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고보로프

 


'''레오니트 알렉산드로비치 고보로프 '''
'''Леони́д Алекса́ндрович Го́воров
'''

'''출생'''
1897년 2월 22일, 러시아 제국 키로프 소베츠키
'''사망'''
1955년 3월 19일, 소련 모스크바
'''복무'''
러시아 제국군(1916년 ~ 1917년)
소련군(1917년 ~ 1955년)
'''최종 계급'''
육군 원수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적백내전
겨울전쟁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레닌그라드 공방전
계속전쟁
'''주요 서훈'''
소비에트연방영웅 1회
레닌훈장 5회
1. 개요
2. 생애
2.1. 출생부터 독소전쟁까지
2.2.1. 레닌그라드 공방전
2.3. 냉전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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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포병지휘관이다, 최종계급은 소련원수

2. 생애



2.1. 출생부터 독소전쟁까지


러시아 키로프 주에서 선원에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옐라부가의 기술고교를 졸업하고 페트로그라드 종합기술학교에서 조선학을 전공한다. 여기까지 가면 그냥 해군감이였으나.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1916년 포병 학교로 전학하여 1917년 포병장교로 입대한다. 하지만 곧 10월 혁명이 터지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콜차크의 백군에 징집되었다. 그리고 탈영
적군에 가담하기는 하는데 이때 잠시 백군에 있었던게 문제가 되어 강철의 대원수에게 숙청당할뻔한다. 적군에 가담한 이후로는 바실리 블류헤르 휘하에서 싸웠다, 이때 2번의 부상을 입고 레닌훈장을 받는다.
그후 고보로프는 포병지휘관을 맡았고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붉은군대 총참모주 아카데미를 졸업한다. 그후 키에프 군관구의 포병사령관을 역임하였고, 1938년에는 드제르진스키 포병 아카데미의 교관이 되었다. 이때 대숙청에 휘말린뻔하나[1] 다행히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미하일 칼리닌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어 가까스로 생존한다.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고보로프는 7군의 포병사령관이 되어 뛰어난 포병을 다량으로 굴리는 전술로 만네르하임선을 뚫는데 공헌을 한다, 이때 적기훈장을 받으며 붉은군대 포병총감 대리에 오른다.

2.2. 독소전쟁


독소전이 발발하자 고보로프는 벨라루스와 폴란드에 주둔한 서부전선군의 포병감이 된다. 고보로프는 독일에게 박살난 소련 포병을 재건하는 동안 기동과 생산이 용이한 박격포를 대량생산해 보급해 지원화기로 사용하자고 한다.
이 전술은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인상적이였고 주코프는 고보로프의 후원자가 된다.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과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포병전술을 지도해 큰 공을 세우며 중장으로 진급한다.

2.2.1. 레닌그라드 공방전


1942년 4월 고보로프는 레닌그라드 수비사령관에 임명된다. 레닌그라드는 이미 41년 11월부터 포위상태였으며 독일군은 지속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고보로프는 뼈속까지 포병인 장교 답게 적절한 방어선 배치선정과 적 포병위치파악에 능했기에 적합한 자리였다. 그리고 1943년 1월에 실리셀부르크를 점령하여 레닌그라드 포위망에 구멍을 뚫는다. 1년뒤인 1944년에 레닌그라드 일대의 독일군을 말소하고 해방시켰으며 노보고로드도 탈환한다 뒤이어 계속전쟁때 원수로 진급하며 이때 소비에트연방원수 칭호를 수여받는다.

2.3. 냉전


전후 고보로프는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후 육군총감이 되었으며 차후 방공군 사령관이 되며 소련군의 방공능력 신장에 큰 기여를 하나 1958년에 만성질환이던 심장병으로 사망한다.[2] 사후 크렘린 벽에 안장되며 아들인 블라디미르는 대장으로 진급한다.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고보로프는 뼈속까지 포장이지만 같은 원수인 코네프, 주코프에게 묻혀서 보통 소련군 포장 서열 2-3위정도에 위치한다
이지테크의 장영1에서는 유일한 4성급 포장이지만 대령이라서 주코프에게 밀린다
세계정복자 3에서는 5성급에 가성비가 좋아서 1티어 포장이다, 하지만 세계정복자 4에서는 애매한 스킬셋으로 함정카드가 되었다
하지만 장영3에서는 부활해 1티어 포장으로서의 위엄을 널리 떨치고 있다.

[1] 백군출신이였단 것과 숙청당한 블류헤르의 부하라는것이 컸다.[2] 이게 다른 원수들과 비교하면 요절에 가까운 편이나 거의 60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요절이라 하기에는 애매하다.