 쟈니 퀘스트 등은 긴 분량(20분 이상)의 미국 TV 애니들이 양성화된 기폭제로 작용한 한편, 명실상부한 미국 애니메이션계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구조상 애니메이션 제작의 노동 집약적인 문제점을 고려해 제작 속도를 높이는 제작 기술들이 탄생했고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이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적용되면서[31] 텔레비전기에 제작된 많은 미국 TV 애니메이션들의 동화 프레임은 경직될 수밖엔 없었다. 1960년대 초부턴 황금기의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편집해 제작하는 쇼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60년대 중기에 나타난 슈퍼 히어로 붐으로 인해 관련 코믹스를 원작으로(마블 슈퍼 히어로즈 등등) 애니메이션들이 방송되는 등 TV 애니메이션은 대중적 오락 수단 중 하나로써 비중을 서서히 늘려나갔다.
한편 이 전성기가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 미국 명작을 애니메이션화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미국 애니메이션계에서 그 기회를 어쩐지 놓친 느낌이고... 그로부터 30여년 후에 새로운 도전 세력에게 그 역할을 빼앗겼다.
60년대 말기부턴 부모들이 모인 시민단체들이 제작사나 방송국에 토요일 아침 TV 만화를 포함해 일부 애니들의 폭력성을 이유로 한 영향력 행사참조1, 참조2가 속속 나타나[32] 지상파의 비중이 높던 당시의 미국 TV 애니메이션들은 이런 여론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황금기에 제작된 애니들을 방영할 땐 일부 폭력적인 장면들을 편집시키기도 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시행한 TV 광고 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80년대 중기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장난감 회사들의 라이센스 캐릭터 제품이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 지상파에 비해 비교적 제약이 적은 신디케이션 방송망[33]으로 방영하는 경향이 나타나, 마이 리틀 포니, 트랜스포머, 지아이조, 히맨 등의 작품들이 제작되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이 작품들도 제작 과정에 스폰서가 관여한 영향으로 시나리오, 캐릭터 설정에서 동시기 TV 애니메이션과 별반 차별화되진 않았는데, 텔레비전기의 TV 애니들은 제작사, 방송국, 스폰서 관계자들의 기획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이 많아 저연령 위주의 내용에 중점적으로 맞춰지는 경향이 두드러져 많은 인기와 더불어 일부는 현대기까지 후속작이 제작될 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들도 탄생했단 이점이 있었다. 반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 상에서 창작자 중심 애니메이션 제작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과[34] TV 애니메이션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시나리오 & 세계관, 스토리텔링과 균일화된 캐릭터 디자인 설정이 이어지며 TV 애니메이션이 아동 위주의 매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치명적인 결함이자 매너리즘'''을 야기했고, 잦은 뱅크신이나 작화붕괴 등등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상당히 저조해진 문제점도 두드러졌다.[35][36]
1950년대부턴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도 미국 애니메이션이 수출되어 극장에 개봉되거나 TV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수입한 철완 아톰, 스피드 레이서, 우주전함 야마토, 로보텍, 백수왕 고라이온 등이 방영되자 미국인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자신들이 감상한 애니메이션들관 색다른 면들이 있었고,[37]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료된 소수 시청자를 바탕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 형성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훗날 미국 애니계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출 및 작화 기법에 영향을 받은 애니메이터들도 나타났다. 1970년대 초부터 랄프 박시를 시작으로 소수 감독들이 성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성인 애니메이션 필름 목록 중 미국의 경우 참조, 일부 제작자들은 실험적으로 예술적 영역을 도입한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을 수여받은 사례도 있었다.
과거 디즈니의 나인 올드맨을 비롯해 황금기에 일했던 애니메이터들이 197~80년대를 전후로 사망하거나 은퇴하는 등 애니메이터의 대대적인 세대 교체가 이뤄졌는데, 존 라세터나 존 크릭팔루시 등도 일부 구세대 애니메이터들이 생존해 있던 1970년대 말기엔 신입으로 일하고 있었다. 1980년대엔 부분적으로 미국 애니메이션에 CG컴퓨터 기술이 삽입되기 시작하며, 일본, 유럽,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거나 하청을 맡기기도 했다.[38] 같은 시기 MTV의 뮤직비디오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시퀀스들은 애니메이션의 예술적 실험이란 가능성을 상기시키면서 업계 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다.

3.4.1. 윌리엄 해나 & 조셉 바베라


추격하는 포식자를 온갖 방법으로 골탕먹이는 약자와 포식자를 제압할 수 있는 제3자 캐릭터 구도 추격물의 표본인 톰과 제리를 제작한 것과 더불어 황금기 이후 양성화된 미국 tv 애니메이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미국 본토에선 이들의 작품, 제작사의 영향으로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몇 안되는 애니메이터들로 꼽힌다. 그들이 설립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은 훗날 현대기를 빛나게 한 명작 애니들은 물론, 현재 메이저 애니메이션 감독들로 자리잡은 애니메이터들을 양성해냈다.
196~80년대 수많은 미국인들이 시청하고 인기를 얻은 작품들을 제작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의(해나-바베라 콤비가 책임 제작자를 맡은) 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캐릭터간의 파트너십 연출과 콤비 캐릭터 구성,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이나 톰과 제리에서 볼수 있듯 우스꽝스런 사운드[39] 효과와 우스꽝스런 동작의 슬랩스틱 개그씬 등이 있다. 이중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젯슨 가족 등에서 나타난 가족주의 연출은 훗날 심슨 가족, 패밀리 가이 등의 가족물 시트콤에 간접적인 영향을 남기기도 했다.

3.4.2. 랄프 박시


1950년대 말기부터 애니메이션 업계(테리 툰즈)에서 일하며 경력을 다져, 1968년 자신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주류 애니메이션의 대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박시 프로덕션의 공동 설립자로써 메이저 애니메이터의 토양을 다진 박시는 1972년 첫 감독 장편인 고양이 프리츠로 유명세를 얻었다. 197 ~ 80년대에 제작한 박시의 작품들은 동시대의 저연령층을 겨냥했던 많은 TV 애니메이션들관 상당히 차별적인 노선의 연출을 시도해, 이전까지의 업계인들이 내외적인 요인으로 발휘하지 못한 성적, 정치적 주제, 정교한 폭력, 욕설 연출, 블랙 유머들을 극단적으로 과감히 밀어붙여 연출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성인 애니메이션 제작의 출발과 동시에 독립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부분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공장식 시스템이 굳건한 당시 TV 애니메이션에 창작자 중심(creator-driven) 시스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때 제작한 작품이 마이티 마우스(80년대판)이다.

3.5. 현대기(Modern age)[40]


1985년 디즈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시범적으로 'The Wuzzles', 'Disney's Adventures of the Gummi Bears'에서 시도한 기존의 TV 애니들관 다른 고예산 애니메이션 제작은, 이후 덕 테일즈(1987년)를 비롯해 계속 고예산 TV 애니메이션이 미국 애니계에서 제작되는 밑거름을 마련했다. 1988년 브에나 비스타 배급으로 개봉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4개의 아카데미상 부문을 수상받는 등 내외적으로 많은 호평을 얻었고, 황금기 애니메이션에 대한 재조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듬해(1989년) 개봉된 인어공주의 전세계적 대성공과 더불어 몇년간 이어진 디즈니 1차 르네상스 기간에 개봉된 장편 영화들은 발표될 때마다 많은 인지도와 호평을 받으며 유명세를 얻었다. 워너 브라더스 또한 1989년 본사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재활성화해 제작한 타이니툰, 애니매니악스,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 등으로 이전의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새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현대기 애니메이션 질적 수준 향상의 큰 중추가 된다.
1987년 박시 프로덕션이 제작한 마이티 마우스(애니메이션)의 내부적인 연출들은 이전의 TV 애니메이션과는 대비된 창작자 중심 제작으로써 출발했고, 몇년 뒤 케이블로 방영된 타이니 툰 & 애니매니악스 & 렌과 스팀피 & 우당탕탕 로코와 친구들 & 덱스터의 실험실 등의 변화된 애니메이션 제작 구조 & 개성적 캐릭터, 스토리텔링 연출 & 블랙 코미디 설정이 덧입혀진 창작자 중심 TV 애니메이션 확산의 첫걸음을 도약했다. 이 시기에는 《네모바지 스폰지밥》, 《파워퍼프걸》 등 블랙유머가 가미된 작품들도 대거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87년 폭스 채널의 트레이시 울먼 쇼에서 1분짜리 단편 카툰으로 출발한 《심슨 가족》은, 1990년부터 독립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방송되며 미국 전역에 전파를 탔다. 지상파 채널에서 주요 TV 시청대 중 하나인 일요일 오후에 편성되어, 기존의 TV 애니들과 구별된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사고를 그려낸 스토리텔링과 사회를 일상적인 가족들로 풍자하는 시나리오로 극초기엔 일부 시청자들과 부시 대통령의 비난을 비롯한 많은 논쟁들이 빚어졌다. 하지만 심슨 가족의 영향과 파급력은 이후 현실 사회를 바탕으로 설정한 세계관을 다뤄 정치풍자를 연출한 《사우스 파크》, 《패밀리 가이》, 《퓨처라마》, 《비비스와 버트헤드》 등의 성인 애니메이션들이 연이어 제작되는 밑바탕을 제공했고, 그 애니메이션들을 편성하는 어덜트 스윔이나 2차 창작물 발표도 줄곧 이어진다.
1990년대 초 개국한 폭스 키즈, WB, 니켈로디언, 카툰 네트워크처럼 애니메이션 시간대가 대폭 증가한 케이블 채널의 약진과 어린이 텔레비전 법 제정으로 인한 지상파의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 감소 등을 포함한 여러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과거 ABC-CBS-NBC 3국 중심의 지상파 TV 애니메이션 방송 체제는 몰락하게 된다.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아시아 & 동남아시아 등의 해외 제작사에 하청 제작을 맡기고 본사에서 시나리오,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보딩 등의 중점적 제작을 맡는 사례가 늘어났다.
2010년대 현재 미국의 메이저 애니메이터들이 현대기 초반부터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속속 나섰다. 이 중엔 해나-바베라에서 이직해 일부는 제작사를 설립한 애니메이터도 있으며, 존 크릭팔루시, 세스 맥팔레인, 겐디 타르타콥스키, 로렌 파우스트, 버치 하트먼, 데이비드 실버먼, 스콧 펠로스, 스티븐 힐렌버그, 크레이그 맥크라켄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활약과 더불어 현대기에 미국에서 인지도가 상승한 애니메이터들이 보다 늘어났으며, 적극적으로 팬덤과의 교류를 추진하기 시작하고 신세대 애니메이터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과거 황금기, 텔레비전기에 제작된 애니들이 DVD로 발매된 것과 9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된 인터넷의 영향력, 지속적인 방영까지 겹쳐 이전에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애니메이션들과 숨겨진 제작 비화,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알려지지 못한 사연들까지 쉽게 재발굴되면서, 황금기에 활약한 일부 애니메이터들과 동시기의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재조명되고 팬덤이 형성되는등 재평가받는 경향이 나타난다.
현대기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1989년의 《인어공주》, 1990년의 《미녀와 야수》, 1992년의 《알라딘》, 그리고 1994년의 《라이온 킹》으로 디즈니는 극장용 2D 애니메이션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장식했다. 흔히 말하는 (1차) 디즈니 르네상스도 이 시기였고, 지속된 디즈니의 투자와 배급은 픽사가 《토이 스토리》(1995년작)로 업계의 흐름을 3D 중심으로 바꾸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변화를 통해서 정작 디즈니의 상징과 같았던 2D 애니메이션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주류에서 밀려난 것은 아이러니하달까. 대신 픽사는 업계에 메이저 제작사로 그 인지도를 알렸다.

3.5.1. 픽사


본래는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부문 부서로써 출발했으나, 1990년대 초부터 장편 애니메이션을 생산하면서 디즈니와 공동 제작 체제를 만들어내게 되고 자사의 3D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을 발표하면서 대성공을 거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흥행 부진으로 픽사의 중요성을 깨달은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자회사로 인수하였고, 존 라세터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 체계 개혁과 더불어, 2014년 개봉한 《겨울왕국》이 전세계적으로 대흥행을 기록하는 등 2차 디즈니 르네상스(디즈니 리바이벌)란 평가를 받으며 달려나가고 있다.

3.5.2. 돈 블루스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돈 블루스(Don Bluth)는 토드와 코퍼 이후 퇴사하여 상당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국내에는 게임 Dragon's Lair와 아나스타샤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미권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다. 20세기 폭스가 애니메이션 분야를 일시적으로 철수하게만든 타이탄 A.E(2000)의 대폭망 이후로 돈 블루스는 일선에서 물러났다.
  • The Secret of NIMH (1982) - MGM
  • An American Tail (1986) - 유니버셜 스튜디오
  • The Land Before Time (1988) - 유니버셜 스튜디오
  • All Dogs Go to Heaven (1989) - MGM
  • Rock-a-Doodle (1991) - 사무엘 굿윈 컴퍼니
  • Thumbelina (1994) - 워너브라더스
  • A Troll in Central Park (1994) - 워너브라더스
  • The Pebble and the Penguin (1995) - MGM
  • Anastasia (1997) - 20세기 폭스
  • Bartok the Magnificent (1999) - 20세기 폭스 [41]
  • Titan A.E. (2000) - 20세기 폭스

4. 분류



4.1. 매체



4.1.1. TV 애니메이션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의 정기적인 TV 방영이 시작된 시기는 TV 보급이 정착된 1950년대로 짧은 분량의 애니메이션들이 방송되기 시작하다, 현재의 분량에 해당하는 TV 애니메이션은 그보다 얼마 지난 1950년대 말기부터 나타나 1960년대부터 발표 수가 증가했다.
이쪽은 미국 국내 시장으로도 어느 정도 수익이 나오고 수출도 잘되는 편이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드는 만큼 주로 바이어컴이나 워너브라더스 같은 대형회사가 제작하지만, 고자본이 소모되는 장편 작품과는 생태계가 달라서 디즈니니켈로디언 등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제작하는 TV용 작품의 대부분은 2D 애니메이션이고 저연령층 위주로 많이 나온다. 이런 물건들은 한국에서는 디즈니채널, 니켈로디언 등에서 더빙해서 나온다. 이름 대면 알 만한 성우들도 많고 그 성우의 인식을 깨는 캐릭터에 더빙도 알맞아서 충격과 공포를 느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루니 툰이나 네모바지 스폰지밥처럼 아동 취향의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나 성인 취향에 맞춘 유머가 듬뿍 들어간 물건들도 제법 나오는 편. 심슨 가족만 해도 유명하지만 아이들 보라고 하긴 좀 애매한 설정들이 많다. 《사우스 파크》처럼 성인을 타겟으로 과격한 성향을 보이는 극단적인 물건들도 인기를 끌며, 이런 물건들의 경우 대상 시청층이 좁은 만큼 특히 플래시 계열 애니메이션을 쓴 저예산 작품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사우스 파크》는 제작 기간이 1~2주 내외라서(20분짜리 한편당, 프리프로덕션 포함) 그만큼 인건비를 포함한 제작 비용은 떨어지게 된다. 사우스 파크만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아처라던가 보잭 홀스맨처럼 성인지향적이면서도 상당한 인기를 끄는 물건들도 제법 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나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레귤러 쇼》, 《그래비티 폴즈》, 《스티븐 유니버스》 등등 얼핏 아동층을 노린 듯 하면서도 성인적 취향도 잘 만족시키는 독특한 설정의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쪽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들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마블 애니메이션, 카툰 네트워크 스튜디오, 쿠키자 그룹, 디즈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해즈브로 스튜디오, 니켈로디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워너 애니메이션 그룹 등이 있다.

4.1.2. 극장 애니메이션


미국의 애니메이션 중에선 역사가 무척 오래된 장르이며,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진 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겨냥한 상업용 단편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높았다. 1922년에 MPAA가 설립되었으나, 1968년 이전까지 영상물 등급 제도같은 등급 분류는 실행되지 않았다.
베티 붑, 루니 툰, 톰과 제리에서도 알수 있듯 초창기의 극장 애니메이션은 아동들이 만족할 수 있는 캐릭터를 출연시키되 대부분 성인 취향의 유머를 삽입한 작품들이 많았으며, 해당 작품들은 몇몇 캐릭터를 주역으로 삼은 슬랩스틱 에피소드를 비롯해, 할리우드의 인기 영화배우들이나, 재즈를 포함한 대중음악, 고전 서적,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연출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아동 친화적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디즈니 작품에서도 193~50년대에 발표된 극장용 단편에선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오거나, 캐릭터들이 음주나 흡연을 하는 등[42] 총기를 마음껏 휘두르는 장면들이 많았다. 극장 애니메이션의 비중은 아동 성향의 작품이 높으며, 1970~80년대에 발표된 성인 애니메이션들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사례가 많았다.

4.2. 제작



4.2.1. 플래시 애니메이션


TVA로 많이 만들어지는 카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최적화된 어도비 플래시를 사용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기본적으로 2D 벡터 그래픽을 사용하기에, 셀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 모두와 차별화되는 독특한 그림체를 가진다. 또한 모션 트위닝, 모양 트위닝 기능은 키프레임만 만들면 중간 장면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기에 제작비를 절감하기 좋다. 가속, 감속 기능 또한 제공하므로 잘 사용하면 트위닝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조각을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필요할 때 재사용할 수 있는 심볼 기능을 제공한다. 트위닝과 조합해 관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식의 활용도 가능하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트위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애니메이션과, 셀 애니메이션처럼 한 프레임씩 직접 그리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 프레임씩 그릴 경우 실제 셀 애니메이션처럼 이전 프레임과 현재 프레임을 겹쳐 보는 기능 또한 제공한다. 보통 한 프레임씩 그리더라도 트위닝을 사용하긴 사용한다.

4.2.2. 3D 애니메이션



4.2.3. 셀(2D) 애니메이션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 중에선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를 활용한 작품들이 계속 제작되고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선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어 셀 애니메이션으로 검색해도 자동으로 리다이렉트된다. 역사가 가장 긴 만큼 이를 보완한 기법들이 여럿 개발되었는데,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 멀티플레인 카메라 기법, 제로 그라피 기법, APT 프로세스 기법, 실사 액션 기법, 로토스코핑 기법[43]이 이에 속한다.
1980년대 들어서부턴 시범적으로 2D 애니메이션 기법에 CG나 컴퓨터 기술을 도입한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어, 현재에도 컴퓨터 제작 기법이 2D 애니메이션에 응용되는 밑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4.2.4.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미국에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중엔 비중이 매우 낮다.

5. 장르



5.1. 아동용, 전연령층


미국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나 아동을 고려하게 배경을 설정하여 제작되는 작품들이 많다. 이에 따라 폭력적인 장면과 성인적이거나 시청자한테 암울하거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묘사는 대폭 약화시켜 연출하는 사례가 많다. 다만 시대가 변화하여 1990년대부턴 어두운 연출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연출되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블랙 유머가 삽입되는 작품도 늘어났다. 1950년대 중기부터 지상파 방송사에서 주로 애니메이션이 편성해 방영됐으나, 1990년대부턴 케이블로 편성 비중이 많이 이동한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미국 애니메이션은 이 장르의 작품들이 많으며, 관련 전망 또한 2000년대 들면서 아동용 애니의 제작이 줄어들며 매니아층으로 생산 비중이 쏠린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할 때 낙관적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동용 작품 제작이 줄어든 원인 중 하나로 출산율 저하가 꼽히는데, 이에 비해 미국은 이민 국가이고 출산율도 선진국 치고는 높아서 아동용 애니의 제작은 계속 활발할 것이란 주장이 있다.

5.2. 슬랩스틱 코미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시청자로 하여금 관심과 웃음을 유발하도록 개그씬이 삽입되는 애니메이션을 말하며, 출발점은 1930년대의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애니메이션보다 영화에서 먼저 탄생한 코미디 기법으로 초기의 미국 애니메이션이 영화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5.3. 로봇물


TV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활성화된 시점인 1960년대부터 메인 주제나 캐릭터로 로봇을 다룬 애니메이션들이 미국에서 여럿 제작된 바 있었다. 80년대 이후 들어 미국 로봇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인 트랜스포머를 기점으로, 스토리 전개를 진보시켜 무거운 세계관이나 어두운 분위기를 다룬 로봇물도 제작되고 있는 추세이다.

5.4. 시트콤


1960년에 처음 방영을 시작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이 시조격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초창기엔 가족의 일상 생활을 다루면서 동시에 이웃 가족들의 생활을 다루는 시트콤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었으나, 현대기(1990년대 초기)부턴 정치 풍자를 집어넣은 시트콤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어 방송하는 추세이다.
젯슨 가족과 심슨 가족 등처럼 배경으로 가족 생활을 다룬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시트콤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된다. 과거 황금 시대에 제작된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들도 TV판으로 제작되면서 시트콤적인 경향으로 바뀐 작품들이 여럿 존재한다.

5.5. 슈퍼 히어로


1941년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슈퍼맨을 바탕으로 제작한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미국 슈퍼 히어로 애니메이션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1960년대부터 미국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슈퍼 히어로 장르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활성화되어, 인간형 슈퍼히어로뿐만 아니라 동물을 모태로 한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도 여럿 제작되었다.
1970년대부턴 미국 비성인 애니메이션의 폭력성이 약화되면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액션 씬들이 이전에 비해 줄어들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다크 히어로물같이 어두운 분위기의 슈퍼 히어로 애니메이션도 제작되고 있다.

5.6. 성인 애니메이션


1930년 미국 영화 협회(mpaa)는 영화를 비롯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포함시켜 헤이즈 오피스의 헤이즈 코드란 심의 규제를 시행하게 된다. 이후부터 업계에선 헤이즈 코드의 심의 규정을 감안해 성인적인 유머들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돌려서 연출하는 관행이 생겨났었던 것.[44]
이후 1972년 개봉된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는 개봉 당시 MPAA로부터 X등급으로 분류되었고 언론들과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얻었으며, 미국 애니메이션에선 최초로 완전한 성인 등급을 심사받은 애니메이션이란 기록을 성립했다. 1972년 개봉 당시 포스터 상영 전 공개된 트레일러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부 감독들이 성인용 극장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으며, 1990년부턴 FOX에서 방영을 시작한 《심슨 가족》으로 성인 애니메이션은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주요 장르로 자리잡게 된다. 타 방송사에서 제작한 성인 애니메이션들은 미국 외에 많은 인지도를 알리진 못했으며,[45] 그보다 약 20년 앞선 1972년에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에서 Wait Till Your Father Gets Home을 제작하기도 했다.[46]
성인 애니메이션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선 사실적인 연출이 불가능한 총기나 폭력, 음주 및 흡연과 출혈 및 살인, 섹드립과 욕설 등을 제대로 연출해낸다. 경우에 따라 캐릭터의 전라 씬이 나오는 작품도 있으며, 보통 TV-14 이상의 등급으로 배정받는다. 주요 작품들은 패밀리 가이, 아메리칸 대드, 사우스 파크, 퓨처라마, 로봇 치킨, 킹 오브 더 힐 등이 있다.

5.7. 블랙 코미디


미국 애니메이션의 블랙 유머 연출은 193~40년대에 발표된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캐릭터들이 권총을 겨누어 자살하는 장면들이 나오거나 다른 캐릭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들도 많았고, 주인공보다 악역이 안습적인 상황을 겪는 애니메이션들이 꽤 나왔었다. 하지만 1950년대 말기(텔레비전기)부터 아동층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의 tv 애니메이션들이 다수 제작되어 인지도를 쌓으면서 이런 유머들은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47] 이후 20여년이 지나 현대기의 일부 작품들로부터 블랙 코미디는 다시금 부활해 현재의 미국 TV 애니메이션에서 양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블랙 유머를 담은 애니메이션들은 폭력성이나 선정성에 따라 TV-14 이상의 등급로 분류되는 사례도 있으며, 제작진들이 성인적인 농담이나 유머를 시청자 눈에 잘 모르게 숨겨놓거나 약화시켜 반영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런 애니들을 제작하는 회사 중에선 비성인 등급 기준으로 니켈로디언과 카툰 네트워크가 대표적. 물론 성인 애니메이션들이 아동용에 비해 제대로 현실의 모습을 반영시키기 때문에 자연스레 성인용 애니메이션도 블랙 코미디 장르에 속한 작품이 많다.
아동용 애니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종종 나타나는데, 중간중간에 아이들은 모르고 넘기지만 어른들은 알수 있는 개그들을 넣기도 한다. 일례로, 디즈니에서 방영된 아동용 만화영화인 피니와 퍼브에서 수천년동안 얼음에 같혀있던 사람들을 꺼내면서 "이사람들이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면 얼마나 놀랄까? 물론, 정치는 빼고 말이야." 하는 식의 농담을 친적이 있다.

5.8. 병맛


1991년 방영된 렌과 스팀피에서 제작진이 시도한 비정상적이고 똘끼 넘치는 캐릭터 설정, 그로테스크한 작화 노출이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속속 확산 & 제작되면서 아동 & 전연령 애니메이션들과 성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이러한 엽기적 요소들을 도입해나간 작품들이 2010년대 현재에도 시청자들한테 인기를 끌면서 지속하는 중이다.
대체적으론 작화의 기괴함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많거나, 상대적으로 아스트랄한 세계관 & 내부 설정이 마련된 애니메이션들이 이 장르에 해당한다고 할수 있는데, 성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일부 작품이 해당된다.

6. 기법 및 연출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제작 극초기인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진 주로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해왔다. 다만 1980년대 초반부터 부분적으로 컴퓨터 기술을 도입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 시작해, 1995년의 토이스토리를 기점으로 전체적 3D 기술을 삽입한 미국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고 있다.
1950년대 당시 걸음마를 뗀 미국의 TV 애니 업계에선 UPA에서 활용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써먹는 관행이 나타났는데, 이런 방식은 기존에 썼던 원동화 프레임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텔레비전기에 제작된 tv 애니메이션에선 작화붕괴, 뱅크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미국 애니메이션의 연출은 대체로 한 에피소드의 내용이 다음 에피소드와 연결되지 않는 옴니버스 연출이 위주이다. 그렇다 보니 설정충돌이 빚어져 내외적으로 논란이 빚어진 작품들도 존재하며, 네모바지 스폰지밥처럼 한 작품 내에서 상당한 설정변경이 일어나는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 이외에 특정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비정기적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완전한 옴니버스 구성이 아닌 애니메이션도 나오는데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가 그 예시에 속한다.
역동적 동화를 위해 눈이 순간적으로 여러 개가 나오는 연출은 황금기 시절의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먼저 시작한 것으로,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이를 따라한 작품들이 나타났다. 소위 '눈깔괴물'이라 불리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매체도 초창기의 미국 애니메이션들로써,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한 2차 대전 이후의 일본 만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속칭 'rubber hose'(고무 호스)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팔다리가 고무처럼 늘어지며 유동적인 곡선 구조를 띄는 개념으로, 미국 애니메이션 태동기의 펠릭스 더 캣으로부터 부분적인 묘사가 시작되어, 황금기까지의 플라이셔 스튜디오 & 디즈니 스튜디오의 초창기 작품들, 밥 크렘펫(워너 브라더스) & 텍스 에이버리(MGM)의 감독 작품들, 현대기의 렌과 스팀피, 네모바지 스폰지밥,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쳐 타임 등에서 활발히 쓰이는 중이다.

7. 특징



7.1. 아동용의 폭력, 선정적 요소 제한


아동용이나 전연령층 애니메이션에 한해서 폭력적, 선정적인 행위를 표현하는데 대해 내외적으로 엄격한 경향을 유지 중이며, 다수의 TV-PG 미만 등급을 부여받은 애니메이션들이 이에 해당된다.
상세한 시작 경위가 불분명하고 코믹스 코드같은 별도의 규제가 제정되진 않았으나, 영어 위키백과의 애니메이션 문서 정보들을 살펴보면 케이블 & 신디케이션으로 방영된 캡틴 플래닛, 덕 테일즈, 타이니 툰, 렌과 스팀피, 파워퍼프걸 등에서 종종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오는 것과, 여러 시민단체가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상파 애니메이션들의 폭력성을 비판한 시점이 1960년대 말기인 점,[48] 1960년대 초중기의 미국 애니메이션들에서 총기를 활용하는 씬과 캐릭터들이 다른 캐릭터를 폭행하거나 어떤 물건들로 때리는 씬이 많은 점으로 살펴볼 때 미국 애니메이션의 심의 강화는 업계 외부의 여론을 고려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자체적으로 폭력성을 약화시킨 자율규제에 가깝게 시작된 결과로 결론지을 수 있다.[49] 이런 과정은 다른 애니메이션 생산국인 일본, 한국과 닮은 점들도 여럿 있다.[50]
선정적인 연출에 대해선 상당히 예민하고 엄격해 관련 연출이 아동용, 전연령층 애니에선 존재하지 않거나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런 점은 1970~80년대의 아동 시간대 애니메이션에 대놓고 판치라, 서비스 씬들이 나왔던 일본 애니메이션과 확실히 대비된다. 이외로 욕설과 관련해 아동용, 전연령층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될 땐 비프음을 덧붙이는 등 직접 연출하진 않는다.[51] 총기 관련 묘사도 1960년대 중기까진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연출되는 작품들이 있었으나, 이후부턴 가급적 나오지 않게 하거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시키는 불문율이 생겼고, 술담배 & 마약 표현, 사람이 죽거나 살해당하는 묘사도 전연령 애니메이션에선 대부분 편집, 대체되는 등 자체적으로 관련 묘사를 제한시키고 있다.
물론 이건 미국 애니메이션 전체의 특징으로 일반화시키기 곤란하며, 등급을 올려서 작정하고 성인 대상으로 나오는 경우는 남과 같이 보기 민망할 정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보이는 물건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사우스 파크.

7.2. 시즌제 구성


TV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 중 하나로 미국 애니 업계에선 초창기부터 시즌제를 활용해 한 애니메이션의 전체 회수를 일정한 기준으로 조절해 늘려나가거나 축소시키는 방법을 활용 중이다. 2010년대 현재 한국 애니도 시즌제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입장에서 볼땐 분할 시즌제를 활용한 2000년대 중기보다 약 50년은 빠른 시기부터 활용하고 있는 선배기도 하지만 일본 애니 업계는 주로 tv 애니메이션 회수를 시청률 상승, 관련 제품 수익 상승 등 여러 요인이 발생하면 회수를 일정한 기준으로 그치지 않고 늘리는 방식을 활용했던 반면, 미국 애니계는 전자의 요인들이 발생해도 일정 회수로 시즌을 정해 애니메이션의 방영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을 활용한 점에서 두 업계를 구분짓는 차이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장점은 만약 실패해도 적자를 최소화시킬수 있고 좋은 작화를 기대할수 있지만 단점은 애니를 장기간 방영을 못해서 그 기간 안에서 에피소드를 끝내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8. 문제점




9. 여담


  •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간대는 과거 편성된 시간대까지 포함하면 대략 평일, 토요일 아침, 프라임 타임으로 나뉜다.
  • 1920년대 말기부터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의(정확히는 카툰체 캐릭터) 손가락은 4개로 표현되는 전통이 있다. 이러한 관행을 설명하는 주장 중 하나로 애니메이터들이 손가락을 1개 적게 그릴 때마다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에 표현되는 눈물과 땀 묘사는 대개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날씨가 더울 때 몸 전체에 (땀을) 흘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눈물이나 땀을 감정 묘사(약한 슬픔, 당황, 긴장 등)의 용도로 활용하나,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용법이 거의 없다. 그저 침울하거나 난처한 얼굴 표정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현지화될 때 눈물과 땀 표현이 편집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며, 해외 애니메이션 편집으로 미국인 애니 덕후들에게 많은 악명을 남긴 회사가 4Kids Entertainment다.[52]
  • 미국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그림체는 대폭적으론 카툰(cartoon)체와 코믹(comic)체로 나뉘는데, 전자는 초창기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시작된 그림체이며, 후자는 1960년대 들어 미국의 TV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증가하면서 묘사 빈도가 대폭 증가했다.
  • 태동기(1910년대 ~ 1920년대 중기)에 제작된 미국 애니메이션 극장용 단편 중 일부가 필름이 유실되어 감상이 불가능해진 작품도 있으며,[53] 극장에서 재상영을 거듭해 오리지널 타이틀 카드가 유실된(루니 툰) 작품도 있는데 2000년대에 DVD가 발매된 뒤에도 일부 타이틀 카드는 찾아내지 못했다.
  • 한국, 일본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TV판에선 애니메이션 예고편이 포함되어있지 않단 차이점이 있다. 물론 잠깐 쉬어가는 시간에 짧은 애니메이션을 방송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아이캐치와 비슷한 목적의 카툰 범퍼(cartoon bumper)로 명명된다.

10. 관련 행사



10.1. 시상식



10.2. 동인 행사


  • 코믹콘 - 종종 코믹콘 행사장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애니메이터 등의 업계인이 참석해 팬들과 인터뷰를 나누기도 한다.

11. 관련 기관



12. 관련 문서


  • 미국 애니메이션 갤러리
  • 만화 및 애니메이션 관련 정보
  • 미국 만화
  • 일부 TV Tropes, 영어 위키백과 문서들에 미국 애니메이션 관련 항목들이 있다.
  • 구글 도서로 관련 용어를 검색해 미국 애니메이션 관련 자료[54]를 열람할 수 있다.

[1] 1900년대 중기부터 1920년대 말기까지.[2] 1920년대 말기부터 1960년대 말기까지.[3] 1940년대 초중기 한정.[4] 1950년대 중기부터 1980년대 말기까지, TV tropes에선 dark age of animation(애니메이션의 암흑기)로 부른다. 이 시기에도 좋은 애니메이션은 꽤 제작되었으나 점점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이 아동에 집중되어가면서, 질적으로 퇴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80년대 말에 다가갈수록 심해져서 장난감을 팔아먹기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소리도 나올 지경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많았다.[5] 1980년대 말기부터 현재까지.[6] 다만 TVA의 제작편수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밀려 있다. 정확히는 미국 TVA가 초창기부터 시즌제 편수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그러지 않던 일본 TVA보다 제작편수가 상대적으로 뒤쳐진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7] 디즈니 암흑기간 동안의 2D 작품 흥행 실패로 수뇌부는 2D 애니메이션의 상업성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픽사 합병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가 된 존 라세터와 에드 캐트멀은 '디즈니의 전통을 살리자'는 취지로 거의 와해된 2D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모아 《공주와 개구리》, 《곰돌이 푸 2011》을 제작했지만 두 작품이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디즈니는 사실상 장편 2D 애니메이션 제작을 포기했다. 2D 애니메이션계의 절대강자인 디즈니가 이런 판이니 다른 스튜디오는 말할 것도 없고.[8] 1900년대 중기부터 1920년대 말기까지.[9] 그의 아들이 영화 감독 리처드 플라이셔.[10] 디즈니 데뷔 이전에 플라이셔 형제는 자신들의 애니메이션 연출 기법과 로토스코핑 기술을 만들어낸 걸출한 제작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후 1934년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로토스코핑 독점권이 만료되자 서둘러 이 기법을 스튜디오에 도입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제작에 써먹었고, 어찌 보면 디즈니마저도 이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곤 할 수 없었다.[11] 폴 디니를 위시한 제작자들이 1940년대에 제작된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슈퍼맨 시리얼 애니메이션에서 직접적인 제작 동기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12] 해당 링크 참조, 리본의 기사의 주인공인 사파이어의 머리카락은 베티 붑의 뾰족한 머리카락에 부분적으로 영향받은 흔적이 존재한다.[13] 다른 스튜디오 중 워너 브라더스MGM 계열에도 유명한 감독이 배출되었다.(척 존스, 텍스 에이버리, 해나-바베라 콤비) 전자는 루니 툰 단편 제작 이후 이직하거나 제작사를 차린 애니메이터도 있었고(프리즈 프리랭 : 데파티-프리랭, 필 로먼 : 필름 로먼, 척 존스 : 시브 타워 12 프로덕션), 후자는 애니메이터들 중의 일부 인력이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으로 이직했다.[14] 존 라세터도 1세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디즈니 계열 애니메이터 중 1명이고, UPA 또한 일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졌으며, 플라이셔 스튜디오는 1942년 페이머스 스튜디오로 인수당해 이들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15] 1920년대 말기부터 1960년대 말기까지.[16] 193, 40년대에 루니툰, 디즈니 캐릭터들을 주역으로 아동층을 겨냥한 코믹스들이 발매된 적도 있다.[17] 영화 제작 규정(헤이즈 코드) 같은 검열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기처럼 TV 보급으로 애니메이션 시청이 손쉬워져 부모들이나 시민단체의 눈치볼 필요 없이 애니메이터들이 개별적으로 유머 & 개그 연출 창작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18] 월트 디즈니의 실리 심포니(1932년), 워너 브라더스의 메리 멜로디스(1934년)를 시작으로 영화사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에 테크니컬러를 도입시키고, 1950년대 중기엔 잠시 시네마스코프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다.[19] 테크니 컬러 사와 3색 테크니 컬러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약 협상을 체결한 후문이 있다.[20] 밤비와 'Victory Through Air Power'의 흥행 실패로 인한 영향으로 신데렐라(애니메이션) 이전까진 3~40분대 분량의 영화들을 제작했었다. (밤비는 1947년 재개봉으로 흥행에 성공했다.)[21] 개봉일이 진주만 공격 이틀 전이었던지라 크게 관객을 끌어모을 환경도 조성되지 못했다.[22] 2012년 다큐멘터리 king-size comedy 참조.[23] http://www.imdb.com/title/tt0535649/imdb 참조.[24] 찰리 독, 주니어 베어, 와일리 코요테, 페페 르 퓨 등.[25] 활동 배경이 일정하게 제한된 점과, 악역이 혼자 뻘짓을 저질러 온갖 고난을 겪는 점, 직장동료로 휴식 시간에는 같이 덕담을 하는 점 등.[26] 얼굴에 눈밖엔 없는 캐릭터인 화성인 마빈, 노래 부르기를 빼곤 아예 대사가 없는 미시건 프록.[27] 전체 배경 색상이 다색이 아닌 단색으로 차있거나, 하늘 색상과 그외 건물이나 캐릭터 색상이 두개의 대조되는 색으로 한정된 연출을 말하는데 1990년대의 파워퍼프걸, 사무라이 잭의 배경 설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28] 1940년대 초중기 한정.[29] 1950년대 중기부터 1980년대 말기까지, TV tropes에선 dark age of animation(애니메이션의 암흑기)로 부른다. 이 시기에도 좋은 애니메이션은 꽤 제작되었으나 점점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이 아동에 집중되어가면서, 질적으로 퇴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80년대 말에 다가갈수록 심해져서 장난감을 팔아먹기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소리도 나올 지경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많았다.[30]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도 제작한 장편 영화들로 그럭저럭 흥행을 거두나 타란의 대모험의 대참패를 겪으며 전망에 부정적인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31]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은 제작에 최소 수 주가 걸리고 발표되는 기간도 널널하지만, TV 애니메이션은 1주당 1번씩 발표, 방송하는 것이 다수이므로 극장용 단편 애니보다 분량이 3~4배나 많고 한 제작사에서 다수의 작품을 만드는 TV 애니의 구조상 풀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하는 건 무리수나 다름없었다.[32] 이중 이름있던 단체는 ACT(Action for Children's Television)로(1968년 창립, 1992년 해산), 주로 어린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관련에 초점을 맞춰 활동했고 1990년 어린이 텔레비전 법 제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기사 참조[33] 한 방송사의 독점배급이 아닌 여러 개별 방송국에 일일이 배급하는 방식.[34] 극장 쪽에선 랄프 박시를 비롯해 일부 감독들이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활약했으나, 이는 제작 환경상 어느 정도 극장 애니메이션 기획이 자유로웠기에 가능했고, TV 쪽에선 큰 영향을 받지 못했다.[35] 이때의 절정을 보여준 대표 제작사 중 하나가 DiC 엔터테인먼트이다. 설립자인 프랑스인 장 샬로팽이 이끌던 1986년까지는 일본과 협력하여 괜찮은 품질의 미디어믹스 작품을 내 가며 성장가도를 달렸으나, 이후 북미 지부의 대표였던 앤디 헤이워드가 회사를 인계받자 재정적자를 이유로 작품의 질을 극단적으로 희생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특히 한국, 중국, 대만과 손 잡고 만든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말이 딕 엔터테인먼트의 최고 전성기였다)의 신작들은 작품의 질이 하락하는 것을 넘어 작화붕괴 문제까지 심각해진 편. 게다가 2008년에 회사가 흡수되어 사라질 때까지 미디어믹스 애니메이션에만 목맨 탓에, 디즈니로 인수된 후에도 고유 IP가 거의 없어 외면받고 재매각되기도 했다.[36] 다만, 명절 기간에 맞춰 방영되던 단독 TV 스페셜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앞의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이 많았다.[37] 황금기 이후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이나 본단 매체란 편견이 생겨 1970년대 당시 애니메이터였던 존 라세터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거란 주변의 말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38] TMS 엔터테인먼트, 토에이 애니메이션, 에이컴, 러프드레프트 코리아 등.[39] 해나-바베라 작품에 쓰인 일부 사운드 효과는 2010년대 현재도 계속 미국 애니계에서 우려먹고 있다.[40] 1980년대 말기부터 현재까지.[41] 아나스타샤의 외전이다.[42] 초창기 디즈니 작품들인 피노키오덤보에서도 음주 씬과 흡연 씬이 나왔다.[43] 1930년대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활용했으며, 랄프 박시도 일부 작품에서 써먹은 적이 있다.[44] 데즈카 오사무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들를 당시 애니메이터들이 몰래 덤보가 똥을 싸거나 더 지저분하게 비틀어버리는 장면을 그렸단 일화가 존재하고, 베티 붑의 디자인 변천과 홈페이지를 봐도 알수 있듯 애니메이터들이 무척 선정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그릴 경우 검열시킨 사례가 있던건 사실이다.[45] 이중 코미디 센트럴은 예외 작품들이 있다.[46] 이 작품은 해나-바베라 제작 애니메이션으론 유일하게 직접적인 성인 취향의 유머가 드러나오는 애니메이션이다.[47] 드문 예외기는 하나, 풍자 요소를 삽입한 애니메이션이 1960년대 초에 제작됐었다.록키와 불윙클 쇼[48] 영상물 등급 제도가 시행된 1968년엔 미국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텔레비전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49] 일본은 거인의 별, 드래곤볼처럼 구타와 폭행이 자주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이 시청자들한테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져 1990년대까지 전연령층 애니메이션에도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은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제5공화국의 연속적인 군사독재 정권으로 인하여 애니메이션 방영기에 자율적 규제가 이뤄질 여건을 형성하지 못했다. 또한 만화 검열제, 정병섭군 자살사건 등의 영향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여론이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 긴 세월 동안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부터 점진적으로 반전되어가는 중이다.[50] 193~50년대의 미국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매체로 인식되었기에 반발이 일을 사유가 미비했으며, 극장과 달리 저연령층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를 두곤 한미일 각국에서 부모들과 시민단체의 맹렬한 비난을 산 것과 더불어 업계 내외의 논쟁과 수많은 만화가들의 저항이 벌어졌다.[51] 다만 성인용 애니메이션도 등급 분류에 따라 일부 욕설 연출이 제한된다.[52]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과도한 검열삭제로 유명한 회사다.[53] 당시 사용된 영화 필름의 주 재료는 무척 인화성이 높은 위험물질인 질산염이었다(1947년까지 사용). 필름 창고에 대형 화재가 여러 번 발생해서, 미국 영화 중에 194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 중 일부가 필름 소실로 유실된 영화들도 있다.[54] 영어 원본이 나오며, 번역이 불가능하단 것은 감안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