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니 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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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단편들의 대략적인 등장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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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인 DC 코믹스에서 발행되는 코믹스판 50회 표지. 인지도 있는 메이저 캐릭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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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작 시트콤 애니메이션 The Looney Tunes Show판 디자인.
Looney Tunes[2]
1930년부터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들의 총칭. 흔히 TV를 통해 접하는 루니 툰은 1930년 4월 19일에서 1969년 8월 11일까지 공개된 극장용 단편들이다. 물론 현재도 제작되고 있는데, 2011년부터 2년간 방영된 The Looney Tunes Show(한국 카툰 네트워크에서는 '루니 툰 -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이, 2015년 10월 5일부턴 본토에서 "Wabbit"[3] 이 방영 중이다.
위 이미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주역이지만 제작 초창기(1930년대 초중반)에는 특정 캐릭터가 출연하는 경우는 적었고, 제작이 마무리되던 시절(1960년대 중후반)엔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계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리즈물 중 하나다. 그저 쫓고 쫓기는 내용이 주가 아니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4] IGN이 선정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3위(1위는 《심슨 가족》, 2위는 배트맨 TAS)이고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재목록(National Film Registry)에 4편이 등재되어 있다.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24번 노미네이트되었고 5번 수상했다.[5] 1994년 출간된 the 50 greatest cartoons[6] 에도 16편이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루니툰 본편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아 캐릭터로만 널리 알려져있다. 따조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 이 루니툰의 캐릭터를 사용했는데, 그래서인지 얼굴은 알지만 정작 어디 나오는 어떤 캐릭터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팬덤에서 가끔 디즈니와 대립하는 구도를 이룬다. 실제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콜라보레이션으로 나온적도 있고, 이 둘을 비교해보면 유명한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루니 툰은 디즈니 단편과 반대로 성인 취향의 유머들이 묘사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를 두고 노스탤지어 크리틱은 디즈니 만화는 어린이용 유머로, 루니 툰은 어른용 유머로 구분해 설명하기도 했었다.[7]
단편위주로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 캐릭터별 스토리 구조는 거의 고착되어 있으며 그 외관이 조금씩 다른 형태이다. 그래도 실험적인 시도라든지 패러디나 사회풍자적인 작품들도 다수 있다. (괜히 작품성을 인정받는 시리즈가 아니란 말씀.) 실제 루니 툰이나 톰과 제리 같은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영화 상영 전이나 막간에 대한 뉴스처럼 틀어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극장이 주무대였는데, 장편용 영화라고 하는게 정확하다.
루니툰 캐릭터들을 주연으로 한 극장용 영화로는 마이클 조던과 같이 공연한 1996년작 '''스페이스 잼'''이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비평가들은 열심히 비평하였다.[8] 그러나 2003년작 루니 툰 : 백 인 액션은 상업적으로 망했다.[9] 평가는... 항목 참조.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한편당 출연하는 캐릭은 주 캐릭에 따라 거의 정해져 있으며 주연급들이 같이 등장하는경우는 장편이나 극장판, 또는 특별판들을 빼면 그다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상성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조연들도 다른 주연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악역 캐릭터들은 주연이라 하더라도 전원 사망전대. 사망전대기는 하지만 코요테를 제외하고는 죽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다.
밑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들 외에도 루니툰 캐릭터들이 아기버전으로 등장하는 TV시리즈 '베이비 루니툰'도 제작되어 방송되었다.(단, 그래니는 그대로 나오고 포키 대신 '피튜니아'라는 돼지가 등장한다.)
2011년 다시 새단장을 하고 새로운 에피소드 방영을 시작했다. 각각의 캐릭터의 성격은 그대로인 편이지만 전 시리즈와의 간격이 좀 긴 편이라 과거의 슬랩스틱 위주의 스타일을 버리고 현대 스타일로 바꿔졌다. 주인공도 이제는 농락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래픽과 화질의 퀄리티가 정말 '급'상승 했다. 뭐.. 뭐.. 뭐야?
루니 툰 팬들과 평론가한테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호평받는 작품들은 1930년대 후반 ~ 1960년대 중반까지의 단편들이 많으며, 워너 브라더스도 이 시기에 나온 캐릭터들이 위주로 나오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방영하고 있다.
후속편들에 관해서는 아래 애니메이션 시리즈 목록 참조.
1920년대 후반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미키 마우스가 많은 인기를 얻자 음악 홍보용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관심을 가진 워너브라더스는 1929년 4분 분량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제작했고, 이듬해(1930년) 4월 19일에 공식 첫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모종의 사정으로 제작 중단된 뮤직비디오 단편 영화 스푸니 멜로디즈를 바탕으로 단편 카툰인 메리 멜로디즈를 기획해 1931년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했다.[10] 과거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한 하먼 & 아이징 콤비의 영향으로 보스코 등의 초창기 캐릭터들은 당시의 디즈니 캐릭터와 생김새가 거의 동일하다. 극초기 루니 툰과 메리 멜로디즈는 캐릭터가 분리된 구조로,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이던 기획의 흔적인지 당시 메리 멜로디즈 단편의 제목들은 당시 발매된 대중가요에서 따왔다. 1933년 중기까진 제작 스튜디오는 하먼-아이징 프로덕션으로, 휴 하먼 & 루돌프 아이징이 감독을 맡았다. 지금의 루니 툰에서 볼수 있는 몇몇 요소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며,[11] 하먼 & 아이징 콤비는 1933년에 자진 하차했다. 그들이 만든 캐릭터들의 판권이 넘어가면서 스탭들은 새 캐릭터들을 출연시켰고 스튜디오는 리언 슐레진저 프로덕션으로 변경되었다.
1934년 제작된 honeymoon hotel 편에서의 2색 테크니컬러(two-strip Cinecolor) 삽입을 시작으로 메리 멜로디즈 단편이 전면 컬러화되었다. 엔딩에 나오던 대사인 "so long, folks!"가 루니툰 본편과 똑같이 "that`s all folks!"로 바뀌었고, 오프닝 & 클로징 화면도 전환되었다. 이듬해(1935년) 초엔 포키 피그, 빈즈 더 캣 등이 새로 출연하였으나, 포키를 제외하면 2년을 넘겨 퇴출당해 등장하지 않았다. 때마침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서 이직한 텍스 에이버리를 포함해 6년여 동안 후발 감독들인 프랭크 태쉴린, 밥 크램펫, 척 존스 등이 워너 브라더스에서 일하면서 활동한 속칭 '터미트 테라스'(termite terrace)는 현재 루니 툰의 코미디 색채를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비슷한 시기 루니 툰은 몇 차례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porky`s duck hunt에서 이전까지의 캐릭터와 다르게 헐벗은 몸으로 민폐를 쳐다니며 웃음을 내지르는 대피 덕과 1940년 a wild hare에서 등장한 벅스 버니를 디자인한 텍스 에이버리의 활동으로 인해 상당한 지각 변동이 나타났으며, 같은해 제작된 톰과 제리의 영향으로 실베스터와 트위티, 실베스터와 스피디 곤잘레스, 로드 러너와 코요테 등 여러 패러디 추격물이 만들어짐으로써 현재 익숙한 루니 툰의 모습이 갖춰졌다. 1936년 디즈니 단편과 어브 아이웍스 카툰의 음악을 작곡했던 칼 스텔링이 합류하고, 이듬해엔 멜 블랭크가 합류해 수많은 루니툰 캐릭터의 성우를 맡기 시작한다. 1943년엔 루니툰 본편도 전면적인 컬러화 체제로 바뀌며, 이듬해 리언 슐레진저는 소유하던 스튜디오를 워너브라더스에 매각한 후 제작자에서 물러났고 곧이어 에드워드 셀저, 존 W 버튼, 데파티-프리랭 콤비, 윌리엄 L 헨드릭스가 차례대로 제작자를 맡았다. 매각 이후 스튜디오는 워너브라더스 카툰즈로 개명되었으며, 2차 대전 중엔 미군 전용 필름으로 이등병 스나푸(private snafu)란 선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1945년과 이듬해(1946년)에 몇년간 루니 툰 단편 제작에 참여한 프랭크 태쉴린, 밥 크렘펫이 각각 워너브라더스를 떠나면서, 1950년대까지 루니툰 메인 감독진은 로버트 매킴슨, 척 존스, 프리츠 프리랭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 와중인 1955년과 56년에 길드 필름과 어스시언트 아티스트 프로덕션즈(a.a.p)에 워너 브라더스가 1948년 중기 이전의 루니툰 단편들의 판권을 넘기고 이 단편들이 텔레비전 전파를 타면서 본격적으로 루니 툰의 TV 방영이 시작되었다. 1948년 중기 이전 단편들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 MGM/UA와 터너 엔터테인먼트로 판권이 넘겨졌다가[12] 1996년 워너브라더스가 최종적으로 판권을 돌려받았다. 1953년엔 3D 영화 제작 열풍으로 카툰 스튜디오가 5개월 간 잠시 폐쇄되기도 하였다.
1960년 ABC가 1948년 중기 이후의 루니 툰 단편들을 총집편격으로 편집해 방송한 TV 쇼 프로 the bugs bunny show는 루니 툰 첫번째 TV 프로로 ABC-CBS-ABC 순대로 2000년까지 방송되었다.[13] 1963년 워너 브라더스가 카툰 스튜디오를 폐쇄한 후부턴 이듬해(1964년)부터 프리츠 프리랭이 데비드 H. 데파티랑 공동으로 설립한 데파티-프리랭, 워너 브라더스 세븐 아츠 등의 외주 스튜디오가 루니 툰 단편 제작을 맡으면서 오프닝 & 클로징 화면과 스탭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기존 스탭들은 대부분 하차했고 로버트 맥킴슨은 데파티-프리랭으로 이직했다가 1967년부터 2년간 워너 브라더스가 스튜디오를 재활성화시켜 만든 워너 브라더스-세븐 아츠에서 활동하였다.
1969년 이후로 연속적인 극장용 단편 시리즈의 발표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후 일본[14] , 한국(문화방송 - 1970년 6월 25일 기사)에서 방송되는 등 미국 외 방영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니켈로디언에서 재방영된 적도 있었고, 1992년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하였으며, 고전 만화 채널 부메랑에서 현재 고전 단편들의 본방영이 진행 중이다. 80년대엔 단독 극장판도 몇편 개봉됐으며, 90년대 이후부턴 신규 TV 시리즈들의 제작과 고전 단편들을 수록한 DVD, 블루레이가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선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KBS, MBC에서 루니 툰과 스핀오프 시리즈들을 방영했고, 2000년대부터 2010년까지 투니버스,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송되었다.[15]
루니 툰과 메리 멜로디즈의 단편들 중 일부는 여러 문제점들로 일부 계층(PC 성향 계층)한테 지적당해 방영할 때 부분적으로 자체 심의를 거쳐 편집하거나 아예 (금지된 11편을 비롯해) TV 방영 자체가 되지 않는 편들도 여럿 있다. 고전 작품 팬들에게는 사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매우 껄끄러운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이 쪽을 더욱 파고들고 연구하는 팬들도 있다. TV 방영했을 때 짤린 부분을 전부 찾아 영상으로 정리한다든가...
예를 들면 수탉 포그혼 레그혼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반야그 도그의 엉덩이를 방망이로 때리는 에피소드가 폭력성 논란이 된적이 있었으며, 작중 벅스 버니 등의 메인 캐릭들이 상대방에게 슬랩스틱 개그를 치고 다니는데 이 개그 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최소 사람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비윤리적인 장면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16] . 물론 작중에서 노골적인 유혈 씬이나 고어 씬들은 일체 연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류의 행동은 과장되나 결과는 순화되는 폭력성을 만화 폭력(cartoon violence)라는 용어로 부른다.
위 경우뿐만 아니라 종종 총기를 난사해대 시민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씬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며, 몇몇 에피소드에선 권총 자살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Waikiki Rabbit처럼 식인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래도 너무 폭력적이고 시청자가 모방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장면들은 짤리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1960년대를 지나며 미국 비성인 애니메이션에서 이러한 수위의 폭력적인 씬들이 나오지 않는 경향이 이어지면서 이후부턴 물총 등의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거나 나오더라도 비중이 공기로 전락하는 식으로 순화하였다.
루니 툰 단편 내에서 어린이한테 부적절한 일부 욕설[17] 이 나온 씬도 있는데 screw, darn, shuck이 쓰였다.
극중에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옷이나 몸매가 굉장히 선정적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슬롯머신을 돌리거나 카드 베팅 등의 일부 도박 행위가 묘사된다든지 주인공들이 시가 담배를 빠는 모습과 술을 마시고 꽐라가 돼버리는 장면도 곳곳에서 연출된다.
위 사례들은 193~50년대 당시의 많은 미국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단순히 여캐 뿐만 아니라 섹드립에 가까운 개그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베티 붑이라든지 비교적 최근인 제시카 래빗 같은 예를 보면 알겠지만 본디 이러한 애니메이션들은 완전한 아동 대상 작품들이 아니었다.
실제 많은 루니 툰이나 메리 멜로디즈 단편은 지명도 있는 캐릭터를 쓴 슬랩스틱외에도, 당시 할리우드 연예인들이나 사교계, 재즈 등 대중 음악, 서적, 클래식 음악, 영화 등을 다루는 뮤직비디오식 단편들이 굉장히 많다. 이후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 아동물이란 인식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 해나-바베라 프로덕션 등의 전연령층 & 저연령층 대상 작품 제작으로 TV 방영이 이뤄지면서 대중적으로 형성되었었던 것이지 1930~50년대 당시 애니메이션 단편은 주로 극장에 영화를 보러 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끼워서 상영된 작품이 많았다. 디즈니조차 아동 친화적인 작품이 몇 안 되었던 시기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로 디즈니 작품, 톰과 제리와 더불어 비난당하기도 하는데, 가끔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인, 히스패닉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유머가 연출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벅스버니 에피소드 중 Horse hare 편에선 벅스버니가 서부개척시대의 백인 총잡이가 되어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총에 맞아죽을 때마다, 그 유명한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 을 벅스버니가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도 모자라 독일인을 그릴 때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독일어와 영어를 섞으면서 말하고, 또한 모든 독일인들은 군복을 입고, 거위걸음을 걸으면서 움직인다고 하고, 또한 야수같이 잔인하게 그리기도 했으며, 중국인들은 째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가진 뚱뚱한 게으름뱅이로 그리기도 했다.
일본인들을 그릴 때에는 남녀 상관없이 째진 눈에, 너무 과할 정도로 튀어나온 덧니, 그리고 키가 굉장히 작고, 모두 안경을 끼고 있다고 그렸다. 그리고 "조또 혼또니 오또오또 빠레 토죠 토죠 히로 히또 힘미야 소데스" 이런 식으로 엉터리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그렸는데, 심지어 저 중에서 '토죠' 라는 단어와 '히로 히또' 라는 단어는 일본인에 대한 미국식 멸칭이기까지 하다. 아중 bugs bunny nips the nips 편이 VHS 발매될 당시 시민단체의 항의가 벌어진 사례도 있다. 루니 툰 위키 참조 또한 아랍계 사람을 그릴 때에는 낙타를 타고 다니며, 처진 눈에, 머리도 나쁘고, 게으르다고 그린 에피소드도 있었다.
1960년대에 정치적 올바름이 급부상하면서 논쟁이 빚어지자 1968년엔 스테레오 타입 유머가 만연한 11편(Censored Eleven)이 방송금지되었고, 2000년대부터 발매된 루니 툰 DVD 세트에서는 수록 영상이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과 국가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으며, 현재의 워너 브라더스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요소를 영상에서 삭제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척을 하는 것이 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으며[18] , 상기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도저히 요즘 애들 보여줄 만한 것이 못 된다.
이 문단은 2차 창작이 아닌 루니 툰에서 자체적으로 삽입하거나 패러디한 연예인, 영화, 대중가요, 고전 소설, 동화, 역대 인물 등을 기록한다.
고전 단편들의 대략적인 등장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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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인 DC 코믹스에서 발행되는 코믹스판 50회 표지. 인지도 있는 메이저 캐릭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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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작 시트콤 애니메이션 The Looney Tunes Show판 디자인.
1. 개요
Looney Tunes[2]
1930년부터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들의 총칭. 흔히 TV를 통해 접하는 루니 툰은 1930년 4월 19일에서 1969년 8월 11일까지 공개된 극장용 단편들이다. 물론 현재도 제작되고 있는데, 2011년부터 2년간 방영된 The Looney Tunes Show(한국 카툰 네트워크에서는 '루니 툰 -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이, 2015년 10월 5일부턴 본토에서 "Wabbit"[3] 이 방영 중이다.
위 이미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주역이지만 제작 초창기(1930년대 초중반)에는 특정 캐릭터가 출연하는 경우는 적었고, 제작이 마무리되던 시절(1960년대 중후반)엔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계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리즈물 중 하나다. 그저 쫓고 쫓기는 내용이 주가 아니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4] IGN이 선정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3위(1위는 《심슨 가족》, 2위는 배트맨 TAS)이고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재목록(National Film Registry)에 4편이 등재되어 있다.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24번 노미네이트되었고 5번 수상했다.[5] 1994년 출간된 the 50 greatest cartoons[6] 에도 16편이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루니툰 본편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아 캐릭터로만 널리 알려져있다. 따조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 이 루니툰의 캐릭터를 사용했는데, 그래서인지 얼굴은 알지만 정작 어디 나오는 어떤 캐릭터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팬덤에서 가끔 디즈니와 대립하는 구도를 이룬다. 실제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콜라보레이션으로 나온적도 있고, 이 둘을 비교해보면 유명한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루니 툰은 디즈니 단편과 반대로 성인 취향의 유머들이 묘사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를 두고 노스탤지어 크리틱은 디즈니 만화는 어린이용 유머로, 루니 툰은 어른용 유머로 구분해 설명하기도 했었다.[7]
2. 구성과 의의
단편위주로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 캐릭터별 스토리 구조는 거의 고착되어 있으며 그 외관이 조금씩 다른 형태이다. 그래도 실험적인 시도라든지 패러디나 사회풍자적인 작품들도 다수 있다. (괜히 작품성을 인정받는 시리즈가 아니란 말씀.) 실제 루니 툰이나 톰과 제리 같은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영화 상영 전이나 막간에 대한 뉴스처럼 틀어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극장이 주무대였는데, 장편용 영화라고 하는게 정확하다.
루니툰 캐릭터들을 주연으로 한 극장용 영화로는 마이클 조던과 같이 공연한 1996년작 '''스페이스 잼'''이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비평가들은 열심히 비평하였다.[8] 그러나 2003년작 루니 툰 : 백 인 액션은 상업적으로 망했다.[9] 평가는... 항목 참조.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한편당 출연하는 캐릭은 주 캐릭에 따라 거의 정해져 있으며 주연급들이 같이 등장하는경우는 장편이나 극장판, 또는 특별판들을 빼면 그다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상성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조연들도 다른 주연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악역 캐릭터들은 주연이라 하더라도 전원 사망전대. 사망전대기는 하지만 코요테를 제외하고는 죽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다.
3. 후속편
밑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들 외에도 루니툰 캐릭터들이 아기버전으로 등장하는 TV시리즈 '베이비 루니툰'도 제작되어 방송되었다.(단, 그래니는 그대로 나오고 포키 대신 '피튜니아'라는 돼지가 등장한다.)
2011년 다시 새단장을 하고 새로운 에피소드 방영을 시작했다. 각각의 캐릭터의 성격은 그대로인 편이지만 전 시리즈와의 간격이 좀 긴 편이라 과거의 슬랩스틱 위주의 스타일을 버리고 현대 스타일로 바꿔졌다. 주인공도 이제는 농락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래픽과 화질의 퀄리티가 정말 '급'상승 했다. 뭐.. 뭐.. 뭐야?
루니 툰 팬들과 평론가한테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호평받는 작품들은 1930년대 후반 ~ 1960년대 중반까지의 단편들이 많으며, 워너 브라더스도 이 시기에 나온 캐릭터들이 위주로 나오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방영하고 있다.
후속편들에 관해서는 아래 애니메이션 시리즈 목록 참조.
4. 역사
1920년대 후반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미키 마우스가 많은 인기를 얻자 음악 홍보용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관심을 가진 워너브라더스는 1929년 4분 분량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제작했고, 이듬해(1930년) 4월 19일에 공식 첫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모종의 사정으로 제작 중단된 뮤직비디오 단편 영화 스푸니 멜로디즈를 바탕으로 단편 카툰인 메리 멜로디즈를 기획해 1931년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했다.[10] 과거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한 하먼 & 아이징 콤비의 영향으로 보스코 등의 초창기 캐릭터들은 당시의 디즈니 캐릭터와 생김새가 거의 동일하다. 극초기 루니 툰과 메리 멜로디즈는 캐릭터가 분리된 구조로,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이던 기획의 흔적인지 당시 메리 멜로디즈 단편의 제목들은 당시 발매된 대중가요에서 따왔다. 1933년 중기까진 제작 스튜디오는 하먼-아이징 프로덕션으로, 휴 하먼 & 루돌프 아이징이 감독을 맡았다. 지금의 루니 툰에서 볼수 있는 몇몇 요소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며,[11] 하먼 & 아이징 콤비는 1933년에 자진 하차했다. 그들이 만든 캐릭터들의 판권이 넘어가면서 스탭들은 새 캐릭터들을 출연시켰고 스튜디오는 리언 슐레진저 프로덕션으로 변경되었다.
1934년 제작된 honeymoon hotel 편에서의 2색 테크니컬러(two-strip Cinecolor) 삽입을 시작으로 메리 멜로디즈 단편이 전면 컬러화되었다. 엔딩에 나오던 대사인 "so long, folks!"가 루니툰 본편과 똑같이 "that`s all folks!"로 바뀌었고, 오프닝 & 클로징 화면도 전환되었다. 이듬해(1935년) 초엔 포키 피그, 빈즈 더 캣 등이 새로 출연하였으나, 포키를 제외하면 2년을 넘겨 퇴출당해 등장하지 않았다. 때마침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서 이직한 텍스 에이버리를 포함해 6년여 동안 후발 감독들인 프랭크 태쉴린, 밥 크램펫, 척 존스 등이 워너 브라더스에서 일하면서 활동한 속칭 '터미트 테라스'(termite terrace)는 현재 루니 툰의 코미디 색채를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비슷한 시기 루니 툰은 몇 차례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porky`s duck hunt에서 이전까지의 캐릭터와 다르게 헐벗은 몸으로 민폐를 쳐다니며 웃음을 내지르는 대피 덕과 1940년 a wild hare에서 등장한 벅스 버니를 디자인한 텍스 에이버리의 활동으로 인해 상당한 지각 변동이 나타났으며, 같은해 제작된 톰과 제리의 영향으로 실베스터와 트위티, 실베스터와 스피디 곤잘레스, 로드 러너와 코요테 등 여러 패러디 추격물이 만들어짐으로써 현재 익숙한 루니 툰의 모습이 갖춰졌다. 1936년 디즈니 단편과 어브 아이웍스 카툰의 음악을 작곡했던 칼 스텔링이 합류하고, 이듬해엔 멜 블랭크가 합류해 수많은 루니툰 캐릭터의 성우를 맡기 시작한다. 1943년엔 루니툰 본편도 전면적인 컬러화 체제로 바뀌며, 이듬해 리언 슐레진저는 소유하던 스튜디오를 워너브라더스에 매각한 후 제작자에서 물러났고 곧이어 에드워드 셀저, 존 W 버튼, 데파티-프리랭 콤비, 윌리엄 L 헨드릭스가 차례대로 제작자를 맡았다. 매각 이후 스튜디오는 워너브라더스 카툰즈로 개명되었으며, 2차 대전 중엔 미군 전용 필름으로 이등병 스나푸(private snafu)란 선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1945년과 이듬해(1946년)에 몇년간 루니 툰 단편 제작에 참여한 프랭크 태쉴린, 밥 크렘펫이 각각 워너브라더스를 떠나면서, 1950년대까지 루니툰 메인 감독진은 로버트 매킴슨, 척 존스, 프리츠 프리랭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 와중인 1955년과 56년에 길드 필름과 어스시언트 아티스트 프로덕션즈(a.a.p)에 워너 브라더스가 1948년 중기 이전의 루니툰 단편들의 판권을 넘기고 이 단편들이 텔레비전 전파를 타면서 본격적으로 루니 툰의 TV 방영이 시작되었다. 1948년 중기 이전 단편들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 MGM/UA와 터너 엔터테인먼트로 판권이 넘겨졌다가[12] 1996년 워너브라더스가 최종적으로 판권을 돌려받았다. 1953년엔 3D 영화 제작 열풍으로 카툰 스튜디오가 5개월 간 잠시 폐쇄되기도 하였다.
1960년 ABC가 1948년 중기 이후의 루니 툰 단편들을 총집편격으로 편집해 방송한 TV 쇼 프로 the bugs bunny show는 루니 툰 첫번째 TV 프로로 ABC-CBS-ABC 순대로 2000년까지 방송되었다.[13] 1963년 워너 브라더스가 카툰 스튜디오를 폐쇄한 후부턴 이듬해(1964년)부터 프리츠 프리랭이 데비드 H. 데파티랑 공동으로 설립한 데파티-프리랭, 워너 브라더스 세븐 아츠 등의 외주 스튜디오가 루니 툰 단편 제작을 맡으면서 오프닝 & 클로징 화면과 스탭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기존 스탭들은 대부분 하차했고 로버트 맥킴슨은 데파티-프리랭으로 이직했다가 1967년부터 2년간 워너 브라더스가 스튜디오를 재활성화시켜 만든 워너 브라더스-세븐 아츠에서 활동하였다.
1969년 이후로 연속적인 극장용 단편 시리즈의 발표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후 일본[14] , 한국(문화방송 - 1970년 6월 25일 기사)에서 방송되는 등 미국 외 방영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니켈로디언에서 재방영된 적도 있었고, 1992년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하였으며, 고전 만화 채널 부메랑에서 현재 고전 단편들의 본방영이 진행 중이다. 80년대엔 단독 극장판도 몇편 개봉됐으며, 90년대 이후부턴 신규 TV 시리즈들의 제작과 고전 단편들을 수록한 DVD, 블루레이가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선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KBS, MBC에서 루니 툰과 스핀오프 시리즈들을 방영했고, 2000년대부터 2010년까지 투니버스,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송되었다.[15]
5. 비판 및 논란
루니 툰과 메리 멜로디즈의 단편들 중 일부는 여러 문제점들로 일부 계층(PC 성향 계층)한테 지적당해 방영할 때 부분적으로 자체 심의를 거쳐 편집하거나 아예 (금지된 11편을 비롯해) TV 방영 자체가 되지 않는 편들도 여럿 있다. 고전 작품 팬들에게는 사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매우 껄끄러운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이 쪽을 더욱 파고들고 연구하는 팬들도 있다. TV 방영했을 때 짤린 부분을 전부 찾아 영상으로 정리한다든가...
검열, 편집된 단편들 [ 펼치기 | 닫기 ]
5.1. 폭력성
예를 들면 수탉 포그혼 레그혼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반야그 도그의 엉덩이를 방망이로 때리는 에피소드가 폭력성 논란이 된적이 있었으며, 작중 벅스 버니 등의 메인 캐릭들이 상대방에게 슬랩스틱 개그를 치고 다니는데 이 개그 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최소 사람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비윤리적인 장면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16] . 물론 작중에서 노골적인 유혈 씬이나 고어 씬들은 일체 연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류의 행동은 과장되나 결과는 순화되는 폭력성을 만화 폭력(cartoon violence)라는 용어로 부른다.
위 경우뿐만 아니라 종종 총기를 난사해대 시민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씬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며, 몇몇 에피소드에선 권총 자살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Waikiki Rabbit처럼 식인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래도 너무 폭력적이고 시청자가 모방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장면들은 짤리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1960년대를 지나며 미국 비성인 애니메이션에서 이러한 수위의 폭력적인 씬들이 나오지 않는 경향이 이어지면서 이후부턴 물총 등의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거나 나오더라도 비중이 공기로 전락하는 식으로 순화하였다.
루니 툰 단편 내에서 어린이한테 부적절한 일부 욕설[17] 이 나온 씬도 있는데 screw, darn, shuck이 쓰였다.
5.2. 선정성
극중에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옷이나 몸매가 굉장히 선정적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슬롯머신을 돌리거나 카드 베팅 등의 일부 도박 행위가 묘사된다든지 주인공들이 시가 담배를 빠는 모습과 술을 마시고 꽐라가 돼버리는 장면도 곳곳에서 연출된다.
위 사례들은 193~50년대 당시의 많은 미국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단순히 여캐 뿐만 아니라 섹드립에 가까운 개그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베티 붑이라든지 비교적 최근인 제시카 래빗 같은 예를 보면 알겠지만 본디 이러한 애니메이션들은 완전한 아동 대상 작품들이 아니었다.
실제 많은 루니 툰이나 메리 멜로디즈 단편은 지명도 있는 캐릭터를 쓴 슬랩스틱외에도, 당시 할리우드 연예인들이나 사교계, 재즈 등 대중 음악, 서적, 클래식 음악, 영화 등을 다루는 뮤직비디오식 단편들이 굉장히 많다. 이후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 아동물이란 인식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 해나-바베라 프로덕션 등의 전연령층 & 저연령층 대상 작품 제작으로 TV 방영이 이뤄지면서 대중적으로 형성되었었던 것이지 1930~50년대 당시 애니메이션 단편은 주로 극장에 영화를 보러 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끼워서 상영된 작품이 많았다. 디즈니조차 아동 친화적인 작품이 몇 안 되었던 시기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5.3. 인종차별
이러한 문제로 디즈니 작품, 톰과 제리와 더불어 비난당하기도 하는데, 가끔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인, 히스패닉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유머가 연출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벅스버니 에피소드 중 Horse hare 편에선 벅스버니가 서부개척시대의 백인 총잡이가 되어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총에 맞아죽을 때마다, 그 유명한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 을 벅스버니가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도 모자라 독일인을 그릴 때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독일어와 영어를 섞으면서 말하고, 또한 모든 독일인들은 군복을 입고, 거위걸음을 걸으면서 움직인다고 하고, 또한 야수같이 잔인하게 그리기도 했으며, 중국인들은 째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가진 뚱뚱한 게으름뱅이로 그리기도 했다.
일본인들을 그릴 때에는 남녀 상관없이 째진 눈에, 너무 과할 정도로 튀어나온 덧니, 그리고 키가 굉장히 작고, 모두 안경을 끼고 있다고 그렸다. 그리고 "조또 혼또니 오또오또 빠레 토죠 토죠 히로 히또 힘미야 소데스" 이런 식으로 엉터리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그렸는데, 심지어 저 중에서 '토죠' 라는 단어와 '히로 히또' 라는 단어는 일본인에 대한 미국식 멸칭이기까지 하다. 아중 bugs bunny nips the nips 편이 VHS 발매될 당시 시민단체의 항의가 벌어진 사례도 있다. 루니 툰 위키 참조 또한 아랍계 사람을 그릴 때에는 낙타를 타고 다니며, 처진 눈에, 머리도 나쁘고, 게으르다고 그린 에피소드도 있었다.
1960년대에 정치적 올바름이 급부상하면서 논쟁이 빚어지자 1968년엔 스테레오 타입 유머가 만연한 11편(Censored Eleven)이 방송금지되었고, 2000년대부터 발매된 루니 툰 DVD 세트에서는 수록 영상이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과 국가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으며, 현재의 워너 브라더스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요소를 영상에서 삭제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척을 하는 것이 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으며[18] , 상기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도저히 요즘 애들 보여줄 만한 것이 못 된다.
6. 캐릭터 목록
7. 방영 목록
- 루니 툰/에피소드 문서 참조.
- 더빙판 목록 작성 시 카툰네트워크 코리아판을 기준으로 하되 원제는 오른쪽, 번역된 제목은 왼쪽에 적을 것.
목록 (접기 클릭)
- 오리 사냥철? 토끼 사냥철?(duck! rabbit, duck!), 고양이 쥐잡기(cats a-weigh), 작은 코끼리 이야기(punch trunk), 당신이 최고야(the honey-mousers), 하아센 페퍼를 만들어라(shishkabugs), 토끼 굴을 사수하라(oily hare), 징글징글 스노우 맨(the abominable snow rabbit) }}}
8. 관련 작품
8.1. 애니메이션 시리즈
- 더 벅스 버니 쇼 (1960~2000)
- 더 로드 러너 쇼(1966~1973)
- 타이니 툰(1990~1995)
- 플러키 덕 쇼(1992)
- 태즈-마니아(1991~1995)[19]
- 실베스타&트위티 미스터리(1995~2002)[20]
- 베이비 루니 툰(2001~2006)
- 덕 다저스(2003)
- 루나틱스 언리시드 (2005~2007)
- 루니 툰 - 벅스 버니와 대피 덕(2011~2014)
- 뉴 루니툰 쇼(2015~)[21]
- 루니 툰 카툰(2020~)[22]
8.2. 영화[23]
- Bugs Bunny: Superstar(1975)
- 벅스 버니/로드 러너 무비(1979)
- 더 루니 루니 루니 벅스 버니 무비(1981)[스포일러]
- Bugs Bunny's 3rd Movie: 1001 Rabbit Tales(1982)
- 대피 덕의 환상의 섬(1983)
- 대피 덕의 꽥버스터(1988)
- 스페이스 잼(1996)
- 루니 툰 : 백 인 액션(2003)
- Looney Tunes:Rabbit's Run(2015)
- 스페이스 잼 2(2021)
8.3. 게임
- 로드 런너(아케이드)
- 벅스 버니 크레이지 캐슬(NES,GB/GBC)
- 벅스 버니 버스데이 블로우아웃/해피 버스데이 벅스
- 루니 툰(게임 보이)/루니 툰 - 벅스 버니와 친구들
- 벅스 버니 래빗 램페이지(SNES)
- 벅스 버니 더블 트러블(메가드라이브)
- 벅스 버니 : 로스트 인 타임(PS1)
- 스페이스 잼(플레이스테이션,세가 새턴)
9. 여담
- 루니툰 본편과 메리 멜로디즈의 오프닝, 클로징 연주 음악은 프랭크 마설레즈 ~ 노먼 스펜서 & 버나드 브라운 ~ 칼 스텔링 ~ 밀트 프랭클린 ~ 빌 라바로 음악감독이 바뀌면서 여러 차례나 교체되었다. 메리 멜로디즈는 'get happy'(31년부터 33년까지), 'i think you`re ducky'(33년부터 36년까지)[24] , 'merrily we roll along'(36년부터 64년까지), 'the merry go round broke down'(64년부터 69년까지) 순서대로, 루니 툰 본편은 'a hot time in the old town tonight'(30년부터 33년까지), 'whistle and blow your blues away'(33년부터 36~7년까지), 'the merry go round broke down'(37년부터 69년까지)[25] 순서대로 재생되었다. 메리 멜로디즈 테마는 찰리 토바이어스와 머리 멘처, 에디 캔터가 1935년 만든 Merrily We Roll Along이란 곡에서 비롯하여 만들어졌다.
- 1943년부터 기존 단편들을 1960년대 초까지 재상영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원래 크레딧을 편집한 필름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 블루리본을 타이틀 카드에 삽입해 재상영한 에피소드들은 제목을 재표기해 상영했고 일부 단편의 크레딧은 훗날 복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복원되지 못한 단편들도 142편(1935년 ~ 1948년에 제작된 단편들) 존재하고 이베이에 크레딧이 나온 단편들도 있지만 (광매체에) 삽입되지 못한 단편들도 있다.
- 약 40년에 이르는 긴 세월로 상영되어서 중간에 제작 스튜디오가 몇 차례 바뀌게 된 작품으로, 1930~33년에는 하먼 - 아이징 프로덕션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으나 이후 1944년까지 리언 슐레진저 프로덕션으로, 1964년까지 워너 브라더스 카툰즈로 스튜디오가 사실상 고정되었으며 1964~67년에는 디패티 - 프리랭 엔터프라이즈, 최후의 2년 동안은 워너 브라더스 - 세븐 아츠에서 제작을 담당하였다.
- 워너브라더스는 1947년 상영된 톰과 제리의 the cat concerto 편이 먼저 상영한 루니 툰의 rhapsody rabbit 편과 여러 부분에서 유사하다고 그해 MGM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표절했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톰과 제리의 판권을 1986년 터너 엔터테인먼트가 가지면서 이후 1996년부턴 루니 툰과 같은 워너 브라더스에서 신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중이다.
- 일본판 한정으로 나레이터가 추가되어 있다. 초반에는 도이 미카, 카네모토 신고, 에바라 마사시였었다. 도이 미카 때에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도록 스토리 해설을 하는 식이었지만 현재는 우메즈 히데유키[26] 가 이것을 맡고 있는데 작품에 써 있는 영어글자를 일본어로 해석해 읽기만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 마이클 조던이 스페이스 잼에 등장해서인지, 운동화 회사 에어 조던의 광고들을 보면 루니툰 캐릭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4월에는 30주년 기념으로 벅스 버니를 인터뷰했고 같은해 8월 4일에는 블레이크 그리핀과 화성인 마빈의 콜라보 광고가 있었을 정도다.
- 루니 툰은 1994년부터 DC 코믹스에서 자체적으로 코믹스판을 연재해 발매 중이며, 2000년도엔 슈퍼맨과 콜라보레이션으로 코믹스를 연재하기도 했다.(superman & bugs bunny) 사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델 퍼블리싱, 골드 키 코믹스에서 관련 코믹스를 발매한 경력이 있다.
- 2011년 9월, 루니 툰의 한 에피소드(Often an Orphan)가 북미 인터넷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는데 중간의 한 장면이 9.11 테러를 예견했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다르지만 tortoise wins by a hare 편에선 놀랍게도(!) 2년 전에 히틀러의 자살을 예견한 장면이 나온다.[27]
- 루니 툰/등장 캐릭터 문단의 기록된 몇몇 캐릭터들의 TBC판 성우는 # 이 페이지를 참조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옛날 신문, 중앙일보 기사 검색결과에 방송 기사가 없는 점, 페이지에서 나온 못 말리는 토끼 벅스 바니도 데이터가 해당 페이지를 빼곤 거의 없는 걸로 볼 땐 MBC에서 첫 방영했을 신빙성이 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한 자료가 있다면 조사해주기를 바란다].
- 1990년부터 비정기적으로 2010년까지 조지 더우티가 지휘를 맡은 콘서트 뮤지컬 'bugs bunny on broadway'가 개최됐었다. 이후 2010년부턴 'bugs bunny at the symphony'가 후속격으로써 비정기적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10. 패러디
이 문단은 2차 창작이 아닌 루니 툰에서 자체적으로 삽입하거나 패러디한 연예인, 영화, 대중가요, 고전 소설, 동화, 역대 인물 등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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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ALL BUNNY - 험프리 보가트 }}}
11.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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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L. 헨드릭스 - William Hendricks : 1964 ~ 1969년 루니 툰의 5대 제작자. }}}
12. 관련 문서
13. 수상, 선정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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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over Boys - 49번, 1942년(척 존스). }}}
[1] 이 작품들 중 1990년대 이전에 개봉된 영화들은 중간에 고전 단편들이 삽입된 총집편 경향을 많이 띈다.[2] Looney '''Toons'''가 아니다![3] 사냥꾼 엘머 퍼드가 벅스 버니를 부르는 호칭. 원래는 Rabbit(토끼)이다.[4] 역으로 실사 영화계-특히 코미디쪽-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루이 말의 지하철 소녀 쟈지와 몬티 파이썬이 영향을 받았다.[5] 1932년도, 1939년도 ~ 1941년도, 1943년도 ~ 1946년도, 1949년도, 1953년도, 1955년도, 1957년도, 1959년도 ~ 1961년도, 1963년도 노미네이트됨.[6] 애니메이션 전문가 1천명을 대상으로 선발한 위대한 역대 애니메이션 50작품을 순위 번호별로 정리하였으며, 거의 뽑힐 뻔했으나 사정상으로 미달된 57작품 또한 수록하였다.[7] nostalgia critic - looney tunes show: good or bad? 편 참조.[8] NC리뷰 참조 # 제작비 5500만 달러에 북미 수익은 9천만 달러,해외 1억 5천만 달러 정도 벌었다.[9] 제작비 8천만 달러에 북미 2천만, 해외 4700만 달러 전세계 수익 다 합쳐도 제작비도 못 뽑았다.[10] 스푸니 멜로디즈와 초기 루니 툰의 제작자는 리언 슐레진저로 동일하다.[11] 할리우드 연예인의 등장, 대중음악 삽입, 메인 스타 캐릭터 구성 등등.[12] 그래서 80년대 중기엔 MGM/UA에서 해당 단편들을 묶은 VHS가 발매된 적도 있었다.[13] 방송종료됐을 때는 ABC가 디즈니로 인수된 지 5년 뒤였다.[14] TBS테레비에선 만화 대작전으로, TV 아사히에서 벅스 버니 쇼가 방영된 기록이 일본 위키에 존재한다.[15] 2016년 8월 16일부터 12월 23일까지 한국 부메랑 채널에서 매주 월~금 자정 시간대에 방송하였다. 편성표를 살펴볼 때 카툰네트워크 방송분을 재방송했으며, 20화까지 방송되었으며 이후로도 1~20회 방송분을 재방송하였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10일부터 8월 10일까지 다시금 암흑 시간대(새벽 4시)에 재방송되었다.[16] 간혹 기차에 치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단 위험하기도 위험할 뿐 더러, 철도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17] 정확힌 돌려서 까는 대체 욕설.[18] 원문 : The cartoons you are about to see are products of their time. They may depict some of the ethnic and racial prejudices that were commonplace in the U.S society. These depictions were wrong then and they are wrong today. While the following does not represent the Warner Bros. view of today's society, these cartoons are being presented as they were originally created, because to do otherwise would be the same as claiming that these prejudices never existed.[19] MBC에선 개구쟁이 테즈로 방영됐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뉴스 편성 관계로 방송중단된 경력이 있음.[20] 부메랑 개국 초기에 암흑 시간대로 방영한 경력이 있음.[21] 10월 5일 미국 첫방영으로, 2016년 3월 31일부터 한국 부메랑 채널에서 방송 중.[22] 5월 27일부터 HBO 맥스에서 방영되는 신작. 1시즌 10편이 스트리밍 중.[23] 이 작품들 중 1990년대 이전에 개봉된 영화들은 중간에 고전 단편들이 삽입된 총집편 경향을 많이 띈다.[스포일러] 2016년 후반기부터 2017년 3월 초까지 부메랑에서 방영. 3막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우선 knighty knight bugs 편이 나온 이후 오프닝이 나오며, 1막에선 요세미티 샘이 지옥으로 떨어지자 대신할 사람을 구한단 조건의 계약을 악마와 맺고 사하라 사막, 로마 시대, 서부개척시대에서 벅스 버닐 잡으려다가 모조리 실패해서 포기하고 악마가 될거라 말한다.(...) 2막은 요원으로 임명된 벅스 버니가 갱단인 록키와 먹시 일당을 체포해내는 과정과 내막의 사건(대피 덕 납치 사건, 트위티 유괴 사건)이 전개되며, 3막은 오스카 상을 패러디한 오스왈드 상 시상식으로 루니 툰 캐릭터들이 참석해 여러 작품들이 상영된 끝에 벅스 버니가 상을 타자 대피 덕이 말도 안된다며 대결을 벌이다 종국에 자폭한 끝에(...) 오스왈드 상을 건네받는다.[24] 처음엔 음악이 두 번 연주되고 타이틀 카드가 넘겨졌지만, 한번으로 줄어들었다.[25] 40년대 초반까지는 음악의 길이가 약간 길었지만, 이후로 템포가 빠르게 연주되기 시작하였다.[26] 조연인 피트 퓨마 등도 맡고 있다.[27] 중간의 신문 기사에 adolf hitler commit suicide란 글자에 주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