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
1. 개요
하이파(히브리어: חיפה, 아랍어: حيفا Ḥayfā)는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하고 지중해에 접한 도시이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이스라엘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에서 아랍인들이 대놓고 소외받는 것과 다르게 하이파는 유대인들과 아랍계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범적인 사회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십자군 시대의 야파 (현재의 텔아비브)와 헷갈리지 말것.
근대 이전에는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으나, 20세기 초 대영제국에서 BP plc가 페르시아에서 채굴한 원유를 수송할 파이프관을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을 거쳐 지중해에 인접한 하이파에 설치한 것을 계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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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의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본토에서 3위의 대도시다. 카르멜 산의 등성이에 위치한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큰 하이파 항이 자리잡고 있다. 북위 32° 49′ 동경 34° 59′ 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26만 5000명,(근교를 포함하면) 100만명 정도 면적은 63.67제곱킬로미터이다. 하이파 시청의 웹사이트는 히브리어와 영어와 아랍어로 씌어져 있다.
3. 역사
기원전 14세기의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성경에서는 카르멜 산과 키숀 강이 언급된다. 고대에는 그냥 조그만 어촌이었다. 중세에는 인접한 아크레 항구가 야파와 함께 십자군의 해상 보급 기지가 되면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고 십자군이 요새를 세웠으나 살라딘에 의해 파괴되었다. 다시 여차저차 십자군이 이 지역을 장악하고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요새를 다시 세웠으며 13세기에는 카멜 산에 가톨릭 수도원이 세워졌으나,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가 요새를 다시 한 번 파괴하고 수도원을 모스크로 바꾸어버렸다.
오늘날 하이파의 기원이 되는 마을은 1765년 오스만 제국의 아크레 지방과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아랍인 태수 자히르 알 우마르가 버려진 십자군 요새 근처에 사람들을 정착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원래는 인구 3천명 정도의 소도시[1] 였던 하이파가 아크레 같은 정통적인 항구 도시들을 밀어내고 대도시로 성장한 계기는 바로 석유 파이프관이다. 19세기 말부터 내연 기관의 발달로 인해 석유의 수요와 전략적 중요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영제국은 따로 석유가 생산되는 식민지가 없어서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인 사업가 녹스 다시가 20세기 초 페르시아의 카자르 왕조로부터 석유를 60년동안 무상으로 채굴할 권리(...)를 구입한 후에 유정을 발굴,개발하자, 영국은 이게 왠 횡재냐 싶어서 즉시 페르시아에서 시작해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파이프 라인을 설치했다. '''지중해로 연결되는 송유관 설치 지점으로 바로 당시에는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하이파가 선택된 것이다.'''[2]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거쳐 급성장한 하이파 시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과 동시에 이스라엘 땅으로 편입되었다. 하이파라는 이름의 기원은 알려져있지 않다. 하이파 시가 이스라엘의 대도시가 된 오늘날에는 하이파 라는 이름의 기원이 따끈한 떡밥이 되고 있다.
4. 기후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써, 여름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주민 6만명이 대피했을 정도. 관련기사 겨울에 가끔씩 눈이 오기도 한다. 우기는 10월부터 4월까지.
5. 교육
초중고등학교는 이스라엘 본토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가 없다. 고등교육기관은 이스라엘 기술원[3] 과 하이파 대학교가 있는데, 이스라엘 기술원은 매우 우수한 학력을 갖춘[4] 한국인의 관점에서 유학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이파 대학교는 수도권 사립대나 대도시 국립대를 졸업한 한국인의 관점에서 히브리어, 도시계획, 건축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정보기술 관련으로 유학을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명심할 필요가 있으니, 졸업한 이후 좋은 직장에 취직할 기회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5]
6. 교통과 관광
하이파 시민들의 대중교통은 도시철도와 강삭철도와 케이블카 및 시외버스, 시내버스 및 Metronit BRT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철도공사(רכבת ישראל בע"מ)의 광역철도가 하이파 구(區)의 도시철도 기능을 대행하고 있다. 하이파 시(市)의 지하철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권 전철이 아니라 매우 높은 언덕 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하이파 시청이 프랑스 기업에 발주해 건설한 강삭철도이며, 1950년대 프랑스-이스라엘 외교의 상징으로 기념하는 산물이다. 그러나 길이가 짧고 지하철 연장계획이 번번히 무산된 관계로 지하철 이용객수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케이블카는 평지 동네와 산지 동네를 연결해 주는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 하이파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초대 교주를 기리는 뜻으로 2001년에 오픈한 바하이교[6] 공원을 이스라엘 정부[7] 에서 적극 밀어주고 있으며,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방문이 가능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인 건축가가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반영하여 설계했다 한다.
하이파 시 자체는 실질적으로 역사가 길지 않은 편이고[8] 대신에 해변에서 수영이나 선탠을 즐긴다던지 이스라엘 북부의 아크레를 들리는 중간 기착점 역할을 한다. 테러 위협을 거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도시로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종교에 따른 차별이 별로 없는 도시이므로 보안 검사도 덜 빡빡한 편. 대신에 숙박비나 물가가 텔 아비브에 비해 그렇게 많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만큼 볼 것이 많은 도시도 아니므로 관광객 입장에서는 눈이 덜 가는 편이다.
[1] 1859년 영국의 인구 조사 결과[2] 19세기 중반에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하이파에 정착한 독일인 기독교 근본주의 공동체 하나가 증기 기관을 이용한 발전소와 공장 몇 개를 지어놓았기 때문에 이미 기반 시설이 잡혀있었다.[3] Technion으로 부른다.[4] 한국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명문대의 이공계 전공을 아주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한 사람들과 맞먹는 노력을 요구한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이스라엘 본토의 유명한 명문대는 히브리 대학교(예루살렘)와 벤구리온 대학교(베르셰바), 바이츠만 과학원(레호보트)과 이스라엘 기술원(하이파), 텔아비브 대학교와 하이파 대학교 뿐이다. [5] 이스라엘 정부의 노동 정책은 유대인 노동자의 대량 고용을 강요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토에서 국유기업과 민영재벌과 협동조합 및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와 벤처기업은 외국인 회사원을 잘 안 뽑는다. [6] 우리나라에도 한국인 신도가 약간 있긴 한데, 안 좋은 쪽으로 한국화돼서 그런지 신천지나 동방번개처럼 다른 종교 신도를 사칭하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일이 많으므로 조심하는게 좋다.(특히 20대 대학생들을 노린다.) 신천지나 동방번개는 개신교 계열 교회 신도들을 사기 대상으로 노리는데 비해 공교롭게도 이 쪽은 불교 계열이나 외계 영성계(...), 이슬람계까지 신도사칭 및 먹튀사기를 벌이는 걸로 악명높다. 물론 하이파 내 바하이 사원은 정부 지원을 받는 관광지인 만큼 한국에서처럼 대놓고 먹튀사기를 벌이지는 않겠지만서도...[7] 왜 뜬금없이 이스라엘에서 바하이교 관련 시설을 밀어주냐고 궁금할 수도 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바하이교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드루즈나 알라위같은 이슬람 소수파 인구가 꽤 되고 이스라엘 군에도 적극 복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달래주는 차원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바하이교 공원을 밀어준 것.[8] 근교의 아크레, 나사렛, 티베리아스 등의 도시랑 비교해보면 초라해보일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